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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9일 오후 5시 25분]

"인천에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 하루에 한 각 일 년이면 360각/ 치마 밑에 감추고서 정문에 나설 때...(후략). 성냥공장 아가씨의 노랫말은 가족의 생계를 어린 여성에게 떠넘긴 식민지 남성들의 왜소한 매조키즘(masochism)이 만들어낸 엉뚱한 새디즘(sadism)이다." - 시사평론가 J씨


극단 십년후의 '화' 포스터(사진제공: 십년후)
 극단 십년후의 '화' 포스터(사진제공: 십년후)
80~90년대 초반, 인천하면 떠오르는 용어가 바로 성냥공장이었다. 그리고 어느 가수가 부른 '성냥공장 아가씨'의 노래가 저속한 유행가처럼 청년들 사이에서 급속히 번져나갔다. 하지만 노래 속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을 알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외설스러운 가사로 여성들에겐 다분히 수치스러웠던 이 노래의 시대적 배경은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천 개항 3년 전인 1880년, 일본 신사유람단으로 따라 갔던 개화승 이동인이 일본에서 가지고 온 성냥에서 시작됐다. 당시 중국식 표기이름으로 석류황(石硫黃)이 우리 발음으로 치환된 것이 성냥이었다.

카페 '체험견학연구소'와 블로거 '연비'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일제가 1917년 인천 송림동에 '조선인촌주식회사'라는 성냥 공장을 열면서 본격적인 성냥 판매가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조선 최초로 판매된 성냥은 '사슴표 성냥'이었다. 이 공장에 어린 여공들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일을 하게 됐다.

"이것은 정미소 공장과 더불어 여성의 사회 진출의 효시가 되는 중요한 일이 됐다. 힘든 일을 하는 남자들에 비해 여공의 손길은 섬세했고 또 월급을 적게 줄 수 있었기에 어린 아가씨들이 대거 투입됐다."

일제가 여성근로자들을 기용한 이유에는 저렴한 노동력, 섬세한 기술력, 그리고 기술노출이 되지 않기 위함의 전제가 깔려 있었다. 이를 통해 성냥의 독점화에 기인한 가격담합의 의도도 숨겨져 있었다. 당사 성냥 한 통에 쌀 1되로 통용되었으니 폭리를 취한 정도가 가관이었음을 알 수 있다.

노래를 보면 알 수 있듯 열악한 환경과 저임금에 시달리던 어린 여공들은 궁핍한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치마 밑에 성냥 한 통씩을 훔쳐서 퇴근했다. 대부분이 빈민가 출신이었던 여공들은 하루 13시간 노동에 고작 60전의 품삯이 주어졌기 때문. 이로 인해 한국 최초로 노동기본권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소녀들의 투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1931년 8월 26일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조선인촌주식회사 공장 녀직공 1백70명 전부는 돌연 동맹파업을 단행하였다고 한다. 석냥 껍질 1만개를 부치는데 1원 70전씩 주던 품삯을 돌연 1할 감할 뜻을 발표한 나머지...(후략)"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블로거 '연비'는 "성냥공장 아가씨 이전에 성냥공장 여성노동자가 있었다.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일용판매직 성냥팔이 소녀보다 먼저 성냥공장 아가씨가 있었다"라고 단언했다. 이어 그는 "그리고 성냥을 켜듯 여성노동운동의 불을 댕겼다. 인천 성냥공장의 노동투쟁은 프로메테우스의 불 그 자체였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천 성냥공장 불은 대체 누가 질렀는가

'화' 공연 중 취조실의 인화 무대 모습
 '화' 공연 중 취조실의 인화 무대 모습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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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마추어소극단에서 시작해 그 유명세를 더해가고 있는 인천 극단 <십년후>는 6월 8일부터 10일까지 인천 성냥공장아가씨를 소재로 한 연극 '화'를 계양문화회관 무대에 올린다. 연극 '화'는 인천 항구 연극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고, 30회 전국연극제 인천 대표 출품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송용일 연출가는 이번 작품에 대해 성냥공장 여공들의 애환과 설움, 생사의 몸부림 등을 담았다고 전했다. 그는 "인천하면 성냥공장이 회자되는 것은 맨 처음 인천에 성냥공장이 생겼다는 것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겠지만 당시 여공들 즉, 황 냄새를 맡아가며 인천의 경제발전을 이룬 근로자들의 애환이 담긴 상징성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고 설명했다.

송 연출가는 이어 "작품에 등장하는 여공은 70~80년대 우리 경제의 축을 받치고 있던 근로자들의 모습이요, 우리 누이나 어머니의 모습"이라며 "이들의 화가 한계점에 다다랐을 때 나타나는 폭발성은 우리사회를 뒤흔들 만큼 엄청난 힘이 있었고, 결국 이들의 희생이 한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작품은 송 연출가가 언급했던 단순한 성냥공장 공간의 의미를 넘어 그 안에서 생사의 몸부림으로 처절하게 삶을 이어가야 했던 여공들의 슬픈 자화상을 그려낼 예정이다. 그리고 당시 기계처럼 움직이며 분노의 '화'의 불을 지펴야만 했던 내면의 심리장치를 보여줄 계획이다.

작품은 40년 전의 암울한 시대상황을 통찰하며 성냥공장의 부도, 여공들의 삶을 위한 절규, 공천에서 탈락한 사장의 분노 등을 담아낸다. 그러며 당시 인천의 성냥공장이 화재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점철된 것에 대한 근원적 답변을 관객에게 요구한다.

"인천 성냥공장의 불은 누가 질렀습니까?"

덧붙이는 글 | 극단 십년후 : 대표 최원영, 연출 송용일, 작가 고동희, 안무 천군, 무대미술 이상수, 분장 박영화, 조명 박진수-이순양, 음향 서지훈.
출연진 : 김세경, 이강덕, 신수경, 박주연, 권혜영, 이애라, 공민규, 서지훈, 황태호, 황미선, 정도형, 이만복, 김기홍, 인자은, 박설희, 이혜미



태그:#인천 성냥공장, #성냥공장아가씨, #극단 십년후, #프로메테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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