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 책겉그림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 비아북

관련사진보기

'십자군 전쟁'하면 떠오르는 게 있다.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서유럽 기독교와 이슬람교도들 사이에 벌인 200년간의 전쟁이 그것. 더욱이 이슬람 세력들을 물리친 곳마다 십자가 깃대가 꽂혀 있고, 그곳마다 하나님의 도성이 새로 건설되었다는 것. 그런데 그런 시각이 오직 서유럽 중심의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라는 걸 아는가?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1, 2, 3>은 서유럽 중심의 십자군 전쟁이 아니다. 김태권은 평화와 공존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무슬림이 바라본 십자군 전쟁의 기록도 최대한 인용하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 보다 균형 잡힌 시각을 찾고자 하는 까닭에서다. 사실 그가 이 책을 쓴 것도 부시가 벌인 이라크전쟁이 왜 잘못된 전쟁인지를 밝히고자 하는 뜻에서 시작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나?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게 된 그 밑바탕이 무엇인지, 어떤 역사든지 당대 역사에서는 정의보다 힘이 더 우선시한다는 것, 그리고 평화를 위한 포용정책은 그 어떤 명분 있는 군사정책보다 훨씬 지지기반이 오래간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로부터 1세기, 부시는 신(神)이 이라크 정복에 있어 자기편이라 확신한다. 그는 언제 어디서 신의 음성을 들었을까? (…) 하느님은 백악관의 부시와 로마의 교황에게 각각 다른 명령을 내린 것일까? 아무튼 피에르는 미국 대통령 급의 꿈을 꾼 셈이다. 그러니 인생이 변화하지 않을 리가 있나!"(1권, 83쪽)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 책겉그림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 비아북

관련사진보기

제 1권에서도 밝혀주는 바가 있지만, 황제를 둘러싼 권력 기생충들은 은자 피에르가 본 예루살렘 탈환에 대한 환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무지한 군중들은 정권의 선동에 무지와 편견으로 쉽게 십자군에 뛰어든다. 가난한 군중들이 정치권력의 기생충들이 벌이는 숨은 야욕에 쉽게 놀아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제 2권은 군중십자군이 휩쓸고 간 뒤, 노르만의 전사 보에몽이 이끄는 1차 십자군의 본대가 니케아와 안티오키아를 점령하고, 마침내 예루살렘까지 입성하는 장면을 그려낸다. 그 과정 속에서 정의를 위한 논쟁이 터져 나오지만, 그 어떤 정의보다 힘이 곧 정의가 된다는 사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마이클 샌더스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전 세계를 강타한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아테네 사람이 멜로스 사람들에게 몹쓸 짓을 했고, 또 아테네 사람들이 스파르타 사람들에게 몹쓸 짓을 당했고, 소크라테스도 결국 힘을 가진 국가의 악법에 의해 사형을 당했는데도, 아테네 사람들은 힘을 지닌 국가에 맹종하며 살았다. 정의를 주장하긴 했지만 결코 정의로운 나라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 2권을 읽는 동안 그의 <정의>가 떠오른 것도 그 때문.

제 3권은 이슬람 지역에 탄생한 네 개의 십자군 국가들의 영토 확장에 대한 야욕을 다루고 있고, 예루살렘 왕국의 멜리장드 공주를 내세워 무슬림과 십자군 사이의 공존도 모색하지만, 무슬림의 반격도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평화와 공존을 위한 메시지가 아무리 정당하다 해도 전쟁을 통한 평화와 공존은 침략전쟁을 미화하기 위한 슬로건에 지나지 않다는 걸 드러낸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 책겉그림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 비아북

관련사진보기

왜 이 책이 재미있는 걸까? 중간 중간에 말도 안 되는 말장난들이 잔뜩 들어 있고, 십자군 전쟁 때 일어난 사건들을 현대 세계사와 비교해주고 있고, 더욱이 기독교나 이슬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김태권은 십자군과 관련된 책을 60여 권이나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책 곳곳에 인용문의 출전과 학문적 근거를 꼼꼼히 밝혀 놓고 있다.

더욱이 예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걸 하나 짚어주는 게 있었다. 십자군이 들이닥쳤을 때 이슬람이 쉽게 패한 원인이 그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이미 6세기에 세워진 이슬람이 10세기 접어들면서 탄탄한 정치권력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건 이 책 3권에도 나오지만, 십자군이 쳐들어올 때 이슬람 정권은 그만큼 사분오열돼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십자군에게 쉽게 패배한 이유.

"1차 십자군이 왔을 때 이슬람 세계는 왜 그리 당하기만 했을까? 주민들이 십자군을 반긴 것도 아닌데.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정신없었다는 게 정설. 먼저 바그다드. 압바스 가문엔 칼리파라는 이름만 남았을 뿐. 권력은 투르크 사람들에게 넘어가 있었다. 그러나 셀주크 투르크는 이 무렵 계승 전쟁으로 소란스러웠고. 다마스쿠스 등 지방에서는 군벌들이 나라를 세워 서로 싸웠다. 십자군한테 반격할 상황이 아니죠."(3권, 35쪽)

아무쪼록 서유럽 중심의 세계사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보다 객관적인 십자군 전쟁을 알려주는 그의 시각을 따라 읽어보길 바란다. 만화로 돼 있고, 곳곳에 유머와 해학과 풍자가 솟아나고 있으니 그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무지와 편견과 오만으로 가득 차 있던 서유럽 중심의 '성전'(聖戰) 개념이 얼마나 어긋난 것인지 바로 알 수 있기를 바란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 군중십자군과 은자 피에르, 개정판

김태권 글.그림, 비아북(2011)


태그:#김태권의 십자군 전쟁, #부시가 벌인 이라크 전쟁, #멜리장드 공주, #전쟁을 통한 평화와 공존은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