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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토) 오전 9시에 익산시 인화동 남부시장에 위치한 문용기 순국열사비에 익산의 청소년과 어린이 등 약 200여 명이 모여 '제83회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날'을 맞아 3ㆍ1운동의 역사가 있는 문용기 열사 순국비, 4·19 학생의거 기념탑, 5·18 임균수 열사 추모비를 찾아 나서는 역사순례를 가졌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83년 전(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독립운동이다.

익산의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군의 칼에 의해 양팔이 잘리고 옆구리가 찔려 순국한 문용기 열사 순국비가 있는 남부시장에서 추도하는 시간을 가진 이들은 약 2km 정도 떨어져 있는 4·19 학생의거 기념탑이 있는 익산역 광장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 익산 근대사 역사순례
ⓒ 오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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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모인 청소년들은 해설사로부터 4·19에 대한 설명을 듣고 헌화하며 추모했다. 익산역 광장에는 3·1운동 기념비와 1950년 미 공군기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폭격을 당한 '이리역 폭격 희생자 위령비도 세워져 있다.

추모를 마친 이들은 익산교육지원청에서 지원한 버스 3대를 이용해 원광대학교 인근까지 이동한 후, 다시 걸어서 원광대학교 안에 있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한 당시 원광대학교 한의대 본과 2학년이었던 임균수 열사 추모비에 모였다.

이들은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영상과 설명을 들으며 헌화하며 그 고귀한 뜻을 기렸고 당시에 주먹밥을 먹으며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도록 주먹밥을 먹는 시간도 가졌다.

특히 소외된 이웃을 위해 농민운동 및 민중운동을 펼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정권의 실상을 알리려다가 테러를 당했던 박창신 신부(익산 모현동성당 원로 신부)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학생들과 함께 하기도 했다.

박창신 신부는 "청소년 근현대사 순례 장정 행사를 처음부터 참여하면서 요즘 젊은이들이나 학생들의 역사의식이 없는데 오늘 아주 중요한 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많은 학생과 시민들도) 익산에도 자랑거리가 많고 익산의 중요성과 역사의 중요성을 체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원봉사로 참여한 최해지(이리여고 2학년)양은 "우리나라가 급변하게 경제성장을 이뤘고 빠르게 변하다보니깐 민주화같은 것도 제대로된 절차도 못밟고, 부정 부패를 거치는 시대를 보내면서도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고 헌신한 분들이 제 고향인 익산에도 계셔서 뿌듯하고 익산의 문화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제법 어른스럽게 말했다.

김정훈(이리고 2학년)군은 "이전에는 몰랐던 익산의 열사들을 많이 알게돼 좋았다"고 말했고 김무늬(이리여고 2학년)양은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독립을 위해서 저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서 지금 좋은 곳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며 "그 분들의 (희생이) 누가되지 않도록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행사는 매년마다 열리고 있는 익산청소년문화축제의 일환으로 제83회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날을 기념해 오전에는 익산 역사순례를 가졌고 오후에는 솜리예술회관에서 문화예술제를 가졌다.

한편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0월 30일의 나주역 충돌사건이 일어나  한·일 학생간의 쟁투가 벌어지다가 11월 3일 명치절(일본국경일)에 광주농업학교, 광주사범학교, 광여고보생들이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일본인 신문사를 습격하는 등 대대적인 시위가 국내·외로 번져 1931년 5월 말까지 320개의 학교에 5만4000여 명이 참가해 권고퇴학 580여 명, 자진퇴학 350여 명, 무기정학 2300여 명, 피검자 1640여 명이 발생한 1919년 3·1운동 이후 규모가 매우 큰 학생들이 결성한 독립운동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익산시민뉴스



태그:#광주학생독립운동, #익산 역사순례, #문용기 열사, #임균수 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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