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 <추격자> <아저씨>를 잇는 '한국형 감성 범죄물'

제목은 별로였다. 극장에서 표를 살 때나 상영관에 입장할 때 '<내가 살인범이다>란 말이 얼마나 인구에 회자될까 생각해보면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별로가 아니었다. 영화 보다 도중에 재채기가 나올라쳐도 참으면서까지 장면을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대작은 아니지만 영화에 대해 칭찬할만한 점이 네 가지는 있다. 첫 번째로 각본과 연출이다. 일단 전체적으로 각본은 완벽한 편이다. '말이 안 될 것 같은' 이야기를 끝까지 보게 하는 정성이 돋보였다. 연출은 유가족이 첫 등장 하고 나서 한동안 생경했다든지, 어딘가에서 본듯한 느낌이 난다든지 하는 등의 미흡한 점이 없지 않았지만, 잘 완성된 각본이 그런 부분을 다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두 번째 칭찬할만한 점은 액션 신들이다. 초반의 격투신과 추격신은 배우들과 촬영, 편집 파트가 혼연일체를 이뤄 썩 보기 좋게 완성되었다. 이후 몇 번 등장하는 자동차 액션 신들은 앞서 각본이 그랬듯 '말이 안 될 것 같은' 장면들을 재밌게 보게 만들어져 있다. 특히 스턴트 액션을 소화한 배우들에게 진심으로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잠깐 정리하고 넘어가자. '말이 안 될 것 같은' 이야기와 액션 신들에서 어떻게 이목이 집중될 수 있었을까. <살인의 추억>에서처럼 소재에 적절한 '시사성'이 있었고, <아저씨>에서처럼 인물의 행동에 '단순한 복수 당위성'이 스며있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추격자>에서 느꼈던, '악(惡)이 악(惡)을 몰아내려는 분위기'가 더해져 관객으로 하여금 관심이 가게 만들었다.

세 번째로 칭찬할만한 점은 역시 촬영과 편집이다. 한 마디로 잘 찍고 잘 붙였다. 네 번째로 칭찬할만한 점은 역시, 정재영과 김영애를 비롯한 배우들의 명연기다. 특히 정재영은 이 영화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주인공이거나 인기 배우라서만은 아니다. 사실 <내가 살인범이다>는 처음 시작은 평범하며 한동안 이게 어떻게 흘러갈까 다소 미심쩍게끔 연출되어져있다. 그런 영화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게 바로 '정재영의 힘'이었다.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의 한 장면.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의 한 장면. ⓒ 쇼박스


정재영의 힘이 빛났다...대사와 액션까지 완벽
         
형구(정재영 분)가 두석(박시후 분)의 저자 사인회를 찾아가는 신이 있다. 두석이 아니꼬운 형구가 행패를 부릴듯 하자 형구의 과거 후배인 경호원이 형구를 막아선다. 그때 형구가 하는 말이 압권이다. "너한테 사인 받아야겠다", 이 대사 말이다. 각본대로였는지 애드리브였는지 모르지만, 손뼉을 치며 웃게 만들었다. 그로인해 공감이 되면서, 이 영화의 편이 되어 갔다.

'정재영의 힘'이 그거다. 관객으로 하여금, 출연하고 있는 영화의 편이 되게 만든다. 그의 연기는 탁월하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친근감이 있다. 대사할 때의 말투나 톤이 재미를 준다. 예를 들어 영화 중반 이후에 형구가 누군가를 추격하는 신이 있다. 갑자기 형구 앞에 자동차가 멈추자, 그 긴박한 추격 와중에서도 형구는 운전자에게 욕설을 해준다. 이런 게 보다 리얼한 사람의 모습인 것이다.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정재영인듯 하다.

박시후도 첫 영화에서 꽤 주목할 만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특히 출판사 여사장과 자축하는 자리에서 그녀에게 "살인범이라 우습냐"며 차분히 화를 내는 모습이 괜찮았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지닌 반전의 특성에 맞는 연기를 잘 해냈다고 보았다. TV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악역으로 나왔던 김영애는 유가족 중 한명으로 나와 명연기를 보여준다. 그 외에 장광, 조은지 등 탄탄한 연기력의 배우들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주었다.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의 한 장면.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의 한 장면. ⓒ 쇼박스


이 영화에는 꽤 대단한 반전이 숨어있다. 제작 소식을 접하며 어느 정도는 뭔가 있을 거라 짐작했지만, 구체적으로까지는 생각 못했던 것이었다. 분명 이 영화는 한번쯤 볼만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보기가 힘들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지만(내용상 그렇다는 뜻이다) 영화 보기 전에 예상했던 엉성함 대신 즐거움이 발견되는 작품이다.

영화가 끝나고 이어지는 엔드 크레디트를 보면, 각 지역의 영상위원회가 이 영화를 도왔다. 최근 본 한국 영화중 가장 많은 수의 영상위원회였다. 아마도 전국을 다니며 이야기에 적합한 촬영지를 찾은 수고를 들인 게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내가 살인범이다>는 그런 제작진의 수고가 헛되지만은 않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관객들의 반응이 유독 궁금해지는 영화다. 

내가 살인범이다 정재영 박시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