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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책 사진
 폭풍의 언덕 책 사진
ⓒ 도서출판 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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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물을 끼얹은 듯 칠흑같이 검고, 이상하리만큼 고요한 폭풍 전야와 같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치게 하지 않는다. 작가는 거대한 폭풍이 외딴 언덕에 불어 닥쳐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자신도 스스로 소멸해가는 이미지를 잘 구현하였다. 그만큼 이 소설은 전반적으로 분위기를 격정적으로 끌고 가며 인간의 광끼와 복수심을 잘 묘사 하였다.

주인공인 히스클리프는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내고 사랑하는 캐더린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어딘가로 떠나게 된다. 몇 년 후에 다시 돌아온 그는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사람들을 향한 복수극을 시작한다. 그가 갈았던 복수의 칼은 캐더린 일가와 캐더린의 남편이었던 에드거를 향한 것이었다.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단면적이고 일시적인 복수가 아닌 대상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만한 것이었다. 그만큼 그것은 길고 느리게 진행되었다.

히스클리프의 첫 번째 복수 대상자는 사랑하는 여인 캐더린이었다. 히스클리프는 캐더린에게 애증의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랑하지만 가질 수 없기에 증오하는 것이다. 그는 에드거를 선택하고 자신을 떠난 캐더린에게도 복수를 감행하게 된다. 에드거와 히스클리프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던 캐더린은 병을 얻게 되고 결국 아이를 낳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사랑하기에 증오할 수 밖에 없었던 히스클리프의 모습은 애처로운 발악처럼 슬프게 느껴졌다.

또한 그는 캐더린의 동생 이사벨라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어린시절 그를 유난히도 괴롭혔던 힌들리의 재산을 몽땅 빼앗는 등의 복수를 감행한다. 이런 우울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주배경은 언덕 위의 워더링 하이츠 이다. 히스클리프가 만들어낸 폭풍이 휘감고 있는 그 언덕은 음산하기 짝이 없지만 소소하지만 그리운 추억들로 가득 차 있는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이런 역설적인 공간 속에서 한평생을 보내던 히스클리프는 어느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의 죽음은 폭풍의 종식이기도 했으며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캐더린의 딸과 헤어튼과의 사랑의 시작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폭풍에 바람 잘 날 없던 워더링 하이츠가 잠잠해 지는 순간이었다.

이 책을 읽어보기 전에는 그저 단순한 복수극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순한 복수극이라기엔 애잔하면서도 치밀한 다른 그 무언가가 있었다. 히스클리프의 복수 속에는 캐더린에 대한 사랑과 증오가 있었으며, 어린 시절의 고통스런 기억에 대한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모여서 그의  내면 속에 거대한 폭풍우를 일으켜 그의 광기를 표출하게 한 것이다. 사실 그의 광기는 자신의 초라한 인생에 대한 몸부림이자 반항인 것 같기도 하다.

소설이 전개되는 내내 히스클리프는 얄밉고 무서운 사람으로 비춰지지만 알고 보면 제일 불쌍한 사람인 것이다. 이렇다 보니 어느 순간 그에 대한 불신과 미움이 연민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한평생 외로운 삶을 살다 간 히스클리프. 그가 과연 복수에 눈 먼 악당인가 하는 편견을 다시 한 번 재고해 봐야 할 때가 왔다.

히스클리프는 죽었고 이제 언덕은 잠잠해졌지만 폭풍은 언제 어디서 다시 생겨날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지금 있지도 않은 폭풍을 두려워하며 움츠리고 살아가서는 안 된다. 다만 폭풍이 닥쳤을 때 지혜롭게 대처할 뿐이다. 히스클리프처럼 폭풍과 함께 종말할 것인지 그것을 이겨내고 더 성숙한 인간이 될 것인지는 온전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제 자신의 내면 어딘가에 존재할 폭풍우에 귀 기울여 보자. 이제 당신의 언덕에선 어떤 이야기가 시작할 것인가?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지음, 안진이 옮김, 현대문화센터(2007)


태그:#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히스클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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