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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당을 나온 암탉의 주인공인 잎싹 역시, 수없이 나고 죽는 생명들 중 하나일 뿐이라 말한다.
▲ 강연 중인 황선미 작가 - 마당을 나온 암탉의 주인공인 잎싹 역시, 수없이 나고 죽는 생명들 중 하나일 뿐이라 말한다.
ⓒ 김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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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은 생각보다 많다. 그 속에 담긴 주제는 쉬운 깨달음이라기보다, 쉽게 표현한 깨달음이리라.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장자크상페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 등도 그렇다.

동화도 마찬가지다. 쉬워 보이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장편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황선미, 사계절출판사)을 처음 읽었을 때, 잎싹의 삶과 맞닥뜨렸던 그 첫 경험의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귀여운 닭의 모습을 예상했지만, 눈이 형형하고 털이 숭숭 빠진 잎싹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잎싹의 묵직한 세상이 펼쳐졌다.

그러나 실은 그 묵직하다는 것도 다 편견이다. 묵직한 삶은 묵직하게 느끼는 사람의 판단일 뿐…. 펼쳐놓을 만한 삶의 파노라마 한 개씩 가지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나무의 나이테는 선을 추가하고, 우리의 삶은 사연을 켜켜이 쌓아간다.

황선미 작가 역시 잎싹의 내면에 아버지를 넣었다고 한다. 가족에겐 한없이 거대하지만, 커다란 자연의 흐름 속에서 생겨났다 이내 사라지는 순환적 존재에 불과한 한 사람. 그리고 그 모습을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미약한 인간.

동화이기에, 또는 편한 마당을 박차고 나온 주인공이기 때문에 거창한 영웅 소설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법하다. 잎싹은 알도 낳지 못하는 폐계이고, 마당에서도 쫓겨났으며, 또 결국 애써 키운 초록머리를 떠나보낸 후에 족제비의 밥이 되고 마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잎싹이 주인공인 까닭은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죽음 앞에서 꿈을 이룬 기쁨보다, 꿈을 일궈온 생애를 만족하는 모습에서 더욱 커다란 공감이 인다.

"한 가지 소망이 있었지. 알을 품어서 병아리의 탄생을 보는 것! 그걸 이루었어. 고달프게 살았지만 참 행복하기도 했어. 소망 때문에 오늘까지 살았던 거야. 이제는 날아가고 싶어. 나도 초록머리처럼 훨훨,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
"아, 미처 몰랐어! 날고 싶은 것, 그건 또 다른 소망이었구나. 소망보다 더 간절하게 몸이 원하는 거였어."

다른 오리가 낳은 알을 품어 키우고, 죽기 직전까지 족제비를 피하며 살았던 잎싹의 고난은 우리가 살면서 겪는 것들과 다르지 않다. 저마다 꿈을 품고 살지만, 이루기는커녕 꿈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현실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날고 싶은 닭은 날아오르지 못했다. 날아오르지 못하는 나와 날고 싶은 나를 발견한 소득이 있을 뿐. 우리도 역시 죽기 전에야, 살아온 과정 자체를 돌아보게 될까.

그래서인지 잎싹이 초록머리와 함께 지낸 날들보다, 자식을 떠나보내고 홀로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 모습이 더욱 뇌리에 깊이 박힌다. 아마도 고은 시인의 [만인보]와 맞닿은 주제 때문이었나보다. 그곳에서는 역사라는 큰 그림에 속한 조각들을 비추지, 역사를 바꾼 한 사람을 조명하지 않는다.

이 땅을 밟고 사는 모든 이들의 삶은 더없이 소중하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지금도 이름없이 살다가 스르르 묻힌다.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스스로를 예외라 믿으며 발버둥치는 몇몇이 있을 따름이다.

어떤 꿈을 꾸며 살든, 죽음 앞에서는 잎싹의 담대함을 떠올리고 싶다. 이렇게 나는 살았노라 돌아보며, 시원한 바람을 가슴 깊이 들이마실 수 있는 평온함을 가지고 싶다. 그리고 내가 소설 속 주인공이라면, 잎싹처럼 죽은 후일지라도 날 날아오르게 해달라고 작가에게 부탁하고 싶다.


마당을 나온 암탉 (반양장) - 아동용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사계절(2002)


태그:#책, #한 구절, #마당을 나온 암탉, #꿈,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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