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기획 아이템을 내라고 성화다. 하지만 전 언론사에 있을 때 이미 기획기사 수백 개를 썼었다. 더 이상 이리저리 묶을 것도 없다. 더 이상 식상한 아이템으로 기획기사 쓰고 싶지 않다. 그런데 국장님이 내놓으란다. 와, '죽것다'. 다시 머리를 쥐어 짜낸 결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예 내가 영화를 만들어보자. 내가 영화를 만들며 느낀 것을 써 보자.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조경이 기자의 영화제작노트 조경이 기자의 영화제작노트. 주연인 여기자 역의 배우 최우리.

주연인 여기자 역의 배우 최우리. ⓒ 이정민


조경이 기자의 영화제작노트 조경이 기자의 영화제작노트. 주연인 여기자 역의 배우 최우리.

주연인 여기자 역의 배우 최우리. ⓒ 이정민


사실 <여기자의 하루>로 최종 결정을 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동안 두 가지의 단편 시나리오를 두고 고민을 거듭했었다. <보슬아치>와 <여기자의 하루>.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슬아치>가 더 자극적이고 더 임팩트 있다고 손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거의 <보슬아치> 시나리오로 캐스팅을 하고, 그걸로 찍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막상 <보슬아치>로 영화를 찍으려고 하니 캐스팅도 잘 되지 않았고, 스태프도 잘 꾸려지지 않았다. 뭔가 일이 잘 풀려나가지 않는 듯 했다.

'보슬아치'는 여자임을 이용해서 남자들 등쳐먹는 꽃뱀을 뜻하는 신조어. 올해 초 그 단어를 알게 됐고, 내가 여기자이니 픽션을 가미해서 '보슬아치'와 '여기자'를 합해서 단편 <보슬아치> 시나리오를 썼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찍으려고 하니 주위 여기자들의 뼈아픈 말들이 계속 이어졌다. 하는 말이 '네가 기자 신분에 이 단편을 만드는데 <보슬아치>와 같은 영화를 만들면 그게 픽션이 아닌 다큐가 되는 것이 아니냐'며 만들지 말라고 종용했다. 게다가 이 이야기가 실제 있는 것 마냥 일파만파 퍼지면서 '이 연예계에 정말 보슬아치와 같은 여기자가 있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돌았다.

조경이 기자의 영화제작노트 조경이 기자의 영화제작노트. 주연인 여기자 역의 배우 최우리.

조경이 기자의 영화제작노트. 주연인 여기자 역의 배우 최우리. ⓒ 이정민


조경이 기자의 영화제작노트 조경이 기자의 영화제작노트. 주연인 여기자 역의 배우 최우리.

조경이 기자의 영화제작노트. 주연인 여기자 역의 배우 최우리. ⓒ 이정민


사실 난 보슬아치에도, 꽃뱀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 연예계나 이 사회에서 보슬아치를 잡아내려고 하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다만, 우연히 알게 된 이 신조어가 뇌리에 꽂혔고 그래서 이 보슬아치라는 단어와 여기자라는 단어를 짬뽕해서 가상의 시나리오를 썼던 것이다. 그런데 내 직업이 직업인지라 주위에서는 더욱 리얼하게 단편 <보슬아치> 속 여기자가 실제 있는 것처럼 규정내리고 있었다.

스트레스는 더욱 심해졌고 머리는 복잡해졌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특정 누군가를 지칭하는 게 아닌 허구의 인물인데... 내가 이 분야에 있어서 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등등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시나리오의 영화화를 진행하는데 영화의 본질 외적인 부분이 개입됐다.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시작부터 쓸데없는 루머가 양산되고 있었으니...

조경이 기자의 영화제작노트 조경이 기자의 영화제작노트. 주연인 여기자 역의 배우 최우리와 정만식

주연인 여기자 역의 배우 최우리와 정만식 ⓒ 이정민


그러다가 번뜩 영화배우의 박희순의 말이 스쳐지나갔다. 영화 <가비>의 홍보 인터뷰 때 만난 박희순은 내가 단편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정말 적극 응원을 해주셨다. 하정우와 <댄싱퀸> 이석훈 감독 이후 세 번째 멘토가 나타난 것이다.

박희순은 여기자가 주인공이라는 말을 듣더니 리얼 다큐로 본인의 하루, 여기자의 하루를 찍으면 어떻겠냐고 말씀을 해주셨다. 나를 따라다니는 카메라 한 대를 두고 하루의 일과를 보내는 나를 직접 찍으라는 것이었다.

허걱.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카메라만 보면 의식하고 호흡을 멈추고 이야기하는 내가 어떻게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러운척 리얼 다큐 <여기자의 하루>를 찍을 수 있을 것인가.

아무튼 당시 나의 리얼 다큐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박희순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려보냈었다. 그때 당시에는 <보슬아치>에 꽂혀있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슬아치>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고 고민이 깊어질 때 갑자기 박희순의 리얼 다큐 <여기자의 하루>가 머릿속에 딱 멈췄다. 그래!!! 오히려 너무나 과장되고, 야했고, 비열했고, 비정상적이었던 단편 <보슬아치>가 아니라 가장 나다운 이야기가 가장 개성일 수 있겠다 싶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다른 이들이 보기에 신선할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조경이 기자의 영화제작노트 조경이 기자의 영화제작노트. 주연인 여기자 역의 배우 최우리.

주연인 여기자 역의 배우 최우리. ⓒ 이정민


그래서 리얼 다큐는 아니지만 <여기자의 하루>의 시나리오를 급히 썼다. 나와 조금은 닮아 있고 그리고 우리끼리는 일상적이지만 외적으로는 아닐 수 있는 주위 여기자 선후배들의 모습들을 따와서 담담히 글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단편 <여기자의 하루> 시나리오가 나왔다. '그래! 나도 홍상수 감독님처럼 리얼하게 물 흐르듯 하면서 재미지게...캬~ 그렇게 나도~!!! 야호~!' 그런 상상을 하면서... 그런데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주위에 모니터링을 돌린 결과, '대박' 지루하기 짝이 없다고 욕만 들어먹었다. 어쩜 이렇게 욕과 비평을 잘들 하시는지 너무 놀랐다. 나도 그랬겠지...ㅠㅠ

차라리 <보슬아치>가 더 자극적이고 재미나다고, 갑자기 왜 이런 지루한 여기자의 일상을 담았냐고 난리가 났다.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이 <여기자의 하루>가 더 담백하고 해외영화제에서는 지루한 영화를 좋아하니 먹히겠다고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들도 했다.

여러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과거 김아중의 매니저였던 김은주 이사를 만났다. 주위에 여러 의견들이 이러저러하다고 전해드리고 차분하게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김 이사님는 업계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보슬아치>보다 담담히 하루를 그려낸 <여기자의 하루>가 낫겠다고 해주셨다. 나의 마음도 <여기자의 하루>로 향해가고 있었고 박희순의 목소리도 맴돌았었다. 그렇게 <여기자의 하루>로 우여곡절 끝에 확정이 됐다.

P.S. 영화제 출품 중간보고 해드립니다~궁금하시죠? ^^ 

조경이 기자의 영화제작노트 조경이 기자의 영화제작노트. 주연인 여기자 역의 배우 최우리와 김기태 촬영감독, 김보람 슈퍼바이저.

조경이 기자의 영화제작노트. 주연인 여기자 역의 배우 최우리와 김기태 촬영감독, 김보람 슈퍼바이저.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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