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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계획하고 준비하면서 꿈꾸는 설레임이 그 기쁨을 더해준다. 올 여름에도 습관처럼 휴가를 준비했었다. 준비하는 동안은 여전히 즐거웠다. 계곡과 바다를 떠올리는 휴가의 풍경을 버리고, 이번에는 거친 물결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와 같은 역동성 있는 삶을 보기 위해 휴가를 서울에 가기로 했다.

첫 번째 계획은 '야구장 가기'였다. 지난해에는 꼴찌하고 올해는 탈꼴찌를 위해 기를 쓰는 힘없고 빽없는(?) 선수들이지만, 늘 화기애애하게 경기를 하는 이 팀. 늘, 텔레비전으로 응원하다가 일년에 한 번은 직접 찾아가 응원하는 전례를 만들기 위해서 일찌감치 비싼 지정석 앞 자리를 예매했다.

두 번째 계획은 '콘서트 보기'였다. 여기저기 찾다가 개그맨들이 '여름을 시원하게 홀랑적셔 준다'는 뜻의 '홀랑적쇼'에 거금을 투자했다. 이 공연은 성균관대 새천년홀이여서 아이들에게 대학의 꿈도 미리 찾아보게 할 수 있다는 잇점도 있어 안성마춤이였다. 마지막으로 최첨단 시설과 서울 깍쟁이들이(?) 다 모이는 곳 중의 하나인 코엑스몰에서 거금 20만 원씩을 가지고 쇼핑홀릭에 빠지기로 했다.

참! 한 가지 빼먹은 게 있네. 가장 중요한 휴가비 마련 과정인데. 좀 길다. 2004년 마음맞는 친구 넷이서 매달 약간씩 모아서 멋진 여행을 하자고 했었다. 한 4~5년이 지나도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베트남에 있는 친구에게 가자고 의견이 모아져 아들과 함께 여권까지 만들었는데, 그만 어그러지고 말았다.

한껏 들 떠 있던 아들에게 전국일주를 시켜주겠노라고 공언했고, 지금까지 모았던 피 같은 자금의 일부를 휴가비로 나눠쓰기로 정했다. 암튼, 그렇게 8년간 알토란같이 모은 자금을 한 입에 털어넣어야 하지만 기분좋게 그리고 뭔가 기억에 남는 일에 쓰기 위하여 차곡차곡 준비했다.

일주일 전부터 아이들은 "아! 일주일 남았네", "아! 낼이야"하면서 식탁에서 휴가의 설레임을 즐겼다. 드디어 우리는 화려한 올림픽 개막식의 축하를 받으며 서울로 출발했다.

차동차에 달린 네비게이션에 '한양대'를 검색했다. 야구장 가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대학탐방을 하면서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해 주고 싶었서였다. 물론, 꼭 그 대학을 가는 것은 아니지만 막연하게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고 또렷한 목표를 가지고 공부하면 좀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 하는 부모의 속내를 담고 있었다. 아이들도 이 맘은 알겠지!

폭포수처럼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이 그리운 캠퍼스는 거대한 난로 한 가운데 있는 것처럼 뜨끈뜨끈했다. 창업센터, 법대, 동아리방 등 여러 건물들을 차를 타고 또는 좀 걸으면서 돌아봤다. 그리고 관심있는 학과 앞에 서 보기도 하고, 슬쩍 강의실도 들어가 봤다. 그리고 그곳에서 학생들과 함께 점심도 먹고, 기념품 점에서 학교 로고가 새겨진 학용품도 몇 점 샀다.

이만하면 '나도 학구열이 뜨거운 이곳에 풍덩 빠져야지!' 또는 '눈이 반짝반짝 빛나게 공부해서 이곳에 서야지!' 라고 새롭게 맘을 달리 먹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나왔다.

목동 근처 야구장에 도착했을 때는 좀 이른 시간이라 저녁식사 겸 주전부리를 사기 위해 근처 쇼핑센터에 갔다. 먼저 현대백화점에 주차를 했다. 'B1'에 도착했을 때, 만차다. 다섯 바퀴를 돌아도 모두가 만차였다. 도대체 어디까지 내려가지... 'B6'에 도착해 겨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맨 위로 올라가서 내려오면서 구경하기로 했다. 여성복 코너부터 갔는데 이건 시골에서는 볼 수 없는 가격표가 자연스럽게 붙어 있었다. 각자에게 부여된 쇼핑머니를 한 방에 날려도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태반이다.

"이런 세상 돈은 서울에 다 있나보다"

그런 것 하나 시원하게 사 주지 못하고 가격표만 찾아 만지작거리는 작아진 가장의 모습.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재빨리 발을 실었다. 맨 밑에 있는 '푸트코트'에는 갖가지 모양의 많은 먹을 거리들이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이미 작아질 대로 작아진 터라 이곳에서 밥을 먹어도 왠지 체할 것 같아 서둘러 나왔다. 그리고 우리의 체질에 맞는 다른 저렴한 쇼핑센터로 발을 옮겼다. 왠지 맘이 편해져서 먹을 것도 좀 사서 일찌감치 야구장에 입장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그룹에서 운영하는 최고의 선수들로 짜여진 팀과의 경기였다. 초반부터많이 밀려 실망스러웠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많이 쫓아 갔다. 하지만 경험과 뒷힘 부족으로 우리가 응원하는 팀이 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강자에게 진다는 두려움보다는 이기려는 도전과 열정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꼴찌의 설움을 딛고 화려하게 부활하는 날이 올거라는 희망과 기대로 열심히 응원하리라.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 야구장을 찾은 우리들은 폭염은 이미 잊고 있었다.
▲ 게임을 준비하고 있는 선수들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 야구장을 찾은 우리들은 폭염은 이미 잊고 있었다.
ⓒ 김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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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근거리에 예약한 호텔로 향하는 길은 꽉 막혀 있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 겨우겨우 도착했더니 이번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북적였다. 피곤한 휴가의 하루는 에어컨 바람과 함께 낯선 곳에서 곤하게 잠들었다.

아침 식사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아서 뷔페로 준비되어 있었지만, 토스트와 과일주스 그리고 죽 등 서너가지 매뉴가 전부로 초라했지만 아들과 나의 식탐으로 많은 양을 소화해 냈다.

이튼날 휴가 일정은 코엑스몰에서 쇼핑을 하면서 오전을 보내는 것이였다. 한강을 따라 여의도 63빌딩을 지나 남쪽으로 내리 달렸지만,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떠난 탓인지 차량 정체는 심하지 않았다. 거의 시간에 맞게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수시대학입시 박람회가 개최되고 있었다. 그곳에 잠시 들러 대학의 학생유치 경쟁과 팸플릿 등을 챙겨 보면서 다시한번 공부에 대한 전의(?)를 다지는 계기를 마련하고, 옆에 있는 과학발명품 전시회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바로 쇼핑센터로 갔다.

우연하게 마주친 정보 박람회에서 역시 정보는 서울에 더 많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 수시 대학입학 정보 박람회장 앞에서 우연하게 마주친 정보 박람회에서 역시 정보는 서울에 더 많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 김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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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고 화려하고, 사고 싶은 물건들이 가득한 그곳에는 돈이 없지 살게 없지는 않았다. 다. 평상시 사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 둘씩 샀고, 아이들 안경하는 동안 난 서점에 들러서 책을 2권 샀다. 그리고 콘서트 시간에 맞추기 위해 점심을 서둘러 먹었다. 정말 손바닥만한 식당에 손님들이 가득가득차 있었다.

차가 막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공연장이 있는 성균관대로 출발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과 밀레니엄 등 하늘과 맞닿은 듯 높이 솟은 건물들 틈새로 난 길을 내비게이션은 친절히도 안내를 해주었다. 이 기계가 없었다면 서울에 차를 가지고 올 생각을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여기저기 광고판이 있고, 기념촬영하는 곳에서 가족과 연인과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자신들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그속으로 빠져들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화려한 조명과 우렁찬 스피커 그리고 재치있는 입담으로 때론 속시원하게 웃고 때론 목이 터져라 같이 소리를 질렀다. 박수치고 웃다 보니 두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시골에서는 접할 수 없는 콘서트를 보면서 소리치고, 웃는 즐거운 시간이였다.
▲ 개그맨이 출연한 시원한 쇼를 보면서 시골에서는 접할 수 없는 콘서트를 보면서 소리치고, 웃는 즐거운 시간이였다.
ⓒ 김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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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에 몰입했던 시간은 내가 있던 세상과 분리 되었기 때문에 잠깐의 시간이였지만 몸은 씻은 듯 신선하고 새로워졌다. 그래서 다시 내가 있던 세상으로 돌아왔을 땐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이 경험이 주는 힘이 아닐까. 아이들에게도 그런 느낌이 전해졌으면.

이제 마지막 남은 코스로 서울에서 가장 높은 남산타워를 오르기로 했다. 신라호텔과 동국대를 지나 해오름 국립극장쪽으로 안내되어져갔다. 케이블카를 타고 근사하게 올라가리라는 내 생각을 읽지 못하고 그곳으로 데려다 준 고맙지만 때론 아둔한 내비게이션과 더위와 저질체력을 배제한 채 20분 만 걸어가면 금방 도착한다는 주차장 아저씨가 우리를 골탕먹이려고 서로 통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강력하게 의심이 가는 상황에서 고민에 빠졌다.

초행길에 선 사람들은 처음 얘기, 혹은 인터넷에서 본 기억에 남는 누군가의 안내가 해답처럼 느껴지는 현실에서 모험을 포기하고 결국 오류여도 믿을 수 밖에 없는 가상의 사실에 기대어 우리는 그냥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해오름 극장 앞에서 다문화체험 행사를 잠깐 보고 20분이면 충분하다는 말만 굴뚝같이 믿고 걸었는데 아이들과 아내가 땀에 다 젖었서 불만스런 눈길로 나를 자꾸 봤다. 원망하는 눈빛이 역역했다.

휴가의 마지막 장을 이렇게 닫는구나 하는 불안감 때문에 '천천히'를 강조하면서 올라간 남산타워는 설상가상 넘쳐나는 피서객과 외국인 관광객의 긴 기다림의 줄로 인해 꼭대기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유리로 막아 놓은 베란다에서 서울의 야경을 구경하고 사진 찍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타워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근사한 야경을 한참동안 구경했다.
▲ 서울의 야경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타워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근사한 야경을 한참동안 구경했다.
ⓒ 김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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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시간이 지나, 배를 채워야 하는데 이대로 비싸고 난리 법석인 이곳을 그냥 내려가야하는가? 아니지 비싸거나 복잡하다는 것은 그냥 현상이며 그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찾으면 길이 있겠지. 가장은 어려운 상황에서 가족에게 안정과 믿음을 줘야하는 것이다. 백화점에서 몰래 난 상처와 굴욕이 다시 되살아났다.

이곳 저곳을 살피다다가 중식당의 빈 자리를 발견하고 저돌적으로 이끌었다. 언제 맘 먹고 다시 올지 모르는데 가장 높은 곳에서 밥을 먹고 가야한다고 생각하며 막상 들어 갔지만, 종업원들이 들락날락하는 입구자리 밖에 없었다. 창가 쪽 근사한 자리에서 사람들이 일어나기에 그곳으로 옮겨 달라 했더니 예약이 돼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메뉴판에서 좀 비싼 코스요리를 시켰더니 우리를 담당했던 메니져가 근사한 자리가 예약이 취소되었다며 옮겨 주겠단다. 아! 이건 뭐 돈의 맛이 아니라 돈의 힘이구나.

암튼 우리는 창가의 제일 근사한 자리에서 휘황찬란한 야경을 곁에 두고 여유있게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후 나는 아이들이 조금만 허튼짓을 하거나 말을 안 들으면 "왜 그래 제일 높은 곳에서 밥을 먹은 사람들이"하면서 은근 자존심을 살려 주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왠지 의미를 부여하면 큰 의미가 되는 것이 바로 세상일이 아닌가.

거의 자정이 되어 집에 도착했다. 여행 끝은 '집의 고마움'에 있다. 아무리 좋아도 집보다 좋을 수는 없다. 호텔에서 십여만 원을 주고 잤으니까. 우리집은 호텔보다 좀 더 낫다. 그러니까 이십만 원 곱하기 삼백육십오 곱하기 삼십년하면 이십여억 원에 달한다. 그 정도로 우리집은 좋은 것이다. 하루에도 이십여만 원씩을 벌면서 있으니까 열심히 닦고, 청소하고 관리해야지.

아! 여행. 매일 매일 여행같은 삶을 살 수는 없지만 일년에 한 두번씩 내 일상 밖의 세상으로 떠나는 여행은 내게 소중한 것을 다시 새기게 해준다. 내게 있는 아주 작은 것들 조차도 귀찮거나 미워질 때면 일상 밖으로 여행을 떠났다 돌아와야겠다. 이번 거꾸로 가는 여름휴가는 대성공이다.


태그:#여름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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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는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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