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을린 사랑>의 한 장면

영화 <그을린 사랑>의 한 장면


개봉 3주 만에 3만 5000명의 관객이 찾은 캐나다 영화 <그을린 사랑>(원제 Incendies)이 조용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화제작으로, 그리고 올해 아카데미 최우수외국어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되면서 주목을 받은 <그을린 사랑>은 <지구에서의 8월 32일>(1998)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및 토론토영화제 등 35개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며 화려하게 데뷔한 천재감독 드니 빌뇌브의 작품이다.

<그을린 사랑>은 작품성과 흥행 면에서 전 세계의 극찬을 받은 와이디 무아와드의 연극 'Incendies'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제는 '그을린'이지만 한국에서는 <그을린 사랑>,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노래하는 여인>, 스칸디나비아에서는 <나왈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됐다. 그리스 신화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하는 <그을린 사랑>은 전쟁의 참혹함과 그 속에 던져진 한 여인의 운명을 비극적으로 그리고 있다.

목구멍 속에 박힌 칼, 그것은 과거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서 "난 모든 것을 알아야만 하겠고, 끝내 진실을 보아야만 하겠다"고 말하는 오이디푸스처럼 진실을 아는 것은 그것이 결국 비극적 운명을 드러내는 행위일지라도 멈출 수가 없다. 어머니 나왈의 유언에 따라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와 존재조차 몰랐던 형제를 찾아 중동으로 떠난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은 어머니의 과거를 추적하면서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처참한 비극과 맞닥뜨린다.

"사람이 죽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모두 흔적을 남긴다. 과거란 목구멍 속에 박힌 칼처럼 빼내기 힘든 것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 한 마디를 통해 영화의 실체를 드러낸다. 수학자인 잔느에게 '1+1=1'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어머니 나왈의 목구멍에 칼처럼 박힌 과거이자 자신의 현재와 미래인 것이다. <그을린 사랑>은 전쟁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처절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레바논 내전을 추측하게 하면서도 영화는 정확한 시대와 장소를 드러내지 않는다. 기원전 3000년 경부터 페니키아인들이 도시국가를 세웠던 곳인 레바논은 194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지금까지 줄곧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 사이의 정권쟁탈을 위한 갈등과 대립이 지속되고 있는 곳이다. 여기에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주변 아랍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레바논은 어느 한 순간도 편안할 날이 없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인터뷰에서 "원작은 레바논 내전과 관련한 실제의 사건들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분노의 연쇄 고리라는 주제에 보편적인 힘을 부여하기 위해 실제 사건들을 시적으로 변용했다. 영화로 각색하면서 나는 정치적으로 중립의 입장을 지키는 데 힘을 쏟았다. 주제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비정치적이어야만 했다"라고 밝혔다. 그만큼 레바논과 주변 중동의 정세는 예민하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텅 빈 듯한 커다란 눈망울 속에 분노와 애수를 담은 어린 소년이 화면을 뚫을 듯이 응시하고 있다. 그 눈빛 사이로 라디오헤드의 'You and Whose Army?'가 흘러나오는 오프닝은 꽤나 강렬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종교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에 대한 물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무수한 전쟁의 중심에는 종교가 있었다. 그 무수한 살육의 현장에서 종교는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위해 전쟁을 하는가 라는 의문이 남았다.

"나는 아들을 잃었습니다... 왜 이래야 합니까"

 영화 <그을린 사랑>의 한 장면

영화 <그을린 사랑>의 한 장면


한국전쟁을 다룬 최근의 영화 <고지전>에서 북한군 중대장 현정윤이 생사의 기로에서 은표에게 말한다. "나도 처음에는 분명히 알았더랬어. 왜 우리가 싸우는지 말이야. 근데 하도 오래 싸우다보니까 왜 싸우는지 그걸 잊어버리고 말았지"라고... 인류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산 이후 셀 수 없이 많은 전쟁이 있어왔지만 그 전쟁을 겪은 사람들이 알까? 왜 전쟁을 하며 왜 싸우고 있는지를?

증오가 증오를 낳고, 복수가 복수를 낳는 끔찍한 악몽의 순환 고리를 끊는 것은 결국 모성에서 비롯된 용서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사람이다. 전쟁에서 비롯된 처절한 비극적 운명에 마침표를 찍는 것은 결국 나왈의 '함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라는 한 마디이다. 진실을 알게 됨으로써 고통은 따르지만 그로 인해 잔느와 시몽은 자유로워지고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깊이가 생긴다.

영화는 시종일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흡입력 있게 관객을 몰아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객석에는 움직임이 없었다. 모래먼지 이는 황량한 벌판의 살육 현장이 끔찍했다면, 평화롭게 보이는 수영장 장면에서는 전율이 느껴졌다. 나왈의 할머니가 부절처럼 새겨놓은 발뒷꿈치의 점 세개를 확인하는 순간 온몸에 흐르던 그 전율. 지금도 세상 어딘가에서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런 비극적 운명들이 되풀이되고 있지 않겠는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리비아와 시리아 등 세계는 아직도 전쟁 중이다. 또한 연평도에서는 며칠 전에도 포성이 울렸다. 종결되지 않은 전쟁의 시간을 살면서 누구라도 전쟁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누군들 그 끔찍한 악몽에서 자신은 비껴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가? 마지막으로 영국 폭동에서 아들을 잃은 무슬림 타지크 라한의 눈물진 호소를 되새겨 보고 싶다.

"나는 아들을 방금 잃었습니다. 하지만 흑인이든 아시아인이든 백인이든 우리는 모든 같은 지역 사회에 함께 살고 있습니다. 왜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합니까. 왜 우리는 이런 일을 저지릅니까. 지금이라도 당장 앞으로 나와보십시오. 자신의 아들이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당장 앞으로 나와보란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이제 자제하고, 집으로 돌아갑시다. 부탁입니다. 제발…."

덧붙이는 글 <그을린 사랑>에서 감독은 기록의 중요성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어머니의 유언장을 공증한 공증인의 사무실에 3대째 보관된 개인기록들을 보여주는 장면이나 전쟁 중에 불탄 고아원에서 나온 기록들이 국립기록보존소에서 온전히 보관되는 모습 등 영화 곳곳에서 감독은 진실을 찾기 위한 장치로 기록을 남겨둔다. 전쟁 중의 상황에서도 기록을 보존하려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기록연구사로서 우리의 기록관리에 대한 무관심을 반성해 본다.
그을린 사랑 영화 레바논 기록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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