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건 뭔가? B급 무비도 아니고 C급 무비라니. 오프닝부터 시작되는 꾸러기스튜디오 의 로고는 C급 무비를 표방한다. 보통 우리가 익히 들어보고 경험해본 B급 무비는 견고한 내러티브, 캐릭터를 잘 수행해내는 연기, 상업적인 장르의 외피와는 거리가 먼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 B급 무비에서도 하위급인 C급무비를 제작하는 회사의 첫 장편인 <숫호구>는 어떨까 바로 궁금해졌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기대한 이유는 따로 있다. <숫호구>의 짧은 예고편 때문이었다. 어떠한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 영화의 예고편은 단지 문자 메시지(카카오톡)의 나열로만 이루어져 있다. 어떤 여인을 짝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남자의 메시지가 처절하게 이어져 있다.
남자는 어떻게 해서든지 여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려는 듯하지만 여자는 눈치가 없는 건지 상대해주지도 않는다. 문자고백은 당연히 상처만을 남기고 끝을 맺는다. 이 짧은 메시지의 나열이 뜬금없이 심금을 울렸고 이 낯선 C급 무비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 찌질한 남자에서 매력남으로 ⓒ 꾸러기 스튜디오
<숫호구>의 이야기도 짧은 예고편의 확장이라 보면 된다. 역시 서른 살이 된 '찌질남'이 있다. 직업도 없고, 연애 한번 하지 못한 추남 원준은 자신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 여자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부모님은 그런 아들이 안쓰럽기만 하고, 후배는 이 찌질남을 어떻게 해서든지 이용하려고 든다.
그런 그가 사는 동네에 시골에서 올라온, 누가 봐도 매력 있는 여자가 나타난다. 첫 순간부터 그녀에게 끌린 원준은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여자가 마냥 좋기만 하다. 하지만 그녀도 자신이 아닌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어쩔 수 없는 평범한 여자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원준은 또 다른 상처를 안게 된다.
찌질한 남자 이야기는 송삼동, 하정우가 연기한 <낮술>이나 <멋진 하루>에서처럼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숫호구>의 이 남자 원준은 정말로 찌질하다. 못생긴 얼굴에 하고 다니는 옷차림, 행동하는 것 모두가 찌질남의 전형을 밟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상쇄할 만한 매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지역을 사랑하는 '지역운동가'이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보통 사람보다 한 뼘 이상은 되고, 무엇보다 심성이 착하다. 단지 그것을 알기까지는 굉장히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녀가 원하는 여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이상형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 뿐.
궁극의 '찌질남'! 묘하게 끌리는 원준의 매력
▲ 매력남이 되어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데이트를 마음껏 해보는 원준, 하지만 영원할 수는 없다 ⓒ 꾸러기 스튜디오
이 평범할 수 있는 이야기에서 감독이 선택한 방법은 SF 장르의 차용이다. 하지만 그 어떤 그래픽 효과도 없다. 그렇다고 상상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이 영화가 C급 무비라고 확언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인간복제 전문가라고 스스로 말하는 의사는 숫호구 원준을 잘생긴 남자의 몸으로 옮기려는 실험을 계획한다. 단지 몇 초를 외치고 자판을 쿵탕쿵탕 치자마자 원준의 몸은 새로운 남자의 몸으로 전이된다. 이 어눌한 장면만 봐도 알 수 있듯 영화는 SF 장면에서 드러내고 장난치듯 조잡함을 보이는데, 그게 귀엽게 느껴진다. 초저예산 제작비로 인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결과가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불러 온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난 SF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원준에 호감이 간다. 묘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원준에게 정이 느껴지고 좀 더 그의 내면을 바라보게 된다. 연출을 맡은 백승기 감독이 직접 주인공을 연기한 덕분이고 어느 정도 이상 그 자신의 성격과 경험들이 영화에 투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 역할도 자신의 부모님에게 맡기고 노래방 주인과 동네 초등학생 등의 주변 인물도 거의 대부분 아마추어가 연기한 덕에 오히려 이 영화의 현실적인 면이 부각된다. 물론 그것은 '숫호구'를 연기한 백승기(원준)를 통해서 완벽하게 재연된다.
▲ 찌질남보다는 매력남을 선택하는 일반 여성들 ⓒ 꾸러기 스튜디오
난 그의 영화를 보기 전 반드시 예고편 보기를 권하고 싶다. 바로 그 예고편부터 그의 영화를 향한 야릇한 설렘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본편 또한 기대 이상이다. 웃고 넘길 수 있는 SF 부분들도 그렇고, '숫호구' 추남과 함께 <고양이를 부탁해> 이후로 '인천'이라는 지역을 생생하게 담은 것도 흥미롭다.
그곳을 여행하듯, 원준의 삶이 나 혹은 내 주변 사람의 이야기인 것처럼 영화를 즐기면 이 영화의 개봉이 무척이나 기다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