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야구장에 가면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은 여성관중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오히려 남성관중들보다 더 열성적인 응원으로 야구장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어 놓는다. 이런 모습이 일상다반사가 된 것은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아니 2000년대 후반부터 보편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동안 야구장은 남성관중들의 전유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말 틈 사이에 숨겨놓은 압축된 팩소주와 입구 앞에 대야에 갖다놓고 대량 판매하는 아주머니들한테서 구입한 김밥들, 그리고 야구장을 뿌옇게 수놓는 너구리 잡는 담배연기들, 그리고 경기가 끝나면 경기장 앞에서 벌어지는 포장마차 술판들 등 예전의 야구장 모습은 여성들이 선호할만한 모습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나 1980년대, 1990년대에는 야구장의 남초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하지만 예외였던 시절도 있었다. 바로 1994년이다. 그중에서도 서울의 잠실 야구장은 여성관객들의 함성 소리가 그 어느 구장보다 더욱 두드러졌다. 바로 홈팀 LG트윈스의 돌풍이 거세게 몰아닥쳤던 그 시절이었다. 1994시즌 LG트윈스의 시즌 최종 성적은 81승 45패. 당시 2위였던 태평양 돌핀스와의 승차는 무려 11.5게임이었다.

그만큼 압도적인 전력을 과시하였고, 한국시리즈에서도 태평양 돌핀스를 상대로 4연승을 거두면서 1994시즌을 확실하게 평정하였다. 투,타에서 빈틈이 보이지 않았던 LG트윈스는 1990년대 중반 리그를 완벽하게 호령했고, 그 전성기가 계속해서 지속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8년이 지난 지금, 1994년은 여전히 LG트윈스의 팬들에게 달콤한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 추억을 대체할만한 더 이상의 달콤함이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1994년의 추억은 계속해서 수없이 재생산 되었고, 당시 트윈스 야구의 모토였던 신바람 야구는 그 실체가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한 신기루가 되어 버렸다.

 9월 28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LG와 넥센의 경기.

9월 28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LG와 넥센의 경기. ⓒ 연합뉴스


현재의 LG트윈스는 정규시즌에서 5할 승률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이다. LG트윈스가 정규시즌에서 5할 승률 이상을 기록했던 적은 준우승을 차지했던 2002시즌이 마지막(66승 61패 6무)이고, 한술 더떠서 승패 마진이 10이상을 기록했던 적은 1997시즌이 마지막(73승 51패 2무)이다.

올 시즌 초반 LG트윈스는 신임감독 김기태 감독의 참신한 리더십 하에 참신한 돌풍을 일으켰다. 시즌이 시작되기 직전 주축투수 2명이 경기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전력에서 이탈했고, 스토브리그 동안 주축선수들인 조인성, 이택근, 송신영과 FA계약을 맺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 시즌보다 전력이 부실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LG트윈스는 시즌 개막 2연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2연승을 거둔 이후 시즌 초반 줄곧 5할 승률 이상을 유지하면서 올 시즌에는 가을 잔치에 진출할 것 같은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6월 이후 비틀거리기 시작한 LG트윈스는 6월 22일 자이언츠와의 홈경기에서 세이브에 실패한 마무리 투수 봉중근이 흥분을 제어하지 못하고 소화전을 주먹으로 치다가 오른 손에 부상을 입는 돌발사태가 발생하면서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결국 5할승률 마지노선 사수에 실패한 트윈스는 추락을 거듭하게 되고 결국 올 시즌에도 가을잔치 초대장을 받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팀의 주축선수인 봉중근의 이탈도 큰 악영향을 미쳤지만, 근본적으로 현재 LG트윈스의 전력은 불완전 투성이이다. 팬들이 그리워하는 1994년의 전력은 국내 프로야구 역사에도 손꼽힐만한 몇 안되는 완벽함의 결정체였다. 하지만 트윈스의 1994년은 응답하지 않고 있다. 1994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결국 1994년의 전력을 넘어서는 수 밖에 없었다. 팀 창단 이래 최고의 전성기였던 1994년과 비교해 볼때, 2012년 현재의 LG트윈스의 모습은 어떤지 한 번 짚어보고자 한다.

1. 카리스마로 무장한 에이스의 부재

1994년 당시 LG트윈스의 선발진은 이상훈, 김태원, 정삼흠, 인현배 등이 주축이 되어 있었고, 4명의 투수 모두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었다 (이상훈 18승, 김태원 16승, 정삼흠 15승, 인현배 10승). 4명의 투수가 거둔 승수의 합계는 59승이었고, 팀 전체 승수의 73%를 차지하였다.

올 시즌 LG 트윈스의 선발진은 많은 투수들이 들락날락 거렸는데, 그중에서도 꾸준하게 등판한 선수들을 꼽는다면 주키치, 리즈, 김광삼, 신재웅(후반기부터), 이승우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중에서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둔 투수는 주키치가 유일하다. 그리고 이 5명의 투수들이 거둔 승수합계는 29승이다. 9월 29일 현재 LG트윈스가 거둔 승수(55승)에서 50%를 겨우 넘는 수치이다.

결국 근본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은 선발진은 트윈스의 발목을 붙잡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주축 선발요원들이 빠진 부분도 간과할 수 없거니와 기대를 모았던 2년차 임찬규가 전혀 제 몫을 해주지 못한 것도 큰 요인이라 할 수 있다. 1994시즌 당시 LG트윈스의 투수진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이었다.

특히 2년차 이상훈은 입단 첫 해 많은 관심을 받고도 9승 밖에 거두지 못한 아쉬움을 한꺼번에 풀려고 작정한 듯 1994시즌을 지배하였다. 또한 1990시즌 당시 우승의 주역이었던 김태원과 정삼흠은 노련미를 앞세운 피칭으로 타자들을 돌려 세우면서 승수를 쌓았다. 신인 인현배는 당대 최고투수 선동열과의 맞대결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피칭을 보이는 등 패기넘친 피칭으로 입단 첫 해 두자릿 수 승수를 거두게 된다.

당시 이광환 감독의 철저한 분업시스템 하에 차동철, 강봉수, 차명석, 민원기 등이 중간계투 요원으로 맹활약을 펼쳤고, 이들이 든든하게 허리를 지켜주면 마무리 김용수가 특유의 면도날 제구력으로 깔끔하게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체계적으로 분업화가 구축된 트윈스 마운드는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깔끔함의 결정체였다.

올 시즌 LG트윈스 마운드의 최고 수확은 필승 계투진 유원상의 발굴, 그리고 에이스 봉중근의 성공적인 마무리 전환이었다. 2002년 준우승 당시 계투진의 버팀목이었던 이동현이 기량을 회복한 것도 소득이었다. 계투진은 어느 정도 안정을 구축했지만, 선발진의 카리스마는 여전히 부족하다. 트윈스 마운드 경쟁력의 필수과제이자 극복해야할 벽은 바로 선발투수진의 경쟁력 강화이다.

2. 그라운드의 야전사령관, 포수

올 시즌 4강 진출이 유력시되는 팀들과 그렇지 못한 팀들을 구분짓는 가장 큰 결정적인 포지션은 바로 포수이다. 그라운드의 야전 사령관인 포수는 온갖 궃은 일을 도맡지만 그 어떤 포지션보다도 마인드 컨트롤에 신경을 써야하는 자리이다. 포수가 중심을 잡아줄수록 그 팀의 플레이는 자연스레 안정감을 갖추게 된다. 축구에 비유하자면 리베로, 농구에 비유하자면 가드에 비유될 수 있는 포지션이다.

1994시즌 당시 트윈스에는 김동수라는 당대 최고의 포수가 버티고 있었다.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무엇 하나 뒤처지는 것이 없었으며, 타자들의 심리를 역이용한 특유의 투수리드는 LG트윈스의 투수층을 더욱 두텁게 만들어주는 핵심이었다. 또한 백업요원인 김정민도 강력한 2루 송구능력을 겸비한 수준급 수비형 포수였으며, 또한 외모가 당시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포수였던 후루타와 흡사한 덕분에 '한국의 후루타'로 불리우기도 하였다.

현재 LG트윈스의 주전포수는 따로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올 시즌 내내 그렇게 지냈다. 주전포수 조인성이 SK와이번스와 FA계약을 맺으면서 예상되었던 부분이다. 트윈스는 1990년대 주전포수였던 김동수를 FA로 보내고, 이번에도 2000년대 줄곧 트윈스의 안방을 지킨 조인성도 FA로 내보내고 말았다. 문제는 그들이 떠날 때 과연 더 믿음직한 자원들로 이끌어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올 시즌 심광호, 김태군, 윤요섭, 조윤준 등이 번갈아 가면서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에 투수들에게 안정감을 심어주고 넓은 시야로 경기의 맥을 짚을 수 있는 안목을 지니면서 확실한 주전으로 도약한 이는 없다. 여전히 포수 자리는 실험중이다. 실험의 연속은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결단을 내려 포수자원이 넘쳐나는 구단과 트레이드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 8개 구단 중에 가장 탐나는 유휴자원은 다름아닌 SK와이번스의 박경완이다. 나이가 걸림돌이지만 여전히 투수리드나 경기의 흐름을 읽어내는 시야는 단연 최고이다. 박경완의 존재는 다른 포수들의 노하우를 쌓는 측면에서 큰 보탬이 될 것이다.

3. 리드오프, 그리고 4번타자

1994년 LG트윈스의 1번 타자는 당시 대졸신인이었던 유지현이 맡았다. 유지현은 신인이라고 믿겨지지 않는 노련함을 발휘하여 상대투수들을 괴롭혔다. 입단 첫 해 0.305의 타율에 15홈런 51타점 51도루를 기록하며 신인왕을 거머쥔 유지현은 공,수,주에서 완벽함에 가까운 기량을 겸비하였고 그가 1번 타자로 자리하고 있는 기간 동안 트윈스 타선은 늘 상대투수들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올 시즌 개막 당시 LG트윈스의 1번타자 자리는 터줏대감 이대형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대형은 기동력 면에서는 1994년의 유지현보다 더 뛰어나다. 하지만 이대형이 타석에 서 있어도 상대 타자들은 별다른 괴로움을 느끼지 못한다. 좀처럼 외야로 타구를 날려내지 못하는 그의 타격 스타일은 이제 상대 수비진에 간파되어 좀처럼 출루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이대형은 올 시즌을 앞두고 김무관 코치의 지도 하에 타격폼을 수정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극심한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후반기부터 오지환이 1번타자 자리로 나섰고,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오지환도 특정 구질에 대한 호불호의 편차가 극심하다. 오지환 역시 상대 투수들에게 중압감을 심어주기에는 많이 모자라다.

1994 시즌 당시 4번타자는 해태에서 이적한 한대화였다. '미스터 LG' 김상훈과 맞트레이드되어 김상훈이 자리했던 4번타자 자리를 맡은 한대화는 트윈스에서도 해결사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찬스 때마다 터뜨려주는 알토란 같은 타점은 트윈스 타선의 집중력을 견고히 다졌다. 올 시즌 초반 트윈스는 새로운 4번 타자를 발굴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들떴었다. 정성훈이 시즌 초반 결정적인 순간마다 홈런포를 작렬하면서 한때 홈런 1위에 오르는 경이로운(?) 행보를 펼쳤기 때문이다.

전반기에 11개의 홈런을 몰아쳤던 정성훈은 후반기에 들어와서 단 1개의 홈런을 추가하는데 그쳤다. 부상과 그로 인한 컨디션 저하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정성훈의 기세가 주춤하면서 동시에 트윈스 타선의 집중력도 감소하고 말았다. 트윈스 타선의 집중력 강화를 위해서는 리드오프와 4번타자 자리의 주인을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이다.

4. 키스톤 콤비

1994시즌 LG트윈스의 키스톤 콤비(2루수-유격수)는 박종호(2루수)와 유지현(유격수)이었다. 이 두 선수는 공격 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안정된 플레이로 트윈스 내야의 벽을 두텁게 만들었다. 이들이 키스톤 콤비로 활약하는 동안 트윈스는 리그 강자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올 시즌 트윈스의 키스톤 콤비는 서동욱(2루수)과 오지환(유격수)이다. 아직까지 트윈스 내야는 불안하기 그지 없다. 투수들이 마음 놓고 범타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내야진의 안정된 수비가 필수 요건인데, 올 시즌 트윈스의 팀 실책은 94개로 리그 최다이다. 이러다 보니 마운드 위의 투수들이 좀 더 자신감이 있게 공을 뿌리는 것이 잠재적으로 저지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내년 시즌을 앞두고 아마야구 최대어인 강승호(천안 북일고)가 입단 예정이다. 그동안 트윈스는 유지현의 은퇴 이후 박경수(현재 군복무중)가 그 빈자리를 메워줄 것이라 기대를 모았지만 아쉽게도 박경수는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였다. 성남고 졸업 당시 아마야구 최대어로 꼽혔으며 무려 4억 3천만원의 계약금을 받을 정도로 큰 기대를 받았었다. 그러나 박경수는 매년 기대에도 불구하고 성장이 정체되었다.

오지환도 경기고 재학 시절 경북고 김상수(삼성), 서울고 안치홍(KIA)과 더불어 아마야구 내야수 빅3로 꼽혔던 유망자원이었다. 하지만 오지환은 빅3 중에서 성장속도가 가장 더딘 편이다. 결국 강승호가 어느 정도 스토브리그 기간 동안 성장해 주느냐에 따라 트윈스 키스톤 콤비의 경쟁력의 성패가 갈릴 전망이다.

트윈스의 1994시즌은 여전히 응답하지 않고 메아리만 되돌아오고 있다. 어느 덧 가을 잔치의 이방인이 된 지도 10년을 빼곡히 채우게 되었다. 트윈스의 경쟁력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위에 언급한 4가지 과제가 순서대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여전히 팬들은 노송 김용수, 야생마 이상훈, 꾀돌이 유지현, 캐넌히터 김재현의 존재를 그리워하고 있다. 왜? 이들의 추억을 대체해 줄 자원들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팬들에게 1994라는 환각제를 투여하도록 해야 할 것인가.

야구는 마인드의 게임이다. 트윈스 선수들은 1994라는 장벽을 넘기 위해 1994에 짓눌리기 보다는 늘 마음 속에 1994 시즌 당시의 모습들을 주입하여 이미지 트레이닝을 할 필요가 있다. 팬들이 1994년의 향수에 취해있는 것에 부담을 갖지 말고 이를 담담히 받아들여 즐길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LG트윈스의 1994년이 응답해줄 날이 빨리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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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LG트윈스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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