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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 있으며 임금이 신하들과 국사를 논하던 편전이다
▲ 사정전 경복궁에 있으며 임금이 신하들과 국사를 논하던 편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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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스무 나흘 날. 임금이 장가가는 날이다. 혼례를 치른 세자가 왕위에 등극하는 일은 있었지만 용상에 앉아있는 임금이 가례를 치르는 것은 개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이렇게 경사스러운 날. 만백성의 경하를 받아야 마땅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국상중이기 때문이다.

백악에서 내려오는 찬바람이 매섭다. 아직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한 겨울이다. 칼바람 마다하지 않고 늘어선 문무백관의 경하를 받으며 면목을 갖춰 입은 임금이 어좌에 올랐다. 효령대군과 호조판서가 앞으로 나아갔다. 사정전 합문 밖에 시립하고 있던 전교관이 아뢰었다.

"왕비를 봉영하라 사자에게 명하소서."

판 내시가 환시 2명을 대동하여 교서함을 받들고 들어왔다. 내직별감이 교서함을 받아 전교관에게 건네주고 부복했다.

"교서가 있으니 받으시오."

전교관이 칭(稱)하자 사자 효령대군이 꿇어앉았다.

"효령대군 이보와 호조판서 조혜에게 명한다. 왕비를 봉영하라."

전교관이 교서함을 받아 부복하고 있던 효령대군에게 내려주었다. 봉례랑의 인도에 따라 밖으로 나온 사자가 교서함을 가마에 모셨다. 앞에서 세장(細仗)과 고취(鼓吹)가 인도하고 교서를 실은 가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뒤를 사자 이하 관원이 뒤따랐다.

편액
▲ 사정전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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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일행이 왕비 집에 도착했다. 허나, 이제는 낳고 자랐던 송현수의 집이 아니다. 사가에서 자란 여자가 궁에 들어가 내명부 수장노릇을 하려면 궁중 법도를 익히고 배워야 한다. 궐에서는 말 한마디, 걸음걸이 하나 까지도 다르다. 책비를 마친 왕비는 효령대군 사저에 들어가 왕실 법도를 배우고 있었다.

뿐만 아니다. 후궁으로 간택된 예원군사 김사우의 딸은 숙의로 봉해져 밀성군 이침의 집에서 왕실법도를 익히고 있었고, 전 사정 권완의 딸 역시 숙의로 봉해져 대사헌 권준의 집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왕비를 시종하여 궁으로 들어가기 위해 효령대군 집에 집결하여 대기하고 있었다. 사자 효령대군은 자기 집에서 왕비를 모셔가는 입장이 되었다.

효령대군 사저는 사람으로 넘쳐나고 골목길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임금의 누이 경혜공주와 문종 후궁 양씨 소생 경숙옹주는 물론 종친과 문무백관 1품 이상의 부인들이 총 출동하여 효령대군 사저로 모여들었다. 왕비를 봉영하기 위해서다. 흥인문 밖 효령대군의 저택은 말 그대로 잔칫집이었다.

궁중법도 교육장 효령대군 사저는 잔칫집 분위기

말에서 내린 사자가 막차에 들어가 교서를 진열했다. 뒤이어 경창부 소속 관원들이 대문밖에 의장(儀仗)을 도열했다. 사복시 윤은 왕비가 타고 갈 가마를 대문 밖에 대기하고, 6상궁 이하 여관(女官)들은 내문에 들어가 시위했다.

적의(翟衣)를 갖춰 입은 왕비가 내문 밖 사당 앞에 섰다. 그 뒤에 조복을 갖추어 입은 송현수와 그의 부인이 배석했다.

"신 효령대군 이보는 교서를 받들어 왕비를 모시려 합니다."

정사 효령대군이 정중하게 읍했다.

"신(臣)이 삼가 전교를 받들겠습니다."

송현수가 나아가 네 번 절하고 북향하여 꿇어앉았다.

"정사 효령대군과 부사 호조판서가 예를 갖추어 왕비를 맞이하게 한다."

교서 선포를 마친 효령대군이 송현수에게 교서를 건네주었다. 송현수가 뒷걸음으로 물러가 교서를 좌우에게 주고 그대로 북향하여 꿇어앉았다. 부사로부터 기러기를 전해 받은 효령대군이 송현수에게 주었다. 송현수가 기러기를 받아 좌우(左右)에게 주고 북향하여 섰다.

"주상 전하의 명을 받아 사자 효령대군이 교서를 선포하고 예를 갖추어 맞이하시므로 외람되게 소신이 대례를 받드니 송구하고 두렵습니다. 삼가 옛날의 전장을 이어받아 엄숙히 전교(典敎)를 받들겠습니다."

낭독을 마친 송현수가 전교관에게 전함을 건네주었다. 전함을 받든 사람이 먼저 나가고 그 뒤를 봉례랑의 인도에 따라 사자가 나갔다. 뜰 서쪽에 서서 국궁(鞠躬)하고 서있던 송현수는 전함이 집을 빠져 나갈 때 까지 허리를 구부리고 서있었다. 이어 상궁이 왕비를 인도하여 배위(拜位)에 나아갔다.

북쪽을 향하여 네 번 절을 올리는 왕비. 궁중혼례 재현 현장에서
▲ 국궁4배 북쪽을 향하여 네 번 절을 올리는 왕비. 궁중혼례 재현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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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 절하시오."

상의(尙儀)가 계청했다. 왕비가 북쪽을 향하여 네 번 절하고 일어섰다. 송현수가 왕비 가까이 다가갔다.

"경계하고 공경하여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명령을 어기지 말지니라."

아버지로서 마지막 당부다. 이 순간이 지나면 이제부터는 왕비와 신하다. 하대는 이것으로 끝이다. 왕비 어머니가 서쪽 계단 위에서 왕비의 옷깃을 여며 주고 수건을 매어 주었다.

"힘써 공경하고 명령을 어기지 말지니라."

어머니 민씨가 왕비의 옷깃을 가다듬어 주었다. 대견스럽고 아쉽다. 이제 떠나가면 품속에서 자랐던 딸자식이 아니다. 한 나라의 국모가 되고 왕비와 신하로 신분이 갈린다.

왕비가 가마에 올랐다. 앞에서 상궁이 인도하고 6상궁 이하 여관(女官)이 그 뒤를 이었다. 가마가 대문 밖에 나갔다. 기다리던 사자 일행이 차례대로 말을 타고 왕비의 가마를 뒤따랐다.

경복궁 남쪽 정문이다.
▲ 광화문 경복궁 남쪽 정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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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짙어가는 저녁. 광화문을 통과한 왕비의 가마가 사정전에 도착했다. 상침의 지시에 따라 산(繖)과 선(扇)을 든 여관(女官)이 앞뒤에 죽 늘어섰다. 왕비의 가마가 대차(大次) 앞에 이르렀다.

"내리소서."

상의가 계청했다. 왕비가 가마에서 내렸다. 처음 밟아보는 궁궐이다. 가슴이 설렌다. 궁궐의 땅은 폭신하고 부드러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여느 땅과 똑같이 딱딱했다. 상궁이 왕비를 인도하여 합문 밖 서쪽에 동향하여 섰다.

임금이 어좌에서 내려왔다. 상궁이 앞에서 인도하여 합문(閤門) 동쪽에 나아가 서향하여 왕비에게 읍(揖)하고 들어가게 했다. 스치면서 색시의 얼굴을 슬쩍 봤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어 자세히 볼 수 없었다. 혼례를 반대했지만 신부가 바로 눈앞에 있으니 보고 싶다.

"어떻게 생겼을까?"

호기심이 발동했다. 옆 눈으로 살짝 훔쳐보았지만 신부가 고개를 숙이고 있어 보이지 않았다. 아쉽다.

"고울까? 미울까?"

뒤돌아 다시 보고 싶지만 체신을 지켜야 한다. 일국의 임금이지 않은가. 마음을 고쳐먹으며 상궁의 안내를 따랐다. 임금이 중계로 올라가고 상궁이 왕비를 인도하여 뒤따라 올라갔다. 촛불을 쥔 사람들이 동쪽 계단과 서쪽 계단에 죽 늘어섰다.

임금이 왕비에게 읍(揖)하고 방에 들어가 동쪽에 앉았다. 이어 상궁의 안내를 받은 왕비가 동향하여 서쪽에 앉았다. 상식(尙食)이 소속 관원을 거느리고 진찬을 들고 들어와 임금과 왕비 앞에 차렸다. 상식 여관 2명이 주정(酒亭)에 나아가 술과 잔을 가지고 들어왔다. 술을 따른 여관 한 사람은 전하에게 드리고 한 사람은 왕비에게 올렸다.

임금과 왕비가 잔을 받아 땅에 뿌렸다. 땅의 신에게 제사지내는 의식이 끝나자 상식(尙食)이 탕식(湯食)을 올렸다. 임금과 왕비가 음식을 땅에 뿌렸다. 상의(尙儀)가 지신(地神) 예를 마쳤다고 아뢰었다.

"일어나소서."

상의(尙儀)가 계청했다. 상궁이 전하를 인도하여 동쪽 방에 들어가 면복을 벗고 평상복을 입도록 했다. 그 사이 왕비에게 돌아온 상궁이 왕비를 인도하여 악차(幄次)에 들어가 적의를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게 했다, 잠시 후, 상궁이 임금을 인도하여 악차에 들어왔다.

임금은 동쪽에 왕비는 서쪽에 마주 않았다. 그러나 말은 없었다. 왕비의 종자(從者)는 전하의 찬(饌)에 남은 것을 싸고, 전하의 종자(從者)는 왕비의 찬(饌)에 남은 것을 쌌다.

"안으로 드소서."

교태전
▲ 왕비처소 교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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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궁이 앞서고  왕비가 임금의 뒤를 따랐다. 교태전에 도착했다. 왕비의 처소다. 하늘의 기를 받아 왕자를 생산해야 하기에 지붕에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이하다. 방에는 상침(尙寢)이 욕석(褥席)을 설치하여 푸근하고 따뜻했다. 가운데에는 합환주가 차려져 있고 등촉이 각각 3개씩 켜져 있었다. 임금은 동쪽에 앉고 왕비는 서쪽에 앉았다.

상식(尙食)이 합환주를 따라 올렸다. 임금이 술잔을 입가에 가져갔다. 향이 좋다. 한 모금 마셨다. 이제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주정(酒精) 기운이 온몸에 퍼졌다. 상식이 안주를 집어 올렸다. 임금 앞에서 물러난 상식이 왕비에게 다가가 술잔을 올렸다. 왕비가 잔을 받아 입술을 살짝 적셨다. 솔잎 향과 국화 향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상궁이 6개의 등촉 중 하나만을 남겨두고 모두 껐다. 자욱한 어둠이 방안을 감쌌다. 상식이 먼저 나가고 상궁이 뒤따라 방을 빠져나갔다. 이제 방에는 임금과 왕비 단 둘이다. 그들은 임금과 왕비 이전에 남자와 여자다. 원했던 원치 않았던 부부로 연을 맺었고 오늘이 첫날밤이다.


태그:#경복궁, #교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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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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