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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팬에 붙은 음식 찌꺼기를 떼어내기 위해서는 물을 붓고 그냥 기다리면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떨어져 나갑니다. 아픈 상처를 억지로 떼어내려고 몸부림치지 마십시오. 그냥 마음의 프라이팬에 시간이라는 물을 붓고 기다리면 자기가 알아서 어느덧 떨어져 나갑니다."


"젊은 그대여, 잠깐의 뒤처짐에 열등감으로 가슴 아파하지 마세요. 삶은 당신 친구들과의 경쟁이 아닌, 나 자신과 벌이는 장기 레이스입니다. 친구들을 무조건 앞지르려고만 하지 말고 차라리 그 시간에 나만의 아름다운 색깔과 열정을 찾으세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줄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면 싫어하든 말든 그냥 내버려두고 사십시오. 싫어하는 것은 엄격히 말하면 그 사람 문제지 내 문제는 아닙니다."

혜민스님이 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책 표지
 혜민스님이 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책 표지
ⓒ 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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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멘토, 청춘의 도반'으로 여겨지는 혜민 스님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쌤앤파커스)에서 폼 잡지 않고 편하게 들려주는 위로와 성찰이 담긴 인생 잠언들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트위터리안'으로 손꼽히던 스님이 숨 가쁘게 돌아가는 트위터에서 들려주던 "힘들면 쉬었다가자"는 점잖은 충고가 책으로 묶여 나와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

혜민 스님은 이 책에서 휴식, 관계, 사랑, 미래, 인생, 사랑, 수행, 열정, 종교 등을 주제로 지혜롭게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올해 상반기 최대 베스트셀러에 오른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5개월 만에 70만 부나 팔렸다.

"외로움은 '같이 사느냐, 떨어져서 사느냐' 이런 데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마음의 문을 닫으면 외로워지는 거예요. 그러면 수많은 사람들과 서로 몸을 부대끼는 환경에서도 어쩔 수 없이 외롭습니다."

"미워서 헤어지는 것은 어리석어요. 만약 지금 미워서 헤어질 정도에 이르렀다면 헤어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미워하는 마음을 없애는 게 중요해요. 이럴 때는 상대를 위해 먼저 기도를 해서 미운 마음을 없앤 다음 헤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헤어진 뒤에도 후회가 없고 자유로울 수 있어요."

결혼 전 반드시 읽어야 할 대표적인 글로 인터넷에서 회자되며 화제가 되었던 법륜 스님의 <스님의 주례사>(휴)에서  젊은 연인들에게 해주는 조언이다. 2009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서양화가 김점선의 그림을 함께 실은 이 책은 2010년 9월에 출간되었지만 법륜 스님이 SBSTV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두 차례 출연한 다음부터 폭발적으로 판매부수가  늘고 있다.

법륜 스님의 책은 30만 부가 팔린 <스님의 주례사>뿐만 아니라 20만 부를 돌파한 <엄마수업>(휴), <방황해도 괜찮아>(지식채널), <깨달음>(정토출판), <새로운100년>(오마이북) 등도 동반해서 팔려나가 여름 출판시장에서 최고의 저자로 떠오르고 있다.

게다가 정목 스님의 정갈한 산문과 아포리즘을 모은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공감)도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진입해 올해 상반기 출판시장은 스님들이 '석권'하다시피 하고 있다. 출판시장을 주도하던 소설이 침체된 가운데 불붙은 스님들 책의 인기는 하반기 출판시장에도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추락하는 세계 경제, 멘토는 스님뿐

2008년의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세계경제는 돌파구를 전혀 찾지 못하고 있다. 유럽 발 재정위기는 여전히 엄청난 암초로 남아 있다. 수출 주도의 한국경제는 그나마 최악의 위기는 면한 것으로 보이지만 내수시장은 꽁꽁 얼어붙어 있다. 주택경기마저 최악이라 오늘보다 나은 미래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분위기다. 특히 젊은 세대는 일자리, 소득, 집, 연애(결혼), 아이, (미래에 대한)희망이 없는 '6무(無) 세대'로 전락하고 있다.

스마트폰, 스마트패드, 스마트TV 등 스마트 기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세상을 주도하는  신인류인 '호모스마트쿠스'로 변모할 것을 강요받는 세상이지만 '스마트'한 세상을 만든 정보기술은 중산층의 성장을 불러온 전기기술과 달리 '고용 없는 성장'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극히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시키고 있다. 그 결과, 빈부의 양극화가 심각하게 전개되어 중산층들이 급격하게 빈곤층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경쟁만을 조장하는 신자유주의에 미래란 과연 존재할 것인가?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해도 세상의 변화가 너무 극심하다 보니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가치관은 부챗살처럼 한없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알려줄 지혜란 아무것도 없다. 부모나 선배 세대에게서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는 젊은 세대는 '친구'처럼 편하게 다가오는 멘토 스님들이 어깨를 두드려주듯이 알려주는 소통이 가능한 이야기를 샘물처럼 받아 마시고 있다. 신자유주의 비판서가 끝없이 쏟아져 나오고, 자본주의의 게임 '룰'이 정의로운가를 말하는 마이클 샌델 책들의 인기가 몇 년째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대중은 스님들의 말씀을 근원적 자아성찰과 명상을 할 수 있는 '법문'으로 여기고 있다. 

출판시장에서 지금처럼 스님들의 책이 상한가를 달렸던 것은 IMF 구제금융 위기가 불러온  고금리로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는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었던 20세기 말이었다. 1998년에 법정 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가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것을 필두로, 법정 스님의 <무소유>, 원성 스님의 <풍경>, 현각 스님의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등이 1990년대 내내 해마다 몇 종씩 탄생하던 밀리언셀러가 실종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던 출판시장을 강타했다.

20세기 말, 영웅·스타로 다가온 스님들

법륜 스님(자료사진)
 법륜 스님(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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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20세기 말과 지금은 어떻게 다를까? 1980년대만 해도 대중은 동일시의 대상으로 '영웅'을 기대했다. 역사의 진보를 추구하던 대중은 '정상'이나 '중심'을 향해 앞장서서 나아가는 인물에게 희망을 걸었었다. 그런 시대에 '장좌불와(長坐不臥) 10년' 전설의 성철 스님은 보통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영웅'이었다. 

하지만 20세기 말의 대중은 '우상파괴'를 즐겼다. 갑작스러운 세상변화에다 세기말의 암울한 분위기까지 겹쳐 당시까지 사회를 지탱해왔던 모든 중심세력, 정부·기업·결혼·종교·교육·의학·과학·가족 등에 대한 불신이 가속화되면서 대중은 '영웅'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고 기존의 상식을 파괴하는 '스타'를 필요로 했다.

강원도 오지산골에 오두막을 짓고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던 법정 스님, 어머니 손에 이끌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산문에 들어선 동자승인 원성 스님,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엘리트코스를 달리다가 내면의 목소리를 좇아 이국땅에서 구도하던 파란 눈의 현각 스님을 대중은 자신들의 심정을 이해해줄 수 있는 '스타'로 받아들였다.

IMF 외환위기만 해도 곧 극복될 위기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는 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이제 대중은 '스타'로 만족하지 않는다. 한때 자신이 좋아했던 '스타'도 부정적 이미지가 조금만 노출되어도 한순간에 등을 돌려버린다. 4.11총선에서 여론이 순간순간 널을 뛰었던 것은 그런 세태를 반영한다.

이제 개인이 믿을 것은 오로지 자신밖에 없다. 온갖 미디어가 불안을 끊임없이 생산하는 가운데 세상은 그저 시끄럽기만 하다. 그렇다고 엉켜서 잘못 돌아가는 물레방아의 바퀴가 아귀를 다시 맞출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세상에서는 자신의 욕망부터 다스리는 것이 안심입명(安心立命)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그러니 대중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마음부터 되돌아보라"는 혜민 스님의 조언이나 "스스로의 마음 밭을 잘 다스려 자신만의 생을 피워 내라"는 법륜 스님의 충고에 넋을 잃고 있는 것이리라.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입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하는 내 마음 다시보기, 개정판

혜민 지음, 이영철 그림, 수오서재(2017)


태그:#혜민스님, #법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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