영화 <범죄소년> 포스터

영화 <범죄소년> 포스터 ⓒ 호호호비치


17살에 아들을 버리고 도망간 미혼모와 부모 없이 비뚤어진 삶을 살아가던 그 아들의 만남부터 이별까지를 담담하게 그린 영화가 있다. <범죄소년>은 아들에 대한 엄마의 모정이 실현되는 식의 구구절절 울음을 야기하는 것이 아닌,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기로도 보인다.

영화 <범죄소년>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도쿄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최우수남우상과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범죄소년>은 제37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컨템포러리 월드시네마 부문'에 초청되어 관객과 평단의 뜨거운 호평을 받았고, 8일 개막한 타이페이금마장영화제(집행위원장 허우샤오시엔) '라이츠 오브 패시지(Rites of Passage)' 섹션에도 초청됐다.

이정현, 통상적인 엄마가 아닌 미혼모를 연기하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CGV왕십리에서 <범죄소년> 시사회가 열렸다. 아들 지구 역의 서영주는 영화 <도둑들>에서 김윤석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아역 배우지만, 꽤 성숙한 느낌이었다. 600 대 1의 캐스팅 경쟁률을 뚫고 지구를 연기하게 된 서영주는 영화 촬영 중 소년원에 일주일간 머물렀다. 그는 "소년원생들과 잠깐잠깐 이야기 나눈 것이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지구의 엄마 효승 역의 이정현은 "오디션 당시 서영주 군이 가장 느낌이 좋았고 감독이 캐스팅하는 데 자신의 의견을 반영해줬다"고 전했다. 이정현은 "인권위원회의 영화는 무겁고 메시지가 가득 담긴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시나리오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며 "감독의 전작 <사과>를 잘 본 것이 영화 출연에 대한 확신을 줬다"고 덧붙였다.

 영화 <범죄소년> 시사회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CGV 왕십리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미혼모 효승 역을 맡은 이정현과 그의 아들 지구 역을 맡은 서영주, 그리고 강이관 감독이 참석했다.

영화 <범죄소년> 시사회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CGV 왕십리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미혼모 효승 역을 맡은 이정현과 그의 아들 지구 역을 맡은 서영주, 그리고 강이관 감독이 참석했다. ⓒ 김민관


강이관 감독은 결정적으로 이정현이 출연한 <파란만장>을 보고 출연제의를 했다. 정작 이정현은 엄마 역할이라 깜짝 놀랐다고. 그는 "강이관 감독에게서 '실제 미혼모들이 어리고 학생 같은 친구들도 많다. 엄마와 아들이라기보다 친구 같고 나이대가 비슷하기를 원한다'는 말을 듣고,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사람들한테 응원을 해줄 수 있는 영화가 될 것 같아서 참여하게 됐다"고 전했다. 실제 이정현과 서영주 군은 18살 차이가 난다.

이정현은 "영화를 위해 미혼모 관련 다큐를 많이 봤고, 시나리오가 어두웠고 폭발하는 신들이 있어서 촬영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만약 내게 아들이 있었으면 세상을 밝게 보려고 노력할 것 같다고 생각했고, 이를 연기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엄마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연기 폭이 넓은 배우"

도쿄국제영화제 최우수남우상을 수상한 서영주 군 외에도 영화 속의 이정현은 그야말로 발군의 연기력을 보인다. 결과적으로 이정현이 연기한 효승은 평소 매우 밝고 싹싹하지만, 자신의 생계가 위협받게 되면 발악하며 돌변한다. 가녀린 외모에 소녀 같은 그녀의 얼굴에서 놀랄 만큼 다채로운 면모가 발현된다.

포스터의 사진은 서영주 군이 영화를 찍고 난 이후의 사진이다. 중학교 2학년일 때 171cm이던 키는 포스터 찍을 당시 180cm이 됐다. 꽤 많은 사람들이 포스터를 보고 엄마와 아들이 아닌 연인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강이관 감독은 "효승이 어린 시절에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아이를 한 번도 낳은 적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맞는다고 생각했고, 엄마처럼 보이지 않는 배우를 캐스팅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어 강 감독은 "이산가족 찾기와 같이 오래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만나게 되면 그 이후로 어떻게 살까 궁금했다"며 "앞에 지난 과거가 있는 만큼 연기 폭이 넓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정현을 생각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영화 <꽃잎> 이후에 이정현이 연기를 하고 있었나 싶어 찾아봤는데, 영화 <파란만장>에 나온 이정현은 그 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연기를 잘 한 배우 같았다. 이정현은 설경구, 송강호, 문소리보다 아래 세대로서 폭넓은 연기를 할 수 있는 많지 않은 배우 중 한 명으로 보인다.

 (사진 왼쪽부터) 강이관 감독, 배우 이정현, 서영주, 영화 <범죄소년> 기자간담회 현장

(사진 왼쪽부터) 강이관 감독, 배우 이정현, 서영주, 영화 <범죄소년> 기자간담회 현장 ⓒ 김민관


'인권 착취' 끝에 탄생한 '진실한' 영화

<범죄소년>은 저예산 영화이지만, 35회차나 촬영했다. 이에 대해 강이관 감독은 "인권 착취"라고 말했다. 강 감독은 "여러 측면으로 좋은 연기가 나올 때까지 테이크를 여러 번 가거나 설정을 바꾸거나 했다"면서도 "(결과적으로는) 무리였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 무리한 촬영은 바꿔 말하면 감독의 취재에 대한 열정이었고, 그 사전 준비 기간은 영화보다 더욱 길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법무부의 도움을 받고, 기관들의 양해를 구해 실제 소년원, 보호관찰소, 경찰서 등 기관들을 5개월간 취재했다. 이후 감독은 모두 실제 장소에서 촬영하고자 했고, 국내 최초로 소년원에서의 촬영이 성사되었다.

강 감독은 "청소년 범죄도, 흉악한 범죄도 많아지는데 여러 소년원들에서는 똑같이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의 가정은 문제가 있다'고 한다"며 "이를 개인과 제도의 문제로 돌리는데,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이혼율이 증가하고 아이들이 여기 저기 떠맡겨지면서 영화와 같은 현실들이 많이 벌어지게 된다. 청소년 범죄의 문제의 원인을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찾아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서영주 배우가 기자간담회 처음에 전한 이야기가 의미심장하다.

"소년원 처음 들어갈 때 굉장히 무서웠지만, 막상 가보니 우리랑 다를 게 없었고, 먼저 다가가면 평범한 소년임에도, 우리가 먼저 다가가지 못하니 범죄소년이 된 것 같았다."

우리는 '범죄소년'으로 낙인찍힌, 우리 곁을 뱅뱅 돌고 있는 청소년들에 대한 냉담하거나 무관심한 시각에서 탈피해 그들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을까. 우선 그들에게 실제로 먼저 다가간 이 영화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아트신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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