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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천 평화시장 앞 '전태일 다리'를 찾아 전태일 동상에 헌화하고 있는 도중 김정우 쌍용자동차 지부장이 바닥에 누워 헌화를 막자, 경찰이 김 지부장의 멱살을 잡고 저지하고 있다.
▲ 박근혜 '헌화' 막다 멱살 잡힌 쌍용차 지부장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천 평화시장 앞 '전태일 다리'를 찾아 전태일 동상에 헌화하고 있는 도중 김정우 쌍용자동차 지부장이 바닥에 누워 헌화를 막자, 경찰이 김 지부장의 멱살을 잡고 저지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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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일요일에는 쉬게하라!"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에서 자기 몸을 불사르면서 외친 이 절규는 대한민국 노동사에 획을 끝는 역사였습니다. 스스로 몸을 불사른 이 노동자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도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박근혜 후보의 전태일 재단 방문, 절차와 형식부터 문제

아들의 유언을 들은 어머니는 평생 가슴에 새겼고, 몸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난해 9월 아들이 간 지 마흔 한 해 만에 곁으로 갔습니다. 어머니는 이소선 여사이고, 아들은 전태일 열사입니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김대중 정부때까지 20년 이상을 경찰 정보과 형사들이 따라 다녔고, 구치소에 4번이나 가두었습니다. 1970년 11월이면 민주헌정을 유린한 독재자 박정희 정권 때입니다. 박정희 딸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마흔 두 해만에 전태일 재단과 유가족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끝내 만남은 무산됐습니다. 방문이 무산되자 홍일표 새누리당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재단 방문은 전태일 열사의 뜻을 기리고 앞으로 국정에 그 분의 유지가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고 보수와 진보로 분열된 현재의 우리사회를 통합하여 100% 대한민국을 구현하려는 국민통합에 대한 소신과 각오가 깃들여져 있었다. 이번 방문 무산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에 가로놓인 큰 벽과 강을 실감한다."

후보 확정 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 그리고 이희호 여사와 권양숙 여사 예방 등으로 '국민통합'을 시도했던 박 후보 행보가 처음으로 막혔습니다. 그런데 박 후보측은  "박 후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아무리 방해하고 장막을 친다 해도 국민을 통합하겠다는 박 후보의 행보를 막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 마디로 박 후보의 '진정성'을 몰라준다는 말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오늘 박 후보가 방문 무산과 전태일 열사 동상에 헌화도 제대로 하지 못한 이유는 노동자들이 박 후보 진정성을 몰라줬기 때문이 아니라 박 후보가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와는 조금 달라졌지만 꼭 '내가 가겠으니 맞아 달라'는 형국이었습니다. 절차와 형식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박 후보 발걸음을 막아선 이들 중에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지난 2009년 7월 그해 여름을 참으로 뜨겁게 보냈습니다. 여름이라 뜨거운 것이 아니라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노동자들 생존권 투쟁을 위해 77일 동안 '옥쇄파업'을 했습니다.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생각했다면 100%는 아니지만 사람답게 살도록 기본적인 것은 들어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강제진압했고, 자본은 복직 운운했지만 3년 만에 해고노동자들이 받은 대가는 22명 동료의 목숨이었습니다. 앞으로 몇 명의 노동자가 죽음으로 달려갈지 모릅니다. 하지만 자본과 정부는 이들에 대해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 무관심 주역에는 박근혜 후보도 있었습니다.

"진정성이 있다면 쌍용차나 용산참사부터 둘러보라"

또 '파카한일유압', '재능교육',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1000일, 1500일 그리고 코오롱 노동자들은 8년째 정리해고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1등만 아니라 세계1등을 지향하는 삼성전자는 '백혈병'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온양공장)에서 2007년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려 투병 중이었던 박지연(24)씨가 지난 2010년 3월 31일이 삶을 놓았습니다. 이렇게 죽어간 이들이 40여 명입니다. 그들을 위해 박 후보가 한 일이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박 후보를 막은 이들 중에 1895일간의 농성, 김소연 분회장의 94일 단식 농성 등으로 비정규직 투쟁의 대명사가 됐던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전태일은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다, 전태일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다, 전태일은 재능교육 특수교육 노동자다, 전태일정신 훼손하는 정치놀음 중단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므로 박 후보를 막아선 이들이 진정성을 몰라주는 딴죽걸기한 것이 아니라 진정성을 보여주 못한 것은 바로 박 후보 자신입니다. 누리꾼들이 전태일 열사 재단 방문을 비판한 이유입니다.

"유가족 말대로 진정성이 있다면 몇십 년 지난 전태일이 아니라 현재도 진행중인 쌍용차나 용산참사부터 둘러보라" - 정***
"바꾸네 마네의 쇼을 막아준 모처럼 속시원한 뉴스네요. 동생 분도 형님처럼 훌륭하신 것 같아요. 관심도 없으면서 저런 데 가면서 뭔 생각 할까. 사진 어떻게 찍힐지나 관심있겠지" - 울***
"최저임금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노동자의 삶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노동투쟁의 상징인 전태일 열사를 방문하다니? 쇼를 해라 쇼를" - 버***
"저들의 아픔에는 관심없고 오직 젯밥에 관심있는 사람에게 돌아가라 하세요. 볼 일 있으면 국회에서 보자구요." - 정***

박 후보와 새누리당은 이들 비판을 새겨야 합니다. 표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노동자 생존권을 위해, 사람답게 사는 권리를 위해 법을 만들고, 박정희 시절 노동자 탄압에 대해 사과부터 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진중권 교수는 박근혜 후보가 전태일 재단 방문한 것을 두고 "상대에게 극심한 모멸감만 주는 이런 식의 정치적 성추행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중권 교수는 박근혜 후보가 전태일 재단 방문한 것을 두고 "상대에게 극심한 모멸감만 주는 이런 식의 정치적 성추행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진중권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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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상대에게 극심한 모멸감만 주는 이런 식의 정치적 성추행은 중단돼야 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진 교수는 28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박근혜씨가 진정으로 소통과 화해를 하겠다면, 해결의 의지와 방안을 가지고 쌍용차 등 지금 자기 눈앞에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을 찾아가야 한다"며 이같이 비판했습니다.

진 교수는 이어 "박 후보가 코앞의 쌍용차 노동자들의 고통은 외면한 채 전태일 재단을 방문하려는 것은 쌍용차는 '현재'에 수행해야 할 책임을 의미하는 반면, 전태일 재단은 '과거'로 면피할 소재라 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말해 전태일 열사를 현재에 살아 있게 하려는 재단의 뜻과 정반대로 그 분을 현재와 관계 없는 과거 속의 인물로 '박제'하려는 시도"라며 "이는 노동자의 고통까지 정치수단화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비윤리적"이라고 거듭 비판했습니다.

사람을 좋아했던 전태일... 박정희에게 부치려다 만 편지

박 후보는 선거를 앞두고 찾아간 전태일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을까요? 전태일이 사람을 좋아했던 노동자였음을 알고 있을까요? 안다면 어제 같은 일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생전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태일이는 사람을 참 좋아했어. 같은 노동자를 너무도 사랑했다고. 그러니 열사나 투사보다 그냥 동지라고 불러 줬으면 좋겠어. 태일이는 지금도 노동자와 함께하는 동지라고, 제발 그렇게 불러달라고 전해줘. 태일이는 날 참 좋아했어. 아직도 이 옷을 못 버리고 겨울이 오면 꼭 챙겨입는데, 태일이가 공장에서 남은 천으로 엄마 준다고 손수 만들어 준 내의야. 누가 새옷 입으라고 사줘도 안입고 난 이것만 입어...그 런 태일이 아니냐" -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오도엽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2008년)

전태일 열사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겐 '빨갱이'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는 어느 누구보다 사람다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983년 6월에 나온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 - 전태일평전>(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엮음, 돌베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1969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부치려다 부치지 못한 편지입니다.

대통령에게

저희들은 근로기준법을 헤택을 조금도 못 받으며 더구나 2만여 명을 넘는 종업원의 90% 이상이 평균 연령 18세의 여성입니다. 기준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어떻게 여자에게 하루 15시간의 작업을 강요합니까? (중략) 사회는 이 착하고 깨끗한 동심에게 너무나 모질고 메마른 면만을 보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각하께 간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착하디 착하고 깨끗한 동심을 좀 더 상하기 전에 보호하십시오. (중략) 1개월에 첫 주일과 셋째 주일, 2일은 쉽니다. 이런 휴식으로서는 아무리 강한 육체라도 곧 쇠퇴해버립니다. 하루 속히 신체적으로 약한 여공들을 보호해주십시오. (168~169쪽)

사람을 좋아했던 전태일은 이렇게 항상 여성 노동자를 기억했습니다.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쓴 편지 내용 중에 여성 노동자 평균 연령이 18세라고 했습니다. 1969년이면 1952년 생인 박근혜 후보가 우리 나이로 공교롭게도 18살입니다. 전태일 열사는 1948년생이니 당시 22살이었습니다.

저는 박 후보가 전태일 열사 동상과 재단 그리고 유가족을 찾아가기 전 <전태일평전>을 꼭 읽어봤으면 어제처럼 그냥 찾아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중권 교수가 비판한 "정치적 성추행"이라는 비난은 받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유는 당시 자기 나이 또래 여성 노동자들이 얼마나 고통당했는지 안다면 가슴에 저미는 고통을 느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소선 여사는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태일이의 진실이 알려진다니' 제목 글에서 "고난받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의 무언의 발걸음 속에 태일의 뜨거운 절규는 기어이 살아있으리라고 믿는다"며 "태일의 염원인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이 하루라도 빨리 보장되기를 바란다"고 썼습니다. 박근혜 후보 중심에 과연 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사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랐던 전태일 정신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철학과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전태일 열사가 청옥시절(1963년 5월부터 약 두 달 동안 당시 대구 명덕 국민학교 안에 있던 청옥고등공민학교를 말함) 동창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그가 우리에게 남긴 유서 전문입니다. 꼭 읽어보시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의지와 읽을 마음이 없다면 다시는 그러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친우여, 받아 읽어 주게.
친구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 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를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 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 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 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우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 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 말을 들어 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 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굴리는 데,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 <전태일평전>(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엮음, 돌베개, 1986년 3월) 234쪽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전태일, #박근혜, #이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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