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한 기자가 한미 FTA 관련 보도를 비판하는 글을 실명으로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가 상급자의 압력으로 삭제하는 일이 벌어졌다. 노조 측은 "공정방송협의회 개최를 회사에 요구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사측은 "의사소통 과정에서 빚어진 오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미 FTA 반대 집회서 취재 거부당한 MBC 기자, 사내 게시판에 글 올리자…

 

MBC 노동조합이 29일 발행한 민주언론실천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27일 MBC 보도국 소속의 한 카메라 기자는 한미 FTA 반대 집회에서 참가자들로부터 취재 거부를 당했다며 MBC의 한미 FTA 보도 방향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글을 '뉴스시스템 게시판'에 게재했다. 이 게시판은 평소 업무에 관련된 일뿐만 아니라 평소 기자들이 취재하며 느낀 소회나 일상적인 이야기들도 남기는 곳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글을 접한 문철호 보도국장은 글을 쓴 기자의 상급자인 부장을 불러 질책했고, 부장은 이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글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현재 해당 글은 뉴스시스템 게시판에서는 삭제되었지만, 같은 내용의 글이 MBC 인트라넷 자유발언대 게시판에 올려진 상태다.

 

 MBC 인트라넷 게시판에 올라온 한미 FTA 관련 보도 비판 글

MBC 인트라넷 게시판에 올라온 한미 FTA 관련 보도 비판 글 ⓒ MBC 노동조합

이에 대해 MBC 보도국의 한 관계자는 30일 <오마이스타>에 "해당 게시판은 기자들이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적을 정도로 자유롭게 글을 올리는 곳이었다"며 "예전에 익명게시판에 대한 요구가 있었을 때 '실명으로는 왜 못 올리냐'는 선배들의 의견이 있었는데, 이번엔 실명으로 글을 올리니 '게시판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격"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카메라 기자들이 28일 항의의 뜻을 전달했고, 그 자리에서 문철호 보도국장은 잘못을 인정했다"며 "이 이야기를 접한 보도국 내부의 분위기도 좋지 않다"고 전했다.

 

노조 측 "FTA 보도 방향 문제있다" - 사측 "한 쪽 기준으로만 판단 불가"

 

문철호 보도국장의 사과로 이번 일은 헤프닝으로 끝날 것으로 보이지만, MBC 내부에선 '한미 FTA 보도 방향에 문제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커져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한미 FTA 집회 현장에서 취재 거부를 겪은 기자들이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MBC 노동조합은 29일 민주언론실천위원회 보고서를 통해 한미 FTA 관련 보도에 문제를 제기했다. MBC 노동조합은 한미 FTA 비준이 통과된 22일 <뉴스데스크>가 집회 현장에 취재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뉴스가 방송되지 않았다는 점, 23·24·26일 경찰이 물대포를 동원해 집회 참가자를 강제로 해산시켰는데도 관련 보도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특히 26일에는 야당 의원들이 참석해 대규모 반 FTA 집회가 열렸음에도 불구, <뉴스데스크>는 스키장 개막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렸다며 "시청자들이 타사와 MBC의 뉴스를 비교하면서 품평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기자들끼리 하는 말로 '물 먹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MBC 노동조합이 지난 29일 발행한 민주언론실천위원회 보고서

MBC 노동조합이 지난 29일 발행한 민주언론실천위원회 보고서 ⓒ MBC 노동조합

반면 <뉴스데스크>가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의 최루탄 투척 사건이나 종로경찰서장 폭행 논란은 자세히 보도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MBC 노동조합은 "FTA 반대 진영에 불리한 최루탄 사건과 경찰서장 폭행 논란은 부각된 반면, 여당과 정부에 불리한 사안은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앞서 언급된 보도국 관계자는 "FTA 보도 자체에 대해 28일 저녁 기자 기수별 모임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데 동의하고, 이에 대한 글을 뉴스시스템 게시판에 올렸다"며 "그동안 MBC 뉴스에 신뢰를 가졌던 시청자들이 타 방송사로 옮겨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MBC 노동조합 역시 "'공영방송은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해 깊이 있는 취재로 정확한 판단 근거를 시청자들에게 제공해 여론 형성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것은 뽀얗게 먼지 쌓인 언론학 교과서에만 나오는 말인가?"라고 반문하며 "게시판 글 삭제 압력 건 등을 포함해, 한미FTA 보도에 대한 공정방송협의회 개최를 회사에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에 대해 이진숙 MBC 홍보국장은 <오마이스타>에 "보도국장이나 부장이 '삭제 지시'를 내렸다기보다 선배로서 의견을 내놓은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 국장은 "후배가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듯 선배 역시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나"라며  "다만 이러한 과정에서 오해가 빚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 국장은 "현재 MBC 인트라넷에 이와 관한 자유로운 의견이 오가고 있다"며 "보도국장이 기자들의 항의에 실수를 인정했고, 또 이렇게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는 것은 건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 국장은 노조가 MBC의 한미 FTA 보도 방향에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해서는 "편집 책임자 역시 나름의 기준과 철학을 갖고 있다"며 "한 쪽의 기준으로만 잘했다, 잘못했다를 가릴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2011.12.01 09:12 ⓒ 2011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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