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한 장면.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한 장면.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장규성 감독은 서운하겠지만 사실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올여름 기대작으로 보긴 힘들었다. <도둑들>이 이미 흥행을 예고했고, 큰 자본을 들인 블록버스터 영화가 출격 대기 중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하는 분들도 그렇고, 일반 관객도 기대를 안 했더라고요. 애초에 이 영화가 말도 안 된다고 했어요. '세상에 세종을 어떻게 이렇게 묘사해?' 뭐 이런 반응이었죠. <연가시> 박정우 감독이랑 친한 친구인데 <스파이더 맨>도 있었고 영화 예매율도 안 높다더니 결국 잘 됐잖아요. '너는 좋겠다' 이랬죠.(웃음)"

장규성 감독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번 영화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았다. 같은 날 개봉한 차태현 주연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하 <바람사>)의 우세를 언급하면서도 그는  <나는 왕이로소이다>가 지닌 의미를 드러냈다.

<나는 왕이로소이다>에 담긴 장규성 식 코미디는 무엇?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장규성 감독이 <이장과 군수>(2007) 이후 5년 만에 맡은 작품이다. <선생 김봉두>(2003), <여선생 VS 여제자>(2005) 등을 연출한 장 감독은 코미디 장르에 꾸준히 애정을 쏟는, 한국 영화계에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동안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했던 것과 달리 장규성 감독은 이번 영화의 각색을 맡았다. "초고의 보고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코미디 부분을 보강했다"는 그의 말을 기억하면 <나는 왕이로소이다>야말로 장규성식 코미디를 맛볼 좋은 사례다.

"초고는 지금보다 진지한 분위기였어요. 많이 바꿨습니다. 황구(김수로), 해구(임원희) 부분이나 황희(백윤식)의 코미디 부분도 넣고 세자빈(이미도) 부분도 강화했죠. <도둑들>이 지금 잘 되고 있듯이 이런 장르물은 스토리보단 캐릭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예상치 못한 반전도 필요하겠죠. 그러나 개인적으론 편안한 코미디 영화라면 그 안에서 유쾌하고 웃으면서 관객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느낄 수 있게 만들면 된다고 봐요.

웃음 코드가 얼마나 적중하는지도 중요하죠. 제 작품 중 <선생 김봉두>가 가장 잘 됐던 영환데 새롭진 않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선생에 대한 추억이 관객들의 공감을 샀다고 생각해요. 이번 영화는 이미 만들어진 얘기였다는 점에서 좀 힘들었지만, 최대한 관객의 공감대를 살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연출한 장규성 감독. 이번 작품은 <이장과 군수> 이후 그의 5년 만의 복귀작이다.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연출한 장규성 감독. 이번 작품은 <이장과 군수> 이후 그의 5년 만의 복귀작이다. ⓒ 이선필


<나는 왕이로소이다> 회심의 캐스팅을 주목하라

영화를 보고 있자면 신구의 조화가 참 뛰어나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변희봉-백윤식-박영규로 이어지는 선배 라인과 주지훈-이하늬-김수로-임원희의 후배 라인이 묘한 대구를 이룬다. 변희봉이 그간 장규성 감독과 꾸준히 작업해온 배우라면 박영규, 백윤식의 코믹함은 장규성 감독이 이번 영화를 통해 담고픈 모습이었다고.

황희 정승 역을 맡은 백윤식은 현장에서 다소 까다롭기도 했단다. 코믹한 모습에 대해 생각이 다를 수 있던 상황에서 백윤식은 최대한 감독의 말을 존중해줬다는 후문. 영화 중반에 담을 넘어가면서 '씨익' 웃는 황희의 모습은 귀여우면서도 코믹한 황희의 모습을 잘 담아낸 장면이다.

그렇다고 장규성 감독이 무조건 본인 스타일의 코미디를 고집하는 건 아니다. 다른 스태프나 배우들의 반응을 보아 충분히 통할 것 같다면 과감히 자신의 설정을 버린다는 게 그의 또 다른 철칙이었다.

"현장에서 김수로씨의 애드리브을 줄이려 했어요. 그래도 배우가 원하면 찍습니다. 김수로씨 버전과 내 버전을 함께 찍었는데 모니터 시사에서 김수로씨의 대사에 사람들이 웃으며 반응하더라고요. 그래서 살린 겁니다. 제가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의 코미디라도 사람들이 웃으면 찍어야죠."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연출한 장규성 감독. 이번 작품은 <이장과 군수> 이후 그의 5년 만의 복귀작이다.

ⓒ 이선필


<나는 왕이로소이다> 코미디가 전부는 아니었다

코미디 영화를 표방했지만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시각적으로도 즐거운 영화였다. 궁궐과 궁궐 밖을 대조해서 보여주는 만큼 화면 역시 부감에서 로우 앵글까지 다양하게 사용했다. 화려한 궁중 음식 역시 따로 음식 감독을 섭외할 만큼 공을 들였다.

"코미디 영화지만 절대 싸구려로 보이지 말자는 생각이었어요. 세트 역시 초라한 게 싫었죠. 궁궐 내부는 2천여만 원을 들여 금색 느낌으로 일일이 그려냈어요. 궁궐 외부 역시 컴퓨터 그래픽 등을 사용해 원상복구해서 제대로 촬영해달라고 주문했죠.

영화에서 음식이 많이 나오는데 예전에 어떤 영화들 보면 사극이라고 해놓고 식당에서 가져온 것 같은 음식을 쓰더라고요. 김수진 음식 감독님이 유명한 분인데 배우들이 직접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사용했습니다. 고기는 한우였고, 화로에 김이 올라오는 모습까지 신경 썼어요.

의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의상은 질감이 안 좋고 대부분 빨간색인데 조선 초엔 빨간색을 안 입었다더라고요. 황제의 색이라 중국에서 썼죠. 당시엔 파란색이라 영화에도 사실감을 살리려고 했어요. 마지막 세종이 등장하는 장면에선 명나라에 강하게 나갈 때니까 빨강으로 간 거죠."

장규성 감독은 음식 하나에도 과할 만큼 신경을 썼다. 국밥 한 그릇을 먹는 장면에서도 김이 안 나오면 다시 촬영할 정도였다는데 한여름에 촬영한 만큼 김내기가 무척 어려워 연출부가 고생했다는 후문이다. 세자 책봉식 역시 철저한 고증을 거쳐 대규모의 촬영을 고집했다. 사료를 뒤지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으면서 완성한 게 지금의 궁궐 장면이었다.

코미디 영화에 대한 장규성 감독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촬영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국내에선 코미디 장르에 열정을 갖고 꾸준히 하는 감독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코미디 이상의 의미를 던진다고 볼 수 있다.

"코미디는 매력 있는 장르에요. 또 만들기도 어렵고 홀대받기도 하기에 어려운 작업이고요. 이번에 기회가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차별성은 코미디에 있다고 봐요. '왕자와 거지' 콘셉트야 익숙한 거니 결론은 코미디라고 생각한 거죠. 충녕대군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따라가면서도 마지막까지 코미디를 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배우들도 그렇고 저 역시 능력껏 최선을 다했습니다.(웃음)"

장규성 나는 왕이로소이다 주지훈 이하늬 변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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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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