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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는 '스펙'이 낮은 사람에게 기회가 많지 않은 우리 현실. 하지만 자괴감에 빠지지 않고 노력을 소홀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가치를 나타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 끼를 발산할 수 있는 기회는 오는 것 같다.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온갖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인물에게 사람들은 감동을 하고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 따윈 상관없이 자신의 새로운 삶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도 그에 못지 않은 감동을 느끼고 더구나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기도 한다. 쉰 살이 될 때까지 사회생활을 전혀 해보지 못한 선봉순(52)씨가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녀를 처음 알게된 것은 2009년 10월, 내가 속한 도시농업단체에서 마련한 생태텃밭강사 교육에서였다. 교육에 참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40대 중반의 주부들이었고 대부분이 내세울 만한 이력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그 속에서 그녀는 50대에 접어든 자신을 사회생활의 경험이 전혀 없는 '동남아(동네에 남아도는 아줌마)'라며 수줍지만 밝은 웃음으로 소개했다.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공부의 시기를 놓쳐서 배우진 못했는데요. 지금의 남편을 만나 아들 둘 낳고 열심히 가정주부로 살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뭐라도 배우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아서 그냥 있었는데 친구의 권유로 신청을 해봅니다. - 선봉순씨의 자기소개서 중에서

 

컴맹 극복하느라 밤샘 한 기억... 눈물 '왈칵'

 

몇 달간의 교육과정이 마무리될 쯤, 개인별 과제발표를 하던 날 그녀가 눈물을 보였다. 과제를 하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이용해야 하는데 컴맹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들을 붙잡고 하나하나 묻고 배워가면서 새벽까지 과제논문을 만드느라 여러 날 고생했던 일들이 떠올랐고, 그런 일들을 해낸 자신에 대한 놀람과 벅찬 감동 때문이었다. 교육생들 모두가 몰랐던 사실에 대해서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학생 아들도 엄마가 첫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의 컴퓨터 바탕화면을 보기 쉽고 이용하기 편하도록 바꿔주었다.

 

드디어 교육을 수료하고 텃밭강사로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지만 그녀의 웃음 띈 얼굴은 갈수록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아이들 앞이라고는 하지만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민을 하던 그녀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단체의 사무국장에게 고민을 상담했고, 강사를 보조하면서 현장경험을 익혀보자는 제안을 받아들여 초등학교의 텃밭강사 보조로 시작을 하였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아이들과 소통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게 된 그녀는 한 달여 만에 본인이 수업을 이끌어가는 강사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수업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자다가도 일어나 메모하거나 만들기를 하는 등 열성을 보이기도 한다. 맏언니처럼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는 그녀를 동료들은 규모가 커진 강사단을 이끌 강사단장으로 추대하였고, 후배강사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용기를 북돋아주는 멘토 역할도 하고 있다.

 

강사활동 2년차인 올해는, 주로 수업을 나가는 어린이집 원장들과 스스럼없는 관계를 맺는 친화력과 아이들에게는 할머니 같은 자상함으로, 또한 수업준비를 완벽하게 하는 프로정신으로 스타강사로서 발돋움했다. 입소문을 타고 그녀에게 수업을 맡기고 싶다는 기관들이 생겨났다. 텃밭수업의 특성상 11월이면 전체수업이 종료되지만, 계속해서 수업을 해달라는 요청을 거절 못하고 겨울철 수업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모습에서 동료강사들은 놀라움과 감동을 받았다.

 

"내가 내 자신에게 박수를 치자"

 

그녀는 아이들 대상의 수업뿐만 아니라, 텃밭강사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다양한 분야에 소개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ㅅ보험사 직원들을 위한 강연회에도 다녀왔다. '동남아'라는 애칭을 지금도 쓰고 있는 그녀는 앞으로는 '해당화(해가 갈수록 당당하고 화려한 여자)'가 되고 싶다면서 얼마 전부터 노래교실를 다니면서 배운 노래실력을 뽐내기도 하고 사람들 앞에서 율동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나이 50에 처음으로 사회활동을 시작한 선봉순씨는 작고 소박한 삶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하고 노력하면서 행복을 만들어가는 평범한 이웃이다. 희망이 사라져가는 우리 사회에서 기회를 잃거나 주저앉으려는 사람들에게, "내 인생을 향해 내가 박수를 치면서 자신 있게 살아가라"고 말한다.

 

"요즘에는 누가 나를 위해 먼저 박수를 쳐주지 않는다. 내가 내 자신에게 박수를 치자. 그러면, 기분도 좋아지고 자기 자신감이 생긴다."

 

통계청 사회조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국민의 절반 정도는 현재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하층이며, 앞으로 높아질 가능성도 낮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매우 우울한 일이 아닐수 없다. 개인의 행복추구에 대해서 일정 부분은 국가나 사회가 뒷받침해줘야 하는 것이 맞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성취했을 때에 삶의 보람을 느낀다.

 

살다보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기회는 수도 없이 찾아온다. 청년들은 스펙이 적다고 좌절하지 말고, 중년들은 나이가 많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늦깎이로 사회활동을 시작한 '봉순언니'를 보면서 느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기사공모 '내가 뽑은 올해의 인물' 응모 글입니다.


태그:#박수, #텃밭강사, #희망, #사회, #친화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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