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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판결 26번째 이야기이다.
① 사기범에게 사자성어로 엄벌한 판결문(울산지법 11. 3.)
② 남편 의무는 않고, 지참금 청구한 염치없는 남편(서울고법 11. 16.)
③ 독립운동가 실형선고 판사, 친일일까 아닐까(서울고법 11. 10.)

[판결 1] 사기범 법정구속, 판사의 마지막 말 "뿌린대로 거두리라"

수억 원대 사기 사건 피고인이 재판에서 줄곧 범행을 부인하다가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직설적인 표현으로 피고인을 '단죄'한 판결문이 이채롭다. 판결에 등장한 사자성어로 내막을 들여다보자.

[감언이설] 2003년, 사업를 하던 A씨는 약사인 B씨에게 접근한 뒤 시내 중심가에 건물을 지어서 좋은 자리에 약국을 임대해주겠다며 돈 1억 원을 받아냈다. 이를 시작으로 신축공사 비용, 은행대출 로비 등의 명목으로 2년간 50여 차례에 걸쳐 합계 5억여 원을 받아냈다. B씨는 A씨의 감언이설에 속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지만 이미 재산은 한 푼도 남지 않았다.

[교언영색] A씨는 그래도 자금압박에 시달리자 이번엔 C씨에게 접근했다. 그는 "내가 B씨와 빌딩 신축 사업 동업중인데 자금이 필요하다"고 꼬드겨 3억 원을 챙겼다. 하지만 그는 16억 원의 은행대출을 포함, 상당액의 채무를 부담하고 있어서 새 건물을 짓거나 돈을 갚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법원은 "A씨의 교언영색에 속아서 피해자들이 거액을 편취당했다"고 보았다.

[사필귀정] 사기죄로 법정에 선 A씨는 "B씨가 동업을 제의해와서 투자금조로 받았을 뿐이며 C씨는 만난 사실조차 없다"고 변명했다. 울산지법(성금석 판사)은 3일 "A씨는 돈을 차용하고도 발뺌하면서 편취 범의를 부인하는 등 범죄적 악성이 실로 하늘을 찌르고 있다"며 "사필귀정으로 피고인의 변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법정구속] 울산지법(성금석 판사)은 징역 4년의 중형을 선고하고 A씨를 법정구속했다. 판결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뿌린대로 거두리라."

[판결 2] 남편 도리 못하고 지참금 청구... 염치없는 짓

 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송파동 송파여성문화회관 웨딩홀에서 북한이탈주민 합동결혼식이 열려 10쌍의 신랑.신부들이 주례사를 듣고 있다. 2010.11.5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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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의사 D(30대, 남)씨와 E(30대, 여)씨는 중매로 만나 결혼을 전제로 교제를 시작했다. E씨의 아버지는 딸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뜻에서 사위가 될 D씨의 아버지에게 "딸과 사위에게 5억 원을 주고, 아파트를 장만해주겠다"는 각서를 써주었다. 그뿐 아니었다. E씨측은 신랑측에게 예단비로 1억 원을 건넸고 새 차 구입비와 신혼여행경비조로 3천여만 원을 부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두 사람은 신혼여행은 물론 그 후에도 한 번도 부부관계를 한 적이 없었다. 더구나 D씨는 병원 일에 바빠 1주일에 두세 번 잠만 자고 나갈 뿐 부부간 대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할 정도로 사이가 나빴다.  

설상가상으로 D씨는 결혼 전 교제하던 여성들과 지속적으로 만남을 갖고 있다. E씨의 아버지는 생활비를 대주고 대출금을 갚아주는 등 딸과 사위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했으나 D씨는 결혼생활에 뜻이 없었다. D씨는 1년 반만에 이혼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법원은 "혼인파탄 책임은 D씨에게 있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 와중에 E씨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D씨는 E씨측에게 "각서대로 결혼 지참금 5억 원을 달라"며 민사소송을 냈다. 

이 사건의 쟁점은 결혼 생활에 불성실한 사위 D씨가 지참금을 청구하는 것이 정당한지 아닌지였다.

우선, 결혼지참금 청구는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

법원은 "경제력 있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많은 결혼비용을 주고 그 배우자에게 지참금의 형태로 경제적 도움을 주는 일이 종종 있다"며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발견되는 일반적인 현상이므로 도덕적·윤리적으로 크게 비난할 것은 아니"라고 판시했다.

하지만 법원은 결혼생활에 돈이 유일하거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면 사랑을 흐리게 하고 결혼의 행복이 사라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지참금은 일반상식과 관습에 따라 약속되고 지켜져야 하는 것이지, 계약의 형식으로 이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법원은 "각서는, 딸과 장래가 촉망되는 사위가 원만한 결혼생활을 해나가는데 경제적 뒷받침이 되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한 것으로서 사회통념과 상식상 충분히 이해되며, 비록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법적으로도 그 효력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결국 지참금 각서는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비난할 정도는 아니어서 법적 효력은 인정된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D씨는 혼인기간 내내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하지 않고, 다른 여자들과도 계속 관계를 유지하면서 오히려 이혼청구까지 한 상태에서 각서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이 정도면 "권리남용"이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D씨의 청구에 대해 ▲아내를 경제상황을 풍족하게 하는 수단으로만 삼은 점에서 평등한 인격체로서 혼인생활을 유지하도록 한 헌법정신에 반하며 ▲부부간 부양·동거·협력·정조의무는 전혀 이행하지 아니한 채, 각서상 권리를 내세우는 것은 건전한 상식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법의 진정한 취지와 정신에 반하므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결국, D씨가 남편으로서 의무와 도리를 전혀 다하지 못했으므로 처가로부터 지참금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법원은 D씨에 대한 충고도 빠뜨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경제적 가치를 중시하고 있는 점을 수긍한다고 하더라도,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가 있다. 혼인관계가 파탄된 이후에도 지참금청구를 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예의를 지키지 아니한 것으로서 염치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서울고법 제12민사부(재판장 박형남 부장판사)는 16일 "이 사건 청구는 인륜과 사회상규에 반하는 것으로서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며 1심과 마찬가지로 D씨에게 패소판결을 내렸다.

[판결 3] 독립운동가 실형선고 판사, 2심 "친일행위" 인정

일제 시대 판사로서 항일독립운동가들의 재판에서 수십명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행위는 친일행위일까, 아닐까. 1심 법원은 아니라고 했지만, 항소심은 친일이 맞다고 했다.  

192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총독부 배석 판사로 일했던 고 유영 전판사는 총 7건의 항일독립운동 관련자들의 형사재판을 맡았다. 그는 50여 명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조선총독부는 그에게 3차례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2009년 7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고인의 일제시대 고인의 행적을 조사한 결과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한다고 결정했다. 그러자 유족들은 이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먼저, 친일이 아니라고 본 1심 판결의 요지는 이렇다. 2010년 10월 서울행정법원(재판장 김종필 부장판사)의 판결이다(관련기사 : 친딸 상습 성폭행·임신시킨 아버지의 최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2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재단 기자회견장에서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4,77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2008년 4월 2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재단 기자회견장에서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4,77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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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가 독립운동가 재판에 관여하였다거나 단순히 일제의 훈공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항일인사들을 직접 고문·학대한 증거나 부당하게 자백을 강요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 일제의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서울고법 제7행정부(재판장 곽종훈 부장판사)는 10일 1심을 뒤집고 고인의 행위가 친일반민족행위가 맞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망인의 재판건수(7건에 독립운동가 총 54명에게 실형 선고)는 건수 기준 상위 10%에 달하는 점 ▲사건 내용들이 의열단 사건이나 한국혁명당 사건, 소작쟁의사건 등 일제 식민체제를 공격하는 행위였던 점 ▲실형을 선고받은 상당수가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훈·포장을 받은 점 등을 친일의 근거로 들었다.

법원은 또한 ▲실형을 받은 인사 중 이수택이 심한 고문 후유증으로, 김길룡, 김인학이 고문 여독 등으로 사망한 점에 비추어 보면 항일독립운동가를 탄압하는 판결로 분류함이 정당하다고 보았다.

법원은 망인이 배석판사에 불과해 적극성이 없었다는 유족들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망인이 재판 당시에 실제로 피고인들의 처벌을 반대하는 의견을 개진하였다는 등 특별한 사정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는 이상 배석판사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적극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일제의 훈공을 받은 사실만으로 친일로 분류할 수는 없다는 항변에 대해서도 "망인이 귀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훈4등 서보장을 받은 것은 25년이라는 긴 재직기간 내내 조선총독부의 재판소 운영 정책에 적극 호응하였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반박했다.

일제시대 판사로 일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딱지를 붙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겠다. 하지만 식민지의 판사가 되지 않겠다며 법복을 벗고 독립운동에 투신하다 목숨을 잃은 독립투사와 일제시대 법조인으로 부와 권세를 누린 인사가 역사적 평가에서도 차이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말로 부끄러운 건 친일이 아니라, 친일행위를 하고도 뉘우치거나 인정하지 않는 일이리라.

덧붙이는 글 |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반인을 위한 법률책인 <생활법률상식사전>(2010)과 <생활법률해법사전>(2011)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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