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하하와 홍철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28일 방영된 <무한도전> '하하 VS 홍철' 마지막편에서 였다. 장난스런 형, 동생 논쟁에서 출발해 시청자들까지 초대해 체육관을 빌려 놓고 벌인 대결의 막바지, 둘에게 있어 "세상에 없을 드라마"로 남을 장면이었기에 그 눈물은 시청자들과 '무도' 팬들에게까지 진심으로 전달됐다.

더욱이 이 방송이 전파를 타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6개월이었다. MBC 파업으로 인해 174일이란 방송 역사상 최대를 기록한 결방기간을 고려한다면, '하하 VS 홍철'이 보여준 눈물은 방송 외적으로 꽤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장면 둘. < PD 수첩 >의 작가들이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 지난 26일 여의도 모처에서 열린 'PD수첩 작가 전원 해고 사태에 대한 MBC 구성작가협의회의 입장 전달 및 규탄 기자회견'자이었다. 말 그대로 서러움에 복받친 눈물, 그리고 눈물바다의 기자회견장.

최미혜 구성다큐연구회 회장은 MBC 노조의 파업 복귀후 전격적으로 단행된 사측의 < PD수첩 > 작가들에 대한 전원 해고에 대해 "이번 사태는 MBC나 < PD 수첩 > 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작가 전체에 대한 모독이다"며 분함을 감추지 못했다.

파업 이후 '국민 예능'의 자리를 확인한 <무한도전>과 1990년 출발한 23년 전통의 지상파 대표 탐사보도프로그램이지만 탄압과 홀대를 받고 있는 <PD수첩>. MBC를 둘러싼 이 두 개의 눈물은 최근 MBC 노조의 파업 복귀 이후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2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방송작가협회 사무실에서 '피디 수첩 작가 전원 축출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2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방송작가협회 사무실에서 '피디 수첩 작가 전원 축출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 이주영


MBC 파업의 상징 <무한도전>, 이제는 밀어주기?

"아.. 못 보겠다.. 잠수.."

28일 오후, 런던올림픽 박태환 선수의 경기 중계로 인해 2시간 여 앞당겨 방영된 <무한도전> 방송 시작 전, 김태호 PD는 이런 소감을 남겼다. 6개월의 파업 기간 동안, 재방송을 통해서도 지켜진 <무한도전>의 방영시간은 올림픽 앞에서도 힘을 못 썼다.

여기까진 방송사의 당연한 관례일 수 있다. 하지만 방점은 여타 방송사의 인기 예능과 드라마들이 줄줄이 결방 사태를 맞은 가운데서도 MBC는 <무한도전>의 방영만큼은 지켜냈다는데 찍힌다. 이미 파업 전과 중간에 녹화된 방영분을 2주 연속 내보낸 <무한도전>은 지난 21일 14%에 이어, 28일에도 1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MBC의 대표 예능임을 확인시켜줬다.

그래서일까. MBC는 이날 오전 9시 45분 런던올림픽 개막식과 뉴스에 이어 <무한도전 스페셜>까지 내보냈다. 파업으로 인한 결방으로 목말라있던 <무한도전> 팬들에 대한 배려 차원? 파업 이후 평균시청률에서 지상파 3사 중 꼴찌를 기록 중인 MBC가 <무한도전>이란 대표 브랜드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도는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다.

6개월이나 지연된 '하하 VS 홍철' 편에 대한 식지 않은 관심이나 검색어를 장식한 '이나영 편'에 쏟아지는 관심이 이를 방증한다. 헌데 역시나 <뉴스데스트>와 함께 MBC의 시사교양국을 대표하는 < PD수첩 >과는 여전히 '전투'를 벌이고 있는 MBC의 행보를 어찌 해석해야 할까.

 28일 방영된 <무한도전> '하하 VS 홍철' 편의 한 장면

28일 방영된 <무한도전> '하하 VS 홍철' 편의 한 장면 ⓒ MBC


"다 몰아 내고 영혼 없는 사람들로 < PD 수첩 > 채우나

'PD수첩 작가 전원 해고' 기자회견에 참석한 전 < PD수첩 > 최승호 PD는 이렇게 말했다.

"본부장, 국장 바꾸고, PD들 다 몰아내고, 아이템 통제하고, 불방시키고 작가들까지 쫓아냄으로서 PD수첩의 구성원들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영혼 없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 놓으려는 그런 의도다.

(사측이) '< PD 수첩 >을 없애고 싶다'거나 '없애야 겠다' 라고 하면 속이라도 시원하겠다.  본심은 감춰둔 채 PD들을 쫓아내고 드디어 작가들까지 유린한 것은 인간적으로 도리가 아니다."

MBC는 노조가 파업을 풀고 복귀하던 17일 전격적인 조직개편을 단행, 156명을 인사발령한다고 발표했다. 그 중 파업에 참여했던 노조원들을 기존 업무와는 전혀 관계없는 부서에 발령, 노조측으로부터 인사발령 시 노조와의 협의를 거치고 사전 통보를 하도록 규정한 단체협약 조항을 무시했다.

헌데 발령 부서가 가관이다. < PD수첩 > CP였던 조능희 PD는 교양제작국에서 사회공헌실, < PD 수첩 >에 참여했던 송일준 PD는 외주제작국에서 미래전략실로, 신동진 아나운서와 허일후 아나운서 역시 각각 사회공헌실과 미래전략실로 쫓기듯 떠나야 했다.

보도국 기자들도 여의도 MBC를 떠나 서울경인지사 인천총국나 서울경기지사 제작사업부 등에 발령을 받았다고 한다. MBC 노조에 따르면 "100명이 조금 넘는 취재인력 중 전체 절반가량이 업무에서 축출된 됐을 것"이라고 한다.

< PD 수첩 >의 작가 해고는 정규직 인력들에 이어 프리랜서 작가들까지 건드렸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그간 < PD 수첩 >과 함께 하며 '검사 스폰서' '민간인 사찰' 건 등 굵직한 사안을 PD들과 함께 만들어 온 이들이라는 점에서 김재철 사장의 시사교양국 칼대기의 '끝판'이란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최근 폐지가 결정된 것으로 알려진 MBC <불만제로>의 홈페이지 화면

최근 폐지가 결정된 것으로 알려진 MBC <불만제로>의 홈페이지 화면 ⓒ MBC


김재철 사장 연임? MBC 사측의 밀어붙이기 감시해야

MBC 노조의 파업 철회와 파업 복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공정성 회복'의 최우선 과제였던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이끌어내지 못했기에 결국 성과를 내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질타 말이다.

그러는 사이 사측의 밀어붙이기는 계속되고 있다. MBC 파업의 상징으로 떠올랐던 <무한도전> 밀어주기는 물론 대체인력을 투입한 런던올림픽 방송은 갖가지 무리수와 잡음을 내고 있다. 방문진 김재우 이사장의 연임으로 인해 김재철 사장이 임기를 마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또한 고개를 들고 있는 현실이다. 

'방송 정상화'를 외치는 MBC 사측의 의도대로 <무한도전>도 복귀했고, 런던올림픽 방송도 어쨌건 차질 없이 방송되고 있다. 그 와중에 PD와 기자, 작가들은 쫓겨나고 좌천되고 있다. 폐지된 <불만제로>에 이은 <블랙박스>처럼 비판적인 프로그램은 하나둘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 PD 수첩 >에 대한 탄압이 그 단적인 증거다.

'김재철 사장 촉구 100인 서명 운동'이 시민들의 호응을 얻으며 활발히 전개됐던 것이 불과 몇 주 전이다. 파업 복귀 후 MBC 노조와 사측의 전횡을 지켜보는 일은 꽤나 지루한 싸움이 되겠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망가진 공영방송을 지켜나갈 수 있는 힘은 시청자들로부터 나올 터다. <무한도전>과 < PD 수첩 >의 각기 다른 눈물의 의미를 기억해야 하는 건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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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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