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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채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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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못생긴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 못생긴 사람은 사회악이자 어디를 가나 환영받지 못하는 불편한 존재가 돼버렸다. 어느새부터인가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어버린 외모는 속 모습은 아름다워도 겉모습이 아름답지 못한 이들의 설 자리를 앗아갔다. 그들은 그림자처럼 겉돌거나 사람들의 멸시를 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못생기면 여자의 삶을 포기해야 하고 차라리 자신의 외모를 이용해서 남들에게 웃음거리, 놀림감으로 살아야 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추녀의 사랑은 정말로 실현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라벨이 지은 곡의 제목을 따온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그 곡처럼 잔잔하고 애상적인 느낌의 책이다. 추녀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시점을 통해 그들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로,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내용 때문인지 환상적인 분위기를 뿜어내기까지 한다. 작가는 '그녀'를 지적이고 배려심이 깊은 아름다운 여성으로 묘사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에 대한 객관적인 사람들의 평가가 그려지기 전에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그녀는 모든 사람들이 미워하고 꺼려하는 추녀였다. 그녀는 그녀를 사랑해줄 단 한명의 남자를 만나기까지 자신을 포함해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는 단조로운 인생을 살아간다.

주인공인 '나'는 못생긴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단 한 명의 사람이다. 그는 뚱뚱하고 못생긴 어머니와 잘생긴 아버지 사이에 태어나 가정불화의 비극을 경험한 장본인이다. 그가 '그녀'를 사랑하게 된 데에는 이런 가족 내력의 힘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못생겼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지만, 마음만은 아름다운 어머니를 향한 연민과 사랑이 '그녀'에게로 번진 것이다. 설령 그의 사랑이 연민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해도 감정 그 자체는 진실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세상에는 우리들이 이해하기 힘든 사랑들이 참 다양하다. 수십년의 나이 차를 극복한 사랑, 돈에 굴복한 사랑, 장애와 인종의 차를 극복한 사랑, 성을 넘나드는 사랑, 사랑은 없지만 서로를 필요로 성립된 사랑, 미녀와 야수의 사랑, 그리고 미남과 추녀의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지구에는 대략 70억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같은 인격이나 외모를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각기 다른 세계를 가진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는데 보편적인 사랑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비슷한 사랑이 존재 할 뿐이다. 나와 저 사람이 다른 사랑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것의 차이를 가지고 나와 다르니까 저 사람의 사랑은 틀렸다 말할 수 있는가? 그렇게 말 할 수 있다면 이를 주장한 사람의 사랑 또한 그 누군가에 의해 손가락질 받아야 할 것이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자책감과 부끄러움으로 '나'와 사랑하게 되는 것을 두렵게 생각한다. 남의 손가락질 받는 데에 익숙해져 있던 그녀는 그가 자신으로 인하여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녀는 그의 사랑을 의심하게 되고 둘의 만남은 오래가지 못한다.

소설은 마지막 부분에서 아주 큰 반전을 가지고 독자들을 큰 충격으로 몰고 갔다. 잔잔하게 해피엔딩으로 끝날줄 로만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결말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반전으로 인해 미완성으로 남아버린 듯한 그들의 사랑이 안타까웠다. 대신 '그'와 '그녀'의 미완성 사랑은 요한을 통해 이어지게 된다. 요한이 '그'를 대신해 그녀의 옆자리를 채우고 꿈이 소설가였던 그를 위해서 못 다 이루어진 그와 그녀의 이야기를 소설로 이어나가게 된다.

늘 삶의 아픔과 현실의 벽에 마주했던 그들은 그들 각자의 방식대로 대처하고 나름대로 인생을 살아간다. 그들은 모두 누군가를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해서 그게 가능했던 게 아닐까. 온전해지고 싶다면 사람은 사랑을 해야 한다. 요한의 말처럼 사랑은 서로를 구제하는 행위임에 틀림없다.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상상력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하는 것이다. 인간은 상상을 통해 사랑을 하게 되고, 사랑을 통해서 완전해질 수 있다.

못생겼다고 슬퍼하지 말고 못생겼다고 자책하지 말자. 사랑은 인간 모두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할 때 미운오리가 한 마리의 아름다운 백조가 되어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예담(2009)


태그:#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모리스 라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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