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당시 가장 뜨거운 사회 이슈는 단연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이었다.

당시 참여정부는 연간 상영일수의 40%, 146일인 스크린 쿼터제의 적용 일수를 20%인 73일로 줄이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상황이었다. 한미 FTA 협상 개시를 위해 미국이 제시한 4대 선결조건 이행을 위해서였다. 영화계는 즉각 반발했고 안성기, 문소리 등을 포함한 국내 유명 영화인들이 릴레이 1인 시위에 참가했다. 

영화계와 정부의 줄다리기 이후 스크린 쿼터제는 2006년 2월 협상 개시부터 2011년 11월 비준 동의안 통과에 이르기까지, 한미 FTA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이슈로 다뤄졌다. 한미 FTA협상과 비준까지의 만 5년 동안 스크린 쿼터제는 한국 영화산업 보호를 넘어 문화주권을 상징하는 제도로 인식됐다.

수많은 영화배우들이 거리로 나가 1인 시위를 하고 매체에 나가 스크린 쿼터제 사수를 공론화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이 공론화의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물론 영화산업 자체가 가진 시장규모와 파급력이 공론화에 도움이 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십니까. 한국 가요산업에도 쿼터제가 있다는 사실!

 7일 오전 이해찬 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스크린쿼터를 146일 이상에서 73일 이상으로 축소하는 내용의 영화진흥법 시행령개정안을 의결된 가운데 '스크린쿼터 사수와 한미FTA저지를 위한 범국민대책위'는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무회의 결정을 규탄했다. 영화배우 정진영씨와 최민식씨가 기자회견에 참여하고 있다.

▲ 배우 최민식 2006년 3월, 스크린쿼터를 146일 이상에서 73일 이상으로 축소하는 내용의 영화진흥법 시행령개정안을 의결됐다. '스크린쿼터 사수와 한미FTA저지를 위한 범국민대책위'는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무회의 결정을 규탄했다. 사진은 당시 기자회견에 참여한 배우 정진영(왼쪽)과 최민식(오른쪽)의 모습. ⓒ 권우성


여기서 우리가 흔히 잊고 지내는 문제가 있다. 한미 FTA비준안 통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건 비단 영화 산업뿐만이 아니라는 것 말이다. 독자는 알고 있었는가? 한국의 가요 산업에도 쿼터제가 있었다는 사실.

좀 어렵지만 법안 원문을 보도록 하자. 방송법 71조(법률 제11199호) 제2항에는 이러한 문구가 적혀있다.

②방송사업자는 연간 방송되는 영화·애니메이션 및 대중음악 중 국내에서 제작된 영화·애니메이션 및 대중음악을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일정한 비율 이상 편성하여야 한다. (중략)

쉽게 말해 1년에 대중음악을 방송하는 시간이 총 100시간이라 한다면 방송국들은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 이상을 가요로만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법률이 여기서 말하는 '일정 비율'은 방송법을 이행하기 위한 방송법 시행령(대통령령 제23514호)75조 2항에 구체적으로 명시돼있다. 다음은 그 시행령 원문이다. 

②방송사업자는 법 제71조 제2항 본문의 규정에 따라 연간 방송되는 영화·애니메이션 및 대중음악 중 국내에서 제작된 영화·애니메이션 및 대중음악을 다음 각 호의 범위 안에서 방송통신위원회가 고시하는 비율 이상 편성하여야 한다. (중략)

1.영화 : 당해 채널의 전체 영화방송시간의 100분의 20 이상 100분의 40 이하
2.애니메이션 : 당해 채널의 전체 애니메이션방송시간의 100분의 30 이상 100분의 50이하
3.대중음악 : 당해 채널의 전체 대중음악방송시간의 100분의 50 이상 100분의 80 이하

K-POP 보호 방벽...한미FTA 발효로 낮아진다

 < K-POP로드쇼>의 모스크바 편에 출연한 샤이니.

< K-POP로드쇼>의 모스크바 편에 출연한 샤이니 ⓒ MBC



원문에서 보듯 대중음악의 경우 총 음악을 방송하는 총 방송 편성시간의 50∼80% 사이에서 의무 비율을 대통령령에 의거해 정할 수 있게 돼있다. 영화의 의무편성 비율이 20∼40% 애니메이션이 30∼50%인데 비해 굉장히 강한 수준의 보호 조치다.

이러한 정부의 가요 보호조치가 올해 3월 발효되는 한미 FTA 발효에 맞춰 완화된다. 한미 FTA 협정문인 [부속서 Ⅰ(서비스/투자) 대한민국의 유보목록] 51페이지에서 가요의 대중음악 의무편성 비율에 대한 조항에 따른 것이다. 협정문 원문을 보자.

지상파방송사업자가 다음 분야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경우, 다음과 같이 연간 전체 편성물 중 일정 비율만큼 대한민국 콘텐츠를 편성하여야 한다.

가. 애니메이션: 연간 전체 애니메이션 방송시간의 100분의 45
나. 영화: 연간 전체 영화 방송시간의 100분의 25, 그리고
다. 음악: 연간 전체 음악 방송시간의 100분의 60

종합유선방송사업자, 위성방송사업자, 또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가 최소한 약간의 음악 프로그램이라도 편성하는 경우, 채널별로 연간 전체 음악 방송시간의 100분의 60만큼 대한민국 콘텐츠를 편성하여야 한다.

방송법 시행령과 비교하면 애니메이션은 50%에서 45% 영화는 40%에서 25% 대중음악부문의 경우 최대80%에서 60%로 의무 편성시간이 축소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시행령에서 규정한 범위 내의 수치이지만, FTA 발효 후 역진방지 조항이 적용될 경우, 정부가 행사할 수 있는 나머지 20%의 증편 권한은 사실상 축소됐다 볼 수밖에 없다.

가요 쿼터제 존재,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으로 '돌출'

 영화배우 문소리씨가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앞에서 스크린쿼터 축소에 항의하는 영화인 릴레이 1인 시위에 참여했다.

▲ 배우 문소리 배우 문소리는 2006년 2월 스크린쿼터 축소에 항의하는 영화인 릴레이 1인 시위에 참여했다. ⓒ 권우성

가요에 쿼터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나마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공교롭게도 영화계에 의해서였다.

2006년 2월 13일 광화문에서 스크린 쿼터제 사수 1인 시위를 하던 영화배우 문소리는 "영화뿐만 아니라 방송은 80%, 라디오는 60% 자국이 제작한 것을 방송하도록 하는 쿼터제가 있다"며 "스크린쿼터는 40%다. 영화인들만을 위한 이기주의가 아닌 자국의 문화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라고 주장했었다. 

당시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지영 감독도 "왜 영화만 쿼터로 보호받으려 하느냐는 논리가 있다"며 "하지만 방송법에 한국 대중음악을 보호하는 쿼터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문화산업은 보호 장치가 없는데 유독 영화계만 스크린쿼터를 버리지 못한다는 일부 언론사의 사설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기 위한 근거로 가요 쿼터제를 예시로 든 것이다.

작년 11월 한미 FTA 비준안이 통과된 직후 각 분야의 문화 콘텐츠 생산 업체들은 저마다 우려의 뜻을 나타냈었다. 영화계와 애니메이션 제작 업체들은 할리우드 배급사들의 공격적인 투자와 배급망 장악을 우려했고,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들은 강화된 지적재산권 규정을 우려했다.

그럼에도 왜 음악계는 조용한가?

축소된 스크린쿼터로 인해 영화 제작업체들은 2006년부터 이미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다. 쿼터제 축소와 저작권 강화 모두 국내 음악 산업과도 직결되는 요소들이다. 그럼에도 음악계가 쿼터제 축소에 대해 이렇다 할 우려 성명하나 발표하지 않은 것은 왜일까.

다음달 3월이면 한미 FTA가 정식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 가요의 방송 의무편성 비율이 20% 줄어든다고 했을 때, 그것이 음악 산업 전반에 미칠 파급력이 어떤 것인지를 당장 가늠하기란 어렵다.

다만, 이 협정문이 새로 가요계에 데뷔하는 신인들에게 큰 부담이 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유추해 볼 수 있다. 팝음악이 방송에서 차지할 자리가 넓어진 만큼, 신인들의 홍보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인디 레이블 출신의 뮤지션들이 메이저 음악계에 진출해 자신을 알릴 가능성은 그 이상으로 좁아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가요계는 왜 한미 FTA에 대해 반대하지 않으냐"는 유치한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저작권 강화와 가요의 방송 의무편성 쿼터 완화가 가요계에 줄 영향력에 대해 가요계 스스로가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지가 의문이다. 영화계가 2006년부터 스크린 쿼터제 축소와 관련해 찬성이든 반대든 여러 차원에서 사안을 공론화하고 내부적으로 여러 차례 토론을 해왔던 모습과는 사뭇 대비된다.

가요가 팝을 이길 수 있을까...정말? 이 상태로?

 10월 15일 저녁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1아시아송페스티벌에서 슈퍼주니어가 화려한 춤과 함께 열창하고 있다.

▲ 슈퍼주니어 지난 2011년 10월 대구에서 열린 2011아시아송페스티벌 당시 슈퍼주니어가 공연을 펼치는 모습. (자료사진) ⓒ 이정민



미국 자본과 뮤지션들을 상대로 자신감이 넘치는 탓일까. 음악 산업에 낀 주식 거품, 아이돌 위주의 음악 시장과 방송 - 기획사간 카르텔에 대한 개선 의지는 요원한 가운데, 가요계는 이르면 다음 달, 미국 음악계와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한다.

이제 그들이 가진 자신감이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어떤가 당신의 생각은. 가요가 팝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이 상태로 말이다. 

한미 FTA 스크린쿼터 K-POP 문소리 대중가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