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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직접 모내기 하며 농사체험을 했던 논두렁에 세워진 팻말.
▲ 우렁이 잡아가면 안돼요 도봉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직접 모내기 하며 농사체험을 했던 논두렁에 세워진 팻말.
ⓒ 허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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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봉구 도봉동에는 아직도 시골마을 있다. 도봉1동 주민센터에서 무수천을 끼고 도봉산을 향해 1km 쯤 올라가면 도시의 끝자락이다. 거기부터는 등 뒤의 번잡한 주택가와 대조적인 산촌의 풍경이 펼쳐진다.

넓은 빈 들판에 드문드문 오두막 같은 집들이 눈에 띄고 암반으로 이뤄진 무수천을 흘러가는 맑은 물, 울창한 푸른 수풀과 산을 바라보는 사이 마음은 절로 고요하고 아늑해진다. 시골 오지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고향을 찾는 듯한 기분을 느낄 법하다.

이 마을의 옛 이름도 '무수골', '골'이라는 접미사가 벌써 고향의 흙냄새처럼 다가오며 지친 나그네를 포근하게 안아준다. 도봉산을 향해 난 구불구불한 길가에는 넓은 주말농장이 하나 있다. 서울시민이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되는 곳에 있기에 주말에 가족들이 함께 와서 직접 농작물을 심고 가꿀 수 있으며, 도봉산 산행까지 즐길 수 있어 매우 인기가 있다. 높은 산으로 올라가기 싫다면 무수천에서 발 담그며 휴식하면 된다. 그래서 골짜기마다 사람들이 빼곡했다.

주말농장을 지나 성신여대 난향원을 끼고 숲을 통과하니 길 오른쪽으로 푸른 벼가 한창 자라는 다랑논이 펼쳐졌다. 논두렁에는 "일하는 우렁이에요. 잡아가지 마세요. 도봉초등학교 6학년"이라고 적힌 팻말이 눈길을 끌었다. 무수골 원주민인 박원기(53)씨는 "도봉초교 어린이들이 직접 손으로 모내기를 해서 심었다"며 "기계로 모내기한 것보다 벼의 생육상태가 훨씬 좋다"고 했다. 자세히 보니 하얀 바탕의 팻말에는 작은 글씨로 모내기에 참여한 어린이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아이들이 논에 모를 심고 우렁이를 방사했어요. 우렁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들이 잡아가지나 않을지 모르겠어요."

무수동 이중계의 이현수 회장(오른쪽)과 박원기 총무. 이 회장은 옛마을을 지키며 살고 있고, 박 총무는 가까운 아랫마을 도봉동에 살면서 모교인 도봉초교 총동문회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한다.
▲ 무수골 원주민들 무수동 이중계의 이현수 회장(오른쪽)과 박원기 총무. 이 회장은 옛마을을 지키며 살고 있고, 박 총무는 가까운 아랫마을 도봉동에 살면서 모교인 도봉초교 총동문회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한다.
ⓒ 허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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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가 농사를 체험한 어린이들이 쓴 경고문을 기특하게 여기면서 걱정하는 말이었다. 네다섯 다랑이의 논을 지나면 한 마을을 이루고 있는 대여섯 가구의 민가가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고향을 지키는 원주민이 대부분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고, 등산객을 상대로 가게나 식당을 운영하기도 한다.

동네 입구에서 식당을 하는 이현수(75)씨 역시 조상 대대로 살아온 무수골 토박이다. 그는 무수골 원주민 중 장남들로 구성된 '무수동 이중계(里中契)' 회장이기도 하다. '이중계'의 사전적인 뜻은 '동리사람들이 만든 계(契)'인데, 과거 농촌마을에서 흔히 있었던 친목모임이었다고 한다. 온동네 사람들이 농업에 종사하던 시절 지주나 소작농 할 것 없이 서로 상부상조하며 함께 더불어 살았다. 모두가 한 가족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 같이 돌아가면서 하는 '품앗이'도 농업을 주업으로 하던 우리 조상들의 아름다운 전통이었다. 이제 사라져 버렸지만 지방의 농촌도 아닌 서울의 산촌에서 '이중계'의 맥이 이어져 간다니 신기하게 느껴졌다.

무수골을 최후까지 지키는 원주민들의 모임인 '이중계'의 회원은 70명 정도 된다고 한다. 이현수씨를 비롯해 10가구 정도만 무수골에 남아 있고, 나머지는 도시화가 된 아랫마을에 살거나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도 1년에 한두 번 모임 하는 날은 꼭 찾아와 옛 추억과 함께 정을 나눈다.

지난 12일 말복을 하루 앞두고 무수동 이중계가 친목회를 했다. 무수천이 흘러가는 시원한 계곡에 자리잡은 이현수씨의 노천식당에서 회원들이 모여 성찬을 즐겼다. 날씨는 아침부터 궂었지만 이슬비가 오는 둥 마는 둥, 대체로 시원한 가운데 잔치를 했다. 이씨는 친목회 모임 전날 밤잠을 설쳤다고 했다. 회원들을 초청해 놓았는데 폭우가 하루종일 쏟아지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집을 증축할 수 없으니 손님을 대접할 넓은 방이 없어서 걱정했던 이씨는 "다행히 큰 비가 오지 않아 나무 그늘 밑 평상에서 계원들을 잘 대접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기자가 갔을 때는 손님들을 다 보내고 난 후에 온 가족들이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이중계의 총무를 맡고 있는 박윈기씨는 이렇게 말했다.

"매년 여름 '복달임' 놀이를 하고 12월 5일은 총회로, 이렇게 두 번 정도 모입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모이는 장소도 아랫마을에 있는데, '공회당'이라고 불렀어요."

지금도 이중계의 공동재산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한때 경로당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새로 유입된 주민들이 들어와 섞이면서 원주민들이 반발하게 되었다. 원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지키며 관리해온 건물을 개방하기가 쉽지 않아 구청이 일반 주민들을 위한 경로당을 따로 마련해줬다고 한다. 그 후 원주민들끼리만 공회당을 쓰는 것도 다른 이웃에게 위화감을 주는 것 같아 지금은 제삼자에게 임대하고 있다고 했다.

박원기 는 무수골에서 차로 10분도 채 안 되는 거리인 아랫동네에 살고 있다. 도봉초등학교 총동문회장이기도 한 그는 늘 가까이 살면서 고향을 지킨다. 다행히 윗무수골은 국립공원지역이고 환경보존구역이어서 고향의 모습은 시대가 바뀌어도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서울에서 고향을 느끼고 싶다면 늦여름 무수골로 가는 게 어떨지. 지하철 1·4호선 창동역 동편에서 마을버스 8번을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시간은 15~20분 정도 걸린다. 1호선 도봉역에서 내려 무수천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도 20분 정도 걸린다.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걷기에 좋고 올라갈수록 운치가 있다. 이 마을의 음식점에서는 오리백숙이나 토종닭, 보신탕 등의 요리가 제공된다.


태그:#도봉동, #무수골, #이중계, #고향, #도봉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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