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수정 3일 22시 28분]

수능을 보러 가는 친구들에게 격려만 할 수밖에 없는 이 여고생들. 수능 시험 날 롯데월드에서 온종일 놀 계획을 세우고, 집에서 '잉여' 짓을 하거나 시험 보는 친구를 응원하러 가야 하는 이들은 바로 '취업률 98%'를 자랑한다는 ◯◯여상 학생들이다.

'미취업' '진학' '취업 확정' 등의 꼬리표를 달고 살 수밖에 없는 이 실업계 고3 교실의 풍경은 빈자리로 듬성듬성하다. 그렇다고 이미 실습 차원에 회사로 출퇴근하는 친구들과 달리 교실에 남겨진 이 열아홉 여고생들에게 지레 동정을 보낼 필요는 없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채로 한없이 청량한 이 친구들은 아주 가끔 '소맥'도 말아 마시고, 명함지갑을 선배·동기들의 명함으로 꽉꽉 채울 줄도 알며, 그러다가 "김주임 입 스테플러로 집어버려"라며 눈물짓는 친구를 위로할 줄도 아는 아주 의젓한 우리네 동생이요, 조카이자 딸들이다.

인디포럼2012의 개막식에서 만난 <나의 교실>은 그렇게 유쾌하기 짝이 없는 다큐멘터리다. 자기 모교 후배들의 반년 동안의 성장 과정에 카메라를 밀착한 한자영 감독은 그간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정형화된 여고생 캐릭터에 기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큰 스크린으로 영화제에서 상영되리라 예상치 못했다는 주인공들은 셀프 카메라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속내를 가감 없이, 솔직하고 발랄하게 드러낸다.

그런데 유쾌할 것만 같던 이 '귀요미'들의 졸업 전후 생활에 우리 사회의 서늘한 현재가 곳곳에 묻어난다. 졸업 직후 겪게 되는 차별과 비상식적 처우, 성형이 필수가 되어버린 여성의 외모에 대한 시선의 내면화, 냉혹한 사회를 만 19살 나이에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등등. '웃(기고 슬)프다'는 표현에 더없이 어울리는 다큐멘터리의 출현이랄까.

 한자영 감독의 <나의 교실> 중 한 장면

한자영 감독의 <나의 교실> 중 한 장면 ⓒ 인디포럼2012


밝은 미래를 꿈꿨을 이 아이들은 왜 눈물을 흘리나

육남매 중 넷째인 진수의 경우를 보자. 중학교 때 반에서 중상위권에 속했다는 진수는 다른 친구들을 여럿 떠나보낸 뒤에야 한 대기업에 취직하게 된다. 하지만 입사한 지 몇 달이 되지 않아 진수는 "회사는 좋은데, 참 나쁘다"며 입사 동기지만 대졸이자 정규직인 여성 주임 앞에서 눈물을 쏟아 내기에 이른다.

"엄마의 퇴직금 300만 원 중 200만 원"을 자신의 코 수술 비용에 써야 했던 진수는 그러나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짓는다. "성적과 출결, 외모"를 보는 회사의 입맛에 맞출 수밖에 없다는 걸 학생들이나 선생님, 부모들은 모두가 받아들인 결과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회계업무를 담당하는 진수의 월급은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12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진수는 어쩌면 잘 풀린 케이스일지 모른다.

끝까지 취업이 되지 않는 친구도 적지 않다. 또 원래 기업이 내걸었던 조건이나 근무 환경과 달라 '소환'(회사에서 학교로 되돌아오는 것)을 신청한 친구도 많다. 일찌감치 통장을 만든 시나가 그런 경우다. 40살까지 돈만 모으겠다는 목표를 세운 시나는 그러나 2번째 간 회사에서 따돌림 비슷한 상황을 맞게 되지만 끝내 회사를 관두진 못한다.

그래서 진수는 대학을 진학한 친구들이 부럽다. 인천의 한 대학 호텔경영학과에 진학한 현진이가 21살 같은 과 오빠와의 '섬씽'을 고백하자, 진수는 자신은 이제 나이 많은 남성들이 더 친숙하다고 털어놓는다. 한 교실에서 세상에 대한 '밝은 미래'를 꿈꿨던 아이들은 그렇게 각기 다른 세상 속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다.

 인디포럼2012 '올해의 얼굴상'을 수상한 사진사 박정근씨

인디포럼2012 '올해의 얼굴상'을 수상한 사진사 박정근씨 ⓒ 인디포럼2012


인디포럼2010가 궁금해?

지난 5월 31일 배우 류현경, 감독이자 뮤지션인 이랑의 사회로 그 출발을 알린 인디포럼2012는 롯네시네마 피카디리 종로에서 오는 7일까지 열린다. 젊은 독립·인디영화인들의 축제답게 자율적 비경쟁 영화제를 지향하는 인디포럼2012는 '올해의 얼굴상'으로 '우리민족끼리' 트위터 계정 글을 리트윗 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보안법 혐의를 받고 재판 중인 박정근씨를 선정 한 바 있다.

상영작으로는 21일 개봉을 앞둔 용산참사의 진실을 탐사한 다큐 <두개의 문>, <은교> 김고은의 출연작 <영아>, 한진중공업 사태와 희망버스를 다룬 <버스를 타라>, 김곡·김선 감독의 <코메디 : 다 웃자고 하는 얘기> 등 총 613편의 출품작 중 엄선한 신작전 69편(단편 61편/장편 8편), 초청전 9편, 총 78편이 상영된다.

부대행사로는 물리학자 정재승, 소설가 김연수, 배우 박해일,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김순자, 배우 백진희, 영화감독 변영주와 함께 하는 시네토크 '두근두근 독립영화', '독립영화가 사랑하는 배우들'이란 제목하에 박혁권, 정인기, 송삼동, 양은용 등이 참석하는 '독립영화 포차파티' 등이 열린다.

영화제 시간표 등 좀 더 자세하 상황은 홈페이지(www.indieforum.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선한 다큐에서 확인하는 한국사회의 살풍경

그리하여 <나의 교실>이 신선하다면, 그 80퍼센트는 여고생들의 발랄한 감수성과 언어 덕택일 것이다. 그리고 만약 한 시간을 조금 넘기는 다큐가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면 그 사회 초년생들의 모습에서 결코 녹록지 않은 한국사회의 경쟁과 착취 구조까지도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삼성이라면 '우와'를 연발하면서도 "아버지가 욕했기에 노조는 무조건 나쁜 줄 알았다"는 이 아이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존재들이 아니다. "젊었을 때 예쁘게 살아야 한다"며 성형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리낌이 없는 것도 그저 취직을 위한 것만은 아니리라. "남자는 배워야 한다"며 오빠의 대학 등록금을 벌어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그 내면에 짐 지워진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란 또 어떠한가.

소개하기 직전, <나의 교실>의 마지막 장면은 피곤하고 고단한 진수와 시나의 출근길을 아무런 자막이나 목소리 없이 따라간다. 여느 직장인과 다르지 않은 그 모습은 마치 무채색에 가까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시험에 찌든 인문계 고3 학생들과는 조금 다른 학창 시절을 통과한 이 아이들을 한국사회란 더 넓은 '교실'은 또 어떻게 변모시켜 버릴까.

자칫 짧은 소품으로 오해할 수 있는 <나의 교실>은 이렇게 여성과 교육, 노동과 경쟁, 차별과 인권 등 한국사회의 굵직한 화두들이 종횡무진 넘실대는 매우 특별한 작품이다. 지난 3월 열린 제12회 인디다큐페스티벌에 이어 이번 인디포럼에서 두 번째 선보이는 <나의 교실>은 4일 월요일 오후 8시 상영이 남아 있다. 이 신선한 다큐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나의 교실 인디포럼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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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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