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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회관에 붙은 공현 씨의 자보
학생회관에 붙은 공현 씨의 자보 ⓒ 김정현

지난 13일 밤, 서울대 학생회관 게시판에 '저번주에 자퇴서를 냈는데…'라는 제목의 자보가 '공현'이라는 이름으로 게시되었다. '저번주에 자퇴서를 냈습니다. 아직 처리가 됐는진 모르겠습니다'로 시작하는 자퇴선언 자보였다. 글에는 글쓴이가 자퇴를 하게 된 계기와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담담하게 적혀 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을 통해 이루려는 바 역시 명확했다.

"쓰다 보니 거창해졌지만, 그냥 서울대 별로 오고 싶지 않았던, 학교도 잘 나오지도 않았던 웬 놈이, 등록금 낼 돈이 없어서 그만둔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 저 혼자 튀어보겠다고 이러는 건 아닙니다. 올해 수능철에 맞춰서, 고3 또는 19살인 청소년들 중 대학을 안 가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대학입시거부선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서 스무살 이상의, 대학을 안 갔었거나 그만둔 사람들이 <대학거부선언>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도 거기에 같이 하는 활동의 일환이고, 그걸 알리려는 목적입니다."

자보를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그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소문 끝에 연락처를 알아냈고 학교에 있던 나는 얼른 짐을 챙겨 홍대로 향했다.

자퇴의 의미는 사회적인 의식수준의 폭을 넓히는 것

한발 늦었다. 홍대의 한 까페를 찾았을 때 이미 그는 다른 기자와 인터뷰 중이었다. 게다가 그 기자는 다른 사람도 아닌, 몇 시간 전 공현씨에 대해 아는 것이 없냐고 연락을 걸어왔던 아는 선배였다. 기왕지사 이렇게 된 것 그 옆에 앉아 공동취재를 해야겠다고 말하는 내게 그 선배는 웃으면서 "너 이렇게 날로 먹으면 안 돼"라고 얘기했다. 서울대 자퇴선언을 한 그의 인터뷰는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됐다.

2006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한 공현씨의 본명은 유윤종. 그는 지난 주에 자퇴원을 냈다. 입학한 지 6년째가 되었지만 실제 등록을 하고 학교를 다닌 기간은 2년 정도밖에 안 된다. 자퇴를 한 이제는 학과도, 학년도 별다른 의미가 없게 됐다.

 홍대에서 만난 유윤종(24) 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홍대에서 만난 유윤종(24) 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 김정현

장발에 흙색 생활한복이라는, 소화하기 쉽지 않은 패션을 한 그의 첫 인상은 범상치 않았다. "아침에 잠깐 핸드폰을 꺼 놨는데 그새 전화가 30통이 왔더라"고 말하며 웃는 그의 이야기 속에도 외모 못잖은 내공이 실려 있었다.

그가 처음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전주에 있는 모교에서 작은 학생모임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청소년인권운동 단체인 '아수나로'가 생겨나던 때인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해서 청소년인권 활동가 네트워크라는 연대체가 만들어질 때에도 참여해 오늘에 이르렀다. 청소년운동의 특성상 "학교가 쉬는 주말에 주로 활동을 하느라" 쉬는 날도 따로 없다.

공현씨가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는 단단하면서도 경쾌한 발걸음이 느껴졌다. 그는 자기가 하는 운동의 의미를 과대평가하지도 축소시키지도 않았고,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허황된 꿈을 꾸지도 않았다.

"입시를 거부해서 바꾼다는 건 비현실적이예요. 수십만 명이 거부선언에 나설 수는 없으니까요. 제 활동은 '대학이 싫어서 안 가겠다는 게 아니라 문제가 있으니 안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그를 통해 바꾸어야하지 않겠느냐' 하고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그렇게 사람들이 가진 문제의식의 폭을 넓히는 거죠."

생계에 대한 걱정 있지만...

그는 대학입시거부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대학거부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선택이 온전히 개인적인 동기 때문은 아니다. 그는 대학입시거부라는 청소년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고민했고 선택했다. 그가 가진 사회적인 문제의식은 무엇이었을까.

"고등학교 때 등수 하나, 등급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싫었어요. 가장 불행한 건 하기 싫은 공부를 어거지로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흥미가 있어서, 더 알고 싶어서 공부하는 게 아니라 시험을 보기 위해 성적을 위해 공부를 하는 것 자체가 불행한 일이죠."

그는 교육적인 관점에서 본 입시의 문제 외에 "차별이나 편견, 취업이나 소득 문제"와 같은 사회적인 측면도 이야기했다. 이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경쟁에 뛰어든다. 그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스펙'을 쌓는 많은 이들이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한 경쟁원리에 따라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현씨 스스로는 어떨까?

"생계에 대한 걱정이 있어요. 아수나로로 들어오는 CMS 후원은 월 80만원 정도예요. 처음 활동 시작하던 무렵에는 '스스로 일자리를 줄 수 있는 활동단체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는데 5년 지난 지금은 그렇지 않네요(웃음). 인권교육이나 강연, 알바, 원고료로 벌고 있지만, 부모님한테 의지할 수밖에 없어서 미안하죠."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활동의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까닭들을 조용조용히, 하지만 주저하지 않고 풀어냈다.

"대학 와서 지방에서 대학 다니는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해 보면, 분위기 자체가 학생들이 학교에 애착이 없고 취업준비만 해요. 수업도 학점관리 차원에서 형식적으로만 접근을 하고.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으니까) 수업 듣는 것도 시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학교 다니는 것이 무의미한 과정이 되는 거죠."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걷는 새로움이 좋다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 공현 씨의 자퇴를 비판하는 글.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 공현 씨의 자퇴를 비판하는 글. ⓒ 스누라이프

공현씨는 학생회관 게시판 외에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직접 대자보 전문을 올려놓았다. 여기에 달린 댓글들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공감이 안 된다', '공부 좀 더 해라' 등 비판 일색이다. '번복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라며 자퇴라는 선택을 다시 생각하라고 부탁하는 글까지 올라왔다. 공현 씨는 그런 이야기들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리플에 '후배님 다시 생각해 보세요'라고 적힌 것이 있었어요. 근데 제 선배면 8학년 쯤 될 텐데 그런 사람이 아직 학교에 있을지 모르겠네요(웃음).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블로그에 올린 글에다가 누가 '김예슬보다 글빨이 딸린다'고 하던데 그건 기분 별로 안 좋더라구요(웃음)."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나 역시 그 리플들을 보고 온 터였다. 후회할 짓하지 말라며 혀를 차대는 사람들의 냉소를 보면서 나는 답답함을 넘어서 섬뜩함을 느꼈다. 그들에게서 20대만의 풋내 대신 장사꾼의 약삭빠름과 자기 주장만 고집하는 꼰대들의 고린내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서울대생일까. 문득 그 속에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그러한 이들로 이루어진 집단에게서 새로운 시도와 도전에 대한 가능성과 기대를 품는 것은 이율배반일 것이다.

그의 필명, 아니 어쩌면 진짜 이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공현은 '빈 활시위(空弦)'라는 뜻이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가 나타내는 긴장감과, 그러나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화살은 매기지 않았다는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누군가의 비판과 비난에 개의치 않고 차분하지만 일관되게 자기 길을 걸어가는 그의 모습과 무척 닮아 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그 길을 계속 걷게 만드는 동력을 물어보았다. 그는 밝은 얼굴로 답했다.

"우리 말고는 청소년운동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니까 매번 새로워요.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새로운 걸 만들어간다는 즐거움이 있어요. 그것 때문에 계속하는 것 같아요."


#서울대#자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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