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유령> 19회의 한 장면

SBS 드라마 <유령> 19회의 한 장면 ⓒ SBS


런던올림픽으로 인한 결방으로 시청자들을 애타게 했던 <유령>이 8일 2주 만에 방영됐다.

결방의 여파로 인해 시청자들이 극으로 치달으며 한껏 고조됐던 극의 긴장감을 잠시 잊은 탓일까. 2주 전 15.3%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유령> 19회는 전국 시청률 12.9%(AGB닐슨미디어리서치 기준)를 나타내며 2.4%P 하락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주 결방에 이어 평소 방송시간보다 앞선 오후 9시 40분에 방송되며 올림픽 특수(?)를 톡톡히 본 셈이다. 경쟁작인 <각시탈>이 시청률 18.3%를 찍은 터라 무턱대고 올림픽을 탓하기에도 머쓱한 결과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김은희 작가와 김형식 PD 이하 제작진은 우직했다. '막방'을 한 회 남겨뒀음에도 자극적인 사건이나 눈요기는 없었다. 오로지 박기영(소지섭 분)과 사이버 수사대 팀원들이 법정에 세운 조현민(엄기준 분)을 잡기 위한 증거를 찾는 데 주력했다.

팀원들에게 자신이 김우현이 아님을 밝힌 박기영은 '미친소' 권혁주(곽도원 분)과 함께 과거 비리 사건에 연루된 신경수 국장을 압박해 부정을 폭로하게 만들고, 김우현이 위장 수사 중이었다는 증거인 사건 보고서를 법정에 제출했으며, 마지막으로 신효정이 가지고 있던 남상원의 살인 현장이 담긴 원본 동영상을 내밀었다. 모든 범죄의 꼭짓점에 있던 조현민을 궁지로 몰아넣은 결정적 한방이었다.

자신의 파놓은 함정을 이용해 반드시 난국을 헤칠 수 있다고 믿는 조현민, 사건의 출발이었던 신효정의 죽음을 다시 따라잡으며 하나하나 증거를 모으고 김우현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발로 뛴 박기영과 팀원들. <유령>을 우직하다 표현한 건 단지 이러한 19화의 내용 때문만은 아니다.

<유령>이 획득한 통일성 대로 우직한 결말을 기대하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신효정 사건을 돌아보게 하는 수미쌍관의 구성도 일품이지만, 캐릭터들이 어떠한 감정적 대응이나 자극적 사건에 기대지 않고 수사에 집중한다는 면에서 19회는 경찰 스릴러로서의 기본을 충실히 구현했다고 볼 수 있다. 그간의 '한드'가 병원에서 연애하고, 경찰서에서 연애하고, 법정에서 연애하는 드라마라는 비아냥을 들어왔던 과거를 떠올려 보라.

더욱이 사이버 범죄에서 출발한 살인사건을 역시나 이와 관련된 수사와 증거를 통해 잡아낸다는 기본 중의 기본을 지킨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조목조목 증거를 찾아내 결국 법정에 조현민을 세우는 <유령>의 선택. '자경단'에 가까운 '사적 복수'를 그리는 영화나 드라마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이러한 김은희 작가의 극본은 오히려 신선하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마지막회에서 "날 잡아넣을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다"는 조현민에게 박기영이 "당신은 이미 소중한 걸 잃었어.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직접 확인해"라며 신효정의 임신 사실을 언급하는 화면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사이버 세계를 지배하는 자가 결국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던 조현민에게 일깨워주는 죽음과 생명의 윤리.

이는 곧 줄곧 사이버 범죄를 쫓아왔던 <유령>이 내포하고 있던 메시지와도 일맥상통한다. 컴퓨터를 지배해도 결국 그 사이버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라는 단순하면서도 가장 근원적인 휴머니티에 대한 메시지. 더욱이 조현민에 대한 통렬한 응징이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꿈꾸다 자신의 아들을 스스로 죽여버린 패륜이라는 점은 꽤나 섬뜩하다.

끝으로 결말에 첨언하자면, 종영을 앞둔 <유령>의 성취를 감안하건데, 오히려 20회는 김은희 작가의 작가적 역량을 마음껏 펼쳐도 좋을 것 같다. <싸인>처럼 주인공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대중성을 배반하는 선택이라도 말이다. 그간에 획득해 낸 통일성이라면 그 어떤 전개도 결국 <유령>이 창조해낸 세계이 자장 안에 머물 테니.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을 덧붙이자면, '미친소' 권혁주와 트루스토리 기자 최승연(송하윤 분)의 러브라인이 꼭 성사되기를. 현실에서도 노총각이라는 배우 곽도원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생애 처음일 달달하고 로맨틱한 연기를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가 분명 도처에 살아 숨 쉬고 있지 않을까? 마치 브라운관 뒤에,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서 김은희 작가의 결말을 지켜보고 있는 '유령'들처럼. 

유령 김은희작가 싸인 소지섭 곽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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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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