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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우리 도서관에 당시 한나라당이던 시절의 이정현 국회의원을 농민인문학 강좌에 초대했다. 참 많은 분들이  이정현 의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날 정치인이 어떤 존재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좋은 정치인은 저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모을 수 있구나.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처음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1년이 지나 이번(7월 28일)에는 곡성군 지역구 의원인 김선동 통합진보당 의원이 강의를 했다. 그런데, 왠지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처음 곡성 죽곡면에 왔을 때 나는 이곳이 유토피아라고 생각했다. 산과 강은 아름답고 마을은 풍요롭고 따듯한 품으로 안아주는 마을 어르신들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 여러 곳에 글을 쓰면서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자랑했다. 그러나, 참여정부 시절 농촌 마을 이장들의 활동비를 1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인상한 이후 마을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마을 이장은 너무 힘들어서 아무도 할려고 하지 않았서 마을에서 덕망있는 어르신들이 돌아가면서 하고 있었는데 이장 활동비 인상 이후 여러 마을에서 이장 선거가 시작되었다. 우리 마을에서도 이장 선거가 있었고 몇 사람 되지 않는 마을에서는 비밀 투표라는 게 없었다. 내가 누굴 찍었는지 알고 있었고, 반대쪽 후보 측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그런 선거를 두 번 치르고 나서 그게 얼마나 마을을 피폐하게 하는 지 알게 되고는 다시 선거하지 않고 협의해서 추대하는 방식으로 올해 이장 선출방식을 바뀌었다.

농촌에 살면 선거처럼 당혹스러운 게 없다.  어차피 민주당 외에는 안돼는 선거구에서 다른 생각을 드러낸다는 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모른다.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곡성 농민회 회원들은 다들 김선동 의원을 열심히 지지했다. 그 분이 국회에서 한미 FTA 승인에 반대하여 최루탄을 던진 사건은 정말 가슴 한쪽에서 오랫동안 맺혀있던 덩어리를 씻어 내리는 것 같은 쾌거였다. 당시 민주노동당 순천지역구 국회의원 김선동에서 '정치인 김선동'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그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남도청 광장에서 있었던 광주 전남 농민대회에서 김선동 의원이 입장하자 참가자들은 기립 박수로 그를 환영했다.  젊고 힘있고 전남의 진보적 변화를 이끌어 낼 정치인의 탄생은 오랜 가뭄 뒤의 단비가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기초농산물 국가 수매제, 농지 개혁, 농가부채 탕감 -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국회의원으로서 김선동 의원의 역활은 농민의 삶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정치적 역량이 필요한 과제에 대해 통합진보당이 대응할 힘이 있느냐 하는 문제다.
▲ 김선동 의원과 함께 기초농산물 국가 수매제, 농지 개혁, 농가부채 탕감 -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국회의원으로서 김선동 의원의 역활은 농민의 삶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정치적 역량이 필요한 과제에 대해 통합진보당이 대응할 힘이 있느냐 하는 문제다.
ⓒ 김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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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강연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졌다. 전반부는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위원으로서 김선동 의원의 정책 구상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혁명적 의제를 다루고 싶어했다. 전남 고흥의 바닷가 작은 마을(그곳이 얼마나 가난한 마을이었는지 한마지기를 보통은 200평이라고 하는데 그곳에서는 60평을 한마지기로 한다고 했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노동자로 살았던 삶에서 나온 혁명적 변화의 의지가 그에게는 있었다.

'기초 농산물 국가 수매제'와 '농지 개혁' '농가 부채 탕감' 이 세가지가 중요 의제였다. 기초 농산물 국가 수매제는 쌀, 콩, 보리, 고추, 마늘 같은 중요 농산물에 대해서는 국가가 수매를 책임지는 제도인데 이 제도가 정착되기만 하면 농촌은 지금 당장이라도 회복된다. 과잉 수매의 문제를 조절하는 것에 대한 전략도 있었다.

농협이 중요 매개체인데 아마 김선동 의원은 농협 중앙회에 대해 어느 의원보다도 매섭게 몰아칠 것 같았다. 벌써 농협의 비료 농약값 내부 담합에 대한 폭로 보도를 한 뒤였다. '농지 개혁과 농가 부채 탕감'은 서로 이어지는 지점이 많았다.  보수 언론은 농촌의 가장 핵심적인 사회 문제인 이 문제가 나올 때 마다 '도덕적 해이론'을 들고 나와 공감대의 확산을 막곤했다. 김선동 의원은 이에 대해 '농민 스스로 조직하는 자율 심사제' 라는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설득력있는 제안이다.  우리 도서관에서 꾸준히 실현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의제가 '농민의 자율성 회복'인데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우리처럼 꾸준히 공부하고 공공성이 중심이 된 활동을 해나간다고 해도 늘 한계에 부딪치는 게 '자율성'이다.  그러나, 이것 말고는 우리 사회에 형성된 농민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 점에서 김선동 의원의 생각과 나의 생각은 완전히 일치한다. 농지개혁 제안은 생각할 게 많은 부분이다.  이건 김선동 의원이 제안해서 될 일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가 제안할 내용이다.

이 지점에서 2부가 시작되는 것 같다.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농지 개혁, 농가부채 탕감' 이렇게 중요한 사회 경제적 변화를 이끌어 내고 싶어하는 정치인은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이 질문 앞에서 김선동 의원은 빈약했다.  결국 통합진보당에 대한 날선 비판이 제기되었고, 김선동 의원은 '진실'이라는 관점에서 해명하고자 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출과 관련된 부정 선거 논란은 실체가 과장되었다는 것이다. 통상적인 오차 범위 이하에서 발생한 무효표이거나 오류였음에도 과잉 해석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선거에서 있을 수 있는 정도의 문제가 이렇게 과잉 해석되는 이유는 '보수 세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진보 정당을 파괴하기 위한 음모'라는 입장이었다.  현재 통합진보당은 '진보는 한점 부끄럼없이 깨끗해야 한다는 올무, 패권주의에 빠져서 기득권만 지킬려고 한다는 비판의 올무, 희생과 헌신, 포기를 통해 국민을 감동시켜야 한다는 올무'에 걸려 꼼짝 달싹할 수 없는 지경이고, 이걸 뚫고 나오는 방법은 '행동과 실천으로 진정성'을 보이는 방법 밖에 없는 상황이다.

강의가 마친 뒤 곡성민주사회단체 활동가 대표들과 함께 하는 간담회 자리. 농민과 노동자로서 삶을 살았던 김선동 의원에 대한 지역 사회의 기대감은 하나는 지역구 의원으로서 역활이고, 또 하나는 진보 정치의 가능성을 확대하는 일이다. 이 두가지가 다 중요한데 잘못하면 한쪽으로 쏠릴 수 있다.
▲ 지역주민 간담회 자리에서 강의가 마친 뒤 곡성민주사회단체 활동가 대표들과 함께 하는 간담회 자리. 농민과 노동자로서 삶을 살았던 김선동 의원에 대한 지역 사회의 기대감은 하나는 지역구 의원으로서 역활이고, 또 하나는 진보 정치의 가능성을 확대하는 일이다. 이 두가지가 다 중요한데 잘못하면 한쪽으로 쏠릴 수 있다.
ⓒ 김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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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과 실천으로 진정성을 인정받는 길'이 뭘까? 그길이 '지역구 활동'인 것 같았다. 강의가 마친 뒤 이어진 간담회 자리는 여느 국회의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지역 민원 경청'의 자리였다.  '한미 FTA를 폐기하고, 한중 FTA를 막아내며,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와 농지 개혁을 이끌어 내야 할 정치인 김선동'에서 '순천 곡성 지역구 국회의원 김선동'으로 전환되는 지점이었다.  훌륭한 정치인이 이해 관계를 중심에 둔 지역구 의원으로 전환되는 자리였다. 사실 이 글 쓰는 게 정말 힘들다. 김선동 의원이 전남 유일의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고 난 이후 다들 기쁜 마음으로 김선동 의원 초청에 동의했다. 그 때만 해도 대형 강사 섭외에 성공한 것이었다.

이번에 정한 주제인 '농민과 희망'이라는 주제에 정말 걸맞는 강사였다. 그러나, 단 3개월 사이에 지역에서 김선동 의원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김선동 의원이 아니면 누가 있어 한미 FTA 폐기를 밀어붙일 수 있고, 그런 의제의 집중없이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 진보 세력의 승리가 가능한가?

'정치인'이라는 가치에서 '지역구 의원'이라는 이해 중심으로 전환되는 건 국회의원 개인의 손실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후퇴를 의미한다. 

김선동 의원을 마지막으로 2012년 여름 농민인문학 강좌를 마쳤다. 그 동안 이 연재를 지켜봐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우리 도서관에서는 지난해 죽곡마을시집 '소 너를 길러온지 몇해이던고'를 만들었다. 백무산 시인이 우리 도서관에 와서 '농촌 마을의 자율성을 회복하는 데 시가 좋은 도구'가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시를 쓰고 공부를 하는 이유는 지배당하는 농민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변화를 주도하는 농민, 자율성을 가진 농민이 되는 길이다.  이번 강좌에서 다양한 분들이 '농민과 희망'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해주셨다. 어떤 이야기는 귀담아 들을 내용이고, 어떤 이야기는 비판적으로 검토할 내용이다. 이런 일을 올해로 만 3년을 해냈다. 3년 만에 죽곡은 우리 사회 농촌에서 중요한 변화를 일구어낸 마을로 인정받게 되었다. 3년 만에 이 정도인데 앞으로 7년이 지나 10년을 채우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걸 누가 알 수 있나?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이 '태풍을 불러올 나비의 날개짓(나비이론)'일 가능성은 높다.


태그:#농민인문학, #죽곡농민열린도서관, #김선동, #기초농산물국가수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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