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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의 지식인. 언론인. 에두아르노 칼레아르노의 저서 "수탈된 대지"는 원어 스페인어 제목으로는 "la vena abierta de america latina"로 "라틴 아메리카의 절개된 혈관"이라는 의미를 뜻한다. 번역을 거치면서 원어 제목이 가지고 있던 문학적 효과가 감소됐다고 생각한다. 절개된 혈관 사이로 끊임없이 분출되는 것은 이 지역에 신이 선물한 자원이 될 수도 있고, 외세의 수탈로 끊임없이 고통당하는 민중들의 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수탈된 대지, 라틴 아메리카 그 중에서도 콜롬비아 우루과이의 지식인. 언론인. 에두아르노 칼레아르노의 저서 "수탈된 대지"는 원어 스페인어 제목으로는 "la vena abierta de america latina"로 "라틴 아메리카의 절개된 혈관"이라는 의미를 뜻한다. 번역을 거치면서 원어 제목이 가지고 있던 문학적 효과가 감소됐다고 생각한다. 절개된 혈관 사이로 끊임없이 분출되는 것은 이 지역에 신이 선물한 자원이 될 수도 있고, 외세의 수탈로 끊임없이 고통당하는 민중들의 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안준모 - Søren Højland Bo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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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평화회담의 성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10년 만에 콜롬비아 정부와 Farc(Las Fuerzas Armadas Revolucionarias de Colombia - Ejército del Pueblo o FARC-EP)간의 평화회담이 재개되었다.

협상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기 전 양측이 가볍게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생각보다 날선 공격들이 오고 갔다. 먼저 공동으로 모두 언론 인터뷰를 갖고, 정부측이 단독으로 다음으로는 Farc의 협상단이 자리를 가졌다. 오고간 공방 중 회담에서 논의 될 사항 5개 중 첫 번째 주제 농업과 관련있는 "경제모델"을 두고 생각보다 큰 의견차가 보여졌다.

지난 목요일 Farc의 협상단원 및 리더 격인 이반 마르케스(Iván Márquez)은 정부가 지난 2011년 입법한 토지반환 법안 (LEY DE RESTITUCION DE TIERRAS - 원래 이법안의 정식명칭은 피해자 및 토지 반환 법안[Ley de Víctimas y de Restitución de Tierras]으로 게릴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구제와 반군의 폭력으로 토지를 잃은 사람들에게 토지를 반환해주는 법안이다.)에 대해서 농민에 대한 '한갓 기만 행위'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뒤이어 다음날인 지난 금요일 후안 마누엘 산토스 (Juan Manuel Santos) 현 콜롬비아 대통령이 콜롬비아에서 오슬로로 반격을 가했다.

라디오 프로그램 "En línea con el Presidente (대통령과의 직통 [핫라인])"에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Farc의 인원들이 우리의 법안에 대해서 거짓이라고 한다고 하면, 이는 그들 무리들을 제거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콜롬비아로 보내는 협상단에게 산토스 대통령은 모든 책임은 자기가 지겠다는 말을 전했다. 그만큼 협상에 대한 의지 및 내전의 종식을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경제에 관련된 사안에서 이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콜롬비아 경제에 대한 거친 개관

콜롬비아는 한국과 비교하여 방대한 영토와 풍부한 지하자원, 넓은 식생, 적도에 가까운 지리적 이점에서 대량의 농산물 생산이 가능한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4500만의 인구는 내수시장을 형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인구규모이다. 필연적으로 콜롬비아 경제가 살길은 수출에 전력을 다하는 길이다.

중남미 대륙에 위치한 국가 중 인구 1억이 넘는 국가는 브라질을 제외하고는 없다. (멕시코를 중남미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멕시코는 지리적으로 북미에 속한다. 멕시코, 미국 및 캐나다가 맺은 NAFTA도 North America를 의미한다.) 콜롬비아는 20세기 초반 막대한 커피 수출로 산업화를 위한 자본 형성이 가능했고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경제 위원회[CEPAL - (La Comisión Económica para América Latina y el Caribe)]모델을 따라 산업화를 진행한다.

CEPAL 모델은 케인즈의 뉴딜정책과 같이 정부가 산업화에 개입하여 전략적으로 산업을 육성하는 모델이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대부분의 남미 국가들이 이 모델에 따라 발전계획을 세우고 실행했지만 20세기 후반 강력한 외채위기만 얻었을 뿐, 경제는 후퇴 일로에 빠진다. 콜롬비아의 경우 외채 위기에 피해여파가 적은 국가였지만, 그렇다고 위기 속에서 독보적으로 성장을 일군것도 없다. 사실, 이 시기 다른 중남미 국가들이 포퓰리즘에 열광하고 있을 당시 콜롬비아만이 거의 유일하게 포퓰리즘 정치형태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칠레에 세계 최초 선거를 통한 공산정부 (당시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가 들어서고 아르헨티나에서는 페론이 집권하여 빈곤층을 대폭 지원하는 정책을 펼치던 때이다. 브라질에서도 바르가스 대통령이 연이어 집권하며 포퓰리즘 정책을 이어나갔다. 이런 중남미의 포퓰리즘 광풍 속에서도 콜롬비아는 기득권 보호 및 수구적인 정치, 경제 형태를 지켜냈었다. 이 시기 콜롬비아 정국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20세기 초반 자유세력과 보수세력간의 갈등은 천일 전쟁 (La guerra de los mil dias)이라는 무력 충돌을 낳았고 어마 어마한 인명피해를 낳았다.

콜롬비아의 폭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고 이어서 보고타소 (Bogotazo), 라 비올렌시아 (La Violencia)라는 무력충돌이 발생했고, 끝에는 자유세력과 보수세력이 정부구성을 두고 합의를 한 국민전선 (El Frente Nacional)이 체결된다. 정치적 진입이 사실상 좌절된 좌익 – 농민세력들은 게릴라로 전환하여 무장투쟁을 이어나간다.

수구적 성격의 정부는 경제 정책에서도 기존의 조합이나 지주 및 자본가세력을 위한 정책을 펼쳤다. 이런 결과로 산업화는 진행했지만, 더 늦게 산업화에 뛰어든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생산성에서 밀리고 후진국대열로 뒤처지게 됐다.

뒤늦었지만 91년 헌법 (La constitucion 1991)을 계기로 콜롬비아는 국가의 경제정책에 대한 개입을 대폭 축소한다. 민간과 자율에 모든 전권을 맡긴다는 정책이다. 외국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겠다는 의지 또한 피력했다. 그러나 개혁과 개방은 97년 아시아 발 금융위기를 맞고 방향을 잃었다. 2002년 집권한 알바로 우리베 (Álvaro Uribe Vélez) 대통령은 강경친미 및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한다.

콜롬비아 경제에서 91년 헌법의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개입주의 (Intervencionismo)를 포기한 시점부터를 Desindustrilaizacion(산업화 포기 – 정확히 말하자면 공업화 포기)로 보고 있다.

1948년 4월 9일 보고타의 거리에서 당시 자유당의 급진파를 대변하는 대통령 후보 가이탄(Jorge Eliecer Gaitan)이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천일 전쟁 이후 상대적으로 잠잠해진 자유당과 보수당간의 대결국면을 다시 재점화하게 됐고, 이후 라비올렌시아까지 이어지고 결국에는 국민전선이라는 보수당과 자유당의 정치 퇴행적인 협약을 맺기에 이른다. 정치권력에서 완전히 멀어진 농민 - 좌익 세력은 Farc을 결성하게 된다.
▲ 콜롬비아 1000뻬소에 등장하는 가이탄(Gaitan) 1948년 4월 9일 보고타의 거리에서 당시 자유당의 급진파를 대변하는 대통령 후보 가이탄(Jorge Eliecer Gaitan)이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천일 전쟁 이후 상대적으로 잠잠해진 자유당과 보수당간의 대결국면을 다시 재점화하게 됐고, 이후 라비올렌시아까지 이어지고 결국에는 국민전선이라는 보수당과 자유당의 정치 퇴행적인 협약을 맺기에 이른다. 정치권력에서 완전히 멀어진 농민 - 좌익 세력은 Farc을 결성하게 된다.
ⓒ 안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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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베 정부는 광업 및 농업 수출에 전력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기술을 외국자본으로부터 받아들였다. (재미 있는 점은 콜롬비아의 책 값은 한국과 비교하여 비싼 편이다. 위의 언급했듯이 풍부한 식생에 방대한 영토를 가진 국가가 책값이 비싸다고 하면 다소 의아스러운 일이다. 자원, 정확히 콜롬비아의 목재들을 외국계 기업에 제공해주고 기술을 가진 외국계기업들이 종이형태로 가공 생산한것을 콜롬비아가 다시 되사는 것이다. 그러니 책값이 비쌀수 밖에 없다. 그리고 책값이 비싸니 더욱더 빈곤층은 정보에 대한 접근이나, 교육의 기회로 부터 멀어진다. 외국계 기업의 원목 가공 생산이 콜롬비아의 경제 및 교육에 모두 영향을 끼치고 사회적 양극화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장기간의 광산 채굴권 또한 외국계 자본에 넘겼다. 수출위주의 농업을 위해서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노동의 강도는 더욱 강해졌지만 그 대가로 얻는 임금은 변화가 없었다.

Farc은 외국계 자본과 수탈적 수출주도 정책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측은 이러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통해서 경쟁력있는 산업 분야를 육성할 수 있는 자본을 축적하고 국가의 장래를 위한 전략적 투자에 나서고 농업의 현대화를 통해 세계수준의 경쟁력을 갖추자는 입장이다.


콜롬비아의 현실, 극심한 양극화 구조


위에서 언급했듯이 20세기 중반 남미의 대부분 국가들이 포퓰리즘 정부아래서 1492년 이후 지속되어온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콜롬비아의 경우는 단 한번의 군부의 정치 개입이 있었지만(구스타보 로하스(Gustavo Rojas)), 이마저도 개발독재 모델인 멕시코의 포르피오 디아스(José de la Cruz Porfirio Díaz Mori)의 모델을 실현하고자 한 것이었다. 결국 역사적으로 콜롬비아는 경제 불균형 해소를 위한 커다란 진전이 없었다.

게다가 UN의 정보에 따르면, 콜롬비아 사유지의 52%를 전체인구 1.15%가 소유하고 있다는 통계가 존재한다. 이런 상황을 비꼬기 위해 회담 개시전 언론과의 회담에서 Farc측은 흙을 습관적으로 먹는 병을 가진 대농장주("geofagia" de los latifundistas)  마콘도[마콘도는 중남미 문학의 거장, 콜롬비아 작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대표작 ''백년동안의 고독"에 등장하는 도시이다. 이야기 안에 수만명의 노동자가 학살돼 나가기도 하는 곳으로 중남미 현대사의 압축판인 장소이다. 마술적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게릴라는 콜롬비아의 불평등의 정도가 마술에 가까울정도로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의 불평등("el Macondo de la desigualdad") 같은 표현을 사용하며 콜롬비아가 현실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극심한 양극화 구조를 지적했다.

Kotra의 콜롬비아 경제에 대한 리포트를 참고하면 콜롬비아가 현재 직면한 극심한 양극화에 대한 이해의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 몇 단락을 인용해본다. (콜롬비아, 중남미 7위에서 4위 경제 강국으로 부상, 정윤환. 논문)

한편, 콜롬비아 중앙은행의 호세 다리오 우리베(José Darío Uribe) 총재는 콜롬비아 경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나 상대적으로 높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석유 및 광업 분야에 대한 외국인 투자 및 산업 발전이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다 보니 콜롬비아의 실업률이 중남미 최대인 12.2%를 기록(2010년 4월 기준)한다고 설명하면서, 콜롬비아 경제 성장이 조금이라도 둔화되면 실업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큰 사회문제로 번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함.

더불어 콜롬비아 국가기획처 (Departamento Nacional de Planeación)의 실업, 빈곤, 불평등 문제 연계 대책반 (MESEP, Misión para el Empalme de las Series de Empleo, Pobreza y Desigualdad)의 최근 보도자료에 의하면, 급격하게 상승하는 콜롬비아의 국내총생산 및 1인당 GDP 경제지표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을 포함해 빈부격차는 갈수록 증가하며 지난 2009년 전체 인구 가운데 16.4% (700만 명 이상)가 극빈층, 45.5% (1900만 명 이상)가 빈곤층에 속한 것으로 나타나, 콜롬비아 경제 성장의 이면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함.

콜롬비아, 중남미에서 좌익 게릴라들이 등장하는 숙원적, 역사적 배경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스페인 및 포르투갈의 약 300년 간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기나긴 수탈의 과정 동안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토지는 정복에 대한 스페인 국왕의 하사로 대를 이어 전해졌다. 원래 거주하고 있던 인디헤나들은 토지를 "소유"나 "점유"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기에 이런 정복자들의 경제적 사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독립 이전의 스페인 부왕령들의 사회신분 구조는 본국에서부터 파견되어 부왕령을 통치하는 '뻬닌술라르', 스페인계 피를 이어 받았지만 부왕령에서 태어나 부왕령에 국적을 두고 있는 '끄리올요', 인종간의 혼혈로 탄생한 '메스티쏘', 마지막으로 최하위 신분인 '인디헤나 (네그라도 포함)'. 그러나 독립 이후 '끄리올요'는 '뻬닌술라르'를 내쫓고 사회 신분 최상위에 올라선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유명한 독립 영웅들은 거의 전부가 '끄리올요'가문 출신들이다. 끄리올요 세력은 뻬닌술라르가 점유하고 있던 토지들을 모조리 자신들의 노획물안에 포함시키고 거대 농장(라티푼디움)을 경영하게 된다. 결국 세 세력이 힘을 합쳐 성취한 독립의 열매는 불공평하고 편파적으로 돌아갔다.

멕시코의 경우 에밀리아노 사파타 (Emiliano Zapata Salazar)와 판쵸 비야 (José Doroteo Arango Arámbula)가 힘을 합쳐 토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무장투쟁운동을 전개했던것과 같이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서도 이런 시도들은 종종 있어왔지만, 쿠바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공한 예가 없다(쿠바는 잘 알려져있듯이 피델카스트로와 에르네스토 체게바라가 주축이 되어 바티스타 당시 친미정권을 전복하고 1961년 공산주의정권을 세운다). 이런 강력한 저항에 기득권층은 언제나 기만적이고 제도적 - 형식적인 조치로 민중의 불만을 달래왔다.

콜롬비아의 Farc – EP이 비록 현재는 마약거래 및 납치로 인해 단순한 반정부 불법 무장투쟁세력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기억되지만, Farc의 사상은 농부들이 일하는 일터에서 시작했고 형태만 바꾸어 민중에게 가해지는 수탈에 대한 봉기적 성격에서 출발했다. 이후 등장하는 ELN(Unión Camilista - Ejército de Liberación Nacional)도 같은 입장이다. 이러한 Farc의 결성 목표에 비추어봤을때 M –19게릴라 세력들이 91년 헌법 수정이후 제도권 정치로 편입할 수 있었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M – 19는 1970년 4월 19일 발생한 선거부정을 계기로 무장투쟁에 나선 세력이다. 현 보고타 시장인 구스타보(Gustavo Francisco Petro Urrego) 또한 이 그룹의 게릴라 대원 출신이다.

M – 19는 공정한 선거와 민주적 절차를 이유로 무장투쟁을 선택한 세력이기에 이 문제를 정리한 91년 헌법개정 이후 제도권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와는 달리 Farc에게는 단순한 정치적 변화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결성 목표인 농민 및 수탈받는 노동자세력을 위한 경제구조가 실현되지 않는 이상 지금의 무장투쟁을 중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토지에 대한 문제는 콜롬비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더 정확히 말하자면 히스패닉 세계 전체가 겪는 문제이다.

멕시코의 경우에는 EZLN (Ejército Zapatista de Liberación Nacional), 브라질의 경우에는 MST운동 (El Movimiento de los Trabajadores Rurales Sin Tierra )이 현재도 진행중이다. (중남미의 뿌리깊은 불평등한 경제구조와 가혹한 수탈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Eduardo Galeano)의 "수탈된 대지 [Las venas abiertas de América Latina]"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회담에 대한 전망 – 농업 경제 및 경제구조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불안정한 고용과 더불어 대규모 실업상태에서 뚜렷한 회복세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콜롬비아는 노점상들이 넘쳐난다. 노점도 제대로 규모를 갖춘 번듯한 점포가 아니라, 위의 사진과 같이 카트에 과자, 껌, 음료등을 달아놓고 판매한다. 교육의 기회를 받지 못하고 거리로 나선 젊은이들은 곡예를 익혀서 도로에 나가 차들이 정차했을때, 쇼를 보여주는 대가로 받는 팁으로 근근히 생계를 꾸려나간다.
▲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의 노점상의 모습 불안정한 고용과 더불어 대규모 실업상태에서 뚜렷한 회복세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콜롬비아는 노점상들이 넘쳐난다. 노점도 제대로 규모를 갖춘 번듯한 점포가 아니라, 위의 사진과 같이 카트에 과자, 껌, 음료등을 달아놓고 판매한다. 교육의 기회를 받지 못하고 거리로 나선 젊은이들은 곡예를 익혀서 도로에 나가 차들이 정차했을때, 쇼를 보여주는 대가로 받는 팁으로 근근히 생계를 꾸려나간다.
ⓒ 안준모 - Eva Normand Sk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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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El proceso de Paz에 대한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87840)를 통해 후안 마누엘 산토스 현 콜롬비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전임자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과는 완전히 동일한 입장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했다. 그러나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가 정치에서는 충돌할 여지가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같은배를 타는 편이다.

보수주의, 자유주의 모두 시장경제에 충실하고 시장이 공평한 분배를 이루어서 정부의 개입 없이 시장 스스로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경제적 정의를 실천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산토스가 비록 정치적으로는 전임자와 반목하고 충돌하는 지점이 많지만, 경제적으로는 전임자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한국, 미국 및 파나마와 자유무역 협정을 체결하고 현재 중국이나 일본과도 협정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이는 베네수엘라의 가입으로 규모가 더욱 커진 남미 공동시장(Merco Sur)을 형성한 좌파정부들의 경제전략과는 정반대의 전략이다. 좌파정부들이 남미 공동시장을 중심으로 역내 국가간 거래를 늘리면서도 대외적으로는 보호무역적 블록을 형성하고 있다.

브라질을 제외한 주변국가들에게는 자원 및 공산품의 수출이 중요한 문제인데 세계 인구 규모 5위의 브라질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에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우루과이 및 파라과이(현재 파라과이는 베네수엘라의 참여를 들어 정치적인 이유로 회원국 지위를 보류 중이다.)의 국가들이 메르코수르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이런 브라질 및 좌파 정부중심의 블록과는 다르게 콜롬비아는 여전히 친미 -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펴고 있으며, 네오리베랄리즘(neoliberalismo) 경제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공격적인 자유무역 협정을 통해 전세계를 상대로 모든 자국의 시장을 전면 개방하겠다는 입장이다. 외국자본이 들어와서 경제적 활력이 증가하고 이를 통해 트리클 다운 효과(trickle down effect),낙수효과 (落水效果)만 발생한다면 성공적이고 안정적인 경제로 진입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산토스 콜롬비아 현 대통령은 경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전임자보다는 중산층 및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실시하고 있다. 정부의 무상주택공급 정책을 두고 여러 지자체들이 정부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기 위해 매달리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건설업의 성장을 꽤하면서도 콜롬비아 국민들에게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함으로써 기본 복지수요를 충족시키겠다는 것이다.

콜롬비아는 중남미 내의 부존 석유 규모로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원유가 생산되는 나라이지만, 기름값은 비싼편이다. 모든 주유소는 외국계자본들의 회사들이다. 이웃 국가 베네수엘라가 차베스정권 이후 물보다 석유가 싸다는 농담을 주고 받는 동안, 외국계 자본의 횡포에 콜롬비아 국민들만 높은 돈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 보고타 시내 거리의 한 벽화 콜롬비아는 중남미 내의 부존 석유 규모로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원유가 생산되는 나라이지만, 기름값은 비싼편이다. 모든 주유소는 외국계자본들의 회사들이다. 이웃 국가 베네수엘라가 차베스정권 이후 물보다 석유가 싸다는 농담을 주고 받는 동안, 외국계 자본의 횡포에 콜롬비아 국민들만 높은 돈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 안준모 - Eva Normand Sk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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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더불어 Farc측이 기만행위라고 평가절하한 토지반환 법안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사실 이 법안은 의회에서 여러차례 부결됐지만, 현 농림부 장관 후안 카밀로 레스트레포 (Juan Camilo Restrepo)장관의 강력한 입법 의지로 법안이 통과됐다. 장관은 인터뷰에서 "아무리 많은 역풍과 공격이 들어오더라도, 법안을 폐기하고자 하는 세력들 앞에서도 정부는 이 법안을 계속 유지해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폭력에 의해 토지가 강탈당한, 구체적으로는 Farc과의 무력 충돌로 토지를 잃은 사람들에게 토지를 반환해 주며, 고통을 겪은 이들을 사회안으로 통합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산토스 정부는 더욱더 강력한 농업경쟁력을 갖추어서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자 한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받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Farc은 수탈적 농업개혁을 그만두고 제국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콜롬비아 경제를 약탈해가는 외국인 투자를 당장 그만 두라고 경고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경제 모델이나 외국인 투자라는 주제를 회담 테이블에 올리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이 지리한 50년 분쟁의 시작이 되었던 토지에 대한, 경제구조에 대한 양측의 타협없이는 회담은 아무것도 진전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회담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진행 중이다. 그러나 회담의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있다. 11월에 쿠바로 회담 장소를 이동할때까지는 진행의 실마리를 알길은 요원해 보인다. - 올해 SK그룹은 콜롬비아 정부와 지하자원을 두고 굵직 굵직한 계약들을 맺었다. 당연히 회담에서 경제모델에 대한 사항이 논의된다면 그 여파는 SK의 콜롬비아 내 사업활동에도 영향을 미칠것이다. 한국 기업의 해외진출처에서 기업활동에 영향을 미칠 사안에 대해서 어떠한 분석이나 전망, 언급하는 기사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중남미 주재 외신들이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다.)


태그:#콜롬비아, #산토스, #수탈된 대지, #토지,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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