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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대군 부인 정씨가 세상을 떠났다. 지아비로부터 버림받고 7년 동안 방치돼 있다 숨을 거둔 것이다. 슬퍼해주는 사람 없는 서글픈 죽음이다. 부인 정씨는 병조판서를 지낸 정연의 딸이다. 그의 아버지가 좌부대언에 있을 때 왕실과 연을 맺었다. 왕자와의 혼인은 본인은 물론 가문의 영광이다. 부러움속에 출가했고 오라비와 남동생들도 줄줄이 출세길에 올랐다.

슬퍼해주는 사람없는 죽음, 묘 자리는 명당으로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한량스러운 안평의 끼에 속앓이를 했다. 첩이 하나 둘일 때는 그래도 참았다. 하지만 도를 넘었을 때는 뒤틀린 심사가 표출되기도 했다. 안평은 '사대부집 아녀자가 이럴 수 있느냐?'며 칠거지악을 내세워 윽박질렀다. 간격은 점점 벌어졌고 급기야 방치에 이르렀다. 친정에서조차 정신이상자 취급했다. 불행한 여인이다.

부인 정씨의 죽음은 국상(國喪) 중에 왕실의 상사(喪事)다. 국상에 묻힐 수밖에 없다. 허나 안평은 달랐다. 부인의 염(斂)과 빈(殯)에는 관심 없고 묘자리에 집착했다. 명당에 안장해야 자신도 잘 되고 후손도 잘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풍수를 풀어 명당을 찾았다. 주로 경기도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경기 남양에 권손의 무덤이 있는데 이를 옮기고 부인을 장사지내고자 하오니 윤허하여 주소서."

안평이 청(請)을 올렸다. 권손 무덤 자리가 명당이니 그를 옮기고 들어가고 싶다는 얘기다. 왕과 왕비라면 가능한 얘기다. 왕이 승하하여 산릉자리를 찾을 때 좋은 자리에 이미 다른 사람의 묘가 있으면 옮기라 명하고 들어갈 수 있다. 허나, 정씨는 대군의 부인이다. 난처해진 임금이 의정부에서 의논하라 하명했다.

"나라에서 쓰는 것이 아니면 남의 분묘를 옮기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세종 조에 광평대군과 평원대군을 장사지낼 때 남의 분묘를 쓰려고 하였으나 모두 못하였는데 지금에 와서 남의 무덤을 파내고 장사지내는 것은 불가합니다."

안평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은 의정부에서조차 반대했다. 그러나 안평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여흥에 전 호군 윤제의 집 북쪽이 쓸만하니 청컨대 죽은 아내를 그곳에 장사하게 하소서."

있는 묘를 파내고 들어가겠다고 하지 않으니 반대할 이유가 없다. 윤허한 임금이 쌀과 콩 70석과 종이 1백 권, 그리고 관곽을 내려 주며 예장하라 명했다.

사대부가에서 사용하던 상여.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 상여 사대부가에서 사용하던 상여.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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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발인하는 날. 옥류동 안평의 집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상주가 34살 왕자다. 그것도 세도 막강한 대군이다. 상처한 서른네 살 사나이를 위로하러 오는 것인지 축하하러 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문상객과 상주 모두 표정관리에 어려움이 많았다. 권남의 수하 이몽가가 권남을 찾아왔다.

"정자제가 여흥에 같이 가자는 것도 뿌리치고 이현로가 여흥에 가면 그를 따라 붙을까 했는데 그는 강음에 간다 합니다."

망인은 정자제의 누이다. 세종 조에서 과거급제한 정자제는 사헌부 지평으로 출사하여 안평의 천거로 내섬시윤에 있다.

"안평 부인의 장지가 여흥인데 그럴 리 없다. 이현로가 그러한 술수를 부리는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여흥에 가거라."

"그럼 정자제와 동행하겠습니다."

안평 부인의 상여가 여흥에 도착했다. 왕실 상여를 전담하는 귀후서에서 제작한 호화로운 상여였다. 여흥 관아에 자리를 잡은 안평은 역사(役事)가 벌어지고 있는 산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그를 추종하는 이의산, 정자제, 박하, 강희안, 조완규 등과 어울려 활쏘기와 바둑을 두며 술을 마시고 잔치를 벌였다. 그 일행에  이현로가 있는 것을 발견한 이몽가는 눈을 의심했다. 강음에 간다던 이현로가 여흥에 있지 않은가.

신륵사 앞. 남한강
▲ 남한강 신륵사 앞. 남한강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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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이 여흥부사 노회신을 불렀다.

"이보시오 부사! 내가 부인을 이곳에 묻으러 왔는데 그대가 날 위로해 주어야 하지 않겠소?".

"황송하옵니다."
부사가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왜? 내가 이곳에 온 것이 싫소이까?"
안평이 부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부사가 연신 손을 비벼댔다.

"옛말에 상처한 젊은 상주가 뒷간에 자주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현로가 끼어들었다. 모두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쳐다보았다. 무슨 말이냐는 것이다.

"오줌소태가 난 것이 아니라 좋아 죽겠는데 문상객들 때문에 웃을 수도 없고 해서 웃기 위하여 자주 간다는 것이오."

"하, 하, 하."
"캬, 캬, 캬."
"크, 크, 크."

모두들 자지러지게 웃었다.

주유청강. 사대부들의 뱃놀이. 뱃사공과 피리를 부는 악사를 제외한 여섯 명이 쌍을 이루었다. 혜원은 화제에서 ‘피리소리는 바람을 타서 아니 들리는데 흰 갈매기가 물결 앞에 날아드는구나.’ 라고 썼다. 충청도관찰사 안왕경은 이 잔치가 빌미가 되어 정난 후, 죽임을 당했다. 간송미술관소장
▲ 혜원 주유청강. 사대부들의 뱃놀이. 뱃사공과 피리를 부는 악사를 제외한 여섯 명이 쌍을 이루었다. 혜원은 화제에서 ‘피리소리는 바람을 타서 아니 들리는데 흰 갈매기가 물결 앞에 날아드는구나.’ 라고 썼다. 충청도관찰사 안왕경은 이 잔치가 빌미가 되어 정난 후, 죽임을 당했다. 간송미술관소장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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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 나리 위로해주기가 저어하면 축하 잔치 베풀어 주어도 말리지 않겠소."

이현로가 터놓고 요구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부인을 먼저 보낸 대군을 위로해 주어야 할지 축하해 주어야 할지 도무지 처신하기가 어렵다.

"배 띄워라."
누구인지 모를 목소리가 좌중에서 튀어나왔다.

"띄워라."
"띄워라."
"하, 하, 하."

군중 아부가 이런 것일까? 누이를 장사지내러 온 정자제와 정자양도 부화뇌동하여 웃음을 터트렸다. 신륵사가 건너다보이는 강가에 배를 띄우고 잔치가 벌어졌다. 나라는 국상 중에 있고 개인적으로는 상주인데 예의가 아니었다. 더욱 망자의 오빠 정자양, 동생 정자제는 배알도 없는지 장사길에 잔치를 벌인 것이다.

왼쪽이 경기도, 강 건너 오른쪽이 충청도다.
▲ 천민천 왼쪽이 경기도, 강 건너 오른쪽이 충청도다.
ⓒ 송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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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가 무르익었을 때 이현로가 안평에게 속삭였다.

"충주가 가까우니 관찰사를 불러올리시지요. 그의 휘하에는 정예군사가 꽤 많이 있습니다."


여주에서 충주는 지척이다. 천민천(天民川)을 건너면 그의 관할 구역이다. 청주는 한양에서 동래에 이르는 영남대로의 교통요충이며 군사요충이다. 더구나 충주는 관찰사가 병마절도사를 겸하고 있다. 그의 휘하에 잘 훈련된 군사가 있다. 안평이 정자양을 불렀다.

"충청도 관찰사 안완경을 불러오라."
명받은 정자양이 붓을 잡았다.

"대군이 꼭 만나 보고자 하니 빨리 오도록 하라. 지체 말고 속히 오라."
서찰을 받은 관찰사는 난감했다. 가자니 법도에 어긋나고 안 가자니 후환이 두려웠다.

"안평대군은 경기도에 있다. 나는 충청도 관찰사다. 내가 대군을 만나러 여주에 들어가면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과오에 빠진다. 어떻게 해야 하나?"

관찰사는 공적인 업무가 아니면 관할을 벗어나서는 아니 된다. 이를 어기면 처벌을 받는다. 더구나 병마절도사를 겸한 관찰사가 군령 없이 움직이면 반역의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허나, 안평이 누구인가? 잘 나가는 왕자가 아닌가? 더구나 시절이 하수상한 이때에 세도 막강한 대군이 아닌가? 거역할 수 없었다.

안완경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부하러 스스로 찾아가는 길이 아니라고 위로해 보았지만 오라고 해서 간다고 면죄가 될 수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답이 없다. 이 때 호방이 묘안을 짜냈다.

"백성들은 흔히들 경기도 장해원과 충청도 장해원이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합니다. 실지로 이천 장해원, 음성 장해원이라 부릅니다. 천민천에서 경기도와 충청도의 경계가 갈리기 때문입니다. 천민천에 배를 띄우면 가할 줄로 아옵니다."

기발한 발상이다. 천민천은 경기도와 충청도의 경계를 가르는 하천이다. 그 하천에 배를 띄워놓고 접대한다면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시 답서를 보냈다.


세종시대 천민천(天民川). 중종시대 천미천(天彌川)이라 불렸던 하천이 일제강점기때 청미천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다리 건너가 충청도 음성 일명 음성 장호원이고 뒤쪽이 이천 장호원이다.
▲ 청미천 세종시대 천민천(天民川). 중종시대 천미천(天彌川)이라 불렸던 하천이 일제강점기때 청미천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다리 건너가 충청도 음성 일명 음성 장호원이고 뒤쪽이 이천 장호원이다.
ⓒ 송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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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주시지 않아도 소생이 찾아가 뵈어야 하는데 불러주시기까지 하시니 감은이 망극합니다. 하지만 소생은 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 몸, 저희 관할을 떠나기가 몹시 조심스럽습니다. 천민천에 배를 띄워놓고 모실까 하오니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정중하게 청했지만 살려달라는 읍소다. 서찰을 받아든 안평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얀 자 같으니라고. 내가 오라는데 오지 않고 날 오라고 해. 이런 발칙한 자가 있나."
옆자리에 있다면 금방이라도 요절을 낼 태세다.

"나으리! 고정하십시오. 관찰사의 입장을 이해해주시면 만인이 대군 나리의 인자함에 감복할 것입니다."
이현로가 나섰다. 아부의 달인들이 쓰는 연옹지치(吮癰舐痔)의 극치다.

"강줄기도 아닌데 배를 띄울 수 있겠는가?"
펄펄 뛰던 안평이 '인자'라는 한마디에 수그러들었다.

"남한강 줄기는 아니지만 풍광이 빼어납니다."
"경치만 좋으면 뭐하겠나?"
"그곳 기생들도 피양기생 못지않답니다."

이현로가 두 손을 비비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렸다. '기대하셔도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라는 웃음이었다.

"내가 천민천으로 간다고 편간을 보내라."

안평의 답서를 받아든 충청감사는 충주를 출발했다. 장해원으로 향하는 마상에서 즐겁지도 유쾌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이 길이 자신의 명줄을 재촉하는 길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안평과 조우한 안왕경은 천민천에 배를 띄워놓고 잔치를 베풀었다. 잔치가 끝나고 안평은 여흥 관아로 돌아가고 충청도관찰사 안왕경과 이현로는 충주로 향했다. 구체적인 군사동원계획을 확정하기 위해서다.

덧붙이는 글 | 연옹지치(吮癰舐痔)-종기의 고름을 빨고 치질 앓는 밑을 핥는다는 뜻. 지나치게 아첨함을 이르는 말.



태그:#수양대군, #안평대군, #청미천, #장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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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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