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금품을 받고 진범을 은폐하기 위해 허위 자백한 사건 의뢰인을 도운 변호사의 행위는 변론권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진범의 범인도피를 방조한 범죄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K(50)변호사는 지난해 3월 A씨의 휴대전화 문자발송 사기사건의 변호인으로 선임됐고, A씨는 지난해 4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사기죄로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그런데 K변호사는 지난해 5월 서울구치소에 A씨를 접견하러 갔다가 "사실은 내가 진범이 아니고, S씨가 진범이다, 경찰과 검찰 및 법원에서 S씨가 준 시나리오대로 외워서 진술한 것이다, 항소심에서 S씨가 진범이라는 사실을 밝히겠다"라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 A씨는 항소하면서 재판부에 "사실은 내가 진범이 아니고, S씨와 J씨가 진범이며 나는 두 사람이 시키는 대로 허위자백을 했다"라는 취지의 진술서를 제출했다.

문자메시지 사기로 10억원대 부당이득을 취한 S씨와 협의한 K변호사는 서울구치소 접견실에서 A씨에게 "S씨로부터 범인도피 대가로 1억 원을 받되 그 중 300만 원을 먼저 받고 허위자백을 계속 유지하는 것으로 하자"는 취지로 S씨의 의견을 전달했다. 이에 A씨는 "일단 5000만 원을 먼저 지급하면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후 S씨가 A씨의 모친에게 5000만 원을 지급했고, K변호사는 지난해 6월 접견실에서 A씨와 만나 "모친이 S씨로부터 5000만 원 받은 것을 확인했다, 만약 S씨 관련 사항을 공판정에서 문제제기 할 경우 이미 수령한 5000만 원은 전액 반환하기로 한다"는 내용의 확인서에 서명을 받았다.

K변호사는 항소심 재판의 첫 공판기일에 기존 A씨의 항소이유 중 양형부당을 제외한 나머지 항소이유(진범 자백)를 전부 철회한다는 내용의 항소이유서를 제출해, A씨는 다시 한 번 허위 자백했다.

그 후 S씨에 대한 범인도피 혐의에 대해 검찰에서 수사를 개사하자 K변호사는 A씨에게 "고생스럽더라도 당신이 한 것으로 그대로 가자"라고 말했고, A씨는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항소이유서를 잘못 제출했다, 내가 사기 범행을 한 것이 맞다"라고 허위 자백했다.

결국 K변호사는 A씨와 공모해 진범 S씨와 J씨의 기왕의 도피상태를 이용해 스스로 범인도피행위를 계속함으로써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S씨와 J씨를 도피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단독 유상재 판사는 지난 2월 범인도피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K변호사에 대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변호사로서 누구보다 현행 법률을 준수하고 변호사로서의 직업윤리를 준수해야 할 막중한 의무가 있다"며 "형사변호인은 피의자나 피고인을 위한 단순한 대리인의 지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률전문가로서 국가 사법권의 적정한 실현을 도모할 공적인 의무와 형사절차의 한 축을 담당해 정의 실현에 기여해야 할 공익적 의무도 아울러 부담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이 잘못된 판단과 자신의 경솔함으로 인해 법에서 허용된 변론권의 범위를 넘어서는 위법한 행위를 함으로써 A씨의 범행에 가공한 이상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이 처음부터 적극적인 방법으로 범행에 가담한 것이 아니라 S씨의 부탁에 따라 S씨와 A씨의 의사를 쌍방 간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범행에 개입했고, 뒤늦게나마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나름대로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자 K변호사는 "정당한 변론권"이라는 등의 이유로 항소했고, 서울중앙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박관근 부장판사)는 지난 5월 범인도피가 아닌 범인도피방조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K변호사에 대해 벌금 200만원으로 감형했다.

재판부는 먼저 "피고인은 S씨와 상의하는 과정에서 A씨가 바지사장으로서 1심에서 허위자백한 것이고 S씨가 진범임을 알게 된 점, 또한 A씨를 접견해 S씨와 1억 원 지급 합의내용에 따라 S씨가 진범이라는 취지의 항소이유를 철회하고 종전 허위자백을 변론한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은 변호인으로서 A씨와 S씨 사이에 부정한 거래임을 알면서도 S씨로부터 A씨 사건을 수임하고 그들 사이의 합의가 성사되도록 돕는 등 두 사람 사이의 거래에 깊숙이 관여했으므로 이런 행위를 정당한 변론권의 범위 내에 속한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이 드는 변호인의 비밀유지의무는 변호인이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다른 곳에 누설하지 않을 소극적 의무를 말하는 것일 뿐, 이 사건과 같이 진범을 은폐하는 허위자백을 적극적으로 유지하게 한 행위가 변호인의 비밀유지의무에 의해 정당화될 수는 없으므로, 결국 피고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이 정범인 A씨가 사기 범행을 허위자백해 S씨와 J씨를 도피시키는 행위를 인식했음에도 단순한 묵비의 차원을 넘어 범인도피의 부정한 대가가 오고가는 합의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일조했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적어도 A씨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갖게 함으로써 A씨의 범인도피 행위를 방조한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방조범에 불과한 피고인을 공동정범으로 처벌한 1심 판결은 공동정범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으므로 이를 내세우는 피고인의 주장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K변호사의 범인도피방조에 대해 유죄로 인정해 벌금 2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변호사는 공공성을 지닌 법률 전문직으로서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진실을 은폐하거나 거짓 진술을 해서는 안 된다"며 "따라서 형사변호인의 기본적인 임무가 피고인 또는 피의자를 보호하고 그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이익은 법적으로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정당한 이익으로 제한되고, 변호인이 의뢰인의 요청에 따른 변론행위라는 명목으로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대해 적극적으로 허위의 진술을 하거나 피고인 또는 피의자로 하여금 허위진술을 하도록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은 변호인으로서 A씨와 S씨 사이에 부정한 거래가 진행 중임을 알면서도 그들 사이의 합의가 성사되도록 돕는 등 거래관계에 깊숙이 관여했음으로 그런 행위를 정당한 변론권의 범위 내에 속한다고 평가할 수 없고, 나아가 변호인의 비밀유지의무는 변호인이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다른 곳에 누설하지 않을 소극적 의무를 말하는 것일 뿐, 이 사건과 같이 진범을 은폐하는 허위자백을 적극적으로 유지하게 한 행위가 변호인의 비밀유지의무에 의해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모두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고, 거기에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은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 및 변론권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은 없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변호사, #변론권, #허위자백, #진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