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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또는 그림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꽤 있다.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를 낳았고, <진주 귀고리 소녀> 역시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손에 의해 다시 태어났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18세기 말의 시 한 편이 음악으로 변신했고, 나중에 다시 소설로 바뀌게 된 내력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을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하는 사람들은 과연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한 소년의 지독한 성장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 더욱 불편한 책. 이 책은 이른바 정확하게 비행 소년의 내면을 직접 드러내 버린다. 그래서 불편하고 또 불편하다. 사람들은 '문제의식을 담은 소설'이라며 호평을 내리지만 사실 나는 이 책을 내 아이에게 읽히긴 싫다. 20세기 중반 청년들이 유행을 일으킨 것처럼 주인공 홀든을 따라 튀어나갈까봐 내심 겁이 난다. 1970~80년대 앨범에 꼭 끼워 놓은 건전가요처럼 안전한 책을 읽히고 싶기만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청소년들이 읽을 만하다. 대다수 청소년들이 숨겨 놓은 외로움을 시원하게 꺼내어 긁어주기 때문이다. 또 애써 동화처럼 꾸며 놓은 그들의 탈을 벗기고 참모습을 보고자하는 어른들 역시 읽어야 한다. 본질을 바로 봐야 - 관계를 개선하든 문제를 해결하든 - 변화를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그리고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하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호밀밭의 파수꾼> 본문 중)

 

'어른'이란, '아이'를 의식해 나온 낱말이다. 어른은 먼저 태어나 경험한 사람이고 경험한 것만큼 깨달은 사람이다. 그래서 아직 깨닫지 못한 아이, 그리고 조금 더 큰 아이인 '청소년'에게 해줄 말이 참 많다. 어른들은 그들이 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길 바란다.

 

그러나 그런 배려를 받으면서 청소년은 청소년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어른의 탈을 뒤집어 쓰게 된다. 청소년들은 '우리 어른들이 다 해봤으니까 너흰 해볼 필요 없어'같은 어른들의 생각 때문에 경험과 깨달음의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아이들은 되바라지고, 실천을 통해 깨닫는 것 하나 없이 머리만 커진 비대칭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꿈을 설정한다.

 

위에 인용한 구절은 다름 아닌 '문제아' 홀든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홀든은 테두리 밖에서 서성이는 든든한 벗바리 같은 어른을 간절히 기다린다. 또 자신도 그런 어른이 돼 절벽으로 질주하는 아이들을 그저 잡아주고 싶다.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절벽 끝에서 지키고만 있으면 되는 것을…. 청소년의 입장에서는 파수꾼 본연의 권한을 남용해 노는 길까지 정해주고자 아웅다웅하는 어른들로 인해 난감하기만 하다. 이들은 수시로 외친다.

 

"신경 써 주시는 건 고맙지만, 그 앞에서 좀 비켜주시겠어요?"

 

이제 권할 수는 있지만, 강요하지 않는 어른이 필요한 때다. 미리 실천하고 얻은 이론을 가르쳐줌으로써 다음 세대가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기보다는, 이론과 실천 모두를 얻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자세가 중요하다. 수많은 선현의 말씀처럼 이론 없는 실천은 어둡기만 하고 실천이 없는 이론은 위태롭기 때문이다.


태그:#책, #독서, #호밀밭의 파수꾼, #어른,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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