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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 내 '태종대' 전망대 앞에 있는 섬 '생도'. 주전자처럼 보여서 '주전자섬'이라고도 한다.
 부산 영도 내 '태종대' 전망대 앞에 있는 섬 '생도'. 주전자처럼 보여서 '주전자섬'이라고도 한다.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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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서울로

여행을 위해 짐을 꾸릴 때에는 여행을 가지 않는 이들과는 남다른 기분이 듭니다. 여행 전전날부터 가방과 카메라를 꺼내놓고 일차 준비물을 챙기다가, 전날 되어서는 비상한 두뇌 회전으로 빠짐없이 물품들을 늘어놓고 가방에 넣을 준비를 합니다. 우선 배낭에 옷과 수건은 개켜서 넣고, 접이우산과 로션과 두툼한 책은 손상되지 않도록 층층이 쌓고, 혹시 몰라 비상약품과 휴대용 플래시까지 찾아내 넣습니다. 그리고 카메라 가방은 하루 종일 나와 함께 하는 벗이므로 여기에는 자주 손을 대는 메모 물품과 핸드폰, 안경수건 등이 들어갑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서울 들른 김에 을지로의 단골 가게에 들러서 필름과 배터리도 구입해 넣었습니다. 여기에 삼각대까지 어깨에 걸치면 준비가 끝납니다. 이번에는 더위를 핑계로 잘 쓰지 않는 모자까지 챙겼습니다. 이렇게 준비를 끝내고서 방 한쪽에 모셔두고 다음 날을 기다립니다. 기행도 마찬가지죠. 그렇게 모교이기도 한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올해 22년 된 동아리 '방송대문학기행반'의 '철원 이태준 문학기행' 채비를 부산에서 합니다. 춸원은 이태준 소설가의 고향입니다. 기행반 식구들이 다들 모이는 출발지는 서울 지하철 2호선 뚝섬 역 앞입니다. 

기행 일주일 전에 태종대에 갔었습니다. 집에서 한 시간 반 남짓 걸립니다. 제가 가던 날 전날에 비가 와, 태종대 유원지에 오면 꼭 타 보아야 할 열차 모양의 순환 자동차 '다누비 열차'가 운행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노선의 미끄럼 때문입니다. 유원지 맨 끝에 있는 전망대까지는 조금은 먼 거리이지만 호젓한 기분으로 오른쪽의 바다를 바라보면서 산책을 했습니다. 맑은 날씨 속에 많은 선박들이 떠 있었습니다. 위 사진은 전망대에서 찍은 것입니다. 사진 속 섬은 태종대 전망대에서 보이는 섬 '생도'입니다.  

그 태종대를 뒤로 하고, '다누비 열차' 대신 부산역에서 서울역까지 운행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탔습니다. 5시간 반이 걸리니 아침 일찍 서두를 수밖에 없습니다. 열차 안에서 창밖 짙푸른 녹음을 보는 것은 제겐 큰 즐거움입니다. 이태준 단편소설 읽는 것이 더디어집니다.

서울에서 철원 '두루미평화관'으로

기행버스가 식구들을 잔뜩 태우고 서울 북쪽 외곽으로 벗어납니다. 경기도 양주쯤에서 한바탕 시원하게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더위를 반쯤 식혀 주었습니다. 2년 전에 '황순원 문학기행'을 한겨울에 했었습니다. 양평에 있는 '황순원문학관'(소나기마을)에 갔었고요. 초여름 이맘 때 그 기행을 가서 진짜 소나기 맞으면 더할 나위 없는 실(實)체험이 될 텐데요. 버스 안, 자기 소개 시간에 O 선배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힘들 때 같이 해주는 사람 한 명만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소나기가 내릴 때 자기 옷을 벗어 소녀에게 덮어 주는 소년 같은 사람 말입니다.

철원 숙소 '두루미평화관'에 도착했습니다. 건물 구조가 특이했습니다. S 선배님 말씀대로 2층 위의 옥상 부분에 필요 없는 벽면들이 사방으로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짐작은 했지만 이곳 근처에 있는 '노동당사'를 본떠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철원 평야에 겨울이면 몰려드는 철새 두루미를 약간 형상화해 같이 구성해 넣은 것 같습니다. 역발상이라고 할까요. 이곳 철원이 육이오 전쟁 전에 북쪽에 속해 있을 때 고문과 숙청, 살인으로 악명 높던 노동당사를 '평화관' 이름이 붙은 숙소 설계에 응용했으니까요.

'평화관' 뒤란에는 나무 마루와 원형 테이블이 있고, 단풍나무 한 그루가 호젓하게 심어져 있었습니다. 난간 너머 막 모내기 한 논의 색깔이 차차 변하면서 이 단풍나무도 옷을 갈아입겠지요. 다음날 우리를 이끌어줄 가이드에 따르면 이곳 철원은 사시사철 와볼만한 곳이라 하겠습니다. 단풍 물든 철원도 볼만하겠지요.

'두루미평화관' 내 강당 천장 모습. 천장의 조명을 별빛과 연결시켜 생각해 보았다.
 '두루미평화관' 내 강당 천장 모습. 천장의 조명을 별빛과 연결시켜 생각해 보았다.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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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강당의 천장 모습입니다. 작품 토론회 시간이었습니다. 날씨가 흐려 철원의 밤하늘의 별을 보지 못했습니다. 강당의 조명처럼 섬광이 연속되는 별빛을 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참고로 이곳 '평화관'은 천체관측 장소 역할도 일부 담당하고 있어, 옥상에 천체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천문학과 학생들이 관측하러 이곳 철원에 자주 온답니다.

첫날 밤 잠깐 강당 밖을 나선 분은 아시겠지만 전방지역답게 사방에 불빛이 드문드문 약하게만 켜져 있어 짙은 농도의 암흑을 맛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 암흑만치 진하게 퍼져 있는 냄새, 처음에는 시골 냄새 하면 소똥 냄새라고 지레짐작하곤 했는데, 그게 돼지 똥 냄새랍니다. 뒤풀이 때 돼지고기 안 먹은 게 참 다행입니다.

내가 맡아 발표한, '구인회' 멤버 중 일원인 김기림 시인의 약력.
 내가 맡아 발표한, '구인회' 멤버 중 일원인 김기림 시인의 약력.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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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정말 특이한 토론회 풍경을 경험했습니다. 1학년 J 학우님이 이번 기행의 주인공인, 단편소설의 대가 이태준 소설가가 참여했던 '구인회'(九人會) 멤버들의 약력을 일일이 반절로 접은 종이 한쪽에 적어오신 것입니다. 반대 면에는 이름을 크게 적어놓으셨고요. G 선배님의 사회로 진행된 작품 토론회 도중에 들어간 멋진 특설무대라 하겠는데, 기행 식구들이 '구인회' 회원 중 한 명씩 맡아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저에게는 김기림 시인이 할당되었습니다. 약력을 보니 저의 기질과 많이 닮아 반가웠습니다. 백과사전에서 김기림 시인의 사진을 유심히 보았는데, 저와 똑같이 뿔테 안경을 썼는데 그랬는데, 제가 조금 더 잘 생긴 것 같았습니다……

이태준 소설가는 미문(美文)으로도 유명합니다. 단편 '까마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누가 그러셨죠. 이태준 소설가는 퇴고를 강조했는데, 이미 쓴 문장을 퇴고하는 것이 새로운 소설을 마구 쏟아내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고요.

다음날 새벽녘에 건물 옥상에서 철원 평야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농가는 많지 않았고 논들은 층층으로 물을 담뿍 담고 있었습니다. 저희 숙소가 있는 곳은 정확히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大馬里)입니다. 있을 것이 꼭 하나씩만 있는 동네 같았습니다. 외지에서 아이들도 많이 오는 곳이어서 '평화관' 옆 정자에 자전거가 많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 끌고서 대마리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초등학교 하나(묘장 초등학교), 교회 하나(대마리 교회), 성당 하나(정확히는 대마리 공소) 그리고 늦잠 자는 백구 한 마리 등등 그랬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묘장 초등학교에 들어가 운동장을 여러 바퀴 돌면서 2층짜리 학교 건물을 눈여겨보았습니다. 한 학년에 교실 한 개씩, 교장실, 교무실 등에다가 작은 강당인가 싶은 '평화관'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도 '평화관'이 있네요. 학교는 사방으로 뚫려 있었고, 주택하고도 붙어 있었습니다. 학교 옆에 사는 아이가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렇게 가구(家口)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작은 동네였습니다.

그런데 신작로 저만치 가고서 되돌아오다가 샛길로 빠졌는데, 그 작은 동네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자전거 페달 밀치는 다리는 힘이 점점 빠져갔고요. 되돌아 나와 겨우 길을 찾았습니다. 벌써 아침식사 끝내고 나오는 분도 계셨습니다. 어서 손 씻고 밥을 먹는데 밥맛이 꿀맛이었습니다.

'두루미평화관' 바로 옆에 있는 방공호.
 '두루미평화관' 바로 옆에 있는 방공호.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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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방공호입니다. 이곳 분에게 여쭈었는데 동네[里]마다 하나씩 있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사시사철 급격한 정세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군인들이 철통같이 지켜주지만 조마조마한 마음은 항상 지니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걸 어떻게 무디게 하고 사는지 물어볼 걸 그랬습니다

방공호는 '두루미평화관 ' 바로 옆에 있고, 저희들 아침 점심도 이 동네 부녀회 분들께서 해주셨으니까 이 '두루미평화관'이 일종의 마을회관 역할도 하겠다 싶었습니다. 점심 때 먹은 제육볶음 정식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릅니다. 철원의 무공해 '철원오대쌀'에다가 심심하게 간을 한 반찬 등 제게는 딱 맞는 입맛이어서 거의 남김없이 먹었습니다. 하도 맛있어서 그 밥맛이 아쉬워서 점심식사 후 양치질을 안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평화관' 앞뜰에는 '상허 이태준문학비'를 비롯해 이태준 선생 흉상까지 있었습니다. '평화관'과 이태준 작가는 서로 별개일 텐데, 아무튼 '평화관'에는 모든 것이 다 있었습니다! 'DMZ 통일대장군'과 'DMZ 평화여장군'도 있었습니다!

철원 민통선에서 파리행을 꿈꾸며

도망치는 고라니. 뛰어난 후각 덕택에 지뢰밭에서도 화약 냄새를 잘 맡아 몸을 피할 수 있다고 한다.
 도망치는 고라니. 뛰어난 후각 덕택에 지뢰밭에서도 화약 냄새를 잘 맡아 몸을 피할 수 있다고 한다.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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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평화관' 사무장이신 유병숙님이 둘째 날 오전 민통선(민간인통제지역) 가이드를 해주셨습니다. 이 분 없었으면 답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초소를 지날 때마다 군인들에게 확인을 받아야 했으니까요. 도로 좌우 옆은 온통 지뢰밭이었습니다. 60여 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말입니다.

맨 먼저 난생 처음 땅굴을 구경하고 나오는데, 그 지뢰밭 동산에서 고라니가 뛰쳐나오는 것이습니다. 저희 차량을 보고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뒤쪽으로 달음박질했습니다. 버스 뒤쪽에 앉아 있어서 간신히 찍을 수 있었습니다. 고라니의 후각이 무척 뛰어나 지뢰의 화약 냄새를 잘 맡기 때문에 지뢰밭에서도 무념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이 참 신기하게 다가왔습니다.

철원 군사분계선 주변 모형도 일부분. 조금 전에 들른 '제2땅굴'의 위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철원 군사분계선 주변 모형도 일부분. 조금 전에 들른 '제2땅굴'의 위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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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평화전망대' 안에 설치된 모형도를 통해 저희가 막 다녀온 '제2땅굴'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북한군은 저 북쪽 서방산 뒤쪽에서 몰래 땅굴을 파기 시작해 군사분계선을 지나 1.1킬로미터까지 파고 내려온 것입니다. 귀순용사의 제보와 땅굴 탐지기로 땅굴을 발견했는데, 당시 상황이 무척이나 긴박했을 거란 짐작이 들었습니다

암튼 앞으로 땅굴 구경은 다시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3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저 같은 장신(長身)들은 탐사 내내 허리를 굽히고 가야 하니 말입니다. 하도 힘들어 하니까 누군가가 뒤에서 허리를 두드려 줍니다.

전망대에서는 '낙타고지' '평강고원' '피의 능선' 등이 보였습니다. 전망대 뒤에는 '필승교회'가 있고 거기에 십자가 탑이 있는데, 2004년 전까지 매년 크리스마스 트리를 달아놓던 곳입니다. 그 후 상호 비방방송을 중지하면서부터 정서적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 트리 설치를 중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음에는 '두루미기념관'을 들렀습니다. 비무장지대와 이곳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동물들의 박제 표본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또한 사진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중 함박눈이 거세게 내리는 가운데 꼿꼿이 서 있는 두루미 사진이 있었습니다. 철원의 적설량을 물어본다는 걸 깜빡 했습니다. 무릎 위에까지 푹푹 빠지는 '눈늪'을 만나보고 싶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대산 월정사 올라가는 길에 그 시늉을 해보았을 뿐입니다.
두루미는 장수와 금실 좋은 부부를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평생 한 번 짝을 지어서 그렇습니다. 더할 나위 없는 길조(吉鳥)네요. 참! 여기 와서 그 보기 힘든 제비를 보았습니다. 제비도 길조라 여기고 싶네요.

나비처럼 나비춤 추는 아이들. 월정리역에서 만난 평화로운 모습.
 나비처럼 나비춤 추는 아이들. 월정리역에서 만난 평화로운 모습.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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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아이들은 아니고요, 월정리역에서 만난 평화스런 풍경이었습니다. 폭격을 맞아 파괴된 열차 앞에서 꼬마 아이들이 나비처럼 나닐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귀엽던지요. 저 모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 해야겠지요.

이곳 월정리역은 서울에서 출발해 원산까지 가는 도중 군사분계선 부근에 있던 역입니다. 비무장지대에 있던 역사(驛舍)를 남쪽 민통선 지역으로 조금 옮겨놓은 것입니다. 지금도 철도는 있습니다. 그러니까 서울(지금은 용산)에서 출발하는 '경원선'이 연천 지나 신탄리까지 운행되고 있습니다. 운영 중인 우리나라 최북단 역으로 알려진 신탄리역을 잠시 들러 걸어본 적이 있는데, 그 철도가 저희 숙소가 있는 대마리까지 올해 안에 연장 완성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 대마리에서 조금 더 북으로 가면 여기 월정리역이 되고요.

제가 좋아하는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이신 김화영 교수님이 <바람을 담는 집>이라는 책에서 이런 표현을 쓰셨습니다. 조금 길지만 의미가 있어 옮겨봅니다.

"우리나라가 고속전철을 놓는다고 할 때 나는 마음속으로 프랑스의 테제베(TGV)가 선택되기를 간절히 빌었다. 우리가 깔아가는 고속전철이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서쪽을 향해 시베리아 벌판을 끝없이 뻗어가고 파리에서 깔리기 시작하는 반대편 쪽의 고속전철이 또 동으로 동으로 달려오다보면 어디선가 서로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서울에서 고속전철을 타고 북으로 달려가서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기나긴 여로의 끝에 마침내 파리에 도착하는 날을 나는 꿈속에서인 양 그려본다."

이곳 월정리 역 표지판에는 "鐵馬(철마)는 달리고 싶다" 외에도, 이곳에서 주요 도시까지의 거리가 적혀 있었습니다. '서울 104km, 원산 123km, 나진 731km' 이런 식으로요. 저는 여기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부산 543km.'

'노동당사'에서. 돌 틈에서 질긴 생명이 피어나고, 근처 잔디밭에는 흑염소가 노닐고 있었다.
 '노동당사'에서. 돌 틈에서 질긴 생명이 피어나고, 근처 잔디밭에는 흑염소가 노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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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사'입니다. 온통 총탄 자국이 가득한 벽들을 뒤로 하고 창틀 틈새에서 질긴 생명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이태준 생가터 표지판. 생가를 비롯해 문학관은 언제 지어질 수 있겠는지……
 이태준 생가터 표지판. 생가를 비롯해 문학관은 언제 지어질 수 있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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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싶지 않지만, 어느 고추밭 옆에 서 있는 이태준 생가터 표지판입니다. 생가는커녕 자리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태준 작가가 월북작가라는 점이 아직도 유효 사항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플래시를 터트려야 했는데, 가운데 부분을 확대해 보면 "철원출신 한국단편소설의 완성자 상허 이태준 생가터 1995년 7월 15일 철원문학회"라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삼부연 폭포. 폭포 맞은편 언덕에 여러 층계의 계단을 만들어놓았고, 폭포 앞 냇가까지 내려갈 수 있도록 샛길 정도는 조성되어 있다.
 삼부연 폭포. 폭포 맞은편 언덕에 여러 층계의 계단을 만들어놓았고, 폭포 앞 냇가까지 내려갈 수 있도록 샛길 정도는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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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발목을 오래 붙들었던, 마지막 여행지 '삼부연 폭포'입니다. '삼부연'은 가마솥과 같이 생긴 연못(물 떨어지는 곳)이 세 개 있다는 뜻입니다. 하염없이 바라봐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도로가에 있고 따로 주차 시설도 없어 그냥 지나치기가 쉬운데 덜 개발된 만큼 풍취는 끝내 주었습니다.

다시 부산으로

서울에서 부산 갈 때는 KTX를 탔습니다. 오후 일정상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느림을 선호하는 저도 지방에 있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암튼 일부러 철원까지 가는 수고가 헛되지 않았습니다. 통일이 되어 '금강산 문학기행'이 생기면 그 때도 가야겠지요.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서울 분들에게는 여행지일 법한 곳에서 일상을 보내니 자주 신선한 느낌을 맛보곤 합니다. 학업 관계로 2년 예정하고 부산에 내려와 있는 중입니다.

철원 민통선 주변을 속속들이 알아 쉼 없이 설명을 해 주신 '두루미평화관' 사무장님 덕분에 아주 알차게 돌아본 기분입니다. 아들이 군대에 가 있어서 더욱 절실하게 안내를 해주신 것 같았습니다. 호국의 달에 철원 기행을 한 것도 그럴 듯한 우연이었습니다.

참! 위에서 언급한 김화영 교수님 소원의 첫 단추는 실현된 셈입니다. KTX는 프랑스 떼제베의 한국형이니까요.

덧붙이는 글 | 공정여행 기사 응모



태그:#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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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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