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승리의 기쁨을 서포터즈와 나누고 있다.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승리의 기쁨을 서포터즈와 나누고 있다. ⓒ 심재철


친정 팀으로 돌아온 그를 쳐다보는 팬들의 시선은 그저 그랬다. 지난해 새로운 팀을 찾아 떠난 남준재가 바로 그 주인공. 더구나 그는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를 치르는 동안 두 팀(전남 드래곤즈→제주 유나이티드)을 옮겨다녔기 때문이었다.

2010년 인천 유니폼을 입고 K리그에 데뷔한 측면 미드필더 겸 골잡이 남준재는 첫 시즌동안 28경기를 뛰면서 3득점 5도움을 올렸다. 아주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것은 아니지만 새내기로서 충분히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자원이었다.

유능한 왼발잡이 수비수 겸 미드필더 장원석(인천 유나이티드→제주 유나이티드)과 그 자리를 바꾼 것이라 이렇게 다시 돌아온 그를 바라보는 인천 팬들의 마음은 너그러운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곧바로 그는 안방 팬들에게 보물로 보이기 시작했다. 6경기만에 3득점 1도움. 이제 멋진 활 쏘기 득점 뒤풀이 동작도 남준재의 인상적인 수식어가 되고 말았다.

김봉길 감독이 이끌고 있는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4일 저녁 7시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에서 벌어진 2012 K리그 25라운드 전남 드래곤즈와의 안방 경기에서 후반전에 터진 남준재의 멋진 헤더 결승골을 끝까지 잘 지켜내며 1-0으로 이겼다. 바닥에서 출발하여 살아돌아온 인천은 이로써 최근 벌어진 여덟 차례의 안방 경기에서 무패(4승 4무) 기록을 이어갔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돌아온 보물 '남준재'

지난달 15일 저녁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에서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박진감 넘치는 K리그 최고의 명승부가 펼쳐졌다. 리그 순위표에서 양 극단을 달리고 있는 두 팀이 맞붙었기 때문에 아무리 인천의 안방이라고 해도 선두권 FC 서울을 잡기는 버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믿기 어려운 3-2 승리를 만들어냈다.

바로 그 마지막 순간(90+1분), 새내기 골잡이 빠울로의 머리에서 만들어진 결승골을 측면에서 도운 주인공이 바로 남준재였다. 노련한 설기현을 공격의 정점에 두고 4-2-3-1 포메이션을 내세우는 인천의 선수 구성에서 남준재의 자리는 주로 왼쪽 측면에서 뛰는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친정 팀으로 돌아와 치른 두 번째 경기만에 천금같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것이다.

남준재는 이어진 포항 스틸러스와의 방문 경기에서 복귀 후 첫 득점을 기록했다. 비록 1-2로 인천이 역전패를 당하는 경기였지만 내용면에서 전통의 명가 포항 스틸러스를 크게 흔들어 놓는 경기력을 자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빅 버드에서 열린 또 하나의 방문 경기(7월 29일, vs. 수원 블루윙즈)에서도 남준재의 득점 감각은 빛났다. 비록 이 경기에서도 1-3으로 패하기는 했지만 공격 포인트를 향한 남준재의 열정은 그 누구보다 뜨거워 보였다.

 57분, 남준재의 이마에 맞은 공이 전남 골문으로 빨려들어가는 순간!

57분, 남준재의 이마에 맞은 공이 전남 골문으로 빨려들어가는 순간! ⓒ 심재철


시즌 초반 인천 유나이티드의 고민 중 가장 컸던 것이 골잡이 설기현에게만 공격을 의존하여 그를 고립시키는 일이었는데 이 고민을 오른쪽 미드필더 한교원과 함께 남준재가 단숨에 해결해준 셈이다.

방문 팀 전남 드래곤즈는 간판 미드필더 이현승이 53분에 인천 미드필더 김남일에게 거친 태클을 걸었다가 김성호 주심으로부터 두 번째 노란딱지를 받으며 쫓겨나는 불상사를 만났고, 그로부터 4분 뒤 남준재에게 결승골을 얻어맞았다. 김재웅의 띄워주기를 남준재가 탄력 좋은 몸놀림을 자랑하며 이마로 성공시킨 것.

인천의 파란 유니폼을 다시 입고 뛴 여섯 경기에서 3골 1도움을 만들어냈다. 두 경기를 뛸 때마다 하나씩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천 유나이티드의 후반기 역전 드라마는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남준재는 이 활약도 모자라 교체 선수 박준태의 빠른 공간 침투를 빛내는 패스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69분에 빠져들어가는 박준태를 겨냥하여 찔러준 공은 상대 문지기 이운재와 혼자서 맞서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각도를 잘 줄이며 달려나온 이운재의 선방에 박준태는 오래간만에 찾아온 득점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69분, 남준재의 찔러주기를 받은 박준태가 전남 문지기 이운재 앞에서 슛을 시도하고 있다.

69분, 남준재의 찔러주기를 받은 박준태가 전남 문지기 이운재 앞에서 슛을 시도하고 있다. ⓒ 심재철


인천의 김봉길 감독 대행은 79분에 남준재 대신 문상윤을 들여보내며 추가골을 노렸지만 열 명이 버틴 전남 드래곤즈의 골문은 끝내 더 열리지 않았다. 인천은 전남과의 맞대결 기록에서 최근 10경기 연속 경기당 2득점 이상을 뽑아내지 못했다는 징크스를 깨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2007년 3월 31일 이후에 전남과 14차례 만나서 단 한 경기도 지지 않았다는 5승 9무의 기록이 인천 팬들에게 위안으로 남았다. 이로써 11위에 오른 인천 유나이티드(승점 27점, 6승 9무 10패, 20득점 28실점)는 8위 경남 FC(승점 33점), 9위 대구 FC(승점 32점), 10위 성남 천마(승점 27점)를 겨냥하여 막판 따라잡기를 꿈꾸게 되었다.

이운재의 PK 선방, '4강 신화'의 기운을 아우들에게

올 시즌 인천 유나이티드는 전남 드래곤즈만 만나면 승운이 따랐다. 지난 4월 29일 광양전용경기장에서 벌어진 방문 경기에서도 경기 시작 15분만에 골잡이 이종호가 퇴장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인천은 80분 가까이 이어진 유리한 상황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경기를 득점없이 끝냈다. 오히려 전남의 끈질긴 반격에 실점 위기를 여러 차례 넘겨야 했다.

장소를 바꿔 이번에 안방에서 벌어진 경기에서도 인천에게는 좋은 기운이 이어졌다. 경기 시작 37분만에 전남 수비수 이상호의 핸드 볼 반칙으로 페널티킥 기회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골잡이 설기현의 오른발 슛이 문지기 이운재의 침착한 대응에 막히고 말았다.

 38분, 인천 FW 설기현이 오른발로 찬 PK가 전남 문지기 이운재의 정면으로 굴러가고 있다.

38분, 인천 FW 설기현이 오른발로 찬 PK가 전남 문지기 이운재의 정면으로 굴러가고 있다. ⓒ 심재철


전남 서포터즈 앞에서 침착하게 대응한 이운재의 선방 순간은 거짓말처럼 한국 축구 '4강 신화'의 절묘한 징검다리가 되었다. 골 라인으로부터 겨우 11미터 거리밖에 안 되는 가까운 곳에서 킥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의 위력적인 슛이 날아오기 때문에 문지기는 페널티킥이나 승부차기에서 항상 약자 신세를 면할 수 없다. 하지만 이운재의 노련한 몸놀림 앞에서 키커들은 오히려 어깨가 움츠러든다.

문지기 이운재의 이름 앞에는 오래 전부터 '11미터의 진정한 승부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그동안 K리그 명승부 현장에서도 이운재의 페널티킥(승부차기) 활약상은 여러 차례 더 있었지만 그래도 많은 축구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2002 한일월드컵 8강 토너먼트가 열린 광주월드컵경기장으로 거슬러 올라가본다.

당시에도 스페인은 우승 후보였다. 아직도 스페인 대표팀 골문을 책임지고 있는 이케르 카시야스부터 특급 미드필더 샤비 에르난데스, 탁월한 골잡이 페르난도 모리엔테스에 이르기까지 이름만으로도 우리 선수들은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의 조련을 받은 우리 선수들은 연장 접전 끝에 승부차기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고 마지막 승부차기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서 우리 문지기 이운재의 침착한 선방이 승부를 결정지었다. 스페인의 네 번째 키커 호아킨의 킥을 왼쪽으로 몸을 날리며 막아낸 것. 이어진 한국 팀의 마지막 키커는 수비수 홍명보였고 그의 오른발 인사이드 킥은 골문 오른쪽 톱 코너에 가서 꽂혔다. 믿기 어려운 월드컵 '4강 신화'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그 자리에 지금 인천 유나이티드의 설기현과 김남일도 물론 있었다.

 후반전, 인천 MF 김남일의 오른발 띄워주기 순간.

후반전, 인천 MF 김남일의 오른발 띄워주기 순간. ⓒ 심재철


토요일 밤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실패한 인천 골잡이 설기현으로서는 뒷맛이 좀 쓴 일이지만 10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이어진 '한국 축구 4강 신화'의 기운은 다음날 일요일 아침에 묘하게 느꼈을 것이다.

'이운재의 선방 - 홍명보의 승부차기 마무리'로 기억되는 2002년 6월 22일의 기분 좋은 기운은 이처럼 8월 4일 토요일 밤 이운재의 페널티킥 선방을 매개로 하여 다음 날 새벽 웨일스 카디프에 있는 밀레니엄 스타디움에까지 그대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8강 토너먼트 마지막 경기가 토요일 밤을 지나 일요일 오전 3시 30분에 카디프에서 열렸다. 우리 축구팬들은 토요일 저녁 K리그의 열기에 이어 뜬 눈으로 일요일 새벽을 기다렸다. 기다린 보람을 넘어 전남 문지기 이운재가 이어준 11미터 승부의 짜릿한 기운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전남 드래곤즈 출신의 자랑스러운 프리미어리거 지동원(선덜랜드 AFC)이 멋진 선취골을 터뜨렸지만 우리 올림픽 팀의 골문 앞에서 롤단 주심의 휘슬이 길게 두 번이나 울렸다. 5분 간격으로 영국 팀에게 페널티킥 기회가 연거푸 주어진 것이다. 예상대로라면 단숨에 2-1 역전극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날 밤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에서 만들어진 묘한 기운은 한국 올림픽축구대표팀의 문지기 정성룡에게 이어졌다. 아론 램지의 두 번째 페널티킥 상황에서 왼쪽으로 몸을 내던지며 슈퍼 세이브를 보여준 것이다.

이렇게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긴 우리 선수들은 승부차기에서 거짓말같은 4강 신화의 위업을 이뤘다. 62분에 어깨를 다친 정성룡을 대신하여 들어간 부산 아이파크의 문지기 이범영이 영국 다섯 번째 키커 스터리지의 왼발 슛을 멋지게 막아낸 것이다.

'2002 월드컵 문지기 이운재, 승부차기 결승골 홍명보 - K리그 11미터 승부사 이운재 - 2012 런던올림픽 4강 신화의 주인공이 된 문지기 정성룡, 이범영 그리고 홍명보 감독'으로 이어진 인연이 과연 우연일까? 축구장 명승부 기억들이 팬들의 머릿속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것은 이 아름다운 기운이 이어지는 것 때문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2012 K리그 25라운드 인천 경기 결과, 4일 저녁 7시 인천 축구전용경기장

★ 인천 유나이티드 FC 1-0 전남 드래곤즈 [득점 : 남준재(57분,도움-김재웅)]

◎ 인천 선수들
FW : 설기현(90+1분↔손대호)
AMF : 남준재(79분↔문상윤), 김재웅(58분↔박준태), 한교원
DMF : 구본상, 김남일
DF : 박태민, 이윤표, 정인환, 이규로
GK : 유현

◎ 전남 선수들
FW : 정성훈(77분↔헤난)
AMF : 김영욱, 플라비오(46분↔플라비오), 한재웅
DMF : 정명오(75분↔양준아), 이현승
DF : 유지노, 안재준, 이상호, 박선용
GK : 이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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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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