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보았던 영화가 생각난다.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라면서 친구가 보여주던 그 영화에는 익숙지 않은 언어와 익숙지 않은 곳, 익숙지 않은 이야기로 가득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영화를 보면서 잠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영화는 2001년 한국에는 <아멜리에>라는 이름으로 개봉 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프랑스 영화였다. 프랑스에 개봉 되었던 제목은 'Le Fabuleux Destin d'Amelie Poulain', '아멜리 뿔랭의 믿을 수 없는 운명'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톡톡 튀는 영화 속 사랑스러운 아멜리에 덕택에 프랑스 영화는 너무 심오하고 재미없다는 편견을 그나마 덜어주었던 영화이다. 우리에게도 어느 프랑스 영화보다 친숙한 영화이다. 대학에 들어와서 다시 영화를 찾아보고는 간간히 들리는 간단한 프랑스어가 신기해서 몇 번씩 다시 보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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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스틸

파리에 가면 몽마르트를 제일 가보고 싶었다. 아마 이 영화의 배경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몽마르트로 가는 출구로 나왔을 때, 출구 앞에 있는 회전목마를 보고는 귓가에는 저절로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울려 퍼졌다.

이 영화의 음악을 작곡한 얀 티에르상(Yann Tiersen)은 프랑스에서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각광받는 작곡가이다. 프랑스에 오기 전까지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들으면서 내 머릿속에 프랑스의 로맨틱한 이미지를 만들어 갔었다. 이제는 아코디언 소리만 들어도 프랑스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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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리

오늘도 여느 때처럼 학교를 가는 길, 지하철에 타고는 역에서 나누어주는 무료 신문을 펼쳤다. 첫 장의 광고 면에 익숙한 얼굴이다. '누구지... 아 맞아!' 아멜리에 영화에서 식료품점에서 일하는, 항상 구박받지만 마음은 따듯한 루씨앙역을 맡았던 자멜 드부즈(Jamel Debbouze)이다.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지만 프랑스에서는 원맨쇼를 하는 코미디언이 많고 인기 또한 굉장히 많다. 영화에서는 크지 않은 조연 역할 이였지만 모로코 출신인 프랑스인 자멜 드부즈는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코미디언 중 하나이다. 그의 원맨쇼가 담긴 디브이디가 내일 출시된다는 광고이다.

 영화 '아멜리에'에서 루씨앙 역을 연기했던 자멜 드부즈. 프랑스에서는 알아주는 코메디언이다. 신문의 한면에 그의 원맨쇼 디브디가 출시된다는 광고가 나왔다.

영화 '아멜리에'에서 루씨앙 역을 연기했던 자멜 드부즈. 프랑스에서는 알아주는 코메디언이다. 신문의 한면에 그의 원맨쇼 디브디가 출시된다는 광고가 나왔다. ⓒ 영화스틸


다음은 영화가 소개된 장으로 넘겼다. 다시 익숙한 얼굴이다. 신문의 첫 장에서 자멜 드부즈의 얼굴을 보고 아멜리에를 떠올린 덕분에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영화 <아멜리에>에서 주인공 아멜리에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청년, 마티유 카소비츠(Mathieu Kassovitz)이다. 우리에게는 배우로서만 익숙하지만 사실 마티유 카소비츠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그가 연출한 1995년에 개봉한 <증오(La Haine)>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파리 교외지역에 사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흑백의 영상으로 그려낸 이 영화는 그 해 칸영화제에서 연출상(le prix de la mise en scene)을 받기도 하였다.

이런 그가 새 영화를 가지고 돌아왔다. 신문에서는 새 영화에 대한 그와의 인터뷰를 다루고 있었다. 그의 이번 영화 <질서와 도덕(l'Ordre et la morale)>은 자신이 연출 물론 직접 주연을 맡았다.

1988년 뉴칼레도니아의 우베아섬에서, 뉴칼레도니아의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며 일어난 인질극을 다룬 영화이다. 왜 이런 참사를 영화의 소재로 다뤘냐는 질문에, 이러한 사건은 어떻게든 꼭 다뤄져야 된다고 말하면서 자기가 영화로 만들지 않았어도 다른 사람이 영화화 했을 거라고 한다. 영화 <아멜리에>에서 아멜리에의 마음을 훔쳐간 그 남자하고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영화 '아멜리에'에서 주인공 아멜리에의 마음을 설레게 한 남자주인공 니노 역을 맡은 마티유 카소비츠. 그가 새 영화 '질서와 도덕'을 가지고 돌아왔다. '질서와 도덕'의 포스터와 영화의 한 장면, 신문에 실린 인터뷰 사진.

영화 '아멜리에'에서 주인공 아멜리에의 마음을 설레게 한 남자주인공 니노 역을 맡은 마티유 카소비츠. 그가 새 영화 '질서와 도덕'을 가지고 돌아왔다. '질서와 도덕'의 포스터와 영화의 한 장면, 신문에 실린 인터뷰 사진. ⓒ 프랑스신문과영화스틸


그러고 보니 영화 <아멜리에> 주연을 맡았던 오드리 토투(Audrey Tautou)도 본 기억이 난다. 며칠 전에 간 영화관에서 영화가 시작하기 전 예고편에서였다. 역시나 12월에 개봉할 영화를 두 개나 앞두고 있다. 한 영화는 데이비드 포앙키노스(David Foenkinos)와 스태파니 포앙키노스(Stephane Foenkinos) 감독의 < La Delicatesse (n.세련됨, 섬세함)>이고, 다른 영화는 자릴 라스페르(Jalil Lespert)감독의 < Des vents contraires(역풍)>이다. 역시 아멜리에 이후에도 꾸준히 영화 <다빈치 코드>, <코코샤넬> 등으로 계속 이름을 떨치고, 왕성한 작품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 10년 전에 보았던 배우들을 파리에서 다시 보니 기분이 묘하다. 역시나 제일 먼저 받은 느낌은 '다 나이를 먹는구나'라는 것이었다. 배우들 모두가 피부의 탄력도 10년 전보다 덜하고 주름까지 보인다. 하지만 탄력을 잃은 피부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모두가 멋있게 자기의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10년 전 친구 집에서 영화 <아멜리에>를 보고 있었을 때는 내가 파리에서 공부하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주위를 돌아보니 나는 영락없는 파리의 출근길 지하철 안이다. 아침부터 접한 이 배우들의 소식 때문일까 지하철의 소변 냄새 때문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던 내 얼굴에 쓰윽 미소가 지어지고 축 처져있던 어깨에 힘이 솟는 듯하다.

 주인공 아멜리에 역할을 맡았던 오드리 토투는 꾸준히 왕성환 활동을 하고있다. 12월에 개봉되는 La Delicatesse와 Des vents contraires의 영화 포스터.

주인공 아멜리에 역할을 맡았던 오드리 토투는 꾸준히 왕성환 활동을 하고있다. 12월에 개봉되는 La Delicatesse와 Des vents contraires의 영화 포스터. ⓒ 영화포스터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아멜리에 자멜 드부즈 마티유 카소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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