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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뉴스 [오마이포토] 수염그리는 개코, '1위 공약 지켰어요!'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사건, 금강산 관광 중단, 대북단체 '삐라' 살포와 북한의 조준타격 논란 등. 이명박 정부 내내 남북 관계는 차가웠고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북한과 맞닿아 있는 접경 지역은 곧바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대선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지금, <오마이뉴스>는 접경지를 찾아가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습니다. [편집자말]
 양구군 해안면 가는 길의 동면 팔랑2리 마을 안내판. 안내판에 '여기는 태극기 휘날리며 전적지'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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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때 눈앞에서 터진 지뢰의 폭발음이 생생하다. 지뢰는 군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플래시 밑 부분의 둥근 뚜껑을 닮았고, 폭발물로 의심하기에는 지나치게 가벼웠다. 그의 나이 14살. 그는 그 물건을 나무를 하러 가던 산길에서 주웠다. 그는 땅 위에 버려져 있는 그 물건을 집으로 가져와 고철이라도 분리해서 내다 팔 생각으로 손을 댔다. 그 다음 엄청난 폭발음이 들리는 동시에 정신을 잃었다.

그 폭발로 그는 한쪽 눈과 한쪽 손과 치아 거의 전부를 잃었다. 남은 한 손도 손가락 4개를 잃었다. 온 몸에는 지뢰 파편이 박혔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 후로 그의 인생은 지뢰 폭발로 생겨난 상처 만큼이나 고통스러웠다. 장애인으로 천대와 멸시를 견디며 살아야 했다.

지뢰 폭발로 그의 몸이 산산조각난 지 44년, 그는 지금도 어디서 큰 소리가 나기만 해도 마치 지뢰가 폭발하는 것 같은 충격을 느낀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60여 년. 그렇지만 그의 인생에서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어디 가서 하소연 한 번 못했다"

 서정호씨가 손가락이 잘려나가 뭉툭한 손으로 아직도 지뢰가 묻혀 있는 마을 주변의 야산을 가리키고 있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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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 피해자 서정호(59)씨는 한국전쟁이 끝난 이듬해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났다. 50년대 말 아버지를 따라 민통선 지역인 양구군 해안면 현리로 이주했다. 사고는 14살이 되던 해 발생했다. 일명 '폭풍지뢰'로 불리는 대인지뢰를 건드린 것이다. 파편이 온몸에 파고들어 몸이 성한 곳이 별로 없었다. 군부대 지프차를 얻어 타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 하지만 남의 땅을 개간해 살던 집 형편에 치료비를 대기 힘들었다. 닭과 소를 팔았다.

결국에는 치료비를 제대로 내지 못해 몇 달 만에 병원에서 쫓겨났다. 몸에 박힌 파편을 모두 제거하지 못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몇 개의 파편이 피부 밖으로 튀어나오기까지 했다. 서씨는 그 파편을 자신의 손으로 뽑아냈다. 장애를 입은 탓에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었다. 국가로부터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 국가에 무언가를 요청할 수 있는 때도 아니었다. 지뢰 폭발을 그저 자신의 잘못으로 돌렸다. 장애인이라는 편견 속에 어디 가서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살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야겠기에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농사로 이익을 남기는 게 하늘의 별따기였다. 애초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게 무리였다. 수차례 농산물 가격 폭락 사태를 겪고 나서는 빚으로 빚을 갚는 일이 되풀이됐다. 결국 그는 '파산'했다. 그나마 집 한 채 있는 것까지 남의 손에 넘어갔다. 그 집은 그가 손수 지은 집이다. 그 집을 짓는 데 온몸을 사용했다.

 서정호씨가 자신의 집에서 손이 없는 한쪽 팔과 손가락이 성치 않은 한쪽 손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그동안 남들의 시선을 피해 살아 왔지만, 이제는 그 사람들에게 자신과 같은 지뢰 피해자들이 입은 상처를 보여줄 때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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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금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얼마 전 허리를 다쳐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는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지뢰 폭발 이후 장애 2등급 판정을 받았지만 장애수급은 물론, 아들이 있어 기초생활수급비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왔는지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면, 온통 아픈 기억뿐이다. 기를 쓰며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악착같이 산 결과가 파산이라니. 지뢰 폭발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자신이 사는 마을에는 그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자신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중학교 친구를 비롯해, 지뢰 폭발로 불구가 된 사람이 여럿이다. 지뢰 폭발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그보다 더 많다. 서씨와 같은 지역에 사는 지뢰 피해자 박춘영(84) 할머니는 19년 전 둘째 아들이 지뢰 때문에 부상을 입은 데다 17년 전에는 지뢰 폭발로 큰 아들과 손자를 잃는 불운을 겪었다.

지뢰 폭발 사고가 마을 주민들에게만 일어난 것도 아니다. 10여 전에는 서씨가 일군 밭 근처 20여 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산나물을 캐던 외지인이 지뢰가 터져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씨는 자신의 밭에서 시체가 들려 나가는 걸 지켜봤다. 그가 사는 마을 야산에는 아직도 곳곳에 지뢰밭이 산재해 있다. 그곳에 지뢰 표지판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올지 알 수 없다.

서씨는 요즘, 사람들이 지뢰 피해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고 있다. '지뢰 폭발 사고'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과거에 있었던 일이든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든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일이다.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기엔 너무 힘에 부친다. 그런데도 국가는 전쟁이 끝나 60여 년이 흐르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지뢰 폭발 사고를 피해자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일로 치부하고 있다. 그는 그것이 몹시 답답하다.

강원도 내 지뢰 피해자 233명

 강원도청과 평화나눔회의 지원을 받아 강원대학교병원에서 재수술을 받고 있는 김정호씨. 그는 눈과 팔과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얼굴에는 파편이 박혀서 난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다. 사고 당시 얼굴뿐만이 아니라 몸 전체에 파편이 튀었다. 일부 파편은 아직도 그의 몸 속에 박혀서 제거가 불가능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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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 피해자 김정호(58)씨는 철원군 동송읍 이평리에서 국민학교 2학년에 다니던 시절, 친구들과 벌판에 나가 놀다가 사고를 당했다. 호기심에 땅 위에 올라와 있는 지뢰를 건드렸다. 물론 그것이 지뢰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그가 만진 지뢰 역시 폭풍지뢰였다. 그는 그때 일어난 폭발로 한 쪽 눈과 한 쪽 손을 잃었다. 다리는 정강이가 휘어지는 장애를 입었다.

상처를 치료하느라 서울로 인천으로 안 다닌 곳이 없다. 치료비가 어마어마하게 들어갔다. 치료비를 대느라 땅까지 팔았다. 그 바람에 집안이 크게 기울었다. 그런데도 몸은 다 낫지 않았다. 그 상태로 수십 년 고통스런 세월을 보냈다.

그런 피해를 입고도 그 역시 그 어디에다가도 하소연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사고를 당한 곳은 군사작전지역이었다. 군사작전지역에 들어가 사고를 일으킨 것만으로도 죄가 될 수 있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부모는 그저 내 자식이 잘못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걸로 생각했다.

그의 기억에 당시 철원에서는 지뢰 폭발이 빈발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철원읍 대마리에서는 거의 한 집 건너 한 집에서 지뢰 폭발 사고 피해자가 발생했다. 대마리는 정부가 민통선 안으로 농민들을 집단 이주시켜 땅을 분배해주고 농사를 지으며 살게 한 곳이다. 그런데 이주민들이 그곳의 땅을 개간하면서 지뢰 폭발 사고가 수도 없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의 기억은 틀리지 않았다. 2006년 한 민간단체의 조사에서 대마리는 지뢰 폭발 사고 다발 지역으로 나타났다.

그는 지금 혼자 살고 있다. 결혼 후 아내와 두 딸과 살았지만, 지금은 그들 모두 그의 곁을 떠나거나 사망한 상태다. 그는 곧이어 닥칠 겨울이 걱정이다. 지금으로서는 당장 살 길이 막막하다. 기계를 다루는 기술이 있지만, 장애가 있는 그를 채용하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

그는 지뢰 폭발 사고 이후 47년을 장애를 입고 살았지만 국가에서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고 별다른 지원도 해주지 않고 있는 데 섭섭한 마음을 나타냈다. 대선 후보들이 갖은 공약을 쏟아내면서도 지뢰 피해와 관련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있는 것에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래도 그는 요즘 새로운 세상을 살고 있는 기분이다.

그는 지난 6월부터 강원도와 평화나눔회의 지원을 받아 강원대학교병원에서 47년 전에 못 다한 치료를 받고 있다. 안과 수술과 함께 굽은 정강이를 펴는 수술을 받았다. 강원도와 평화나눔회는 지난해 도내 지뢰피해자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233명의 피해자를 찾아냈고, 그 중 60여 명을 대상으로 의료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사업비는 삼성 사회공헌기금의 지원을 받았다. 김씨는 이 치료를 '가뭄 끝에 단비'로 표현했다. 하지만 그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번번이 무산... '피해자 지원 특별법' 제정 시급

 서정호씨가 지뢰를 주워온 곳 근처에서 바라본 마을 야산. 다른 산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곳 야산은 대부분 '지뢰 미확인지대'다. 여전히 지뢰가 묻혀 있다. 한국전쟁 이후 이곳의 야산으로 산나물을 캐러 들어갔다가 사고를 당해서 실려나오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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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지역은 지뢰 폭발이 상존하는 곳이다. 그런데도 지뢰 매설 지역으로 확인된 곳은 채 10%가 되지 않는다. 사전 사후, 아무런 대책이 세워져 있지 않다. 지금도 민통선 안의 미확인 지뢰지대에서 지뢰가 폭발해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건이 거의 매년 발생하고 있다.

그동안 지뢰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국회에서 '지뢰 피해자 지원 특별법'이 여러 차례 발의됐다. 하지만 매번 국회 임기 만료와 동시에 자동 폐기 되는 일을 거듭해왔다. 여기에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철원·화천·양구·인제)이 다시 한 번 특별법 제정에 힘을 쏟고 있다. 강원도 최문순 도지사 역시 특별법을 제정하는 데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강원도는 지뢰 문제를 피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사회의 문제로 보고 있다. 강원도는 올해 1월 지뢰 피해자 지원단체인 평화나눔회와 공동으로 도내 민간인 지뢰 피해자 실태를 조사한 결과 양구 89명, 철원 67명 등 총 233명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했다. 강원도는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국가배상법이 있는 것조차 모른 상태에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지금까지 고된 생활을 이어왔다고 밝혔다.

그래서 특별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아무래도 민간 단체와 기업의 지원을 받아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30일에는 양구군 해안면사무소에서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한기호 의원은 이 간담회 자리에서 "지뢰 피해자들을 위해 실질적인 지원이 가능한 특별법 제정에 힘을 쏟겠다"고 약속했다.

 양구군 해안면 'DMZ 펀치볼 둘레길' 3코스 중에 하나인 '만대둘레길' 표지판. 해안면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침식분지로, 한국전쟁 당시 이곳을 찾은 외국인 기자가 이곳의 지형이 화채그릇을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펀치볼'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이 둘레길 주변의 야산은 대부분 지뢰 미확인지대다. 길을 벗어나게 되면, 큰 사고를 당할 수 있어 꽤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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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60여 년 전에 일어난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많지 많다. 그래서 때로는 전쟁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후로도 누군가는 계속 전쟁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실제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전쟁이 재발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휴전선에 맞닿아 있는 민통선 지역에 감도는 분위기는 휴전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고 불안하다.

한국전쟁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사람들이 접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다. 전쟁이 끝난 이후 60여 년 가까이 끌어온 냉전으로 또 다른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들 역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오늘날 접경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쟁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최전선에 지뢰피해자들이 서 있다. 그들이 지금 자신들이 치러온 전쟁을 끝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국가는 그동안 지뢰 피해자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지뢰 피해자들은 지금 무엇보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 줄 것을 원하고 있다. 국가를 움직이는 힘이 거기에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수십년 동안 접경지역에 살면서 치러온 '전쟁'에 대해 본격적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지뢰 폭발로 인해 입은 상처를 치료하고 피해를 보상받는 데 국가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그들의 '전쟁'을 끝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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