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전, 선취골의 주인공 남준재가 중거리슛을 시도하고 있다.
ⓒ 심재철

관련사진보기


일요일 저녁 인천 축구전용경기장. 후반전 경기중에 빗줄기가 선수들의 눈앞을 가릴 정도로 엄청나게 쏟아부었다. 경기는 끝났지만 양 팀 서포터즈에게는 더 중요한 의식이 남아 있었다. 냉철한 승부의 그라운드에서 서로 팀을 맞바꿔 뛰고 있는 두 선수(인천 유나이티드 GK 유현, 강원 FC 수비수 전재호)를 향한 그리움이 가슴 뭉클하게 펼쳐졌다. 경기보다 아름다운 뒷 이야기였다.

김봉길 감독이 이끌고 있는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12일 저녁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에서 벌어진 2012 K리그 27라운드 강원 FC와의 안방 경기에서 2-0으로 완승을 거두고 10위(33점 8승 9무 10패 24득점 28실점 -4) 자리에 올랐다.

인천 유나이티드, 짠물 올랐다

시즌 초반 꼴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덕이던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요즘 물이 올랐다. 웬만한 선수들이 지쳐서 나가 떨어지는 한여름에 오히려 인천 선수들은 최고의 경기력을 자랑하고 있다. 최근 3경기에서 단 1골도 내주지 않고 3연승(5득점 0실점)의 휘파람을 불었다. 어린이날 강팀 전북 모터스와 3-3으로 비긴 이후 안방에서 열린 9경기에서 5승 4무로 패배를 모르는 팀이 된 것이다.

2012년 인천 유나이티드는 베테랑 두 선수(설기현, 김남일)를 데려오면서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공격면에서 설기현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부담감만 쌓였고 경기 내용 또한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허정무 감독이 물러나면서 지휘봉을 이어받은 김봉길 수석코치가 인천 유나이티드를 춤추게 했다. 16위 꼴찌에서 벌써 10위까지 올려놓은 것이다.

 후반전, 인천 유나이티드의 골잡이 설기현이 왼발 슛을 날리고 있다.
ⓒ 심재철

관련사진보기


남은 세 경기 일정(vs 울산, vs 전북, vs 제주)이 매우 까다로운 것이어서 장담할 수는 없지만 스플릿 시스템(상위 8팀, 하위 8팀 구분) 속에서 8위 자리까지 노릴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인천에서 불어오는 놀라운 서풍은 최근에 '남준재, 박준태, 한교원, 김재웅' 등의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이끌고 있다. 설기현에게 치우쳤던 시즌 초반의 공격 비중이 이들에게 골고루 분산되다보니 경기 내용이 원하는 대로 술술 풀리고 있다.

지난 목요일 저녁 대전 퍼플 아레나에서 열린 26라운드 방문 경기에는 경고 누적 징계로 따라가지 못했던 남준재가 이 경기에서도 펄펄 날았다. 전남 드래곤즈와 제주 유나이티드를 거치며 방황하다가 다시 친정 팀 포근한 보금자리를 되찾은 남준재는 이번에도 놀라운 탄력을 자랑하며 득점 감각을 뽐냈다.

21분, 믿음직스러운 미드필더 김남일이 띄워준 공을 따라 솟구친 남준재는 바꾼 헤어 스타일을 자랑하듯 머리로 살짝 공 방향을 바꿔 강원 문지기 송유걸의 실수를 이끌어냈다. 공은 그대로 떼굴떼굴 굴러서 골문 왼쪽 구석으로 들어갔다. 특유의 활 쏘기 득점 뒤풀이는 관중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해 주었다.

51분에 미드필더 김태민이 두 번째 노란딱지를 받고 쫓겨난 뒤 방문 팀 강원 FC는 더욱 궁지에 몰렸다. 그러다보니 인천의 빠른 측면 공격을 막아내기에 벅찰 정도였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인천의 김봉길 감독은 김재웅 대신 박준태를 들여보냈고 거짓말처럼 딱 2분만에 추가골이자 쐐기골을 뽑아냈다.

 61분, 박준태(골문 바로 앞 왼쪽)의 추가골이 들어가는 순간
ⓒ 심재철

관련사진보기


61분, 남준재의 연결을 받은 인천의 왼쪽 수비수 박태민은 끝줄 바로 앞에서 날카로운 찔러주기로 골문 앞을 노렸고 2분 전에 바꿔 들어온 박준태가 바람을 가르며 달려들어 왼발로 방향을 바꿨다. 박준태의 발끝을 떠난 공은 강원의 주장 박우현의 몸에 맞고 골문 안으로 굴러들어갔다. 빗속에서도 경기장을 찾아준 2,133명의 인천 팬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인천과 마찬가지로 시즌 중 감독 교체(김상호 → 김학범)의 아픔을 겪은 강원 FC는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김은중과 데니스를 한꺼번에 들여보내며 안간힘을 썼지만 국가대표에 뽑힌 정인환 주장이 이끌고 있는 인천의 짠물 수비를 무너뜨릴 수 없었다.

이로써 강원 FC는 14위(25점 7승 4무 16패 28득점 44실점 -16)에 머물게 되어 8위(대구 FC 36점) 자리를 넘볼 수 없게 되었다.

인천 GK 유현이 받아든 강원 FC 팬들의 감동적인 선물

어느덧 날이 어두워져서 일요일 밤 8시 50분이 되었고 이민후 주심의 휘슬이 길게 울렸다. 그런데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양 팀 서포터즈가 준비한 선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천 GK 유현과 강원 FC 서포터즈의 만남
ⓒ 심재철

관련사진보기


양 팀 선수들이 중앙원 안으로 모여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양쪽 서포터즈 앞에서 감동적인 두 편의 단막극이 이어졌다. 먼저 강원 FC 서포터즈 앞에서 작은 선물 전달식이 펼쳐진 것. 그 주인공은 인천 유나이티드의 골문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문지기 유현이었다.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두 팀은 연고지 시민(도민)들의 지지를 생명으로 삼고 있는 시민(도민) 구단이다. 그러다보니 강원 FC의 K리그 첫 발걸음(2009년)부터 함께해 온 유현 선수에 대한 서포터즈의 애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강원의 유니폼과 장갑을 끼고 세 시즌 동안 80경기를 뛰었다. 거의 그가 비운 강원 FC의 골문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특히, 창단 첫 해에 문지기로서는 보기 드문 도움 1개의 기록도 가지고 있다.

2012 시즌이 시작되면서 유현은 인천의 골문 앞으로 자리를 옮겼고 강원의 골문 앞으로는 인천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키워 왔던 송유걸이 건너갔다. 마침 이 경기에서 두 선수는 같은 21번의 등번호를 달고 나와서 조금 낯설게 보이는 양쪽 골문을 나란히 지킨 것이다.

먼 곳에서 버스를 타고 찾아온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의 북쪽 관중석 한쪽에 오렌지색 응원복을 입고 비를 온몸으로 맞은 강원 FC 서포터즈는 경기 종료 후 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온 유현 선수를 향해 작은 선물을 전해주었다. 보기만해도 박수가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나의 사랑 전재호, 전재호, 라라랄라라랄라"

강원 FC 서포터즈가 응원한 반대편 골문 뒤에는 언제나 그렇듯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서포터 미추홀 보이즈가 자리잡았다. 그들도 역시 온몸으로 비를 맞으면서도 지칠줄 모르는 열정으로 선수들을 향해 큰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주었다.

 인천 서포터즈와 강원 FC 전재호의 가슴 뭉클한 만남
ⓒ 심재철

관련사진보기


경기 종료 후 강원 FC 서포터즈와 인사를 나눈 강원의 한 선수가 서쪽 관중석 앞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의 옛 유니폼을 받아들었다. 그는 바로 최근에 강원 FC의 유니폼을 입게 된 측면 수비수 전재호였다.

전재호 선수는 팬으로부터 인천의 옛 유니폼을 받아들고 인천 서포터즈 앞으로 걸어가 그것을 펼쳐들었다. 이미 인천의 서포터즈는 경기 내내 관중석 하단에 '03-11 Munhak의 추억 고마워, 전재호'라는 큰 펼침막을 걸어두면서 그를 환영했던 것이다. 그 펼침막은 어느새 인천 서포터즈 손에 들려 있었다.

그 순간 인천 관중들 귀에 너무도 익숙한 응원가가 흘러나왔다. "나의 사랑 전재호, 전재호, 라라랄라라랄라" 창단 첫 해 2004년부터 지난 해까지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늘 들어왔던 전재호 선수 전용 응원가였다. 이렇게 경쾌한 멜로디가 이 순간만큼은 가슴 뭉클하게 들렸다. 축구장에서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2002년 성남 천마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측면 수비수 전재호는 2004년 인천 유나이티드의 창단 멤버로 문학경기장에 나타났다. 첫 시즌 30경기 동안 1득점 2도움을 기록하며 시작한 인천에서의 삶은 지난 해(212경기 4득점 12도움)까지 쉼없이 이어졌고 그는 인천의 대표적인 레전드 임중용 선수처럼 은퇴 경기를 인천 유니폼을 입고 치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12년을 준비하면서 그는 허정무 감독의 선수 구상 밖으로 밀려났고 문학경기장에서의 진한 추억을 남긴 채 부산 아이파크로 떠났다. 인천의 레전드가 이제 아무도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전재호는 새로운 팀에서 제 자리를 찾지 못했다.

부산의 붉은 유니폼을 입고 겨우 3경기에만 나섰을 뿐이었다.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결국 계약 해지 소식이 들려왔다. 이러다가 그냥 잊혀지는 이름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에게 더 오랜 인연이 손길을 보내왔다. 성남에서 뛰던 시절에 선수와 코치로 인연을 맺었던 김학범 감독이 강원 FC의 감독으로 부임한 것이다. 그리고 자유 계약 선수로 풀린 전재호가 그리로 갔다. 그만큼 곡절이 많은 전재호였다.

선수 생활의 최대 위기를 맞은 전재호가 강원 FC라는 새 둥지를 찾아 안정을 되찾았고 당당히 왼쪽 수비수로 뛰면서 인천 팬들 앞에 다시 우뚝 선 것이다. 이에 인천 서포터즈에서는 그를 누구보다 따뜻하게 맞아준 것이다.

비가 내리는 일요일 밤 인천 축구전용경기장, 승리의 기쁨보다 더 아름다운 단막극 두 편이 그렇게 끝났다. K리그 경기장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의 여운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2012 K리그 27라운드 인천 경기 결과, 12일 저녁 7시 인천 축구전용경기장

★ 인천 유나이티드 FC 2-0 강원 FC [득점 : 남준재(21분,도움-김남일), 박준태(61분,도움-박태민)]

◎ 인천(감독 김봉길) 선수들
FW : 설기현(89분↔손대호)
AMF : 남준재, 김재웅(59분↔박준태), 한교원
DMF : 김남일, 구본상
DF : 박태민(65분↔이규로), 정인환, 이윤표, 김한섭
GK : 유현

◎ 강원(감독 김학범) 선수들
FW : 지쿠, 정성민(56분↔김종국)
MF : 시마다(46분↔김은중), 백종환, 김태민(51분-경고 누적 퇴장), 장혁진(46분↔데니스)
DF : 전재호, 박우현, 배효성, 김오규
GK : 송유걸
전재호 유현 인천 유나이티드 FC K리그 축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