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시절, 동네에 피시방이 처음 생겼다. 전라남도 영암의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던 곳에 신세계가 열린 것이다. 곳곳에 있던 오락실은 하나둘 문을 닫았고, 수업 끝 종이 울리자마자 피시방으로 곧장 뛰어가는 남중생 무리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이렇듯 한 마을의 일상을 바꿔놓은 것은 피시방이 아니었다. 바로 스타크래프트였다.

당시 피시방의 가격은 한 시간에 2000원. 현재의 피시방처럼 중앙 제어 컴퓨터가 모든 컴퓨터의 사용시간을 관리하는 방식이 아닌 사용 시작시간을 적은 종이로 사용시간을 측정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2000원은 학생에게 상당히 부담됐다. 한 번 가면 무조건 한 시간 이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돈이 없어도 피시방을 갔고 남의 모니터를 뒤에서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었던 시절이었다.

그와 동시에 TV에서는 스타리그가 방영되었다. 교내에서 나름의 잣대로 스타 순위를 매기던 그 시절, 친구들은 임요환, 홍진호, 박정석 등 2000년 초중반을 풍미했던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며 실력을 키워 나갔다. "누가 누구보다 잘한다더라", "누가 누구를 이겼다더라"라는 말은 아침조례가 끝난 후 우리들의 주요 화두가 되었고 자존심이었다. 상대적으로 적은 친구들이 선택했던 저그 플레이어였던 나는 나름의 전략을 펼쳐 친구들의 꺾어 나가며 전교에서 상위권에 랭크되곤 했다.

나의 이러한 열정은 아버지에게도 전달됐다. 거의 매일 TV로 스타리그를 시청했기에 아버지도 백번 양보하고 스타리그를 보게 된 것이다. 거기서 아버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캐리어였다. 캐리어라는 모함에서 8개의 인터셉터가 나와 적을 공격하는 장면은 정말 장관이다. 캐리어 수가 더 늘어나면 더할 나위 없다. 결국 아버지는 프로토스 유저가 되었다. 빌드오더부터 세세한 팁까지 알려드렸고, 처음에는 컴퓨터 인공지능을 상대로 플레이를 하시다가 어느 날부터는 배틀넷에서 온라인 유저들과도 상대할 만한 실력이 되셨다. 덕분에 항상 동생과 컴퓨터 쟁탈전을 벌였던 나는 내 스스로 경쟁자를 하나를 더 늘려 버린 꼴이 됐다.

어느덧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목포의 한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고 자연스레 스타에 대한 열정은 식어만 갔다. 가끔 친구들과 피시방에 가서 한두 판 하는 정도였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내 축제가 열렸다. 프로그램에는 '문태고 스타크래프트 대회'가 있었고 나도 모르게 그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참가비 2000원을 내고 참가한 나의 성적은 예선 탈락. 예선 첫 경기에서 만난 사람은 한 학년 위의 선배였다. 괜스레 그 선배의 기세에 눌려버린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패배하고 만 것이다. 패배는 다시 스타에 대한 무관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내가 군대에 있던 2008년 여름이었다. 당직부사관으로 근무를 하던 밤은 공교롭게도 '2008 EVER 스타리그 결승전'이 있었던 밤이었다. 당시 괴수라 불리던 프로토스 도재욱과 투신이라 불리던 저그 박성준의 경기였다. 당시 결승전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막사를 가득 메웠다. 그 열기에 묻어가 함께 시청했던 경기는 다시금 열정을 불어오게 했다. 우승자 박성준의 길고 날카로운 세검(細檢) 같은 플레이에 나는 소름이 돋았고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선수를 꼽으라면 나는 박성준이라고 말하고 있다.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한 적 있다. 단지 컴퓨터 게임에 불과하던 스타가 e-스포츠로 거듭나는 시점에 이르렀을 때, 과거 축구라는 운동이 만들어지고 평생을 함께하는 스포츠가 됐듯이 스타 역시 평생 없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예상을 해본 적 있다. 그 예상은 오늘로써 깨졌다. 2012년 8월 3일 오늘은 온게임넷 마지막 스타리그의 밤이다. 나의 학창시절을 책임져 주고, 많은 추억을 주고, 영감을 주었던 '스타크래프트 부르드워' TV방영은 오늘이 마지막이 되었다.

요즘 들어 철이 들었단 핑계로 조금씩 게임을 멀리하고 있다. 그래도 지인들과 술 한잔 하는 날이면 옛날 생각에 피시방으로 가 마우스를 잡곤 하는데 항상 스타는 함께였다. 수많은 게임들이 나를 거쳐 갔지만 중심에는 스타가 있었다. 별 다른 애정은 없었지만 마지막이라니 괜히 아쉬운가보다. 그리고 마지막이 왔다. 아쉬운 마음에 학창시절 그리고 현재까지 많은 것을 주고 간 마음의 첫사랑 스타에게 고백한다.

감사합니다. 행복했습니다.

스타리그 임요환 홍진호 피시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