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건국대학교의 학보사, <건대신문사>(이하 신문사)를 2008년에 퇴임한 사람입니다. 앞으로 '사진'을 업으로 해야겠다는 인생의 지표를 심어준 곳이기도 하지요. 학교에서 제일 편한 곳이기도 하고, 후배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학생회관에 위치한 신문사를 여러 차례 들락날락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신문사 후배들에게 잔혹한 해인 것 같습니다. 언론홍보대학원장을 맡고 있는 주간교수 겸 편집인 정동우 교수와 수차례 편집권 분쟁을 겪어온 데 이어, 지난 13일엔 이동찬(자율전공 3) 편집국장이 해임당했기 때문입니다.
'오보' 책임 물어 편집국장 해임... 그런데 시기가 '미묘' 이동찬 편집국장의 해임 사유는 '일감호 투신 사건'에 관한 <건대신문> 공식 페이스북의 오보 때문인데, 이에 관해 학생기자들의 편집권 투쟁에 대한 보복성 해임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또 해임 절차에 대해서 학생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창구도 없었습니다. 우선 일감호 투신 사건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겠네요.
'일감호 투신 사건'은 지난 5월 건국대 학생 2명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지난 11일에 건국대 안에 있는 호수인 '일감호'에 투신한 사건입니다. 피해여성은 다행히도 학교 수위장에게 구출되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에 관해 <건대신문>은 페이스북에 최초로 쓴 글에서 가해학생들의 학과명을 공개하고, 성폭행 가해자가 학생이 아닌 교수라고 오보를 낸 바 있습니다. 학생기자들은 곧 오보에 대한 사과문을 페이스북에 게시하고, 인터넷에 정정보도문을 게재했습니다.
예, 맞습니다. 학생기자들이 오보를 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오보가 편집국장을 해임까지 해야 하는 일일까요?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사실 시기가 좀 미묘합니다. 해임조치를 취한 13일은 정동우 교수와 학생기자들이 편집권 분쟁을 벌이며 정 교수의 퇴진을 요구하던 때였고, 그 때문에 신문 발행이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주간교수는 학생기자들에게 오보에 관한 경위서를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저와 한 통화에서 주간교수는 "오보로 인한 건으로 해임을 한 것"이라며 "그 해임 이유를 밝힌 문서에 명시된 바 편집권에 관한 사항은 단 한 글자도 없다"며 해임과 편집권 분쟁이 관련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또 '이중징계' 의혹도 있습니다. 이미 징계를 받아 편집국장에서 해임이 됐는데, 일감호 투신 사건 가해자의 소속 단과대 측은 정동우 교수에게 이번 오보 사건의 당사자 및 관련자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학교 측에 징계위원회 소집 공문을 보내려 합니다.
'해임'된 후배, 이동찬 편집국장이 제게 말합니다.
"오보에 관해 사과문을 게재했고, 이에 관해 정황을 확인하는 과정인데 제가 해임을 당해야 하나요? 주간교수가 계속 오보에 대한 경위서를 요구하는데, 지금은 우리가 주간교수를 부정하는 상황이잖아요. 차라리 경위서를 내려면 총장님에게 직접 내던가 하지, 이 상황에서 내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대학언론들은 어떤지 물어보았습니다. 다른 대학언론들은 학생기자의 의견을 반영해서 징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백수향 편집국장은 "오보로 학생기자를 해직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든 일"이라며 "해직은 취재윤리에 어긋나는 일을 했을 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말했습니다.
또, "학생기자의 해직은 학생기자회의에서 회의를 거친 후 주간교수가 해임을 결정하는 식으로 진행된다"고 밝혔습니다. 중앙대학교 <중대신문>의 한 관계자는 "편집국장에게 징계를 내리는 경우는 학생기자 간의 회의를 거친 후에 주간교수가 최종결정한다"고 말했습니다.
대학언론의 편집권의 현주소 사실 어느 대학이나 학보사에서 편집권을 두고 주간교수와 학생기자들이 다투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저도 신문사에서 주간교수와 기사의 배치 등을 두고 언성을 높였던 일들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올해 후배들의 상황은 조금 더 심각한 것 같습니다. 지난해 9월 현재 총장인 김진규 총장이 취임하면서, 당시 언론홍보대학원 교수이던 정동우 교수는 KU미디어센터(학보사, 방송국, 영자신문사를 통합한 조직)의 센터장과 언론홍보대학원장에 취임하게 됐습니다.
지난해까지는 학생기자들이 회의를 거친 '편집기획안'을 교수에게 메일로 보내고 레이아웃을 수정하는 조판 과정에서 교수가 참여하는 정도로 주간교수가 편집에 관여했습니다. 그런데 올해에는 교수와 함께 하는 '편집회의'가 생겼습니다. 학생기자들이 회의를 거쳐 결정한 기획안을 교수와 다시 협의하는 회의입니다. 대학생활을 하며 2주에 한 번 신문을 내는 빡빡한 일정에, 전체회의가 또 생겼으니 시간적 여유도 없거니와 '데스킹'이 한 단계가 더 생긴 셈입니다.
또 주간교수와의 관계 때문에 신문 발행이 중지되는 사태가 벌어진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 3번씩이나 신문 발행이 중지됐습니다. 그뿐 아니라 교수와 학생이 쓴 사설의 방향이 각각 달라 분리시켜 신문에 게재한 일이나, 어떤 기사의 크기를 줄이고 다른 기사의 크기를 키우는 등의 일들도 일어났습니다.
학내 언론에 대한 규정, 학생기자의 참여 보장 없어 현재 건국대에는 'KU미디어센터 규정'이 있어, 주간교수와 학생들에 대한 일들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이번 해임 건은 규정 12조에 의거하여 진행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학생기자가 본사에 목적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였거나 명예를 훼손시켰다고 인정할 경우 센터장(주간교수)와 미디어실장과 협의하여 징계할 수 있다"입니다. 그런데 이 징계 과정에 있어서 학생기자들의 발언권에 대한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주간교수와 미디어실장의 협의만 있으면 징계가 가능해, 악용될 가능성도 다분합니다.
또한 KU미디어의 운영을 결정하는 '운영위원회'에 당사자인 학생기자가 참여할 여지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규정 5조에는 '운영위원회는 부총장, 각 처장, 센터장 및 총장이 위촉하는 5인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동찬 편집국장은 "언제 회의가 열렸는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통보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학생기자들의 편집권을 보장하는 규정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또 신문사의 사장은 총장이며, 그 신문사를 관리하는 것은 주간교수와 학내 직원인 실장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기자들이 학교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양태훈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