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헤일리-말콤 엑스
무미아 아부 자말-사형수 감방으로부터의 인생
체 게바라-게릴라 전투
하워드 진-오만한 제국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이들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위해서 위의 책들을 추천한다. 급진파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라고? 그렇지 않다. 전 세계에서 가장 '불온한' 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이하 RATM)이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더불어 록음악의 역사를 바꾼 동명 앨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역시 발매 20주년을 맞았다. 

앨범의 표지는 지금 봐도 충격적이다. 가부좌를 틀고 있는 스님의 몸이 불타고 있는 사진은 보는 이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너무 충격적이라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마치 격투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의 한 장면같기도 하다.

무시무시하기 그지없는 이 앨범 표지는 실제 상황을 촬영한 것이다. 1963년 월남전 당시 남베트남의 고딘 디 엠 정권의 퇴진을 요구한 틱광득 스님이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소신공양을 행하는 모습이다. 당시 이를 지켜본 외신 기자가 이 장면을 촬영해 사진으로 남겼다.

충격적인 1집 앨범 표지 … 혁명적인 '크로스오버'

 RATM의 1집 표지 앨범

RATM의 1집 표지 앨범 ⓒ sony music


이들의 1집 앨범이 주는 음악사적 파장은 이들의 앨범 표지같이 충격적인 것이었다. 단순히 이런 무지막지한 표지의 앨범이 빌보드 앨범차트 상위권을 기록해서만은 아니다.

그들은 록과 힙합을 섞은 앨범을 세상에 내놨다. 로큰롤을 만든 엘비스 프레슬리가 흑인의 블루스와 백인의 컨츄리 뮤직을 섞었듯 말이다. 각 장르를 신봉하던 이들에게는 이 짓거리가 하나의 신성모독으로 비춰질 법한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반응은 폭발적이다. 

물론 이들은 최초가 아니다. 그 전에도 두 장르의 결합을 시도한 이들이 있었다. 1984년 발매한 런 디엠씨(Run DMC)의 동명앨범 수록곡 록 박스(Rock Box)가 원조라면 원조랄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앨범은 어디까지나 힙합에 기타 사운드를 추가한 정도의 영역 확장만을 의미할 뿐 그 이상은 아니다. 두 장르 간 결합을 시도한 것도 이 앨범에서 이 곡 하나뿐이다. 따라서 이 곡은 하나의 실험일 뿐 완성된 형태의 새 패러다임 제시로 보기는 어렵다. 물론 기존의 두 장르에 대한 선입견에 균열을 내 줬다는 점을 생각하면 절대 작은 업적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무튼 RATM은 런 디엠씨가 낸 균열을 통해 실험 단계에 머물던 록과 힙합의 결합을 완성형의 단계까지 끌어올리며 두 장르 간 결합의 모범적인 모델을 제시했다. 핵심은 각 파트의 명확한 역할분배에 있다. 날카로운 목소리의 랩과 두터우면서도 심플한 베이스라인은 힙합 특유의 리듬감을, 전자기타는 메탈에 가까운 강력한 디스토션(증폭) 사운드를 담았다.

이 시도는 반감될 수 있는 록음악의 파괴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동시에 리듬감은 배가됐다. 폭발적인 반응을 낳을 수밖에 없는 전략이었던 셈이다.

RATM이 리마스터 앨범을 발매하지 않는 이유

지금 들어도 이들의 1집 앨범 사운드는 전혀 세월의 흐름을 느끼기 어렵다. 특히 사운드의 공간감이 돋보인다. 드러머 브레드의 강한 드럼 사운드는 최첨단 프로그램으로 세련되게 다듬은 현재의 드럼 사운드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브레드의 펑펑 터지는 드럼 연주의 강한 공명감은 각 악기 파트와 베이스에 적절한 거리를 두며 안정적인 공간감을 부여한다.

이들의 앨범을 처음 듣는다면, 이들이 왜 음질을 개선한 리마스터 앨범을 따로 발매하지 않는지 알게 될 것이다. 특히 앨범의 2번 트랙 '킬링 인 더 네임'(Killing In The Name)의 도입부 전주는 펑펑 터지는 베이스 드럼의 압도적인 펀치감을 십분 선사한다.

록과 힙합을 넘나드는 티미(Timmy. C)의 베이스 연주는 밴드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다. 요란하지 않고 굵직굵직하며 심플하기까지 한 베이스라인은 곡의 흐름 곳곳에 포인트를 주며, 원 기타 체제의 공백을 적절히 메우고 있다. RATM의 첫 번째 싱글이었던 불릿 인 더 헤드(Bullet In The Head)와 피스트풀 오브 스틸(Fistful Of Steel)에서 그의 센스 있는 힙합 스타일의 베이스라인을 십분 느낄 수 있다.  

물론 사운드의 주축이 보컬인 잭 데 라 로차(Jack de la locha)와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Tom Morello)라는 데 이견을 갖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90년대의 지미 핸드릭스라는 별칭에 걸맞게 모렐로의 기타솔로 연주는 굴곡 넘치는 싱글 플레이의 정석을 보여준다. 각 곡 전주에 배치된 기타의 메인리프는 공격적이면서도 리듬감이 살아있다. 음이 이어지는 부분과 뚝뚝 끊어야 할 리듬커팅 부분을 적당히 버무렸기 때문이다. 2년 뒤에 데뷔한 뉴메탈 밴드 콘(Korn)의 물 흘러가듯 이어지는 메인리프와는 극명히 대조된다.

더불어 음악 중간 중간에 들리는 효과음들은 이 앨범의 또 다른 들을 거리다. 이 앨범에는 신디사이저나 샘플러 같은 인위적 장비들이 일체 들어가지 않았다. 모든 효과음은 순전히 모렐로의 기타에서 탄생한 소리들이다. 3번 트랙 테이크 더 파워 백(Take The Power Back)의 도입부에서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소리마저도 순수한 기타 사운드로 만들어낸 효과음이다.

최초로 뉴욕 증권거래소 셔터를 내린 밴드

한편 잭의 랩은 밴드의 위에서 설명한 각 파트 중에서 가장 예리하고 공격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온한 밴드라는 수식어는 모두 그의 가사 때문이다. 사형을 선고받은 인디언 출신 흑인 인권운동가 레오너드 팰셔를 석방하라는 주제를 담은 '프리덤'(Freedom), 진짜 적은 아메리칸 드림을 외치는 위선자들이라 일갈하는 '노 유어 에너미'(Know Your Enemy)등은 듣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후려친다.

극도로 정치적인 사안의 주제를 분노 섞인 랩으로 내뱉는 것만큼 멋진 선동이 있을까. 그의 격정적인 선동을 보면 자연스럽게 히틀러와 체 게바라가 떠오른다.

RATM의 또 다른 음악사적 업적이 하나 더 있다. 대중음악을 바라보는 평론가들의 관점에 대해 전혀 새로운 틀을 제시한 것이다. 그들은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대중음악을 바라보는 기존의 잣대에 정치사회적 해석의 틀이 개입될 수 있음을 실천적으로 제시했다.

이들은 정규 앨범이 발매됨과 동시에 정치적 투쟁의 대상을 제시해왔다. 1집에서는 인디언 출신 흑인 인권운동가 레오나드 펠셔의 석방운동을, 2집은 티벳의 독립을, 3집은 사형선고를 받은 흑인 인권운동가 무미아 아부 자말에 대한 석방운동과 뉴욕 증권거래소의 셧 다운 (Shut Down)운동을 전개한 바 있다.

이들은 실제로 뉴욕 증권거래소의 셔터 문을 강제로 내려 닫다가 영업방해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RATM은 월가가 생겨난 이래 처음으로 뉴욕 증권거래소의 셔터를 내린 이들로 역사에 남았다. 2010년에는 기타 제조회사 콜트-콜텍에서 부당 착취당한 한국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국제적으로 연대하기 위한 콘서트에 참여해 자작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2012년, 아직도, 그들의 노래가 절실히 필요하다

역사상 가장 '정의로운' 이 밴드는 2001년 갑작스런 해체 후 2007년에 갑자기 재결합을 선언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들의 팬이라면 2007년 미국에서 열린 코첼라 록 페스티발에서의 환희를 지금까지 기억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의 노래는 이제 다시 울려 퍼질 수 있는가. 아쉽게도 지금의 RATM은 팬들의 기대를 점점 저버리고 있다. 재결합한지 만 4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새 앨범에 대한 소식은 루머조차 들리지 않고 있다. 해체한 해를 기준으로 하면 무려 10년 동안의 공백이다.

해방의 노래가 멈춘 10년 동안 세상은 진보했는가. 그들이 없는 동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국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발발해 20만이 넘는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 당시 에너지 공급업체인 핼리버튼의 CEO였던 딕 체니 부통령은 전후복구 사업 수주와 주가급등으로 전쟁기간 내내 수십억 달러를 챙겼다. 2008년에는 전 세계를 휩쓴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파산을 앞둔 와중에도 금융기업의 CEO들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지원된 공적자금으로 상여금을 뿌려대며 돈 잔치를 벌였다.

2012년인 지금은 미 제국주의와 이란의 독재 권력이 호르무즈 해협을 사이에 두고 전쟁 직전의 상황까지 치닫고 있다. 시리아에서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군인들에게 학살당하고 있다.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적 패권과 제3세계의 독재도, 99%에 대한 1%의 독점과 탐욕도 아직 달라진 것이 없다. 2012년, 세상은 RATM이 외친 것만큼 진보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들의 노래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유다.

RA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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