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을 밟은 박근혜, 문재인 후보와과 개막을 앞두고 영화제를 찾았던 안철수 후보

부산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을 밟은 박근혜, 문재인 후보와과 개막을 앞두고 영화제를 찾았던 안철수 후보 ⓒ 이정민. 안철수진심캠프


"수많은 해외 영화제를 다녀봤지만 영화와 전혀 관계없는 정치인들이 레드카펫을 밟고 입장하는 경우는 한 번도 못 봤다."

지난 4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때 박근혜, 문재인 두 대선후보가 레드카펫을 밟았다. 이에 대해 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외국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라며 불편한 심정을 나타냈다. 감독, 배우 등 영화인들 사이에 불쑥 끼어들어 레드카펫을 홍보의 장으로 활용한 대선 후보들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기분이 역력했다.

이런 시선에는 '대선 후보들이 영화 발전에 어떤 기여를 했느냐'는 의문도 포함돼 있다. 영화 발전에 대한 관심이나 정책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화려한 자리에만 나타나 귀빈 행세를 하는 게 못마땅한 거다.   

그렇다면, 지금 유력한 여야 대선 후보들은 영화, 영상산업 발전에 어떤 구상과 정책을 갖고 있을까?

이런 의문을 바탕으로 세 후보를 비교하면 일정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거의 정책이 없고,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후보들의 최근 행보와 그들을 돕는 인사들의 면면에서도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레드카펫 밟았지만 영화 정책 없는 박근혜 후보

 10월 4일 오후 부산시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 참석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레드카펫을 밟으며 밝게 웃고 있다.

지난 4일 오후 부산시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 참석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레드카펫을 밟으며 밝게 웃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 후보에게는 딱히 영화 정책에 대한 관심이나 '정책 브레인'은 없어 보인다.

박 후보를 지지한다는 한 영화계 인사는 "영화 쪽 인물들은 저쪽(문재인)에 다 몰려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그러다 보니 박 후보 주변에 마땅한 인물이 없다"면서 "(개인적으로) 박 후보를 지지하니 기회가 되면 도울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박 후보를 지지하는 영화인들은 대부분 원로 보수 영화인이다. 이들은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도왔다. 따라서 박 후보에게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큰 차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이명박 정부의 영화 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좌파청산'이다. 2007년 부산영화제 개막식에서 레드카펫을 밟았던 이명박 후보는 당선 이후 '영화계 좌파공격'으로 화답했다. "우파가 정권을 잡았으니 영화계도 우파가 주도하겠다"는 게 이명박 정부 영화정책기관 책임자들의 시선이었다. 

 4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레드카펫 입장 전 영화배우 안성기 씨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박근혜 후보

4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레드카펫 입장 전 영화배우 안성기 씨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박근혜 후보 ⓒ 박근혜공식앨범


이런 시선은 지난 5년간 영화계를 큰 혼란에 빠뜨렸다. 불공정과 부정 심사 시비가 끊이지 않았고, 영화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어렵게 만들어진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진이 공모를 통해 바뀌는 과정에서 부정심사 논란이 일었고, 끝내 자격이 안 되는 이들에게 운영이 넘어가기도 했다. 당시 조희문 영화진흥위원장이 일부 심사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영화인들의 대규모 성명이 이어졌고 혼란과 대결이 가중됐다.

2010년 이창동 감독은 칸 영화제에서 영화 <시>로 각본상을 수상했지만, 당시 영진위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제작지원 심사에서 <시>에 '0점'을 줬기 때문이었다.

결국 계속되는 부정 시비 속에 조희문 위원장은 경질됐다. 2011년 영화감독 출신 김의석 감독이 영진위원장에 새로 임명되면서 영화계에서 3년 간 일던 논란이 그나마 잦아들었다. 최근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자 영진위가 나서 축하연을 열었다. 또 영진위는 한국영화 발전에 자신의 기여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이전의 모습과 비교하면 매우 대조적이다.

"새누리당이 부산국제영화제 성장에 도움 준 것 없어"

 지난 4일 열린 1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지난 4일 열린 1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 이정민


13일 막을 내린 부산국제영화제는 지금까지 17회를 이어오며 아시아 최대 영화제로 성장했다. 하지만 부산 지역구 의석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이 이렇다 할 역할을 한 건 없다는 게 지역의 일반적 시각이다.

부산지역 한 일간지 기자는 "새누리당이 부산영화제 성장에 도움 준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부산시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했을 뿐 정치적인 도움은 없었다는 것이다.

2007년 말부터 부산시와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아시아영상도시특별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은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정부의 부정적 견해 탓에 일을 추진하지 못했다. 결국 특별법은 18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현재 부산지역 새누리당 의원들은 19대 국회에서 관련 특별법 재추진 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여론을 의식한 형식적인 움직임일 뿐 근본적 의지는 약해 보인다는 게 지역 인사들의 전언이다.

반면 참여정부에서 부산을 혁신도시로 정해 영진위와 종합촬영소 등을 이전하자 '좌파 공격'이 일기도 했다. 일부 영화계 원로 인사들은 이런 이전을 두고 "노무현 정권의 혜택을 받은 좌파 영화인들이 서울의 영화 기구를 부산으로 빼돌리려 한다"며 좌파 공세에 편승해 부산영화제를 공격했다.

당시 이런 공세에 부산영화제는 안팎으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일단 영화제에 대한 국고지원이 중단되고 영진위 기금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일부 인사들은 "영화제가 낭비성이 크고 소모적인 행사"라며 이를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지난 총선을 전후해 박 후보는 지역 영화계 인사들과 만나 대화를 나눴으나 형식적인 자리에 불과했다는 평가다. 지역 인사들은 "그 자리에서 알맹이 있는 대화를 없었고 원론적인 이야기만 오갔다"고 전했다.

또한 원로 영화인들이 주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것에도 영화계의 시선은 부정적이다. 이미 현역에서 은퇴한 상태고, 몇몇 인사들은 이권에만 몰두할 뿐 정책 방향에 대해 특별한 계획이나 구상이 없다는 게 여러 영화인들의 의견이다. 

한 중견 감독은 "그분들은 워낙 부정과 비리 등 문제가 있기로 소문난 분들 아니냐"고 꼬집었다.

영화인, 문재인 후보에게 확 쏠렸네

 4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참석 후 이준익 감독, 차승재 제작가협회장, 문성근씨 등 영화인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는 문재인 후보.

4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참석 후 이준익 감독, 차승재 제작가협회장, 문성근씨 등 영화인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는 문재인 후보. ⓒ 정민규


이에 비해 문재인 후보 쪽은 상대적으로 영화인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문 후보는 부산영화제 개막식 때 배우 문성근, 차승재 영화제작가협회장 등 그를 지지하는 영화인들과 함께 레드카펫을 밟았다. 문 후보는 지난 7월 창립된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의원모임' 회원이기도 하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이 문 후보 지지의사를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했다. 이후 문 후보는 몇 차례 극장을 찾았다. 추석 연휴 기간 중 <피에타>를 관람했고, 최근에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고 나서 눈물을 쏟은 게 화제가 됐다. 

다만 참여정부 시절 스크린쿼터를 축소해 영화계에는 아직도 서운함이 남아있다. 이에 대해 문 후보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후 가진 영화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해서는 정말로 미안했었다"며 유감을 나타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부산을 영상문화도시·영상산업도시로 발전시키고, 해운대 센텀지구에 영화의 전당 신축과 영진위·영상물등급위원회 등 영화 관련 공공기관 이전"은 참여정부 성과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또 문 후보는 사회보험 혜택을 못 받는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도 지적하며 실업보험과 같은 보조제도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영화산업 발전과 영화인 처우개선 등의 공약을 마련하겠다는 견해도 밝혀 "세 후보 중 가장 적극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영화사 대표 지낸 조광희 변호사 보좌받는 안철수 

 9일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관람 후 제작자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추창민 감독을 만난 안철수 후보

9일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관람 후 제작자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추창민 감독을 만난 안철수 후보 ⓒ 안철수 대변인실


안철수 후보 쪽은 구체적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문재인 후보와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안 후보를 조광희 변호사가 보좌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조 변호사는 최근까지 '영화사 봄'의 대표를 맡은 영화인이다. '영화사 봄'은 <너는 내 운명> <멋진 하루> <스캔들 : 조선남여상열지사> 등을 제작한 중견 영화사다.

조 변호사는 어려운 영화인들에게 무료 법률 지원을 해 신망을 얻었다. 그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영화인들과도 소통하고 있다. 영화계 현안 정책 등에 대해서도 양쪽 모두 큰 이견이 없다. 

안철수 후보는 최근 <두 개의 문>을 관람했고, <광해, 왕이 된 남자> 상영관도 직접 찾아 영화인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였다. 

안 후보는 올해 부산영화제 개막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개막일 이전에 방문해 영화제 준비 상황을 돌아본 후 영화제 사무국 직원들을 격려했다. 정치인 레드카펫 논란을 일으킨 박근혜, 문재인 후보 등과는 차별화 된 행보였다.

하지만 제작사 대표를 지낸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굳이 따진다면 한국 영화계가 전면적으로 문재인 후보 쪽에 결합한 모양새고, 안철수 후보 쪽에는 조광희 변호사만 혼자 비서실장으로 있어 세에서 큰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양쪽 다 아직 구체적 공약을 내놓지 않았으나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MB정권의 '좌파 척결'과 '유신의 추억'도 박근혜에게 악재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고문을 소재로 한 정지영 감독의 영화 <남영동 1985>의 한 장면. 고문을 하기 전 고문기술자가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고문을 소재로 한 정지영 감독의 영화 <남영동 1985>의 한 장면. 고문을 하기 전 고문기술자가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 아우라픽쳐스


영화계 인사들이 주로 야권 후보를 지원하고 박근혜 후보와는 거리를 두는 배경에는 새누리당 문화예술정책에 대한 불신이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시절에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출범하는 등 한국영화 발전의 초석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많다. 이후 독립영화 지원이 활성화되고 독립영화전용관이 생겨나는 등 한국영화 르네상스가 열렸다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등장한 이후 불필요한 논란과 소모적인 갈등이 되풀이되면서 새누리당에 대한 반감은 커졌다. 게다가 박정희 정권의 유신시절,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제한당하고 금지곡이 생겨나는 등 문화예술 환경에 제약이 컸다는 점도, 박근혜 후보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몇몇 영화계 인사들은 박근혜 후보 지지 이유로 이런 영화계 분위기를 들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영화발전을 위한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박 후보 지지의사를 밝힌 앞의 영화계 인사는 "영화인들이 한쪽으로 쏠려 있는데, 누가 되든 영화발전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기에 박 후보를 돕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최근 개봉을 앞두고 있거나 제작 발표를 한 <남영동 1985> <MB의 추억> <유신의 추억 - 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 <26년> 등에는 새누리당 정권과 박근혜 후보에 대한 영화계의 우려가 깊이 담겨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격도 안 되면서 레드카펫만 밟지 말고 정책을 내놔라"는 게 대선 후보들을 향한 영화인들의 압축적인 요구다. 이런 목소리에 박근혜 후보가 어떤 정책을 내 놓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성하훈 기자는 2012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대선특별취재팀입니다.
영화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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