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멜랑콜리아> 공식 포스터

영화 <멜랑콜리아> 공식 포스터 ⓒ 팝 엔터테인먼트


우울하다. 직장 상사가 주는 압력, 가족 간의 갈등, 정치에서 오는 분노만으로도 벅찬데 토요일 주말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던 MBC <무한도전>은 외주 제작 논의에 이어 폐지설 까지 나온다. 뚜껑 열리기 일보 직전이다. 자칫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우울증(멜랑콜리아)로 번질까 두렵다.

현대 의학에서 가장 무서운 병 중 하나인 우울증.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바람이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면 큰 코 닥칠 수 있다.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상당하다. 언제부터 우울증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되면서 우울증에 대한 연구와 치료도 활발해지고 있지만 현대인들의 우울증은 그칠 줄 모른다.

동시대 문제적 감독 라스 폰 트리에의 신작 <멜랑콜리아>는 제목 그대로 '우울증'에 관한 영화다. 그런데 우울증뿐만 아니라 지구 멸망도 함께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지구에 위협을 주는 그 행성의 이름도 하필이면 '멜랑콜리아'다.

지구 행성과 다른 행성이 충돌하여 지구가 멸망하는 SF영화는 한 둘이 아니었다면 '멜랑콜리아' 이름 탓인지, 아님 폰 트리에 감독 작품이라 그런지 영화 <멜랑콜리아>가 안겨주는 지구 멸망은 충격과 공포를 넘어 사람을 무기력 하게하는 상실감, 허무함까지 안겨 준다.

우울함에 대처하는 방법, <멜랑콜리아>에서 찾다

영화 <멜랑콜리아> 1장에서 여주인공 저스틴(커스틴 던스트 분)은 초호화 결혼식을 거행하고도 우울증 때문에 결국 마이클(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분)와의 결혼을 파투내고 만다. 그런데 결혼식 곳곳에 드러난 저스틴의 사정을 들어다보면, 그녀가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게 용하다.

개성 강한 부모님, 저스틴이 결혼식을 치루고 있는 와중에도 부하 직원을 지켜 광고 문구를 작성할 것을 종용하는 직장 상사. 예식 비용에 많은 돈을 쏟아 부었음을 수도 없이 강조하는 형부 존(키퍼 서덜랜드 분). 웬만한 사람도 돌아버릴 법 하다.

 영화 <멜랑콜리아> 한 장면

영화 <멜랑콜리아> 한 장면 ⓒ 팝 엔터테인먼트


그러나 저스틴의 밑도 끝도 없는 우울증이 주위 환경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그녀가 믿고 있는 행성 충돌로 인한 지구 멸망 때문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하지만 2장에서 본격적으로 멜랑콜리아 행성이 제기된 이후 저스틴 언니 클레어(샬롯 갱스부르)의 불안감이 거세지면서 그간 저스틴을 괴롭힌 '멜랑콜리아'와 클레어 가족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는 행성 '멜랑콜리아'는 동일시되어 순식간에 지구를 삼켜 버린다.

그런데 행성 '멜랑콜리아'로 인해 불안감에 떨고 있는 클레어와 달리 그간 '멜랑콜리아'로 제대로 걷지도 먹지도 못하던 저스틴은 오히려 행성 '멜랑콜리아' 앞에 자신의 자연스러운 몸을 맡기는 '태연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구는 사악하니까 사라져도 슬퍼하지 않겠단다. 그녀가 앓고 있던 우울증이 더 큰 우울증으로 덮인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을 괴롭힌 우울증을 향한 체념이고 포기로도 볼 수 있다. 마지막에 '멜랑콜리아'를 기어이 받아들이는 모습은 흡사 우울증의 단계별 진행을 보는 것 같다.

저스틴의 언니 클레어는 가끔 저스틴이 죽도록 미웠다.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동생이 안쓰럽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스틴과 함께 돌아 버릴 뻔 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저스틴의 '멜랑콜리아' 보다 더 무시무시한 '멜랑콜리아'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무너뜨린다.

18홀을 가진 드넓은 대저택에 산다 해도 행성 '멜랑콜리아'의 두려움에서 피할 수 없듯이 세상에서 각광받는 잘나가는 광고 카피라이터에 연예인 뺨치는 잘생긴 남편과 호화 결혼식을 올린다 해도 인간 본연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멜랑콜리아'는 결코 지날 수 없는 늪이었다. 어쩌면 행성 '멜랑콜리아'가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 널리 퍼져있는 '멜랑콜리아'가 서서히 우리들을 파멸시키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비록 저스틴은 지구 멸망 순간에서야 '멜랑콜리아'를 일시적으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멜랑콜리아'를 통해 또 다른 '멜랑콜리아'를 집어 삼킨다는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살면서 조금씩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현대인에게 그들이 겪는 우울증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하고자하는 메시지까지 엿보인다.

그렇다고 마냥 가만히 '멜랑콜리아'가 오길 기다리는 것은 옳지 않다. 오늘 밤 당장 '멜랑콜리아'가 우리를 괴롭힌다 해도 있는 그대로 초연히 받아들이며 평소 하던 대로 최선을 다하다 살아가는 것이 그나마 인간이 '멜랑콜리아'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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