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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지역의 지난 폭우는 거의 물폭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서울의 심장부라 할 광화문 네거리와 시청 앞 광장 일대를 혼란에 빠지게 했고, 한강변의 올림픽대로를 순식간에 대형 주차장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지하철 운행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도시기능을 순식간에 마비시켰다.

또한 서울 강남의 우면산 산사태는 남부순환도로의 기능을 마비시킴은 물론, 예술의전당 공연을 중지시키는가 하면 방배동 일대 주민들을 수재민으로 전락시켜 인근 모텔의 빈방이 없게 만들었다.

우면산 아래 방배동 경남아파트 주변 상황
 우면산 아래 방배동 경남아파트 주변 상황
ⓒ 이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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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 아래 방배동 경남아파트 주변 상황
 우면산 아래 방배동 경남아파트 주변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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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 아래 방배동 경남아파트 주변 상황
 우면산 아래 방배동 경남아파트 주변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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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우면산 산사태의 경우 천재지변이 아니라 난개발에 따른 인재라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으나 정작 문제는 수해복구다. 이런 와중에 수해복구 작업을 위해 동원된 병사들에게 어머니 같은 따스한 손길로 봉사하는 이들이 있어 주변을 훈훈하게 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방배3동 경남아파트에 거주하는 유정인(여, 54세)씨의 경우, 7월 27일 오전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둔 자신의 승용차가 우면산 산사태에 따라 흙탕물에 밀려나가 다른 차들과 뒤섞이는 광경을 베란다에서 그냥 멍하니 보고있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 딸이 출근을 못해 발을 동동 구르다가도 집 안으로 물이 들이닥치지 않은 것만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TV를 통해 연신 보도되는 전국의 수해 상황과 사망, 실종 소식을 지켜보면서 한편으로는 슬퍼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면산의 난개발에 또다시 분노하기도 했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서 수해복구 작업을 위해 동원된 군 병력이 아파트에 도착하여 작업하는 광경을 보는 순간, 유 씨는 군에 입대한 아들을 떠올리며 마치 자신의 아들이 복구작업에 동원된 것처럼 느껴졌다. 집을 나선 유 씨는 발목까지 혹은 무릎까지 빠지는 진흙탕 속을 헤매어 수방사 소속의 병사들이 작업하는 곳까지 찾아갔고, 말로나마 그들을 위로하며 마치 아들을 대하듯 병사들을 격려했다.

27일 저녁 복구 지원을 나온 병사들이 작업을 마치고 씻고 있다.
 27일 저녁 복구 지원을 나온 병사들이 작업을 마치고 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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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저녁 복구 지원을 나온 병사들이 작업을 마치고 씻고 있다.
 27일 저녁 복구 지원을 나온 병사들이 작업을 마치고 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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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저녁 복구 지원을 나온 병사들이 작업을 마치고 씻고 있다.
 27일 저녁 복구 지원을 나온 병사들이 작업을 마치고 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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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다시 군 병력이 도착하자 유 씨는 남편을 설득하여 간단한 음료나마 대접하자고 했다. 여기에 딸 김녹영(24, 고려대 4년) 양까지 합세했다. 더구나 아파트 현관까지 작업을 하러 온 병사들을 본 순간, 이들 가족에게 병사들은 마치 아들 혹은 동생으로 보였고, 이들에게 따뜻한 커피라도 한 잔 대접하려는 마음이었다.

집 안에 있던 커피와 설탕으로 모자라 남편을 시켜 동네 슈퍼에서 커피와 종이컵을 쓸어오다시피 했다. 마침 냉장고에 있던 수박을 꺼내 잘랐고, 가스레인지 세 구멍에 물을 끓였다. 딸이 우산을 받고 유 씨와 유 씨의 남편은 병사들에게 커피를 배달했다. 작업을 하다 마시는 커피의 맛은 병사들에게 남달랐을 것은 물론이다.

유 씨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연락하여 '우리 아파트에 지원 나온 군인들에게 자그마한 정성을 보이자'며 빵과 우유를 지원받아 점심 전에 간식으로 제공했고, 이어 자신이 다니는 방배동 성당에 연락하여 이원규(마테오) 주임신부로부터 생수와 초코파이 300 명 분을 지원받았다.

경남아파트 관리사무소, 방배동 성당 그리고 세 여인이 합작하여 마련한 위문품들
 경남아파트 관리사무소, 방배동 성당 그리고 세 여인이 합작하여 마련한 위문품들
ⓒ 이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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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아파트 관리사무소, 방배동 성당 그리고 세 여인이 합작하여 마련한 위문품들
 경남아파트 관리사무소, 방배동 성당 그리고 세 여인이 합작하여 마련한 위문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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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유 씨는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육군 백골사단 소속 병사들의 부모 모임인 <아들사랑 백골사랑> 카페에 연락하여 상황을 설명했고, 마침 연락을 받은 회원 홍길순(여, 50, 서울 목동) 씨와 서경인(여, 47, 서울 신림동) 씨가 빵 200개, 커피믹스 세 박스, 종이컵 한 박스를 가져왔다. 물론 세 사람이 갹출한 돈으로 홍 씨와 서 씨가 외부에서 사가지고 온 것들이었다.

세 여인은 휴식 중인 병사들에게 직접 나누어주며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병사들을 격려했고, 부대 측에서도 순수한 어머니의 마음을 담은 그 뜻을 받아들여 이들은 병사들과 어우러져 마치 한 가족이나 된 듯이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더구나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있는 병사들은 특히 남같지 않은 것이 이들 어머니들이다. 그렇기에 막간을 이용해 어머니께 전화하라고 휴대전화를 내어주는가 하면, 사진을 찍어 어머니에게 전송을 해주기도 했다. '엄마한테 자주 전화해라', 혹은 '건강하게 제대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육군 제71사단 전차부대 소속인 이 병사들은 아침에 비상이 걸려 한 시간 반을 차로 이동하여 작업에 동원되었기에 이와 같은 어머니들의 따뜻한 배려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마침 백골 신병교육대 출신 병사가 있어 더욱 어머니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마침 병사들을 위해 부대에서 준비한 중식으로 주먹밥이 나오자 이들은 다시 한데 어우러져 마치 아들과 어머니의 점심상인 양, 서로를 격려하며 맛난 야외 점심 식사를 즐기기도 했다.

간단한 빵과 음료이지만 병사들에게는 어머니가 주시는 것과 같다.
 간단한 빵과 음료이지만 병사들에게는 어머니가 주시는 것과 같다.
ⓒ 이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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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들이 준비한 간식 그리고 주먹밥을 함께 나누어 먹는 병사들과 세 여인
 어머니들이 준비한 간식 그리고 주먹밥을 함께 나누어 먹는 병사들과 세 여인
ⓒ 이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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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유정인, 홍길순, 서경인 씨는 육군 백골사단 소속 병사 부모들의 모임인 <아들사랑 백골사랑> 카페 회원들로 카페 안에서는 <관후맘>, <웅이맘>, <승훈맘>으로 통하는 이들이다. 그렇기에 병사들에 대한 사랑도 남다르다. 이 세상 어느 어머니가 그렇지 않겠는가만, 특히 이들은 아들이 같은 신병교육대 출신이라는 인연으로 모여 서로 안부를 물으며 후임부모들에게 병영생활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제공해 주며 안타까운 어머니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사람들이다. 나아가 신병교육대 수료식에 면회객이 없는 병사들을 위해 따로 위문 행사를 하며 하루 어머니가 되어주는 봉사도 하고 있다.(관련기사 보기)

어머니들이 준비한 간식 그리고 주먹밥을 함께 나누어 먹는 병사들과 세 여인(사진10, 11, 12, 13, 14)
▲ 사진11 어머니들이 준비한 간식 그리고 주먹밥을 함께 나누어 먹는 병사들과 세 여인(사진10, 11, 12, 1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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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들이 준비한 간식 그리고 주먹밥을 함께 나누어 먹는 병사들과 세 여인(사진10, 11, 12, 13, 14)
▲ 사진12 어머니들이 준비한 간식 그리고 주먹밥을 함께 나누어 먹는 병사들과 세 여인(사진10, 11, 12, 1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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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들이 준비한 간식 그리고 주먹밥을 함께 나누어 먹는 병사들과 세 여인(사진10, 11, 12, 13, 14)
▲ 사진13 어머니들이 준비한 간식 그리고 주먹밥을 함께 나누어 먹는 병사들과 세 여인(사진10, 11, 12, 1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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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병사들을 위한 봉사에는 이골이 난 사람들이이기도 하지만, 수해복구를 지원나온 병사들을 챙기려는 이들에게는 남다른 아들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수해의 원인을 따져 묻고 서로 책임을 전가하기 바쁜 정치세력과 높은 자리에 앉은 기성세대와는 달리 묵묵히 명령에 따라 복구작업 지원을 나와 땀을 흘리는 병사들도 그렇지만, 그 병사들을 예사로 보지 않고 아들로 여겨 따뜻한 커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고픈, 아들을 군에 보낸 어머니들의 마음이 있기에 대한민국은 그래도 살 만한 나라가 된다.

누가 시켜서 이런 일을 할까. 전혀 아니다. 병사들은 명령에 따라 복구작업을 나왔겠지만, 이들 어머니들은 이 병사들을 단순한 작업병이나 일꾼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도 분명 내 아들과 같이 군에 복무하는, 어느 집의 귀한 자식들이다. 그러니 내 아들과 진배없다. 그렇기에 따뜻한 커피 한 잔, 빵 한 조각 먹이고픈 것이다.

이들은 동원된 병사들과 함께한 하루가 오히려 행복했다고 말한다.

이들 병사들에게 그리고 이들 어머니들에게 지금 당장 내 집의 피해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바로 지금 흙더미를 치우고 물길을 내어 사람들이 왕래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 일만 보이고, 또 그렇게 땀흘려 일하는 아들이 보일 뿐이다.

이런 마음을 군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들을 군에 보내지 않은 어머니는 더욱 모른다.
나라의 부름에 묵묵히 병역 의무를 다하는 이런 병사들이 있고, 이들을 내 아들처럼 생각하는 어머니들이 있기에 아직 이 사회에 희망은 있는 것이다.


태그:#아들사랑백골사랑, #우면산, #방배동경남아파트, #물폭탄, #난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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