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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판결] 세 번째 이야기이다. 이번에는 1인 시위를 유죄로 인정한 판결과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을 재판한 판사에게 친일행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소개한다. 아울러 10대 소녀들에게 어른들이 저지른, 가슴 아프고 끔찍한 범죄를 고발한다. - 기자 말

1인 시위는 시위가 아니다. 적어도 법으로는 그렇다. 시위란 2인 이상이 공동목적을 가지고 불특정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를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집회나 시위와 달리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할 의무도 없다.

그렇다면 [사례①]과 같이 여럿이 동시에 1인 시위를 벌인 경우는 어떨까.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관련 발언과 천안함 유족 비하 발언이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국민참여당 이호상 당원이 조 내정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관련 발언과 천안함 유족 비하 발언이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지난 8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국민참여당 이호상 당원이 조 내정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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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①] 작년 10월 A씨는 서울 광화문광장 안에서 1인 시위를 하였다. 용산 화재 참사와 관련, 정부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A씨는 낮 12시부터 '정부, 용산문제 책임져라'라는 손현수막을 들고 있었다.

같은 시각, 광화문광장에는 A씨 말고도 1인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이 더 있었다. 그들 역시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규탄', '용산참사 외면하는 민생정치 기만이다'와 같이 용산참사와 관련된 내용의 현수막을 펼쳤다. 이들은 5m~20m 정도의 간격으로 서서 가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15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이를 지켜보던 경찰은 미신고 시위를 열었다며 이들을 연행하였고, 검찰은 6명을 집시법 위반으로 기소하였다.

법원은 1인 시위로 보지 않았다. 법원이 보기에 A씨 등은 "상호간의 의사연락 유무, 상호간의 거리, 현수막을 비롯한 시위 내용 등을 볼 때 전혀 분리된 주체로서 행동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A씨 등에 대해 "공동 목적을 가지고 상호 연락을 하면서 기세를 보여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려는 행위를 하였다고 인정된다"며 시위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지난 18일 서울중앙지법은 A씨 등 6명에게 미신고 시위를 벌인 혐의(집시법 위반)를 인정, 유죄판결(벌금형 70~100만 원)을 선고했다. A씨 등이 항소하였으므로 2심 재판에서 다시 사실관계와 법률적 판단이 가려질 전망이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를 섣불리 불법으로 판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의 취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정리해보자면 시위는 '2인 이상'이 모여 불특정 다수인의 의견에 영향을 주는 행위이다. 따라서 1인 시위는 시위가 아니다. 하지만 1인 시위라 할지라도 여럿이 동시에, 서로 일정한 거리에서 의사를 주고 받거나 행동을 함께 하였다면 시위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판사 친일 인정하려면 고문·학대 증거 있어야"

[사례②] 그는 조선말기인 1892년에 태어났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고등교육을 받았던 그는 1917년 약관의 나이로 조선총독부 재판소 서기가 되었고, 192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총독부 판사로 일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재판을 성실히 수행했다. 의열단원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한 이수택 등 독립운동 관련자들의 단죄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일제시대 60여 명의 독립운동가들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당시의 법에 따라 묵묵히 일했을 뿐이다. 그런 그에게 조선총독부는 3차례 훈장을 수여했다.

1945년 일제가 물러가자 그는 대한민국 법원의 판사로 일하다 1948년 변호사로 개업했고, 2년 뒤 세상을 떠났다.

어느 법조인(고 유영 판사)의 이야기다. 한 사람의 인생을 섣불리 평가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일제시대 행적과 관련한 역사의 평가는 불가피하다. 2009년 7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일제시대 고인의 행위가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한다고 결정했다.

유족들은 반발하며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는데 서울행정법원은 15일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이유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재판에 관여하였다거나 단순히 일제의 훈공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친일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정도로는 "일제에 현저히 협력"했거나 독립운동가들의 "탄압에 적극 앞장 선"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2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재단 기자회견장에서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4,77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2008년 4월 2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재단 기자회견장에서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4,77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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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현저히'와 '적극'에 방점을 찍었다. 항일인사들을 직접 고문·학대한 증거나 일제의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했다는 증거가 없으니 고인에게 친일의 딱지를 붙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판사가 친일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면? "불법으로 영장에 날인하여 부당한 신체구속을 당하도록 하였다거나 자백을 강요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단다.  

이 판결은 위원회가 4년반 동안 자료조사, 이해관계인의 의견 조회와 이의신청을 거쳐 발표한 결정을 뒤짚었다. 법원의 기준대로라면 일제 시대 고위직을 거칠수록 친일 인사의 숫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일제시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말단 순사를 택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상관의 명령에 따라 독립투사들을 잡아들였고, 자백을 받기 위해 고문과 가혹행위를 일삼아야 했다. 
   
반면 판사, 검사, 고위관료 등 고위직 인사들은 손에 피묻힐 일이 없었다. 법정에 오기 전에 '아랫것'들이 알아서 미리 다 자백을 받아놓았으니까. 그러면 말단 순사에게만 친일 딱지를 붙이는 게 옳은 일일까.

갑자기 혼란스럽다. 일제시대 목숨을 걸고 고난의 길을 택한 이들과 편안한 길을 간 사람들의 차이가 도대체 무엇인지 모호해지기도 한다.

10대 소녀를 짓밟은 '인면수심'의 어른들

가끔씩 인간이 하는 짓이 얼마나 잔인한지, 인간에 대한 회의가 생길 때가 있다. 살인, 강도같은 중범죄를 볼 때도 그렇지만 아직 피지도 못한 꽃같은 소녀들의 삶을 무참히 짓밟아버린 사건을 보고도 그런 생각을 한다. 인면수심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사례③] B(19)군 등 4명은 16~19세로 함께 어울려다니는 사이다. 그들은 C(16)양을 알게 된 후 계속 괴롭혀왔다. 돈이 궁했던 이들은 C양을 이용하여 이른바 '조건만남'으로 돈을 벌 계획까지 세우게 된다.

B군 일행은 밤마다 모텔방 컴퓨터로 '지금 아는 남자만', 'OO만남' 등의 채팅방에 접속, 조건 만남을 시도했다. 그들은 성인남자들과 '흥정'을 벌인 다음, C양을 모텔방으로 들여보냈다. C양이 받은 돈은 고스란히 B군 일행의 용돈이 되었다. C양은 몇차례 도망을 갔지만 그때마다 붙잡혀 가차없이 주먹과 발길질을 당해야만 했다.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21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관한 법률위반(강요행위), 폭력행위등처벌에 관한 법률위반(공동폭행)죄를 적용, B군에게는 징역6월의 실형을, 나머지 3명에게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법원에서 인정된 조건만남 건수만 쳐도 40건이 넘었다. 연약한 소녀를 이용한 못된 범죄를 저지른 B군 일행도 몹쓸 짓을 저질렀지만 열여섯 소녀와 성관계를 한 수많은 어른들은 또 뭔가. 안타깝게도 이들은 신원이 밝혀지지 않아 법의 단죄마저 피해갔다.

[사례④] D씨는 술을 마시면 사람이 아니었다. 3년전 그는 안방에 잠들어 있는 친딸 E양(당시 16세)을 보고 성욕을 느껴 성폭행을 저질렀다. 이 때문에 E양은 원치않는 임신을 하였고, 아이를 입양시키는 아픈 경험을 하였다.

하지만 D씨는 딸의 출산을 보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술에 취한 날이면 그는 집안에서 도망다니는 E양을 집요하게 따라가 성폭행을 한 후에야 잠이 들었다. 참다못한 E양은 법의 도움을 요청했다.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다. 아주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친딸을 성폭행한 죄로 법정에 서는 아버지가 없지 않다는 사실 자체가 슬프게 한다.

서울남부지법은 21일 "자신의 성욕을 충족하기 위해 친딸을 성폭행한 것은 정상적인 도덕관념을 가진 인간이라면 상상하기조차 힘든 반인륜적 범행"이라며 징역 10년을 선고하면서 5년간 정보공개, 7년간 전자장치 부착명령을 함께 내렸다.  

E양의 절망감이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을까. 더욱 가슴 아픈 건 E양이 이런 아버지를 용서해달라고 법원에 선처를 호소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이다. 딸을 성폭행하고 아이까지 낳게 한 아버지와, 이런 아버지를 용서해달라는 딸을 보면서 나이가 든다고 다 어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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