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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5일) 날씨는 매서웠다. 지하철에서 한참을 걸어 백범 김구 기념관을 찾아갔다. 1996년 북한의 식량난을 세상에 알리면서 북한동포돕기를 시작한 '좋은벗들'의 15주년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1996년 세워진 좋은벗들은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북한조사연구를 통해 북한 식량난의 참상을 파악해 2004년부터 <오늘의 북한소식>을 발행하고 있다. 또 새터민 정착지원을 위해 전국 15개 지역에서 자원 활동가들이 새터민을 직접 만나  남한사회의 적응을 돕고 있다. 새터민 자녀들을 위한 방과후 교실(사이숲 교실)도 진행하고, 새터민들과 함께 역사기행과 통일체육축전을 통해 남과 북이 하나되는 장도 마련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활동을 하는 좋은벗들을 나는 2008년 북한동포 돕기를 할 때서야 알게 됐다. 1997년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절 아사자가 300만 명이 넘었다는 그때는 정작 북한에 관심이 없었다. 2008년 법륜스님의 70일 단식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지 못했을 때에서야 비로서 나는 좋은벗들이 전하는 북한소식에 관심이 갔다.

 

올 여름에는 좋은벗들이 주최하는 '고구려 발해 역사기행'에도 다녀왔다. 말로만 듣던 북한의 뙈기밭을 직접 보았다. 아주 가팔라 사람이 똑바로 서있을 수 없는 산에 나무를 다 베어내고 밭으로 만든 뙈기밭. 너무 슬픈 산이었고, 슬픈 밭이었다. 북한이 매년 홍수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는 이유를 뙈기밭은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벼랑 끝에만 나무가 좀 남아있고, 그 외의 산은 나무가 없다. 도저히 산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 산 아래 뗏목을 타고 내려오는 북한 사람들을 강 건너에서 보면서 가슴에서 눈물이 났다. 통일이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절절히 느껴졌다. 

 

 

백범 기념관에는 300여분의 <좋은벗들>후원자분들이 오셔서 15주년을 축하해주셨다. 법륜스님께서 후원인들에게 해주신 인사말은 무척 인상 깊었다.

 

"우리는 3,4년만 (북한의) 굶주림을 해결하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직장 다니는 사람을 그만두게 하고, 대학 등록금도 휴학하고 내게 했는데 길게 갔습니다. 우리가(좋은벗들) 열심히 한 것이 아니고, 15년이 지났는데도 똑같은 문제로 다녀야 하는 것이 죄스럽습니다. 15년 동안 좋은 벗들에서 가장 수고하신 분은 중국 조선족 동포분들이십니다.

 

이분들이 없었다면 좋은벗들은 활동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두만강에 진을 치고 구호하고, 인터뷰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지 발표했고, 난민이 얼마나 있는지 통계를 냈습니다. 사랑 보따리, 생명 보따리를 주면서 이 분들이 말했습니다. '왜 우리는 이 좋은 일을 하는데 숨어서 숨기고 해야 하느냐'구요.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사심 없이 돕는데 죄지은 사람처럼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을 공개할 수가 없습니다. 중국 법으로 북한 난민을 돕는 일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 좋은벗들 사람은 죽어가면서까지 합니다. 좋은벗들에게 북한소식을 전하는 북한 사람은 생명을 걸고 합니다.

 

그 생명의 희생까지 거쳐서 그들의 고통과 신음소리가 세상에 알려지고 있습니다. 북한 동포들이 울부짖고 죽어도 안 들립니다. 우리는 그들의 입이 되어 전하고 있지만 그 분들을 밝힐 수 없습니다. 이 분들처럼 목숨 건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좋은벗들은 없었을 겁니다. 작은 힘들이 모이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떤 분들은 <좋은벗들>이 북한 식량난을 과장한다고 합니다. <좋은벗들>은 북한식량난을 왜곡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면 어느 한쪽의 이념에 치우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활동을 하면서 오해를 많이 받았습니다. 한쪽에서는 북한에 퍼준다고 친북인사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북한 난민을 구호하자니 반북활동을 한다고 평가합니다. 장기수 송환문제와 북한포로 문제는 서로 반대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분단에서 비롯된 피해일 뿐입니다. 치유와 화해의 관점에서 보면 이 문제는 똑같습니다."   

 

북한 대량 아사 때 부모를 잃은 한 어린 탈북자는 좋은벗들의 도움으로 남한사회에 정착해 어른이 되었다. 그에게 좋은벗들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좋은벗들은 내게 아버지요, 희망'이라고 했다. 통일이 되면 북한에 가서 통일일꾼이 되고 싶다고도 했다.   

 

<좋은벗들> 15주년 행사를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은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자주 훔쳐야 했다. 북한에서 자식이 먼저 죽고, 탈북하다 딸이 공안에게 붙잡혀간 사연을 들으면서 우리는 울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 행사에 온 후원인 한 분은 "연말이라 술마시는 자리가 있었지만 안가고 여기에 왔는데 오기를 잘했다. 나의 작은 도움이 북한동포에게 희망이 된다는 말씀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동안 통일이나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앞으로는 선거때 통일에 관한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인을 눈여겨 보고 뽑아야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일부에서는 북한동포에게 인도적 지원을 해야한다는 법륜스님을 친북인사라 한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북한 식량난을 과장하고, 북한 인권을 말한다고 반북인사라 한다. 법륜스님께서 좋은벗들 후원인들에게 한 마지막 당부는 이 양쪽의 평가나 비난에 대한 답이 아닐까 싶다.  

 

"우리마저 없다면 북한동포들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힘들더라도 내가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이고 등불이라는 생각으로 후원과 활동 부탁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좋은벗들>이 발행하는 '오늘의 북한소식'을 받아보시고 싶은 분은 goodfriends@jungto.org 로 이메일 주소를 보내주시면 매주 수요일에 보내드립니다. 


태그:#좋은벗들, #법륜스님, #뙈기밭, #통일, #북한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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