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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연구 공간 '수유너머'

주변에서 '문학의 위기다' '인문학을 살려야 한다'는 말이 식상하게 들릴 만큼 인문학에 대한 고민은 현재 진행 중이다. 인문학을 전공한 학생들은 취업의 문턱에서 오늘도 한숨만 쉴 뿐이다. 인문학 공부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순 없을까? 그 답을 연구 공간 '수유너머'에서 찾아봤다.

인문학을 전공하고도 직장을 잡지 못하는 현실에서 고미숙씨는 지난 2000년에 인문학 연구공간을 만들게 됐다. 그리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지금의 '수유너머'가 탄생됐다.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인문학 연구 공간은 수유너머N, 수유너머 길, 수유너머R 등 다양한 모습으로 확산됐다. 남산에 있는 수유너머를 찾아가 보았다.

지난 8월 22일, 광화문에서 남산으로 가는 402번 버스를 타고 보성 여자고등학교에서 하차했다. 고지대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는 재미도 잠시…. 약도를 따라 수유너머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스마트폰이다 뭐다 하지만, 역시 길을 모를 땐 물어 보는 것이 최고였다. 동네 슈퍼 주인 할아버지 덕분에 겨우 수유너머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라는 간판이 보였다. 건물에 불도 켜져 있는 것 같은데 이러다할 입구도, 이정표도 존재하지 않았다. 수유너머는 '여기가 맞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평소에 다니던 학원이나 학교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수유너머에 전화를 걸었더니 "4층으로 올라오라"는 답을 들었다. 저녁에 찾아 갔기 때문에 밖은 어둑어둑했는데, 4층까지 올라가는 계단에 환한 불빛조차 없었다. 다소 음산하기까지 한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갔다. 수유너머에 들어가보니 세미나실이며 강의실, 카페, 식당 등이 있었다. '넝마주의'라는 팻말과 넝마주의에 맞는 의상들이 눈에 띌 뿐 특이한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게시판에는 '청년을 위한 워크숍' '가을 강좌' '책 낭송하는 금요일' 등 수유너머에서 진행 중인 강좌에 대한 소식이 가득 붙어 있었다. 입금이 확인된 사람들의 명단과 금액이 적혀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강의실에는 칠판과 책걸상이 비치돼 있었지만 사람들은 둥그렇게 둘러 앉아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20대 청년부터 40~50대의 중년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LP판이 가득한 카페는 요즘 뜬다는 부암동의 여느 카페와 견줘봐도 손색 없을 정도의 인테리어를 갖췄지만, 돈을 벌기 위해 운영되지 않는다. 공부하다가 피곤하면 쉴 수 있고, 담소도 나누는 공간이다. 자신이 사용한 컵은 직접 씻어 놓는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동의보감연구소에서 만난 류시성씨

수유너머 안에는 세미나실, 강의실, 카페 등 다양한 연구공간이 있다. 그 중에서 한약냄새가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동의보감연구소'를 찾아갔다. 한쪽 벽면에는 약재가, 반대편 벽면에는 각종 책이 가득했다. 류시성씨는 이곳에서 동의보감을 연구하는데, 강의도 하고 연말에는 학술제를 열기도 한단다.

"저는 강의할 때 수업출석, 지각, 과제 등을 엄격하게 관리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시작할 때 서로 동의한 부분이기 때문에 심하게 압박하는 편입니다. 인문학 공부는 자율적이지 않습니다. 강압적인 부분도 많습니다."

인문학 연구공간이라고 해서 자유로운 분위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수유너머를 둘러보니 폐쇄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처음에 오시면 폐쇄적이라고 느낄 수 있어요. 여기는 공부가 본업인 사람들이 공부에 전념하려고 모인 공간이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요즘 사람들이 서비스에 길들여져 있어서 더욱 폐쇄적으로 느낄 수도 있죠."

수유너머에 처음 전화를 걸고 방문했을 때 다소 딱딱한 분위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도 우리사회가 주는 과잉 서비스에 익숙해져 버린 걸까.

"생활비는 많이 들지 않아요. 연구실에서 연구한 성과물들은 강의에 쓰이고, 강의로 수입이 생기면 다시 연구비로 쓰지요. 저는 이런 방식으로 인문학 연구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고자 마음 먹었으니까 다른 것에 욕망이 없어요."

수유너머에 처음오면 밥 짓고 청소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20대들이 이곳에 처음오면 당혹스러워 해요. '집에서 다 챙겨 줬고, 내가 왕이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근데 청소는 절대 하찮은 일이 아니거든요. 공부하는 것과 같아요. 청소하면서 생활을 배울 수 있죠."

요즘 20대들은 매번 같은 사람을 만나고 비슷한 사람과 친구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수유너머에서는 공동체 생활을 통해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과 생활하며 관계를 맺는다.

"요즘 20대는 씨만 뿌리고 돌아다녀요. 싹이 자랄 때 까지 기다리지 않죠.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물이 없으면 쉽게 포기해 버리는 20대가 많잖아요. 인문학이 지속가능한 연구가 되기 위해서는 씨만 뿌릴 것이 아니라 거름을 주고, 물도 주고 적당한 햇빛을 비춰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인문학 공부를 위해 '빈집'에 사는 석류씨

'빈집'은 용산에 있는 생활공동체다. 한 집에 7~10명의 사람들이 함께 산다. 가족 문화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지난 9월 16일, 빈집에서 생활하며 인문학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석류(별명)씨를 만났다(빈집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모두 별명을 사용한다).

경북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석류씨는 인문학 강사인 이진경씨의 책들을 읽으면서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졸업 후에 취업하면 더 이상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없는 현실에서 고민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책 읽는 것을 좋아했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를 공부하면서 사회의 운영체제를 배울 수가 있었어요. 혼자 책을 읽으며 공부하면 할수록 일반적인 삶과 멀어져간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어요.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하나, 되돌아가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비판적 인문학은 세상의 근본 메커니즘을 잘 설명해 주기 때문에 저는 이게 좋아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어요."

석류씨는 홀로 공부하다가 4년 전에 서유너머를 알게 됐다. 그러다 6개월 전부터 수유너머N에서 공부하게 됐다고 한다.

"평소에 책으로 자주 접했던 이진경 선생님의 강좌를 들었어요. 저자 직강을 듣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죠.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대학생부터 40대까지 다양했고, 대안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들도 있었어요."

석류씨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공부를 오래 할수록 극복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인생이란 어떤 것일까 항상 고민해요.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한 번이니까 자기 나름의 색깔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란 풀어놓으면 각자 알아서 살아갈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사회는 사람을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잖아요."

남들과는 다른 데서 오는 두려움은 공부를 깊게 할수록 극복 가능하다지만 생계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최소한의 생활비로 살아가요. 저는 운이 좋아서 중·고등학생 과외를 하고 있어요. '큰 돈을 벌지 말자'는 철칙 아래 가난한 집 아이들을 위해 저렴한 수업을 하기도 해요."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수능식 체제를 답습하는 과외를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해 보였다.

"맞아요. 수능식 체제에 빌붙어서 돈 벌고 있는 것이지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안 벌 순 없잖아요. 완벽하게 이상에 맞게 살아갈 수는 없어요. 적절한 부분에서 타협점을 찾아요."

생활 공동체 '빈집'에서 거주하는 석류씨는 밥값을 포함해 한 달에 15만 원의 방세가 필요하다. 이 돈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남는 시간은 자유롭게 활용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생계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가족과 만나지 않은 지도 10년이 됐다고 한다. 전화로 인사 정도만 드린다고. 석류씨는 친구들과의 연락도 점점 뜸해짐을 느낀단다. 그럼에도 조금씩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예전에는 친구들을 만나면 제가 선택한 길에 대해 설명 내지는 변명을 하려 했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친구들이 측은해 보여요. 대기업에 다니고 외제 차를 끌고 다니지만, 오히려 저를 부러워하죠. 친구들은 제게 '너는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느냐'라고 말하죠. 그들도 그들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점이 있겠죠."

그렇다면 석류씨는 우리 삶의 화두인 '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돈을 많이 못 번다고 해서 공포에 휩쓸릴 필요는 없다고 봐요.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비슷한 질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대세를 따르는 것보다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죠. 우리는 가족 시스템에 길들어져 있어서 개인의 소유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죠. 저는 부모님께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드려요. 잘 살고 있다고 말씀드려요. 부모님은 남들과는 다른 인생을 사는 아들을 걱정하시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매달 회계 결산 0원? 수유너머N의 이유 있는 선택

여러 수유너머 모임 중 홍대 역 근처에 둥지를 틀고 있는 수유너머N을 찾아갔다. 한 달 운영비에서 월세를 빼고 나면 회계결산 '0원'이라는 이 연구공간은 어떻게 유지될까. 지난 9월 25일, 수유너머N을 찾았다.

2000년에 문을 연 수유너머는 2009년에 스스로 문제점을 직시하고 분리실험에 들어갔다. 몸집이 커지면서 관료화되었기 때문이다. 몸집이 커지자 개개인이 능동적으로 자기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적어졌다. 한 분야에 전문가가 생기게 되고, 전문가의 지시대로 일이 진행됐다. 개인은 단순히 정해진 프로그램에 투입될 뿐이다. 커지면서 학원의 병폐를 답습하게 된 것이다.

제도 밖의 연구공간을 꿈꾸던 수유너머가 분리실험을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최진석씨는 "몸집이 컷을 때가 재정적으로는 더욱 좋았다"며 "여러 수유너머 중에서 월세가 1300만 원인 곳도 있었는데,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하나의 조직이었던 수유너머에서 분리돼 '수유너머 구로'가 처음으로 문을 열었고, '수유너머 길' '수유너머 강원' 등 여러 수유너머 모임이 생겨났다. 하지만 실험에는 실패가 따르는 법. 운영문제와 재정문제 등이 겹쳐 현재는 수유너머R, 수유너머N 등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실패도 있었지만 수유너머가 10년 동안 지속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실험정신' 때문이었다. 여러 분파로 분리된 수유너머는 공부와 생활공동체의 결합을 표방한 '코뮤넷'을 결성하면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다. 현재 수유너머는 강의 위주가 아닌 생활공동체를 표방하고 있다. 밥도 함께 지어먹고, 공부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사람들이 모인다. 인적네트워크가 커진 것이다. 
  
홍대에 위치한 수유너머N 내부의 게시판
▲ 수유너머N 게시판 홍대에 위치한 수유너머N 내부의 게시판
ⓒ 손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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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NO! 꿈을 찾는 시간강사 최진석씨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는 최진석씨는 2001년부터 수유너머에 참여했다. 대우가 좋지 않지만 시간강사는 교수가 되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그가 명망 높은 교수가 아닌 인문학 연구자의 삶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공부라는 것이 시험기간에만 하는 것이고, 학교 졸업 후에는 공부와는 무관한 삶을 살게 되잖아요. 저는 삶과 배운 것이 일치되는 삶을 살고 싶어요. 만약 제가 교수가 되려고 했다면 학교나 학회에서 요구하는 조건에 맞춰 공부해야겠죠. 남이 보기에는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욕망하고 있을 뿐이에요. 저는 다른 사람이 보기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닌 제가 하고 싶은 인문학 공부를 욕망해요. 저 혼자라면 무섭겠지만 함께 공유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서 힘을 얻죠."

물론 그는 가난하게 살아도 좋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는 외부적 조건이 아닌 진짜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기준에 맞추어 사는 삶은 최진석씨에게 의미가 없다고 한다.

"수유너머 연구소에 살면 돈이 많이 들지 않아요. 최소한으로 살자는 것이지, 빈궁하게 살자는 것이 아니에요. 욕망이라는 것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에서 원하는 것이 아닌 다른 기준, 다른 욕망으로 살자는 겁니다."

교사 NO! 나를 찾는 전직 교사 정행복씨

정행복씨는 중학교 윤리교사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동료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꿈의 직업인 교사를 버리고 그녀가 선택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정행복씨는 2008년부터 수유너머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윤리교사로 10년 동안 일하면서 제도권의 벽을 탈출하고 싶었다고 한다.

"아이들과 지내는 삶은 좋았어요. 아이들과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이 그나마 학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는데, 꼭 학교 안에서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필요는 없다고 느꼈어요.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다가 수유너머라는 공간을 알게 됐습니다. 전세비와 퇴직금을 가지고 올라왔어요. 그런데 이 돈으로는 서울에서 전셋집 하나 구하기도 힘들더라고요."

그녀는 자신이 바라는 '대안적인 삶'을 찾았을까.

"교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인문학 공부를 선택한 것을 대안이라고 할 수는 없죠. 누군가를 만나서 이것저것 고민하고 실험해 보면서 대안을 찾고 있어요. 저는 다른 사람이 말하는 행복이 아닌 스스로 느끼는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누구나 꿈꾸는 교사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변변한 수입도 없이 수유너머에서 지내는 정행복씨의 돈 씀씀이는 어떻게 될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품위유지비라는 게 있잖아요. 사람을 만날 때도 돈을 많이 쓰고요. 하지만 여기 와보니 실제로 생활비가 많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수유너머에서는 직접 밥을 해먹잖아요. 한 끼 식사비가 2000원이었기 때문에 하루에 4000원이면 식비가 해결되더라고요. 직장생활 할 때보다 나가는 돈이 적죠. 저는 아직까지는 퇴직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어요. 강의료를 받기도 하지만 생계유지에는 큰 도움이 안 되죠. 앞으로 지속 가능한 생계를 위해 대책을 연구할 겁니다."


태그:#수유너머,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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