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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이 서울대 학부 폐지를 골자로 한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안을 18대 대선 공약으로 정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 공약을 내걸은 이유에 대해 첫째,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이 나라의 학벌주의를 타파하여 무한 입시경쟁과 그로 인한 교육비 부담을 덜고, 둘째, 국공립대의 수준을 끌어올려 수험생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완화하고, 지역 인재 육성 및 지방 균형발전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해 보이는 이 정책은 그러나, 간단하고도 단순한 두 가지 질문을 던짐으로 인해 그 맹점이 훤하게 드러난다는 데서, 큰 문제점을 갖고 있다. 그 질문은 첫째, 학벌 카르텔의 상징인 서울대를 없애버린다고 무한 입시경쟁과 교육비 부담이 줄어들 것인가? 둘째, 국공립대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학벌주의 타파에 큰 영향을 미치는가?

두 질문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민주통합당이 이 나라의 학벌주의에 대해 얼마나 얕은 생각을 갖고 있느냐다. 서울대라는 상징을 없애버린다고 학벌주의가 완화되고, 무한 입시경쟁에 숨통이 트이며,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 여긴다면, 그야말로 순진하고도 천진한 생각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미친 입시'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서울대가 아닌 사립대다

서울대가 정부의 요직을 독점하고 사회에서 타 대학과 압도적인 격차를 벌이던 시대는 이미 저물어가고 있다. 그것은 각종 고시 및 전문 자격시험의 대학별 합격자 수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로, 서울대와 그 바로 아래 연고대의 격차는 과거에 비해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대입 전형 가운데 하나인 '수시제도' 덕분이다. 연고대는 수시제도의 다양한 전형과 지원시기를 활용하고 수험생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하여 서울대에 갈 만한 실력이 되는 최상위권 학생들을 소위 '입도선매'했고, 또 한편으론 수능성적은 뛰어났지만 내신에서 불리한 특목고와 강남 8학군, 비평준화 지역 학생들을 적극 유치하여 점차 서울대와의 학력 격차를 줄여나갔다.

이것은 비단 연고대만의 일이 아니다. 그 아래 서성한(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과 중경외시(중앙대, 경희대, 한국외국어대, 서울시립대)로 불리는 사립대들도 연고대의 수시제도를 벤치마킹하여 좋은 성적의 학생들을 소위 '납치'(수험생들 사이에선 수시로 인해 자신의 수능점수보다 낮은 대학에 합격하여 어쩔 수 없이 그 학교에 입학하게 됐을 때, 이 표현이 쓰인다)하여 위 급간의 대학과의 격차를 서서히 줄여나가고 있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한마디로 서울대 하나 없앤다고 지금 이 기막힌 대한민국의 입시 사정이 나아지길 기대하는 건 어리석고도 우스운 생각이라는 소리다. 대한민국의 이 '미친 입시'를 주도하는 것은, 그 지휘봉을 붙잡고 흔드는 것은 사립대이지 서울대가 아니란 뜻이다.

사립대 중심의 서열 재편, 바람직한가?

소위 최상위권으로 일컬어지는 대학 가운데 국립대는 서울대와 카이스트 두 곳 뿐, 그나마 서울시립대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사립대인데, 사립대는 어쩌지 못하면서 서울대 하나를 건드린다고 해서 이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서울대가 사라지면 그 자리는 자동적으로 연고대가, 그리고 기존의 연고대 자리는 서성한이, 서성한 자리는 중경외시가, 중경외시 자리는 건동홍(건국대, 동국대, 홍익대)이, 건동홍 자리는 국숭세단(국민대, 숭실대, 세종대, 단국대)이 차지한다. 서울대의 빈자리를 채우며 한 계단씩 올라가고, 학벌주의, 무한입시경쟁, 교육비 부담은 고스란히 남는다.

어쩌면 서울대를 없앰으로 인해 이 나라 입시판도는 수험생들에게, 그리고 학부모에게 더욱 가혹하게 바뀔 수도 있다. '국립대'이기 때문에 서울대는 여타 사립대보다 학생 선발에 있어서 그간 '공익성'을 추구해 왔다. 수시모집에서의 '지역균형 선발전형'이 그 대표적인 예다. 또한 국립대이기 때문에 공교육을 존중하여 수시는 물론 정시모집에서도 내신의 반영률이 높은 점 또한 여타의 사립대와는 차별화된 부분이다.

만약 이런 서울대가 사라지게 된다면, 이제 수험생들은 그 자리를 꿰찰 연고대를 목표로 뛸 것이 자명한데, 수시모집에선 노골적으로 특목고를 우대하고, 정시모집에선 내신 실질 반영률을 없는 것과 다름없게 떨어뜨리는, 이명박 정부 들어 학생 선발권이 대교협으로 이양되면서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학생들을 뽑아온 최상위권 사립대를 중심으로 서열이 재편되는 일이 과연, 바람직한 변화일까? 답은 자명하다.

'인서울' 쏠림 현상, 본질은 취업에 있다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안을 통해 지방 국공립대의 수준을 향상시키면 사립대 중심의 서열이 파괴될지도 모른다고?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라면 역대 정권들마다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에 그리 애를 먹지 않았을 것이다.

수험생들이 지방 거점 국립대를 외면하고 오로지 서울로만 향하는 것은 지방 국립대의 수준이 서울의 사립대에 비해 낮아서만이 아니다. 지방대가 서울권 대학에 비해 취업에 불리하다는 문제, 더 나아가 지방이 서울에 비해 취업 준비에 어려움이 많다는 문제는 수험생들의 지방 국공립대 진학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안타깝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대학은 취업을 위해 반드시 거쳐 가야만 하는 관문으로서만 기능하고, 그 취업을 하는 데 있어서 소위 '인서울'의 메리트는 무척이나 크다. 취업을 하는 데 필수적인 '스펙' 쌓기에 있어서 지방은 여건상 불리할 수밖에 없다. 취업 정보와 기회의 부족을 여실히 느껴 방학을 이용해 서울로 상경하여 정보 취합과 공부에 매진하는 지방대생의 사례를 우리는 언론 보도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최근 1기 졸업생들의 대규모 실업난으로 도마 위에 오른 로스쿨의 경우만 보아도, 지방에 위치한 로스쿨이 수도권 로스쿨에 비해 취업에 얼마나 불리한지 연일 보도되는 기사를 통해 알 수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이니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안을 통해 학교의 수준을 끌어올리면 지역 인재가 모이고 학벌주의 구조가 타파될 것이라는 사고의 흐름을 단순하고 근시안적이라 지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피상적인 접근은 같은 결과 되풀이 할 뿐

물론, 현 상황을 타개할 대책은 필요하다. 그 점은 분명하다.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안도 어쩌면 그 한 방법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난 며칠 동안 이 정책을 주장하는 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은, 이들에게 대한민국의 비정상적인 학벌주의 구조와 무한경쟁의 입시지옥을 해결하고자 하는 진정성이 과연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단순하고 근시안적이었다.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말과 생각이었다.

역대 정권들마다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무던 애를 썼지만 그들 모두 실패했던 이유는, 학벌에 대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비정상적인 집착도 있지만, 그 현상을 피상적으로만 바라보는 위정자들의 태도 또한 크게 작용했다.

"수능이 문제라니 수능을 쉽게 내라." "사교육비 잡게 EBS에서 수능 문제 70%를 연계해서 내라." 결과는 어떤가? 대학은 쉬운 수능을 믿지 못하고 본고사 형태의 논술을 강화했다. 사교육계에서는 수험생들의 불안함 심리와 부족한 시간을 이용하여 소위 'EBS 찍어주기' 식의 강의와 교재로 새 활로를 마련, 지금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학생들은 쉬워졌다지만 여전히 중요한 수능 준비하랴, 논술 준비하랴 더 힘들어졌고, EBS에서 나온 교재 보랴, 스타 강사들이 찍어주는 교재까지 보랴 더 공부에 허덕이게 됐다. 수험생의 부담을 줄어들게 하려는 정책이 반대로 공부 시간만 늘려버린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문제의 본질을 보려 하지 않고 껍데기만 대충 훑었기 때문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그러나 첫 술을 어떻게 뜨는가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아무렇게나 막 뜨면 또 한 번 같은 결과를 반복할 뿐이다. 지금 민주통합당이 주장하는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안은 적어도 내가 보기엔, 아무렇게나 일단 뜨고 보자는 식의 첫 술로밖에는 안 보인다.


태그:#서울대, #통합네트워크, #사립대, #취업, #스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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