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공동연출한 김일란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공동연출한 김일란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기사수정 : 29일 오전 10시]

이 다큐, 이럴 줄은 몰랐다. 많은 부분에서 예상을 빗나갔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냐고? <두 개의 문> 개봉 소식이 처음 들렸을 때, 이 작품이 '용산의 비극'을 담았다는 말이 들렸을 때만 해도 제대로 상영은 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됐던 게 사실이다. 상영을 한다 해도 다큐라는 장르와 소재가 지닌 특수성으로 관객들이 얼마나 감응할지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두 개의 문>은 21일 개봉 이후 일주일 만에 관객 1만 명을 돌파했다. 많은 관객들이 작품에 대한 평을 내놓으며 활발해지는 토론도 반갑다. 초반의 걱정은 이제 물러도 되는 걸까.

용산에 대한 기억은 저마다 다르게 머물러 있을 거다. 가치관에 따라 2009년 1월의 그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꿔 생각하기도 할 것이다. <두 개의 문>이 2012년 6월 세상에 등장한 건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 사이의 생각의 간극을 좁히고 함께 변화를 외치기 위한 역할을 위해서가 아닐까.

이런 질문을 안고 다큐 영화 <두 개의 문>의 김일란 감독을 만났다. 본래 공동 연출인 홍지유 감독과 함께 하기로 한 인터뷰였지만 과로 탓으로 홍지유 감독이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앞으로 더욱 바빠질 일정이기에 쾌유를 기원했다.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공동연출한 김일란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공동연출한 김일란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활동가,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왜 하필 용산참사?

김일란 감독은 다소 차분한 심정이라고 했다. 개봉 당시엔 신기하기도 했고, 다소 들떠있었다고 했다. 독립 다큐멘터리를 끊임없이 찾아주는 관객들을 보면서였다. 김일란 감독은 "관객 스코어 때문이기 보단 용산참사를 기억하고 그리는 모습에 감사하죠"라며 현재의 심정을 전했다.

우선은 이 두 감독이 왜 용산을 택했는지부터 물었다.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연분홍치마' 활동가로 지내면서 그간 <마마상>(2005) 3xFTM(2008) 등 관련 다큐를 제작해 온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다큐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2009년 그 사건이 터졌던 날 저흰 다른 작업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4월 이후 참사의 유가족이나 범국민대책위원회에겐 중요한 시기라고 들었어요. 5월에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도 있었고 대중의 관심이 용산에 집중되지 못하던 때 활동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용산의 상황을 외부에 알려야 하지 않겠냐는 제안에 참여를 하게 된 거죠.

당시 많은 활동가들이 이미 촛불방송국 '레아'라는 미디어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우리도 어려움 없이 시작했어요. 8월에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면서 재판 모니터링 제안을 받았죠. 그때까지도 다큐로 만들 생각은 없었어요. 증인으로 나온 경찰특공대들이 증언하는 걸 듣고 '왜 이게 언론에 안 나가지?' 의문을 갖다가 1심 판결 이후 다큐를 찍어 이 일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홍지유 감독과의 공동연출도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단다. 함께 용산 남일당 건물에 파견을 나가 있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함께 연출을 하게 된 셈이었다.

비극의 처참함?..."그때 용산은 따뜻했다"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공동연출한 김일란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공동연출한 김일란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김일란 감독은 당시 활동을 회상하면서 "용산 그곳이 밖에서 볼 땐 힘들고 비극적 공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곳은 '죽음'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생명'의 공간. 서로를 희망으로 위로했던 따뜻한 공간"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애초에 용산에 대해선 송창식 선생의 노래 '고래사냥'이 나오는 영화(기자 주: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을 말하는 것임을 나중에 알았다 )의 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을 뿐이었단다. 장발인 주인공이 단속을 피해서 뛰는 장소가 바로 용산 삼각지였다는 이유였다.

"용산 사건 이후엔 그 공간을 지날 때마다 여러 가지 감정을 느꼈어요. 비극적이고 슬프기도 했지만 즐거움도 있었어요. 유쾌한 즐거움이라기 보단 사람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 혹시 최근에 용산에 가보셨나요? 지금은 주차장이 들어와 있는데 그 주변으론 3년 동안 사람 손이 닿지 않아 폐허지만 풀이 또 자라고 있더라고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이렇게 평화롭구나. 자연의 힘이랄까요? 주변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는데 초록색 풀이 자란 게 사람을 상념에 젖게 하더라고요. 그때 비극을 이기고 풀들이 자라는 걸보면 신기하기도 했죠. 철거민 분들이 투쟁을 하시면서 그땐 매일 매일 밥을 하셨잖아요. 당시 용산 남일당은 사람들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내고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비극적이면서 따뜻하고, 따뜻하지만 슬픈 그런 곳이었죠."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 제목이 지닌 의미

인터뷰 중 작품의 제목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김일란 감독은 관객들이 저마다의 의미를 붙여 영화의 제목을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논의가 활발하다는 건 영화를 위해서도 좋은 일.

어떤 관객은 <두 개의 문>을 보고 '제3의 문'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고, 어떤 이는 <두 개의 문>이 아닌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두 개의 눈'으로 하자는 말도 있었단다. 또 다른 관객은 <두 개의 문>이 하난 철거민의 문, 나머진 특공대의 문이라 이들이 망루에서 만나는 걸 상징적으로 그린 것 같다고도 했단다. 영화가 그만큼 자극을 주고 논의의 장을 여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는 지점이었다.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공동연출한 김일란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공동연출한 김일란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남일당 건물을 이해하려면 조감도를 보이면서 설명해야할 만큼 복잡한 구조에요. 건물 두 개를 합친 구조로. 한쪽에서 다른 건물로 넘어가는 문 두 개가 있던 거였죠. 밖에서 보면 5층이지만 안에선 4층짜리에 옥상이 있는 구조에요. 건물로 들어가는 문들도 워낙 많고요.

재판에서 증언하는 경찰 특공대들이 문을 얘기하는데 어떤 문을 얘기하는지 서로 모르더라고요. 문이 하도 많으니까요. 그들의 진압이 얼마나 허술하고 무리하고 성급한 진압이었는지 드러나는 부분이었죠. 보통 우리가 행사를 진행해도 사전답사라는 걸 하잖아요. 이들은 진압을 위한 중요한 정보를 게다가 사람의 목숨이 달린 공간을 들어가면서도 아무런 준비를 안 한 거죠. 철거민들을 고려하지 않은 진압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영화에도 나오지만 (경찰 상관이) 브리핑 과정에서 투입되는 경찰특공대에게 누가, 왜, 어떤 이유로 농성 하고 있는지를 얘기하기보단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를 해요. 이들이 세입자고 어떤 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올라간 주민이라고 말하지 않고, '전철연이라 조심해라' 이러죠.

여기엔 주민들의 주장을 지워버리고 대원들에겐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의도가 있어요. 주민과 대원 입장 모두 고려하지 않고 맥락을 지워버렸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두 개의 문'이란 제목을 붙인 거죠. 또한 편집을 하면서 용산 사건을 통해 우리가 과거로 향할 것인지 미래로 향할 것인지, 이 사건에 개입할지 방관할지, 그리고 진실을 향해 문을 열 것인지 닫을 것인지 선택의 의미로 확장을 했어요."

"<두 개의 문>을 하면서 가장 큰 숙제였던 감정, 분노"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공동연출한 김일란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공동연출한 김일란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두 개의 문>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 있었다. 그간 용산 참사와 관련한 여러 콘텐츠가 나왔었고 대부분은 그 사건을 직시하면서 분노와 아픔의 감정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

허나 <두 개의 문>은 좀 달라보였다. 철거민들의 아픔과 분노는 영화에서 직접 드러나지 않았고 오히려 경찰특공대의 발언과 사건을 지켜보던 활동가들, 그리고 1심에서 대법원까지의 재판 과정을 냉정하게 따라간 것. 김일란 감독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분노라는 감정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홍지유 감독의 얘기도 들어봐야겠기에 다 말하긴 곤란하지만 작업 내내 아니 2009년 내내 분노라는 감정을 공부한듯해요. 용산 현장에 갔을 때 분노라는 감정은 너무 정당했지만 이걸 어떻게 다스리고 소통하고 치유할 지가 화두였죠. 만약 분노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하지 않았으면 이 다큐 역시 다르게 갔을 지도 모릅니다.

영화 내내 꾹꾹 눌러 담고 싶었던 건 분노에요. 그 분노가 어느새 희망에너지로 바뀌는지 경험한 게 컸죠. 2009년 초엔 분노했어요. 그 감정이 올라오고 내려가기를 반복하다 과정에 분노가 다스려지면서 희망으로 바뀌는데 그게 바로 치유였죠. 분노는 어찌 보면 건강한 에너지라고 생각해요. 처참하기도 하지만 이게 희망으로 전환되기 위해선 치유가 필요하죠.

제가 무척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는데 제 말을 들은 누군가가 '넌 정당했다'고 이야기 해주니까 어느새 아픔이 치유가 되면서 그 기억이 힘들지 않게 되는 일이 있었어요. 치유는 나와 함께 타인이 인정했을 때 되는 거라고 봐요.

철거민 분들의 핵심은 '난 테러리스트 아니다, 가해자가 아니다'였어요. 이 분들에게 치유가 정말 필요할 거 같았죠. 많은 사람들이 용산 참사에 분노를 느꼈을 겁니다. 분노가 뜨겁지만 동시에 차갑게 오래 지속됐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죠. 물론 때로는 폭발해 버리는 분노도 필요하겠죠. 하지만 용산에 대해선 어떻게 분노를 차분하게 삭이면서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상처는 치유하되 그 의미는 간직하는 그런 분위기를 바랐던 거죠."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공동연출한 김일란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공동연출한 김일란 감독이 27일 오후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그렇다. 분명 <두 개의 문>은 비극을 겪고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약한 소수의 이야기다. 투쟁에 참여했다가 살아남은 철거민은 구속 수감돼 있는 상황이다. 사건의 전말을 아는 순간 드는 분노의 감정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김일란 감독의 말처럼 이젠 치유와 희망으로의 전환을 얘기할 때가 아닐까.

분노가 결국 자신의 억울함을 인식하며 모순 해결을 위한 초기 에너지라면 그걸 희망의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정당성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김일란 감독의 말에 더욱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는 <두 개의 문>에 왜 철거민의 목소리는 등장하지 않는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두 개의 문>은 철거민 스스로가 정당하다고 말하기 보단 타인들이 그들의 정당성을 증명해준다고 해야 할 거예요. 자신의 입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자신과 적대적인 사람조차도 상대가 옳다고 인정할 때 치유가 되고 그때 정당성은 완결되는 느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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