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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이국철 SLS그룹 회장으로부터 10년간 10억원 넘는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지난 10월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아이패드를 손에 들고 출석하고 있다.
▲ '10억 의혹' 신재민 전 차관 검찰 소환 이국철 SLS그룹 회장으로부터 10년간 10억원 넘는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지난 10월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아이패드를 손에 들고 출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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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4번째 검찰소환조사를 받은 뒤 22일 오전 2시께 귀가했다. "구명로비 청탁을 받은 적이 있느냐?" "금품수수의 대가성을 인정하느냐?" 등의 질문에 그는 답변하지 않았다. 앞서 진행된 3차례의 소환조사에서도 그는 금품수수의 대가성을 한사코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은 곧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신 전 차관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계획이다. 신 전 차관의 금품수수에 대가성이 있었다는 검찰의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 10월 17일에도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당한 바 있다.

이국철 회장은 5차례의 소환조사 끝에 구속됐다. 그렇다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에 지명될 정도로 현 정권 실세로 행세했던 신 전 차관은 어떻게 될까? 이와 관련, 검찰이 그를 구속할 만큼 대가성을 입증했는지 의문이다. 

세 차례 소환조사 끝에 구속영장 청구했지만 '기각'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 현정부 인사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고 주장한 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지난 3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 현정부 인사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고 주장한 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지난 3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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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지난 9월 'MB정부 실세 스폰서 의혹'을 폭로한 이후 신 전 차관은 지난 10월 9일과 13일, 16일, 11월 21일 등 총 4차례에 소환조사를 받았다. 한 차례 소환될 때마다 평균 10시간 이상 조사받았다. 소환횟수나 소환조사 시간으로만 본다면 나름 강도 높은 조사였다.

이 회장은 약 10년간 10억여 원의 금품을 신 전 차관에게 제공했다고 폭로했다. 지난 2002년부터 2011년까지 현금과 상품권, 법인카드, 차량 등 10억여 원의 금품을 지원해왔다는 것이다. 특히 신 전 차관이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도 이 회장의 '금품제공'은 계속 이어졌다.

이 회장의 폭로는 아주 절묘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당시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부산저축은행 핵심로비스트 박태규씨로부터 거액의 상품권과 골프접대를 받아 검찰수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또 다른 정권 실세인 신 전 차관의 '스폰서 의혹'이 불거져 여권이 위기감에 휩싸였다. 특히 김두우 전 수석(<중앙일보>)과 신 전 차관(<한국일보>, <조선일보>)이 모두 주류언론의 간부출신이었다는 점이 세간의 눈총을 받았다.

신 전 차관은 "이 회장의 폭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전면 부인했지만 검찰은 3차례 소환조사를 벌였다. 결국 신 전 차관은 일부 금품 수수 사실을 인정했다. 그가 검찰에서 진술했다는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명절 때 상품권을 받고 법인카드를 받아 쓴 적은 있지만 이것은 모두 이 회장과의 친분관계에 따른 것이다. 총 1000만 원 이하의 편의를 제공 받았을 뿐 거액은 받지 않았다. 게다가 대가성도 없었다."

신 전 차관이 받은 금품의 액수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지만 "대가성이 없었다"는 진술은 이 회장의 주장과 일치했다. 하지만 3차례 소환조사를 벌인 검찰은 지난 10월 17일 이 회장과 함께 신 전 차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구속영장에 따르면, 신 전 차관이 이 회장에게 받은 금품은 1억300여만 원에 불과했다.

당시 검찰이 내세운 '대가성의 근거'는 신 전 차관이 SLS조선소와 관련한 공유수면 매립 인허가와 관련해 이 회장으로부터 청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인허가 과정에서 문화체육부 차관이었던 신 전 차관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 정권 실세를 구속하기 위한 '근거'로는 약했다.  

법원도 검찰이 청구한 신 전 차관과 이 회장의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의심의 여지가 있으나 추가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이 더 규명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영장기각 사유였다. 현 정권 실세와 이 회장을 모두 구속시켜 '이국철 폭로 사건'의 여파가 여권 전체로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던 검찰의 시도가 좌절된 셈이다.

대가성의 명백한 근거인 검찰 구명로비는 전혀 수사 안해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의 야경.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의 야경.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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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검찰은 절치부심의 시간을 보내다 지난 10월 29일 신 전 차관의 자택·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하지만 이 회장의 폭로와 검찰수사가 진행된 지 한 달이 넘은 상황에서 실시된 압수수색이었다는 점에서 '실효성'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20여 일이 지나서야 신 전 차관을 다시 소환했다(11월 21일, 4차 소환).

검찰이 이번에 '대가성의 근거'로 내세운 것은 신 전 차관의 컴퓨터에서 발견한 '문서'였다. 이 회장이 SLS그룹 워크아웃을 무마하기 위해 신 전 차관에게 구명로비를 청탁했다는 단서가 이 문서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 전 차관은 22일 새벽 귀가하면서 "검찰에 와서 보니 외국계 신용평가회사가 한국선박산업 전반을 평가한 리포트였다"며 "이 회장 회사에서 만든 자료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공유수면 매립지 인허가'에 이어 신 전 차관의 컴퓨터에서 발견한 문서 한 건으로 신 전 차관 금품수수의 대가성을 입증하려는 검찰의 노력은 눈물겹다. 그런데 이 회장을 수개월간 취재해온 기자가 보기에 검찰은 대가성을 제대로 입증해줄 수사는 전혀 진행하지 않았다.

이 회장은 지난 9월 21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지난해와 올해 신 전 차관의 네팔 트래킹과 일본 여행에 각각 1000만 원과 500만 원을 지원했고, 올 1월부터 7월까지는 스포티지 차량을 임차해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이 지난 2009년 말부터 그룹과 계열사 워크아웃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음에도 신 전 차관에게 이렇게 금품을 제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약 10년간 유지해온 개인적인 친분관계가 작용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신 전 차관이 '모종의 역할'을 했기 때문일 공산이 크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앞 검찰 깃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앞 검찰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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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신 전 차관은 이 회장과 검찰 사이에서 '다리역할'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검찰 고위층 인사들을 많이 안다"는 사업가 김아무개씨를 소개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본인이 직접 검찰 고위층 인사들을 만나 구명로비를 벌였는 것이 이 회장이 작성한 '신재민 관련 비망록'에 드러나 있다. 

이 회장은 신재민 관련 비망록과 인터뷰 등을 통해 신 전 차관과 김아무개씨를 통해 구명로비를 벌인 '전·현직 검찰 고위층 인사'는 총 4명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가운데 1명은 청와대, 2명은 법무부 고위인사로 재직하고 있다. 특히 청와대에 재직 중인 '1명'은 사정라인의 고위층 인사다. 이들은 모두 '구명로비를 받았다'는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이국철 비망록'에는 현 검찰 최고위층을 비롯해 7명의 전·현직 검찰 고위층 인사들이 추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 쪽으로부터 구명로비를 받은 한 검찰 고위층 인사는 "SLS그룹 사건을 수사하면 현 정권이 흔들릴 정도로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고 한다. 특히 이 회장으로부터 수십 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정권 실세의 측근들도 이러한 검찰 쪽 구명로비 과정에 개입했다는 것이 이 회장의 주장이다.

이 회장이 이렇게 신 전 차관 등을 통해 구명로비를 벌인 것이야말로 명백한 '대가성의 근거'다. 하지만 검찰은 언론에서 공개한 '4명의 검찰 고위층 인사들'조차 조사하지 않았다. 검찰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의혹의 진실규명을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5차례의 소환조사와 2번의 구속영장 청구 끝에 '폭로자'인 이 회장을 구속했다. 이 회장도 지난 16일 구속수감되면서 이렇게 통탄했다.

"아이러니하다. 돈 준 사람은 구속하고, 받은 사람은 뒤에 있고. 그런 부분은 당황스럽다."


태그:#이국철, #신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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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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