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가계부와 통장 그리고 각종 생활비 영수증
 가계부와 통장 그리고 각종 생활비 영수증
ⓒ 최유진

관련사진보기


해마다 1월이 되면 사람들이 결심하는 것 중 하나가 가계부 쓰기다. 특히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 비어가는 통장잔고와 늘어나는 마이너스 통장 잔액을 쳐다보며 "그래 올해는 가계부 꼭 써봐야 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가계부를 쓰면 무엇이 좋을까? 일단 돈 씀씀이를 기록하면, 평상시 지출을 긴장하게 만들어 저절로 소비가 줄어드는 효과를 낸다. 어디에 얼마를 언제 쓰는지 알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돈 모으기를 계획하게 되어 빚을 발생시킬 가능성도 줄어든다.

남편 또는 아내에게 내가 얼마나 알뜰하게 살림을 하고 있는지 자랑할 수도 있을 것이요, 아이들에게는 돈 관리 잘하는 경제선생님이 될 것이다. 이렇게 가계부를 쓰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크고 다양하다.

그러나 이걸 몰라서 가계부 못 쓰는 건 아니다. 게으름과 귀차니즘은 가계부를 멀리하게 만드는 단골 핑계다. 또 써보니, 마이너스 가계부라 들여다 보면 화나서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혹은 신용카드 청구서만 봐도 돈 씀씀이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렇듯 가계부를 안 쓰는 이유도 쓰는 이유만큼 많다. 주변에 가계부를 쓰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것만 봐도 꾸준히 가계부를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가계부를 돈을 절약하는 수단으로만 본다면 가계부 쓰기는 어렵다, 아니 고통스럽다. 돈을 아꼈을 때, 소비의 유혹을 참았을 때는 기쁘고 그런 내가 대견하다. 반대로 돈을 허투로 썼다는 생각이 들면 자괴감이 들고 불편하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소비의 유혹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가계부를 쓰다보면 대견하기보다는 불편한 감정이 훨씬 더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만 가계부를 쓰면, 나는 소비 유혹에 잘 넘어가는 사람,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든다. 점점 더 가계부 쓰는 것이 싫어지게 된다. 이렇게 의지 박약한 나를 가계부를 통해 자꾸 확인할 바에야 차라리 가계부를 덮고 속 편히 살자, 라는 결론에 스스로 이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발생하는 자연스런 현상이자 반응이다. 돈을 절약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가계부는 이렇게 지속되기 어려운데, 이는 당연한 일이다.

가계부는 당신에게 말을 한다

가계부가 숫자만 빼곡히 적힌 노트에 불과하다면 가계부 쓰는 것은 재미없다. 그러나 가계부를 쓰는 사람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가계부의 숫자들은 당신에게 끊임없이 말을 하고 있다. 그것도 당신이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던져주고 있다. 바로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이다.

어떻게 가계부가 나를 보여줄까? 가계부는 돈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돈을 쓸 때 사람들은 당연히 자기 마음이 가는 곳에 돈을 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이번 달 스키장 가는 횟수를 줄이고 그 돈을 저축하는 것이 이성적으로는 맞는 판단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 마음 가는 곳이 스키장이라면 아마도 거기에 돈을 쓸 것이다.

지출에서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다면 나는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이 우리 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부모님이나 경조사에 들어가는 돈이 많다면 사람 노릇하며 사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저축을 포기하고 스키장을 선택한 것이 과연 잘못인가 하는 점이다. 내가 마음이 가는 곳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내가 행복한 것이다. 무조건 아껴 쓰는 것만이 올바른 가치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돈 쓰기의 가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스키를 타는 취미활동이 나의 행복을 증진시키고 내 삶을 풍요롭게 한다면, 마땅히 거기에 돈을 써야 한다. 행복은 적금처럼 은행에 맡겨놓았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찾아 쓸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내가 누리고 싶은 행복도 미래의 행복만큼 중요하다.

행복하기 위해 쓰는 돈은 몇 퍼센트 일까?

돈봉투(자료사진).
 돈봉투(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우리 집은 어떻게 돈을 쓰고 있는지 한 번 분석해 보자. 기본 생활비, 즉 먹고 살기 위해 꼭 필요한 돈인 식비와 주거 관련 비용(월세, 전기세, 난방비 등)이 있다. 자녀교육비와 차에 들어가는 돈도 있다. 부모님이나 가족에 지출하는 금액 소위 사람 노릇 하기 위한 비용도 만만치 않다. 더불어 내가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위해 쓰고 있는 돈, 이건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취미활동, 어떤 사람은 책이나 배움, 어떤 사람은 문화생활을 그 범주에 넣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의류, 신발, 미용처럼 멋을 내기 위한 지출도 있다.

재무상담을 받은 한 부인은 남편의 취미생활 지출에 불만이 많았다. 알뜰한 그녀는 그 지출내역을 꼼꼼히 기록해서 남편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돈이 많이 든다는 사실을 은연 중에 강조했다. 취미활동을 그냥 지출이라고 본다면 줄이고 싶다는 부인의 생각은 당연하다. 그러나 남편 취미활동을 풍요로운 삶을 위한 항목에 집어 넣고 보니 부인의 생각이 달라졌다. 이 돈은 무조건 줄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조금 더 행복하기 위해 써도 되는 돈이 된 것이다. 같은 지출이라도 어떤 범주에 넣느냐에 따라 판단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또 한 가정은 남편이 가족에게 지출하는 비용이 커 부인의 불만이 많았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가족에 쓰는 돈은 사람 노릇하며 살기 위한 돈이라는 의미도 된다. 남편에게는 이 가치가 무엇보다 소중할 수 있다. 적금보다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조건 쓰지 말아야 한다는 프레임에서 볼 것이 아니라 남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어디에 돈을 쓰면 가장 행복할까? 가계부가 답을 주다

그러나 우리 집 수입은 뻔히 정해져 있다. 어디에 얼마의 돈을 배분해야 우리 집이 가장 만족할 수 있을까의 문제가 결국 돈 관리의 핵심이 된다. 위에 언급한 지출(생활비, 가족, 교육, 차 등)에 우리 집 수입의 몇 %를 각각 할당할 것인가를 결정해 보자.

어떤 지출은 나쁘고 좋다라는 일반적 가치기준이 아니라 내가 중요하고 하고 싶다고 생각되는 것에 더 많이 배분하면 된다. 가족지출이 너무 많다면 나를 위한 지출을 새롭게 만들어 볼 수도 있다. 문화생활지출이 내 삶을 행복하게 해준다면 과감히 늘려보는 것도 좋다. 자녀 교육비를 늘였다면 덜 중요한 다른 지출을 줄인다.

여기서 가계부는 이렇게 배분된 예산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수단으로써 의미가 있다. 내가 생각했던 기준이 맞는 건지 확인하는 방법으로써 가계부 쓰는 것은 재미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는 수단으로 가계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쓰면서 돈을 많이 썼다라는 자괴감이 들지 않는다. 절약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돈을 더 행복하게 쓸 지를 고민하게 되니 돈 쓰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가계부는 돈을 절약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가계부를 바라보자. 가계부는 절약을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더 잘 쓰고, 자기를 발견하기 위한 도구이다. 그래서 내가 진짜 고민할 지점은 "어떻게 돈을 덜 쓸까"가 아니라 "어디에 돈을 쓰면 가장 행복할까"이다. 바로 가계부가 그 고민에 답을 말해 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지영 기자는 현재 (사)여성의일과미래 재무상담센터에서 경제교육 강사와 재무상담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가계부, #돈관리, #돈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