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숫호구> 포스터

영화 <숫호구> 포스터 ⓒ 꾸러기스튜디오


아니 이건 뭔가? B급 무비도 아니고 C급 무비라니. 오프닝부터 시작되는 꾸러기스튜디오 의 로고는 C급 무비를 표방한다. 보통 우리가 익히 들어보고 경험해본 B급 무비는 견고한 내러티브, 캐릭터를 잘 수행해내는 연기, 상업적인 장르의 외피와는 거리가 먼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 B급 무비에서도 하위급인 C급무비를 제작하는 회사의 첫 장편인 <숫호구>는 어떨까 바로 궁금해졌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기대한 이유는 따로 있다. <숫호구>의 짧은 예고편 때문이었다. 어떠한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 영화의 예고편은 단지 문자 메시지(카카오톡)의 나열로만 이루어져 있다. 어떤 여인을 짝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남자의 메시지가 처절하게 이어져 있다.

남자는 어떻게 해서든지 여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려는 듯하지만 여자는 눈치가 없는 건지 상대해주지도 않는다. 문자고백은 당연히 상처만을 남기고 끝을 맺는다. 이 짧은 메시지의 나열이 뜬금없이 심금을 울렸고 이 낯선 C급 무비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찌질한 남자에서 매력남으로

찌질한 남자에서 매력남으로 ⓒ 꾸러기 스튜디오



<숫호구>의 이야기도 짧은 예고편의 확장이라 보면 된다. 역시 서른 살이 된 '찌질남'이 있다. 직업도 없고, 연애 한번 하지 못한 추남 원준은 자신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 여자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부모님은 그런 아들이 안쓰럽기만 하고, 후배는 이 찌질남을 어떻게 해서든지 이용하려고 든다.

그런 그가 사는 동네에 시골에서 올라온, 누가 봐도 매력 있는 여자가 나타난다. 첫 순간부터 그녀에게 끌린 원준은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여자가 마냥 좋기만 하다. 하지만 그녀도 자신이 아닌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어쩔 수 없는 평범한 여자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원준은 또 다른 상처를 안게 된다.

찌질한 남자 이야기는 송삼동, 하정우가 연기한 <낮술>이나 <멋진 하루>에서처럼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숫호구>의 이 남자 원준은 정말로 찌질하다. 못생긴 얼굴에 하고 다니는 옷차림, 행동하는 것 모두가 찌질남의 전형을 밟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상쇄할 만한 매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지역을 사랑하는 '지역운동가'이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보통 사람보다 한 뼘 이상은 되고, 무엇보다 심성이 착하다. 단지 그것을 알기까지는 굉장히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녀가 원하는 여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이상형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 뿐.

궁극의 '찌질남'! 묘하게 끌리는 원준의 매력

 매력남이 되어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데이트를 마음껏 해보는 원준, 하지만 영원할 수는 없다

매력남이 되어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데이트를 마음껏 해보는 원준, 하지만 영원할 수는 없다 ⓒ 꾸러기 스튜디오



이 평범할 수 있는 이야기에서 감독이 선택한 방법은 SF 장르의 차용이다. 하지만 그 어떤 그래픽 효과도 없다. 그렇다고 상상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이 영화가 C급 무비라고 확언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인간복제 전문가라고 스스로 말하는 의사는 숫호구 원준을 잘생긴 남자의 몸으로 옮기려는 실험을 계획한다. 단지 몇 초를 외치고 자판을 쿵탕쿵탕 치자마자 원준의 몸은 새로운 남자의 몸으로 전이된다. 이 어눌한 장면만 봐도 알 수 있듯 영화는 SF 장면에서 드러내고 장난치듯 조잡함을 보이는데, 그게 귀엽게 느껴진다. 초저예산 제작비로 인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결과가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불러 온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난 SF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원준에 호감이 간다. 묘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원준에게 정이 느껴지고 좀 더 그의 내면을 바라보게 된다. 연출을 맡은 백승기 감독이 직접 주인공을 연기한 덕분이고 어느 정도 이상 그 자신의 성격과 경험들이 영화에 투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 역할도 자신의 부모님에게 맡기고 노래방 주인과 동네 초등학생 등의 주변 인물도 거의 대부분 아마추어가 연기한 덕에 오히려 이 영화의 현실적인 면이 부각된다. 물론 그것은 '숫호구'를 연기한 백승기(원준)를 통해서 완벽하게 재연된다.

 찌질남보다는 매력남을 선택하는 일반 여성들

찌질남보다는 매력남을 선택하는 일반 여성들 ⓒ 꾸러기 스튜디오



난 그의 영화를 보기 전 반드시 예고편 보기를 권하고 싶다. 바로 그 예고편부터 그의 영화를 향한 야릇한 설렘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본편 또한 기대 이상이다. 웃고 넘길 수 있는 SF 부분들도 그렇고, '숫호구' 추남과 함께 <고양이를 부탁해> 이후로 '인천'이라는 지역을 생생하게 담은 것도 흥미롭다.

그곳을 여행하듯, 원준의 삶이 나 혹은 내 주변 사람의 이야기인 것처럼 영화를 즐기면 이 영화의 개봉이 무척이나 기다려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7월 26일 17시 부천시 상동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상영 예정
부천국제영화제 숫호구 백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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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전주국제영화제 관객평론가 2008 시네마디지털서울 관객심사단 2009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관객심사단 2010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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