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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평범한 도심 한복판. 길을 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목숨을 끊기 시작한다. 자기 손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높은 건물의 끝에서 아득한 허공을 향해 차례로 한 걸음을 더 내딛더니 비명도 없이 떨어진다. 마치 그 순간 삶과 죽음의 경계가 지워진 것처럼. 영화 <해프닝>은 이렇게 시작한다.

살고자 하는 욕망마저 거스르게 하는 알 수 없는 그 무엇, 그리고 마치 바람을 타고 퍼져가듯 곳곳에 드리워지는 죽음의 그림자. 영화가 주는 섬뜩함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공지영 작가의 책 <의자놀이>를 보며, 이 영화가 떠올랐다. 이번에도 누군가가 그들을 죽음으로 떠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 공지영의 눈으로 본 쌍용자동차 이야기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그러나 정작 작가는 머리말에서 '해고자들과 함께 아파했던 한 작가의 사실 에세이'로 봐달라고 말한다. 아마도 문학을 업으로 해온 작가에게 '르포르타주'라는 낯선 장르는 무척이나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숫자 하나의 표기에도 진땀이 흘렀다"고 털어놓는 작가의 말에서도 그런 부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지만 결국 그녀가 해냈다. 그 많은 언론인들, 학자들 그리고 노동 운동가들도 감히 하지 못했던 일을 소설가 공지영이 해낸 것이다. "그들이 겪은 일들이 너무 아파서 참으로 많은 밤을 끙끙거렸다"고 말하는 작가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낸다.

공지영 작가는 이 책에 쌍용자동차의 77일간의 파업과 정리해고로 인해 22명이 죽음을 선택한 이야기를 담았다.
▲ <의자놀이> 공지영 작가는 이 책에 쌍용자동차의 77일간의 파업과 정리해고로 인해 22명이 죽음을 선택한 이야기를 담았다.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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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엉뚱하게도 '의자놀이'를 떠올렸다고 한다. 사람 수보다 한두 개쯤 적은 의자들을 사이에 두고 흥겹게 돌다가 신호가 떨어지면 서로의 엉덩이를 밀어내며 다퉈야 하는 그 놀이. 왜 하필 '의자놀이'였을까.

따지고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놀이라는 것이 대개 그렇다. 상대를 밀어내야 하고, 그래서 누군가는 떨어져나가야 한다. 하지만 '의자놀이'는 규칙을 정하는 사람이 의자의 개수를 멋대로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 한두 개씩 줄여나갈 수도 있지만, 사람 수의 절반으로 뚝 잘라 버리거나 아예 한두 개만을 남겨둔 채 싸움을 붙일 수도 있다. 그만큼 규칙을 정하는 사람과 의자를 차지해야 하는 사람 사이의 권력 관계가 뚜렷하며, 의자의 수가 줄어들수록 살아남기 위한 다툼도 격해질 수밖에 없다. 작가가 쌍용자동차 사태를 들여다 보다 '의자놀이'를 떠올린 이유다. 그리고 "의자를 놓친 자들에게는 죽음을 부르는 그런 미친 놀이"는 그렇게 스물두 명의 목숨을 차례로 앗아갔다.

작가의 손을 잡아 끈 두 명의 죽음

2011년 겨울 어느 날, 작가는 가슴 아픈 소식을 접하게 된다.

2010년 4월 25일,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된 노동자(정확히는 무급휴직자) ㅇ씨에게 아내 ㅅ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보고 싶으니 빨리 집으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77일간의 파업이 끝나고 무급휴직이 결정된 뒤 약 6개월이 지났을 무렵으로, ㅇ씨는 1년 뒤 복직시켜주겠다던 회사의 약속을 기다리며 일용직과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 아내 ㅅ씨는 적금을 깨고, 보험을 해약하고, 차를 팔고, 아이들 돌 반지와 결혼 때 받은 목걸이까지 팔아가며 생활비를 끌어 모았다. 하지만 아내도 남편도 그리고 열일곱 열여섯 남매도 점점 말수가 줄어갔다. 남편은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 많았고, 가끔 화장실에서 흐느끼기도 했다.

그날 아내 ㅅ씨의 전화를 받은 ㅇ씨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평소처럼 남편을 맞이했고, 남편은 옷을 갈아입으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남매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풍경이었다. 그때였다.

"(ㅅ씨는) 무심한 걸음걸이로 베란다로 다가가 문을 열고 그대로 앞으로 나갔다. 그녀의 몸은 허공에서 한 바퀴를 돌아 아파트 아래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삶과 죽음 사이, 아무리 평소에 자살을 연습했던 사람이라 해도 한순간쯤은 망설일 그 간격을 그녀는 풀쩍 뛰어넘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거기에 다른 방이 있었다는 듯 스스럼없는 몸짓이었다. 그래서 아이들도 베란다로 나가는 엄마를 빤히 보면서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 아이들의 눈앞에서 엄마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몸을 날려버린 것이었다."  <의자놀이> 중  

그리고 다시 열 달이 지난 이듬해 2월 26일 아침, 남편 ㅇ씨도 딸에게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ㅇ씨가 남긴 통장 잔액은 4만 원, 그리고 한 달 뒤 150만 원의 카드빚 청구서가 고아가 된 두 남매에게 날아왔다.

그런 식으로 무려 스물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9년 4월 8일, 사측이 생산직 노동자의 절반에 달하는 2646명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발표하던 날, 벌써 몇 달 전에 강제 휴직을 당한 어느 비정규직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것이 첫 번째 죽음이었다.

그 뒤로 3년이 지난 2012년 3월 30일, 77일간의 파업 현장을 처음부터 함께 지키다 공장 지붕 위로 컨테이너를 타고 내려온 경찰특공대에 의해 끔찍하게 짓밟혔던 서른여섯의 젊은 노동자가 자신이 살던 임대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그것이 스물두 번째 죽음이었다.

대부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몇몇은 심근경색이나 뇌출혈로 돌연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죽음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그들 모두는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죽음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허물어져버린 사람들

공지영 작가가 지난 4월 19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 앞에서 열린 '함께 살자 100인 희망 지킴이' 발족 기자회견에 참석해 정리해고로 목숨을 잃은 22명의 노동자와 가족들의 아픔을 위로하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위해 단행본 책자를 만들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공지영 작가가 지난 4월 19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 앞에서 열린 '함께 살자 100인 희망 지킴이' 발족 기자회견에 참석해 정리해고로 목숨을 잃은 22명의 노동자와 가족들의 아픔을 위로하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위해 단행본 책자를 만들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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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의사 정혜신 박사가 평택으로 달려간 것도 이즈음이었다. 졸지에 부모를 잃은 두 남매의 이야기를 듣고 더는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이 죽음의 행렬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고, 그래서 심리치유센터 '와락'을 세워 해고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정혜신 박사를 만나고 나서야 그들은 비로소 입을 열기 시작했다. 몇몇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인용한 글들은 르포 작가인 이선옥 작가의 글을 책에 그대로 옮긴 것들이다. 

"남편은 소파에 있고 나는 안방에 있었는데, 내내 울다가 어느 순간 보니까 제가 옷장에서 남편 넥타이를 꺼내서 묶고 안방 쓰레기통을 뒤집어서 그 위에 올라가 목을 매고 있더라고요. 조금만 늦었으면 지금 이 자리엣 없었을 수도 있죠."

"8층 베란다가 어느 순간부터 높이감도 별로 없는 거 같고, 이렇게 봐도 죽을 거 같지 않고. 8층이라는 높이감이 예전보다 확 줄어든 거죠. 아래를 내려다보며 내가 여기서 뛰어내리면 나 걸러줄 나무도 없네...... 이런 생각도 들고."

"특히 술 먹으면 그래요. 지난번에 한번 술 먹고 몸에 휘발유랑 다 부은 적이 있었어요. 지금 내가 이렇게까지 살아야 되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고......"    <의자놀이> 중

이처럼 그들의 상처는 깊었다. 우리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라 쉽게 이야기하는 이 증상은 전쟁터에서 서로를 죽고 죽이는 현장에 서있었거나, 고문을 당한 사람들이 겪는 스트레스라고 한다. 정혜신 박사의 말을 빌리자면 "죽음과 삶의 경계가 허물어진", 다시 말해 이미 삶의 끈을 놓아버린 상태다. 게다가 '아무리 건강했던 사람도' 이를 비껴가기 어렵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죽음의 그림자가 바람처럼 퍼져가고 있던 것이다.

르포르타주와 문학의 경계에서 되살린 진실들

이 책은 르포르타주와 문학의 경계에 놓여있다. 때로는 마치 소설처럼 지나간 어느 장면을 우리의 눈앞에 펼쳐 보이거나 누군가의 못 다한 말을 전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르포르타주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실 관계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꼼짝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기도 한다.

작가는 쌍용자동차의 해외 매각과 법정관리 신청 그리고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는, 마치 미리 짜맞춘 듯한 시나리오에 이름을 올린 몇몇 회계법인들의 거짓에 가까운 감사보고서를 물고 늘어진다. 2007년 약 23억에 지나지 않던 건물의 손상차손(자산이 낡았기 때문에 미래에 그것을 팔았을 때 현재보다 헐값을 받게 되는 손해액을 의미)이 2008년에 무려 2000억 원으로 100배 가까이 늘어나는가 하면, 2008년 9월까지 980억 원이던 당기 순손실 역시 3개월 만에 7100억 원으로 치솟은 것은 오로지 이들 회계법인들의 감사보고서 탓이기 때문이다.

결국, 보고서에 적힌 숫자만으로 쌍용자동차는 한순간에 자기자본대비 600%에 달하는 부채에 허덕이며, 당기순손실만 7100억 원에 달하는 위태로운 기업이 돼버렸고, 그것이 2646명에 달하는 노동자를 내보내야 하는 이유였다.

쌍용자동차 노조와 금속노조 등은 이들 회계법인들을 '주식회사의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고발했지만, 검찰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러한 터무니없는 숫자들로 억울하게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1심에서 사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정리해고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적고 있다. 르포르타주와 문학의 경계에 서서.

"이 판결로 인해 오직 쌍용자동차가 인생의 전부였던, 세상에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노동자가 바람 찬 봄밤 23층에서 몸을 던졌다는 것을 그 분은 알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아서 더욱 잔인하고 조용한 사형선고였다는 걸."  <의자놀이> 중

세상이 몰랐던 이야기,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야기

지난 4월 18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마련된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에서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과 해고노동자가 상복을 입고 2009년 정리해고 이후 숨진 동료와 가족들의 넋을 기리며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 4월 18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마련된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에서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과 해고노동자가 상복을 입고 2009년 정리해고 이후 숨진 동료와 가족들의 넋을 기리며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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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이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노조는 회사를 살리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을 세운다. 우선, 작업 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겠다고 했고(물론, 임금은 형편없이 줄어든다), 또 비정규직을 위한 고용안정기금 12억 원을 노조가 내놓겠다고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자신들의 퇴직금을 담보로 1000억 원에 달하는 긴급자금·개발자금을 정부에 요구하겠다는 어려운 결심도 내놓았다. 이쯤 되면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셈이다.

한 가지 더 있다. 결국 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공장 문을 닫아건 채 77일간의 파업에 들어갔을 때, 국가가 나서 물도 전기도 모두 끊어버린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먹지도 씻지도 못한 채 두려움에 떨면서도 노동자들은 비상용 발전기를 돌려 도장용 페인트가 굳지 않도록 애를 썼다.

'노조 이기주의'와 '공장을 점거한 빨갱이들'이라는 헤드라인에 묻혀있던 이야기들이다. 다 알고 있다고 여겨왔지만 실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진실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최근 인터뷰에서 작가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앞서의 회계법인들이 자신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길 바란다고, 그래서 그들의 거짓이 세상에 알려지길 바란다고. 작가는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우리가 이 책을 꼭 읽어야만 하는 이유들이다.

영화 <해프닝>에서 이어지던 죽음의 행렬은 자연이 보내는 경고였다. 자신의 욕심만을 좇는 오만한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 어쩌면 오늘 우리 곁에 짙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도 무언의 경고가 아닐까.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구조조정이 불러온 스물두 명의 죽음, 그리고 무분별한 도시재개발이 불러온 다섯 명의 철거민과 경찰관 한 명의 죽음. 그것은 더 이상 외면하지 말라는, 결국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도 비껴갈 수 없을지 모른다는 경고일지 모른다.

주제 넘은 이야기지만, 부디 당신도 꼭 이 책을 사서 읽길 바란다. 지금 우리에겐 대선 주자의 생각을 읽는 일보다 나와 내 이웃이 처한 현실을 바로 보는 일이 훨씬 더 급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책의 수익금 전부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쓰인다.


의자놀이 -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공지영 지음, 휴머니스트(2012)


태그:#의자놀이, #쌍용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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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2월 전라북도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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